준비되었습니까? 그러면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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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08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디모데후서2:20-21 준비되었습니까? 그러면 쓰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왜? 나는 누구보다 못한 것이 없는데 하는 일마다 되지 않고 제대로 사용되지 않을까 하고 불만해 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만하면 어디에 내어놓아도 빠지지 않을 터인데 누구는 내 보다 못하는 것 같은데 더 잘 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함을 참으로 안타까워하고 속상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속이 상하고 사용되고 싶어도 주인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내가 이렇다가 아니라 주인이 보기에 합당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인이 보기에 합당하게 준비만 되어 있다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일과의 생활의 삶에서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서 준비하는 자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이만하면 됐다는 없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보시기에가 되어야 합니다.
1974년 미국 텍사스 주의 휴스턴 우주 발사대에서 생긴 일입니다. 제미니 7호가 세계 역사상 최초의 우주 랑데부를 하기 위하여 발사대에서 발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드디어 2초를 남기고 세기적인 계획이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원인은 1달라도 안 되는 작은 플러그가 퉁겨져 나간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때 자동적으로 계전기가 닫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로케트의 모든 동력은 중지되었습니다. 아주 미약한 부속품 하나가 세기적인 거대한 계획을 망치게 하고 말았습니다.
나사에서는 다 준비가 된 줄로 알았는데 실제적으로 발사 준비가 안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발사가 안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제부터라도 발사가 되지 않는다고 하기 전에 준비되지 않는 작은 플러그를 찾아 다시 발사를 위해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준비만 되면 발사가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사용하도록 준비를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나의 모습 그대로를 순수한 믿음으로 남아있다면 귀하게 여기고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큰집에는 그릇들이 많이 있는데 다 똑같이 생긴 그릇이 아니라 다 다르게 생겼고 그 재질도 다 달랐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어떤 그릇을 사용했습니까?
모양도 선택의 기준이 아니고, 또 재질도 선택의 기준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신앙의 그 순수(순전)함을 가지고 있느냐?에 있었습니다.
다 다른 지체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비교의식을 가지지 말아야합니다.
당신과 당신 절대로 비교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다 똑 같을 수가 없습니다.
내 같이 되라고 해서도 안되고 당신같이 되고 싶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순수한가 깨끗하냐 오염되지 않았느냐? 에 있습니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을 보십니다.(과일, 야채, 곡식, 생선, 육류등)
지금 음식물을 취하는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 무엇입니까?
잘생긴 것입니까? 색깔이 좋으냐? 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오염이 되지 않았나? 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가지지 못했다 내가 능력이 없다 내가 배운 것이 없다 내가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결코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순수한대로 남아 있기만 하면 귀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동방의 의인 욥은 그의 순전하게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며 그는 그의 죽기 전에는 결코 순전을 버리지 않게 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순수함을 자신의 목숨하고도 바꾸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말하기를 주께서 나를 판단하실 적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발 여러분의 인간적인 조건이 부족하여 답답해하지도 말고 또 그 부족을 메우기 위하여 외식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실력이 없으면 외식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바리새인들은 외식으로 믿음을 대신하려고 하다가 한번도 사용되지 못하고 욕만 실큰 얻어먹었던 사람입니다.
실력이 있지만 순수하지 않는 한 외식하는 바리새인 쓸모가 전혀 없습니다.
비록 좀 부족해도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아는 순수함을 가진 세리를 사랑하시고 받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외식과 신앙의 형식을 버리고 순수함으로 나 올 수 있는 겸허함이 필요 할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든지 주님이 즐겨 받으시고 사용하십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스스로 난체하고 가장 의로운 체로 나아오는 자는 주님이 절대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고 사용되기는커녕 외식하는 위선자라고 욕을 실큰 얻어먹을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내가 가진 조건의 미미함으로 인하여 조금도 염려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순수함을 보이는 성도가 되십니다.
조건 없고, 실력 없고, 백이 없음이 절대로 하나님의 사용하심에는 절대로 필요한 조건이 아닙니다.
순수한 토종을 주님은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의 순수함으로 하나님께 나아 올 수 있는 복된 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준비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쓰시겠다고 하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를 써 주시지 않는다고 입은 다섯 자나 나온 사람이 그래 내가 너를 쓰겠다고 하니 천리 만리 도망을 가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부르면은 언제든지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 주소서 나의 맘 나의 몸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쓸려고 하면 어디가 있는지 몰라요? 사용하려고 하시는데 전혀 자세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건물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차례 차례로 구조를 받아 한사람한사람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순간에 이 건물이 침몰을 할지를 모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여기서 나가야 합니까?
자신이 여기에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살아 남아서 해서 할 일이 있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겨진다면 그 사람부터 나아오십시오 하고 구조대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가야 합니까? 당신이 나가야 합니까?
