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보라 더 큰 일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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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89회 작성일 2011-05-13 18:12본문
요한복음 1: 43-51 와서 보라 더 큰 일을 보리라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1년 동안 960만 킬로미터를 여행하면서 2500번이나 하나님의 정의에 근거한 인권을 설교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20년대 미국의 중산층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3년에는 타임지에 의해 금년의 인물로 선정되었고 1964년에는 35세의 나이로 노벨 평화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루터 킹 목사는 39세의 나이로 갱단, 혹은 미 정부의 비밀 요원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습니다.
그가 24만 명이 모인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했던 워싱턴 행진 연설문 중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은 미국민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명연설입니다.
이 때 24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 동력은 사람들의 전언, 교회 식으로 말하면 전도였습니다.
사람들은 가족에게, 친구에게, 직장동료들에게,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보라. 와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연설을 들어보라. 당신은 놀랄 것이다. 와서 그를 보고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의 마음은 그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매료될 것이다였습니다. 와보면 압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들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 꿈의 성취를 믿었습니다.
그 현장에 나와 그 꿈의 소식을 들은 자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죽었지만, 그의 꿈은 죽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살게 됩니다.
2008년 11월, 미국은 감동에 휩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서로를 격려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Yes, We can!으로 미국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낸 버락 오바마가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입니다. 이것은 버락 오바마 개인만의 승리가 아니라, 또 한 번 차별과 불평등을 부숴내고 자유와 인권을 향해 전진하는 미국인들 모두의 승리도 평가 받았지요
킹 목사의 꿈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한 것이라고 합니다.
와서 보라 그러면 더 큰 일을 보리라
앞으로 세계 역사는 어떤 더 놀라운 일이 있을 지는 그 누구도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공의가 성취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확신이 있는 한 사람이 그의 친구를 불러냅니다.
이 말 한마디입니다. 와 보라! 그러면 더 큰 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이런 소리를 들어보았습니까? 심봤다 무슨 소리입니까?
산삼을 케는 심마니의 감격에 찬 세레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삼을 보고도 감격에 찬 소리를 지르는데 어찌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을 만났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행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본문의 빌립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자 말자 그는 심봤다 라고 하였습니다.
심봤다 소리치지 않으면 그 산삼은 자신의 것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하지 않으면 그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눅12:8-9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요1서 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이제 예수님을 만난 자라면 내가 만났다고 전해야 함이 당연한 것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만남은 당신도 한번 만나 보세요 한번 오세요 해야 할 것입니다.
왜 전할 수밖에 없습니까?
반대로 왜 전하지 않습니까?
그 은혜를 받지 못하고 아직도 예수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은혜를 받지 못하였습니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나의 입은 굳게 닫혀져있습니다.
빌립은 잘 알았습니다.
딱 만나 보니 그렇게도 목말라 기다리던 오랫동안 기다렸던 구세주 메시야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400년 동안 뚝 끊어진 창세 이후로 약속하셨던 그 메시야였습니다.
예수님이 십가상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하여 고향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눅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모세 율법서 모세 5경과 그리고 선지서에 기록된 메시야 가 바로 자신이 이심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인 줄을 앓아 보았다고 합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영안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메시아였습니다.
바로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의 빌립 역시 아무나 메시야로 말한 것이 아니라
45절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은 예수님이 메시야 구주이심을 발견했습니다. 할렐루야!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을 예수님을 따라갈 가치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합니까.
내가 그렇게도 원했던 것이 예수 안에서 이루질 줄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예수님의 꿈이 내 꿈이 되고 예수님의 일이 내 일이 되며, 예수님의 기쁨과 슬픔이 내 그것이 되는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빌립이 예수님을 따라간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가치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아직도 따르기를 미온적인 것은 예수님께 기대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아직도 많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구원 할 구세주를 사모하고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구세주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말씀을 통하여 일러준 곧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46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날마다 성경을 보며 구원의 메시아를 갈망하던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세주라는 분이 어찌 별 볼일 없는 바로 그 나사렛 출신 예수인가 라는 것입니다
나사렛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역사책에 나와 있는 갈릴리 지방 204개의 목록에도 포함되지 않는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고 기이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조차 인정하지 않는 땅에서 주님이 자라나신 것입니다.
