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내게 주어진 최선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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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64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야고보서 4::13-17 오늘이 내게 주어진 최선의 기회다
지금 온 세계는 전쟁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참으로 영화에서나 있을 일들이 실제로 벌여 졌습니다.
이번 미국의 테러를 보면 앞으로 더 놀라운 일들이 얼마든지 우리 주위에서 언제든지 일어 날 수 있다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테러가 왜? 어떻게 일어났다는 것을 설명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가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분명히 누구든지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전쟁이 어떻게 되겠다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모두가 우리 모든 인간의 욕심과 정욕을 따라 행하여온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상황들이 형태를 달리하여 별 차이가 없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 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인류의 조상들의 죄악의 본성을 따리 혈육의 성질을 따라서 말입니다.
서로 미워하며 시기하며 다투며 편을 가르며 그리고 살인하며 살아 갈 것입니다.
형제간이라도 시기 질투로 돌로 쳐서 죽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혈과 육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욕심과 이익을 따라서 말입니다.
개인과 단체와 나라의 유익을 위해서 라면 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는 각오로 말입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이번 비행기를 납치하여 세계무역 회관과 국방성 건물을 향해 돌진하여 자폭한 것과 같이 명령만 떨어지면 정해진 목표를 향하여 자폭하기를 자원하며 훈련을 받는 자가 수 천명이 넘는다고 하니 경악을 금치 못 할 일입니다.
우리나라 북쪽에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의 공격 선상에 저와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노출되어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것입니다.
온전히 스스로 머무를 수 없는 스스로 존재할 수도 없는 마치 빛을 따라 그 방향과 존재가 결정되어 지는 아무런 실권이 없는 그림자 말입니다.
일직이 믿음의 선진들은 우리의 인생을 두고 그림자와 같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 시대에 욥과 같은 인물은 욥14:1-2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천하를 손에 지고 호령한 다윗 왕도 시39:5-7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紛擾)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화를 누린 솔로몬 왕 역시 인생을 논하기를 전도서6:11-12 헛된 일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 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이렇게 우리 인생은 그림자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 인생을 논하기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 하였습니다.
어찌 그렇게도 견고한 철근 구조물로 지는 110층이나 되는 건물이 순식간에 내려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언제 그렇게 큰 건물이 서있었나 우리의 눈을 의심이 갈 정도로 눈 깜작할 사이에 일어 난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은 사실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앞에서 그 큰 건물이 아침의 햇살 앞의 안개 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건물도 수많은 재산도 그리고 휼륭한 인재들이 순식간에 사려져 버렸습니다.
다만 타버린 회색의 먼지와 녹아 내린 철 구조물들이 남았고 그리고 찢겨지고 살점이 떨어져간 흩어진 시신들이 더 이상의 생명이 없기에 썩어 냄새를 내고 있을 뿐입니다.
대단히 죄종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 이상도 아니요 그 이하도 아닌 이런한 삶을 살고 있음을 부인 할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만 이러한 삶이 어떤 이에는 조금 일찍 찾아 왔고 어떤 이에게는 조금 늦게 찾아 왔다는 것 일뿐입니다.
모양을 달리하고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이 어떻게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가? 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래서 장미 빛 꿈을 꾸고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내일에는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대보다 자식에게 기대를 걸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자식에게 버림을 당하고 심지어는 살해를 당 한 부모들도 그 아이를 키우면서는 너무나도 기대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대통령감이라고 무슨 큰 일을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심지어는 내일이 없는 사람은 상당히 절망적인 사람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람만이 생각 할 수 있는 특권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무너져 내린 무역센타에도 그 벽에 머리를 박고 폭파해 버린 비행기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장래의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꿈이 되지를 못하고 내려앉고 그리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그들은 내일을 향한 꿈을 꿀 수 없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인간의 의지를 실은 내일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어찌 사람이 계산하고 계획 한 대로 만사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인생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 동생이 하나님이 부르신지 거의 일년이 다 되어 갑니다만은 그가 미국 병원에서 퇴원을 하면서 그기에 있는 한국 간호사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내년 여름에는 다 나아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때에 뵙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자신의 의지를 실은 희망적인 말입니까?