그랬더니 아마 모두가 할 말을 다하면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고 하며 다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누가 남아 다른 이들을 살리는 일에 수고하고 있었을까요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먼저 나가는 사람은 참으로 예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요
끝까지 남아서 모든 이들이 잘 빠져나가기 위해 돌보는 사람이 예수님이 원하시는데 사용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아직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고 할 사람들이 아닙니까?
어쩌면 우리 가운데에는 살아 남아야 할 사람은 다 죽고 죽어도 괜찮은 사람들만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죽어야 할 자들이 죽기 싫어서 다 줄행랑을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주님이 사용하시지 않는다고 투덜대다가 막상 사용하시겠다고 하면 다 떠나 가 버리는 자 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주를 따르겠습니다만 은 가족들과 인사를 해야하고, 부친 장사를 치러야하고, 장가 시집갔으니 아내와 남편을 기쁘게 해야하고, 소를 샀으니 시험을 해봐야 하고 , 밭을 샀으니 나가 봐야하고 했을 주님은 이런 자들은 다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어떤 핑계도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주님의 부르심에 핑계거리를 만들지 마시고 주 뜻대로 사용되어지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살아 계셔야 할 의로우신 그 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니 저와 여러분들은 죽어야 마땅하지만 예수님의 희생으로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남아 있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에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리신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주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우리는 어떻게 준비가 되어야 합니까?
주님이 무엇을 원하실까를 그 뜻을 헤아려 먼저 사용되는 자로 준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것은 막연히 드리는 찬송과 기도가 아니라 자원하여 드리는 여러분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롬15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간혹 성도들과 교역자들을 대하다가 보면은 목사의 심정을 헤아려서 일들을 먼저 다 처리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는 어떻습니까? 너무나도 감사하고 그 일을 행한 것이 참으로 귀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일군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 따라 다니며 일러도 묵묵부답이냐? 미치겠어요
따라 다니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는지 몰라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당신은 내가 사용 할 사람이 아니네요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도 하지 말고 자원하여 즐겨하는 자를 하나님이 받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억지로 하라 하라고 해서 스스로 안 하는 자가 하는 법이 없고 하라고 하지 안 해도 스스로 하는 자는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내신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나의 조건 때문에 하나님께 사용되지 못 할 자가 없음을 알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하나님이나를 사용하시지 않는다고 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여러분을 사용하시고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부르시면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 하십시오
그리고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일을 자원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왜? 나는 누구보다 못한 것이 없는데 하는 일마다 되지 않고 제대로 사용되지 않을까 하고 불만해 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만하면 어디에 내어놓아도 빠지지 않을 터인데 누구는 내 보다 못하는 것 같은데 더 잘 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함을 참으로 안타까워하고 속상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속이 상하고 사용되고 싶어도 주인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내가 이렇다가 아니라 주인이 보기에 합당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인이 보기에 합당하게 준비만 되어 있다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일과의 생활의 삶에서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서 준비하는 자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이만하면 됐다는 없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보시기에가 되어야 합니다.
1974년 미국 텍사스 주의 휴스턴 우주 발사대에서 생긴 일입니다. 제미니 7호가 세계 역사상 최초의 우주 랑데부를 하기 위하여 발사대에서 발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드디어 2초를 남기고 세기적인 계획이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원인은 1달라도 안 되는 작은 플러그가 퉁겨져 나간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때 자동적으로 계전기가 닫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로케트의 모든 동력은 중지되었습니다. 아주 미약한 부속품 하나가 세기적인 거대한 계획을 망치게 하고 말았습니다.
나사에서는 다 준비가 된 줄로 알았는데 실제적으로 발사 준비가 안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발사가 안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제부터라도 발사가 되지 않는다고 하기 전에 준비되지 않는 작은 플러그를 찾아 다시 발사를 위해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준비만 되면 발사가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사용하도록 준비를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나의 모습 그대로를 순수한 믿음으로 남아있다면 귀하게 여기고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큰집에는 그릇들이 많이 있는데 다 똑같이 생긴 그릇이 아니라 다 다르게 생겼고 그 재질도 다 달랐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어떤 그릇을 사용했습니까?
모양도 선택의 기준이 아니고, 또 재질도 선택의 기준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신앙의 그 순수(순전)함을 가지고 있느냐?에 있었습니다.
다 다른 지체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비교의식을 가지지 말아야합니다.
당신과 당신 절대로 비교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다 똑 같을 수가 없습니다.
내 같이 되라고 해서도 안되고 당신같이 되고 싶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순수한가 깨끗하냐 오염되지 않았느냐? 에 있습니다.
우리가 먹은 음식물을 보십니다.(과일, 야채, 곡식, 생선, 육류등)
지금 음식물을 취하는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 무엇입니까?