즉 메시아가 오시는데 아주 몰라볼 정도로 비천하게 오시고 비천한 장소에 오신다는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53:2-3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람들이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구세주를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예수를 믿는 자 안에 계신다 했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멀리서만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구세주를 찾아 헤매지만 발견하지 못합니다.
불만을 가지고 집을 나가면 가출이 되고 젊잖게 나가면 출가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보다 더 비천하고 낮은 나에게서 나의 처한 환경에서 찾아야 될 것입니다.
지금 비천한 내 곁에 와 계시고 이 자리에 와 계심을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가장 비천한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갈릴리였습니다.
마4:15 이방의 갈릴리여라고 할 정도로 갈릴리는 자기 땅이면서도 이방 땅이라고 여길 만큼 천대를 받았습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는 친구인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는 질문을 합니다.
구원에 대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질문입니다.
그 시골에서 무슨 위대한 인물이 나오겠느냐는 비꼬는 말이지요.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쉽게 말을 합니다.
예수가 밥먹여 주느냐? 내 소원들어 주느냐? 내 마음을 알아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네 예수가 모든 것 다 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눅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구든지 와 보면 압니다.
그러니 빌립의 전도가 최고의 전도입니다. 와 보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증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완벽한 말이 바로 와서 보라입니다.
오기만 하면 불러 오기만 하면 나를 받아 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사정을 아십니다.
남편의 사정 아내의 사정 누가 알아주십니까? 남편도 알아주지 않고 아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알아주십시다 그러니 와 보라
부모의 사정 자식의 사정 누가 알아주십니까? 부모도 몰라주고 자녀가 몰라줍니다.
예수님만 알아주십니다. 그러니 와 보라 할렐루야!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온 나다나엘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아 네가 왔구나 나다나엘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아.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나는 이미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보리수나무 아래가 아닌 커다란 꿀밤 나무 아래가 아닌 무화나 나무 아래서 고민하는 나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미 나다나엘의 마음까지 보셨습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이끌려 자기에게 오고 있던 나다나엘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와서 예수님을 본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사로잡혔습니다.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내 사정 내 형편 주님은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 마음도 알고 계십니다
나다나엘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다나엘은 자신의 현실 앞에서 깊은 절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향하여 준비된 청년이었으니 지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과의 대화내용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공부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그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인품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만족이 되지 않아 그의 앞길이 답답해 구세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적도 감성도 부족해 예수님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청년 나다나엘 역시 혼자 무화과나무 아래서 자신의 비운을 곱씹는 냉소적인 젊은이가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만나보니 돌아 버릴 것 같은 자들이 엄청 많습니다.
아니 돌아 버린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게 다 내가 감당 할 영혼임을 아셔야 합니다.
마9:36-38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개인이 돌면 가정이 돌고 가정이 돌아버리면 사회가 미쳐버리고 사회가 미치면 민족과 나라가 망합니다.
나오면 나를 알아주고 내 마음 알아주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사람을 영육 간에 살리는 중요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구원을 일러 주십니다.
5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그 큰일이 무엇입니까?
51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그 옛날 벧엘에서 야곱이 보았다던 사다리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이 인간들의 영혼을 하늘나라 사다리에 오를 수 있게 할 통로임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하늘나라에 이르는 사다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해 주셨는가?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주님의 사랑, 십자가의 죽으심 때문입니다.
네가 잘될 수만 있다면, 너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내가 망하는 일이야 조금도 개의치 않겠다. 내가 부끄럼 당하는 것, 고통당하는 것, 죄인 되는 것, 누명을 쓰고 죽는 것은 조금도 가슴 아프지 않다는 것이었다.
너는 나를 밝고 일어서라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게 될 것입니다.
4천 년 전에 야곱 한 사람에게 하늘이 열린 일을, 2천년 후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완벽한 말이 바로 와서 보라입니다.