그러니 그 간호사도 제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수씨는 졸지에 과부가 되고 어린 조카는 아비가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사람의 의지와 생각만으로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저 어떤 실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림자 일 뿐입니다.
저는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엇인가 어떤 계획을 세워 놓고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일로 인하여 실망을 한 적도 많고요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너무나도 피곤한 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계획이 없이 산다는 말은 아닙니다.
내 중심적인 계획만을 절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내 계획과 상관이 없는 그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받아 들릴 수 있다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실상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림자 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재시오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따라 갈 뿐입니다.
절대의존 하고 신뢰 할 분은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의 미래요 계획입니다.
저는 전혀 저의 앞날을 점 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점을 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실체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나의 위치가 설정되어질 뿐이라는 그런 정신이 있을 뿐입니다.
솔찍히 여기까지 오신 것이 여러분의 의지로 온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로 온 것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앞날을 잘 갈 수 있음은 인간의 의지를 배제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내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로 바뀌어 버리는 축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순간부터 여러분은 상당히 축복된 사람으로 바뀌어 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시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또한 내일을 하나님의 의지에 맡긴 사람은 내일을 핑계삼아 오늘을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을 무시하며 살았다가 내일에 부끄러움을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행하였든지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이요 또한 공의입니다.
내일을 확실히 기약하는 사람은 오늘을 바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일이 없는 사람은 오늘을 아무렇게나 기분 내키는 데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노아 시대에 노아는 일직히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 가운데서 구원을 얻기 위하여 배를 짓는 일입니다.
그 배를 짓기 위하여 120년의 세월이 필요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큰배를 주시면서 이것이 구원의 방주니 네 식구들을 데리고 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120년간 매일 매일 수고하여야 할 배를 지을 설계도만 일러 준 것입니다.
여기에 노아가 귀한 것은 120년 후의 기대에 차있었기 보다는 오늘이라는 한 시간을 결코 무시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배를 짓기에 충실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이라는 신념으로 지금이라는 신념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이라는 이 하루를 무시하였다고 한다면 결코 그에게는 120년 후의 구원의 방주는 생각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게 주신 시간은 막연한 내일이라기 보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확실한 내일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행할 수 있는 시간으로 주신 것입니다.
잠언서에서는 이렇게 써져있습니다.
잠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이 시간 지금 이 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오늘이라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그냥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이 없는 자에게는 내일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의 구원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살아가는 오늘의 시간들을 아무렇게나 결코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정신을 차려 깨어 생활 할 수밖에 없으며 지금이라도 내가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에게도 그 어떤 일에도 후회가 없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옥에 갈 영혼들은 오늘을 무시하여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라고 한다면 구원받은 심령은 오늘을 바로 살아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라고 할 것이며 예수님 같이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모두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 간 자들의 그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
이번 미국의 테러 사건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가족들 간에 이별을 하는 장면들이 보도되었습니다.
폭파하는 비행기 안에서 혹은 무너져 내리는 빌딩 안에서 핸드폰으로 이별을 고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는 사람, 그리고 남은 가족을 부탁한다는 사람, 또 어떤 이는 여유를 가지면서 내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고 있다는 사람, 또 어떤 이는 나는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람, 이렇게 작별을 음성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4대의 비행기 중에 유일하게 목표물에 명중하지 못하고 피츠버그에서 추락한 그 비행기 안에서 온 이별의 메시지는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는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하겠다.
이들은 범인들과 격투를 벌렸고 펜실베니아 피츠버그의 평지에 추락함으로서 더 큰 참상을 막았다고 합니다.
이제 오늘이라는 나의 삶의 좌표가 새롭게 확실하게 설정되어야 할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의지로서의 삶이 아니라 전능자의 의지로 의하여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내일을 위한다 면은 오늘이라는 이 시간을 결코 무시하지 말고 아니 내게는 오늘뿐이라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 갈 일만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에 내게 요구되어지는 선을 행함으로 여러분이 오늘을 복되게 살게 될 것이요
그리고 내일을 기약 할 수 있는 소망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일에 일에 걱정에 빠지는 자가 아니라 오늘의 기쁨에 사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온 세계는 전쟁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참으로 영화에서나 있을 일들이 실제로 벌여 졌습니다.