잘생긴 것입니까? 색깔이 좋으냐? 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오염이 되지 않았나? 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가지지 못했다 내가 능력이 없다 내가 배운 것이 없다 내가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결코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순수한대로 남아 있기만 하면 귀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동방의 의인 욥은 그의 순전하게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며 그는 그의 죽기 전에는 결코 순전을 버리지 않게 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순수함을 자신의 목숨하고도 바꾸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말하기를 주께서 나를 판단하실 적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발 여러분의 인간적인 조건이 부족하여 답답해하지도 말고 또 그 부족을 메우기 위하여 외식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실력이 없으면 외식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바리새인들은 외식으로 믿음을 대신하려고 하다가 한번도 사용되지 못하고 욕만 실큰 얻어먹었던 사람입니다.
실력이 있지만 순수하지 않는 한 외식하는 바리새인 쓸모가 전혀 없습니다.
비록 좀 부족해도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아는 순수함을 가진 세리를 사랑하시고 받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외식과 신앙의 형식을 버리고 순수함으로 나 올 수 있는 겸허함이 필요 할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든지 주님이 즐겨 받으시고 사용하십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스스로 난체하고 가장 의로운 체로 나아오는 자는 주님이 절대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고 사용되기는커녕 외식하는 위선자라고 욕을 실큰 얻어먹을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내가 가진 조건의 미미함으로 인하여 조금도 염려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순수함을 보이는 성도가 되십니다.
조건 없고, 실력 없고, 백이 없음이 절대로 하나님의 사용하심에는 절대로 필요한 조건이 아닙니다.
순수한 토종을 주님은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의 순수함으로 하나님께 나아 올 수 있는 복된 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준비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쓰시겠다고 하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를 써 주시지 않는다고 입은 다섯 자나 나온 사람이 그래 내가 너를 쓰겠다고 하니 천리 만리 도망을 가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부르면은 언제든지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 주소서 나의 맘 나의 몸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쓸려고 하면 어디가 있는지 몰라요? 사용하려고 하시는데 전혀 자세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건물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차례 차례로 구조를 받아 한사람한사람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순간에 이 건물이 침몰을 할지를 모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여기서 나가야 합니까?
자신이 여기에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살아 남아서 해서 할 일이 있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여겨진다면 그 사람부터 나아오십시오 하고 구조대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가야 합니까? 당신이 나가야 합니까?
그랬더니 아마 모두가 할 말을 다하면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고 하며 다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누가 남아 다른 이들을 살리는 일에 수고하고 있었을까요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먼저 나가는 사람은 참으로 예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요
끝까지 남아서 모든 이들이 잘 빠져나가기 위해 돌보는 사람이 예수님이 원하시는데 사용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아직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고 할 사람들이 아닙니까?
어쩌면 우리 가운데에는 살아 남아야 할 사람은 다 죽고 죽어도 괜찮은 사람들만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죽어야 할 자들이 죽기 싫어서 다 줄행랑을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주님이 사용하시지 않는다고 투덜대다가 막상 사용하시겠다고 하면 다 떠나 가 버리는 자 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주를 따르겠습니다만 은 가족들과 인사를 해야하고, 부친 장사를 치러야하고, 장가 시집갔으니 아내와 남편을 기쁘게 해야하고, 소를 샀으니 시험을 해봐야 하고 , 밭을 샀으니 나가 봐야하고 했을 주님은 이런 자들은 다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어떤 핑계도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주님의 부르심에 핑계거리를 만들지 마시고 주 뜻대로 사용되어지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살아 계셔야 할 의로우신 그 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니 저와 여러분들은 죽어야 마땅하지만 예수님의 희생으로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남아 있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에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리신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주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우리는 어떻게 준비가 되어야 합니까?
주님이 무엇을 원하실까를 그 뜻을 헤아려 먼저 사용되는 자로 준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것은 막연히 드리는 찬송과 기도가 아니라 자원하여 드리는 여러분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롬15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간혹 성도들과 교역자들을 대하다가 보면은 목사의 심정을 헤아려서 일들을 먼저 다 처리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는 어떻습니까? 너무나도 감사하고 그 일을 행한 것이 참으로 귀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일군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 따라 다니며 일러도 묵묵부답이냐? 미치겠어요
따라 다니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는지 몰라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당신은 내가 사용 할 사람이 아니네요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도 하지 말고 자원하여 즐겨하는 자를 하나님이 받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억지로 하라 하라고 해서 스스로 안 하는 자가 하는 법이 없고 하라고 하지 안 해도 스스로 하는 자는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내신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나의 조건 때문에 하나님께 사용되지 못 할 자가 없음을 알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하나님이나를 사용하시지 않는다고 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여러분을 사용하시고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부르시면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 하십시오
그리고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일을 자원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