불러 오기만 하면 받아 주시고 하늘문이 열리는 은혜를 예수님을 통하여 받을 것입니다.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1년 동안 960만 킬로미터를 여행하면서 2500번이나 하나님의 정의에 근거한 인권을 설교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20년대 미국의 중산층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3년에는 타임지에 의해 금년의 인물로 선정되었고 1964년에는 35세의 나이로 노벨 평화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루터 킹 목사는 39세의 나이로 갱단, 혹은 미 정부의 비밀 요원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습니다.
그가 24만 명이 모인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했던 워싱턴 행진 연설문 중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은 미국민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명연설입니다.
이 때 24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 동력은 사람들의 전언, 교회 식으로 말하면 전도였습니다.
사람들은 가족에게, 친구에게, 직장동료들에게,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보라. 와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연설을 들어보라. 당신은 놀랄 것이다. 와서 그를 보고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의 마음은 그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매료될 것이다였습니다. 와보면 압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들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 꿈의 성취를 믿었습니다.
그 현장에 나와 그 꿈의 소식을 들은 자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죽었지만, 그의 꿈은 죽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살게 됩니다.
2008년 11월, 미국은 감동에 휩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서로를 격려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Yes, We can!으로 미국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낸 버락 오바마가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입니다. 이것은 버락 오바마 개인만의 승리가 아니라, 또 한 번 차별과 불평등을 부숴내고 자유와 인권을 향해 전진하는 미국인들 모두의 승리도 평가 받았지요
킹 목사의 꿈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한 것이라고 합니다.
와서 보라 그러면 더 큰 일을 보리라
앞으로 세계 역사는 어떤 더 놀라운 일이 있을 지는 그 누구도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공의가 성취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확신이 있는 한 사람이 그의 친구를 불러냅니다.
이 말 한마디입니다. 와 보라! 그러면 더 큰 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이런 소리를 들어보았습니까? 심봤다 무슨 소리입니까?
산삼을 케는 심마니의 감격에 찬 세레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삼을 보고도 감격에 찬 소리를 지르는데 어찌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을 만났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행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본문의 빌립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자 말자 그는 심봤다 라고 하였습니다.
심봤다 소리치지 않으면 그 산삼은 자신의 것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하지 않으면 그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눅12:8-9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요1서 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이제 예수님을 만난 자라면 내가 만났다고 전해야 함이 당연한 것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만남은 당신도 한번 만나 보세요 한번 오세요 해야 할 것입니다.
왜 전할 수밖에 없습니까?
반대로 왜 전하지 않습니까?
그 은혜를 받지 못하고 아직도 예수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은혜를 받지 못하였습니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나의 입은 굳게 닫혀져있습니다.
빌립은 잘 알았습니다.
딱 만나 보니 그렇게도 목말라 기다리던 오랫동안 기다렸던 구세주 메시야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400년 동안 뚝 끊어진 창세 이후로 약속하셨던 그 메시야였습니다.
예수님이 십가상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하여 고향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눅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모세 율법서 모세 5경과 그리고 선지서에 기록된 메시야 가 바로 자신이 이심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인 줄을 앓아 보았다고 합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영안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메시아였습니다.
바로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의 빌립 역시 아무나 메시야로 말한 것이 아니라
45절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은 예수님이 메시야 구주이심을 발견했습니다. 할렐루야!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을 예수님을 따라갈 가치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합니까.
내가 그렇게도 원했던 것이 예수 안에서 이루질 줄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예수님의 꿈이 내 꿈이 되고 예수님의 일이 내 일이 되며, 예수님의 기쁨과 슬픔이 내 그것이 되는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빌립이 예수님을 따라간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가치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아직도 따르기를 미온적인 것은 예수님께 기대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아직도 많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구원 할 구세주를 사모하고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구세주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말씀을 통하여 일러준 곧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46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날마다 성경을 보며 구원의 메시아를 갈망하던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세주라는 분이 어찌 별 볼일 없는 바로 그 나사렛 출신 예수인가 라는 것입니다
나사렛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역사책에 나와 있는 갈릴리 지방 204개의 목록에도 포함되지 않는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고 기이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조차 인정하지 않는 땅에서 주님이 자라나신 것입니다.