이번 미국의 테러를 보면 앞으로 더 놀라운 일들이 얼마든지 우리 주위에서 언제든지 일어 날 수 있다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테러가 왜? 어떻게 일어났다는 것을 설명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가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분명히 누구든지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전쟁이 어떻게 되겠다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모두가 우리 모든 인간의 욕심과 정욕을 따라 행하여온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상황들이 형태를 달리하여 별 차이가 없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 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인류의 조상들의 죄악의 본성을 따리 혈육의 성질을 따라서 말입니다.
서로 미워하며 시기하며 다투며 편을 가르며 그리고 살인하며 살아 갈 것입니다.
형제간이라도 시기 질투로 돌로 쳐서 죽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혈과 육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욕심과 이익을 따라서 말입니다.
개인과 단체와 나라의 유익을 위해서 라면 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는 각오로 말입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이번 비행기를 납치하여 세계무역 회관과 국방성 건물을 향해 돌진하여 자폭한 것과 같이 명령만 떨어지면 정해진 목표를 향하여 자폭하기를 자원하며 훈련을 받는 자가 수 천명이 넘는다고 하니 경악을 금치 못 할 일입니다.
우리나라 북쪽에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의 공격 선상에 저와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노출되어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것입니다.
온전히 스스로 머무를 수 없는 스스로 존재할 수도 없는 마치 빛을 따라 그 방향과 존재가 결정되어 지는 아무런 실권이 없는 그림자 말입니다.
일직이 믿음의 선진들은 우리의 인생을 두고 그림자와 같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 시대에 욥과 같은 인물은 욥14:1-2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천하를 손에 지고 호령한 다윗 왕도 시39:5-7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紛擾)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화를 누린 솔로몬 왕 역시 인생을 논하기를 전도서6:11-12 헛된 일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 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이렇게 우리 인생은 그림자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 인생을 논하기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 하였습니다.
어찌 그렇게도 견고한 철근 구조물로 지는 110층이나 되는 건물이 순식간에 내려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언제 그렇게 큰 건물이 서있었나 우리의 눈을 의심이 갈 정도로 눈 깜작할 사이에 일어 난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은 사실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앞에서 그 큰 건물이 아침의 햇살 앞의 안개 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건물도 수많은 재산도 그리고 휼륭한 인재들이 순식간에 사려져 버렸습니다.
다만 타버린 회색의 먼지와 녹아 내린 철 구조물들이 남았고 그리고 찢겨지고 살점이 떨어져간 흩어진 시신들이 더 이상의 생명이 없기에 썩어 냄새를 내고 있을 뿐입니다.
대단히 죄종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 이상도 아니요 그 이하도 아닌 이런한 삶을 살고 있음을 부인 할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만 이러한 삶이 어떤 이에는 조금 일찍 찾아 왔고 어떤 이에게는 조금 늦게 찾아 왔다는 것 일뿐입니다.
모양을 달리하고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이 어떻게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가? 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래서 장미 빛 꿈을 꾸고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내일에는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대보다 자식에게 기대를 걸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자식에게 버림을 당하고 심지어는 살해를 당 한 부모들도 그 아이를 키우면서는 너무나도 기대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대통령감이라고 무슨 큰 일을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심지어는 내일이 없는 사람은 상당히 절망적인 사람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람만이 생각 할 수 있는 특권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무너져 내린 무역센타에도 그 벽에 머리를 박고 폭파해 버린 비행기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장래의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꿈이 되지를 못하고 내려앉고 그리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그들은 내일을 향한 꿈을 꿀 수 없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인간의 의지를 실은 내일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어찌 사람이 계산하고 계획 한 대로 만사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인생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 동생이 하나님이 부르신지 거의 일년이 다 되어 갑니다만은 그가 미국 병원에서 퇴원을 하면서 그기에 있는 한국 간호사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내년 여름에는 다 나아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때에 뵙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자신의 의지를 실은 희망적인 말입니까?
그러니 그 간호사도 제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수씨는 졸지에 과부가 되고 어린 조카는 아비가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사람의 의지와 생각만으로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저 어떤 실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림자 일 뿐입니다.
저는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엇인가 어떤 계획을 세워 놓고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일로 인하여 실망을 한 적도 많고요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너무나도 피곤한 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계획이 없이 산다는 말은 아닙니다.
내 중심적인 계획만을 절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내 계획과 상관이 없는 그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받아 들릴 수 있다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실상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림자 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재시오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을 따라 갈 뿐입니다.
절대의존 하고 신뢰 할 분은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의 미래요 계획입니다.
저는 전혀 저의 앞날을 점 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점을 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실체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나의 위치가 설정되어질 뿐이라는 그런 정신이 있을 뿐입니다.
솔찍히 여기까지 오신 것이 여러분의 의지로 온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로 온 것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앞날을 잘 갈 수 있음은 인간의 의지를 배제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내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로 바뀌어 버리는 축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순간부터 여러분은 상당히 축복된 사람으로 바뀌어 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시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또한 내일을 하나님의 의지에 맡긴 사람은 내일을 핑계삼아 오늘을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을 무시하며 살았다가 내일에 부끄러움을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행하였든지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이요 또한 공의입니다.
내일을 확실히 기약하는 사람은 오늘을 바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일이 없는 사람은 오늘을 아무렇게나 기분 내키는 데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노아 시대에 노아는 일직히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 가운데서 구원을 얻기 위하여 배를 짓는 일입니다.
그 배를 짓기 위하여 120년의 세월이 필요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큰배를 주시면서 이것이 구원의 방주니 네 식구들을 데리고 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120년간 매일 매일 수고하여야 할 배를 지을 설계도만 일러 준 것입니다.
여기에 노아가 귀한 것은 120년 후의 기대에 차있었기 보다는 오늘이라는 한 시간을 결코 무시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배를 짓기에 충실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이라는 신념으로 지금이라는 신념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이라는 이 하루를 무시하였다고 한다면 결코 그에게는 120년 후의 구원의 방주는 생각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게 주신 시간은 막연한 내일이라기 보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확실한 내일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행할 수 있는 시간으로 주신 것입니다.
잠언서에서는 이렇게 써져있습니다.
잠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이 시간 지금 이 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오늘이라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그냥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이 없는 자에게는 내일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의 구원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살아가는 오늘의 시간들을 아무렇게나 결코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정신을 차려 깨어 생활 할 수밖에 없으며 지금이라도 내가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에게도 그 어떤 일에도 후회가 없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옥에 갈 영혼들은 오늘을 무시하여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라고 한다면 구원받은 심령은 오늘을 바로 살아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라고 할 것이며 예수님 같이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모두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 간 자들의 그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
이번 미국의 테러 사건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가족들 간에 이별을 하는 장면들이 보도되었습니다.
폭파하는 비행기 안에서 혹은 무너져 내리는 빌딩 안에서 핸드폰으로 이별을 고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는 사람, 그리고 남은 가족을 부탁한다는 사람, 또 어떤 이는 여유를 가지면서 내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고 있다는 사람, 또 어떤 이는 나는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람, 이렇게 작별을 음성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4대의 비행기 중에 유일하게 목표물에 명중하지 못하고 피츠버그에서 추락한 그 비행기 안에서 온 이별의 메시지는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는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하겠다.
이들은 범인들과 격투를 벌렸고 펜실베니아 피츠버그의 평지에 추락함으로서 더 큰 참상을 막았다고 합니다.
이제 오늘이라는 나의 삶의 좌표가 새롭게 확실하게 설정되어야 할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의지로서의 삶이 아니라 전능자의 의지로 의하여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내일을 위한다 면은 오늘이라는 이 시간을 결코 무시하지 말고 아니 내게는 오늘뿐이라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 갈 일만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에 내게 요구되어지는 선을 행함으로 여러분이 오늘을 복되게 살게 될 것이요
그리고 내일을 기약 할 수 있는 소망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일에 일에 걱정에 빠지는 자가 아니라 오늘의 기쁨에 사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