즉 메시아가 오시는데 아주 몰라볼 정도로 비천하게 오시고 비천한 장소에 오신다는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53:2-3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람들이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구세주를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예수를 믿는 자 안에 계신다 했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멀리서만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구세주를 찾아 헤매지만 발견하지 못합니다.
불만을 가지고 집을 나가면 가출이 되고 젊잖게 나가면 출가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보다 더 비천하고 낮은 나에게서 나의 처한 환경에서 찾아야 될 것입니다.
지금 비천한 내 곁에 와 계시고 이 자리에 와 계심을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가장 비천한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갈릴리였습니다.
마4:15 이방의 갈릴리여라고 할 정도로 갈릴리는 자기 땅이면서도 이방 땅이라고 여길 만큼 천대를 받았습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는 친구인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는 질문을 합니다.
구원에 대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질문입니다.
그 시골에서 무슨 위대한 인물이 나오겠느냐는 비꼬는 말이지요.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쉽게 말을 합니다.
예수가 밥먹여 주느냐? 내 소원들어 주느냐? 내 마음을 알아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네 예수가 모든 것 다 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눅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구든지 와 보면 압니다.
그러니 빌립의 전도가 최고의 전도입니다. 와 보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증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완벽한 말이 바로 와서 보라입니다.
오기만 하면 불러 오기만 하면 나를 받아 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사정을 아십니다.
남편의 사정 아내의 사정 누가 알아주십니까? 남편도 알아주지 않고 아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알아주십시다 그러니 와 보라
부모의 사정 자식의 사정 누가 알아주십니까? 부모도 몰라주고 자녀가 몰라줍니다.
예수님만 알아주십니다. 그러니 와 보라 할렐루야!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온 나다나엘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아 네가 왔구나 나다나엘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아.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나는 이미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보리수나무 아래가 아닌 커다란 꿀밤 나무 아래가 아닌 무화나 나무 아래서 고민하는 나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미 나다나엘의 마음까지 보셨습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이끌려 자기에게 오고 있던 나다나엘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와서 예수님을 본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사로잡혔습니다.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내 사정 내 형편 주님은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 마음도 알고 계십니다
나다나엘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다나엘은 자신의 현실 앞에서 깊은 절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향하여 준비된 청년이었으니 지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과의 대화내용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공부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그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인품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만족이 되지 않아 그의 앞길이 답답해 구세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적도 감성도 부족해 예수님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청년 나다나엘 역시 혼자 무화과나무 아래서 자신의 비운을 곱씹는 냉소적인 젊은이가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만나보니 돌아 버릴 것 같은 자들이 엄청 많습니다.
아니 돌아 버린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게 다 내가 감당 할 영혼임을 아셔야 합니다.
마9:36-38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개인이 돌면 가정이 돌고 가정이 돌아버리면 사회가 미쳐버리고 사회가 미치면 민족과 나라가 망합니다.
나오면 나를 알아주고 내 마음 알아주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사람을 영육 간에 살리는 중요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구원을 일러 주십니다.
5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그 큰일이 무엇입니까?
51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그 옛날 벧엘에서 야곱이 보았다던 사다리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이 인간들의 영혼을 하늘나라 사다리에 오를 수 있게 할 통로임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하늘나라에 이르는 사다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해 주셨는가?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주님의 사랑, 십자가의 죽으심 때문입니다.
네가 잘될 수만 있다면, 너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내가 망하는 일이야 조금도 개의치 않겠다. 내가 부끄럼 당하는 것, 고통당하는 것, 죄인 되는 것, 누명을 쓰고 죽는 것은 조금도 가슴 아프지 않다는 것이었다.
너는 나를 밝고 일어서라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게 될 것입니다.
4천 년 전에 야곱 한 사람에게 하늘이 열린 일을, 2천년 후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완벽한 말이 바로 와서 보라입니다.
불러 오기만 하면 받아 주시고 하늘문이 열리는 은혜를 예수님을 통하여 받을 것입니다.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