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나를 통해서 전해야 할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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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40회 작성일 2011-05-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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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7:3-9 복음은 나를 통해서 전해야 할 사명입니다.
사람들은 혈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기를 만나든지 본능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상상을 초월한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탈북자들로부터 들은 북한의 참상을 이렇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믿기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 않는 정말 너무도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북한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낮에 장례식을 치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곳에 시신을 파묻은 것을 보면, 그 송장을 파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심지어는 장마당에 고기로 속이고 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육점에서 고기를 팔 때에도 무슨 고기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짐승의 털이 달린 채 팔도록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잡아다가 인육을 팔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북한의 참상과 같은 비극이 배고픈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안성 안에서 일어났다는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3-4절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그러면 성안의 사정은 어떠했습니까?
6:28-29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자녀까지도 허기진 배를 채우는 고깃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북왕국인 이스라엘의 제 9대왕 여호람 때의 일입니다.
그 때에 이웃 나라인 아람왕 벤하닷이 많은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습니다. 벤하닷은 이스라엘의 서울인 사마리아 성을 겹겹으로 완전히 포위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그 포위망을 풀어 주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굶어죽도록 할 작정이었습니다. 모든 물자의 공급이 중단된 사마리아 성은 날마다 물가가 치뛰기 시작했습니다.
왕하 6:25절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당시 평균 음식 값이 얼마인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나귀머리와 비둘기 똥은 부정한 것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닙니다.
나귀는 부정한 동물에 속하여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레11:4), 특히 그 머리는 먹기 어려운 부분으로 가장 값싼 부위이지만 그것이 은 80세겔에 팔린다는 것입니다. 은 80세겔은 노동자가 약 11개월은 쉬지 않고 노동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1년 동안 벌어야 겨우 나귀 머리 하나 사서 삶아먹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가가 엄청나게 올라버렸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똥 1/4갑은 0.3ℓ정도인데, 이 정도의 음식을 사먹기 위해서는, 인부가 20일간 노동을 해서 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귀머리나 비둘기 똥은 정상적으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싸게 팔리고 있다는 것은 극심한 기근상태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먹을거리가 없을 때 사람들이 자신이 눈 대변(大便)을 먹고 자기가 본 소변(小便) 을 마시는 예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왕하 18:27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심지어는 자식까지 잡아먹는 식인(食人) 캐너벌리즘(식인풍습)까지 자행되는 마당에서 비둘기의 똥이라고 마다했겠습니까?
신 28:56-57 또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부녀 곧 온유하고 연약하여 자기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자기 품의 남편과 자기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가 낳은 어린 자식을 남몰래 먹으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말씀을 떠난 자들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체면이고 뭐고 없는 것입니다.
겔 5:9-10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애가 서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4:10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등등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네 먹을 것입니다.
탈북자 단체들이 풍선을 띄워 북한 동포에게 남한의 소식과 1달러 지폐와 자유의 소식을 듣을 수 있는 라디오와 심지어는 1회용 밥을 넣어 띄워 보냅니다.
거기는 자유도 없고 굶어 죽어가고 있지 여기는 먹을 것이 많고 자유함도 있다라고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이들을 향하여 북한 당국이 조준 사격을 한다고 위협하기도 했지만 그 위협을 무릅쓰고 풍선을 띄워 보내지 않았습니까?
이 복음이 그들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굶어 죽어 가던 사마리아성에도 복음의 전단지(삐라)가 뿌려졌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주십니다.
1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복음은 생명입니다. 살리는 일입니다. 살리는 복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십니다.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아람 군대에게 무서운 소리가 들리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귀에는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병거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6-7절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6. 25동란 때 한강대교 폭파 사건은, 철수하는 기마병의 말발굽 소리를 적의 탱크 소리로 오인하고 폭파 명령을 내림으로 피난민들이 피난도중에 조기에 단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군 작전상 얼마 동안의 시간을 얻는 유익은 있었으나, 대신 미처 피난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납치, 혹은 죽음을 당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나이 30세의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명령을 수행한 것뿐인데 모든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현장에서 다리를 건너든 수백 명이 산화하고 그것도 모르고 계속 남하하다가 떨어져 죽고 국군들도 3사단이 빠져 나가지 못해 모든 장비들을 버리고 소총을 가지고 건넌는데 10만의 병력이 다 흩어져 버리고 2만5천만이 겨우 남았다는 말입니다
아람 군대는 갑자기 들려오는 병거소리와, 말발굽 소리,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생각하기를, 이 소리는 틀림없이 이스라엘이 애굽과 헷사람과 동맹해서 자기들을 치러 오는 소리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고 굉장하던지 그들은 그만 혼비백산하여 모두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너무 다급하고 경황이 없어서 몸뚱이만 빠져나가고,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둔 채 도망을 했습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느리는 자들은 작은 소리에도 크게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사17:13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잠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오히려 여호와의 뜻을 따르는 자는 담대합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래서 수만의 아람 군대는 주께서 한번 꾸짖어시니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가버리고 얼마나 급하였서면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가버렸지만
반면에 4명의 나환자들은 먹지도 못하고 비록 몸은 성취 못하여 힘없는 걸음으로 터벅터벅 아람 진영을 향하여 갔지만 이 발걸음이 천지를 진동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누가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까?
세상의 힘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었고 아무 역사도 없는 것으로 여긴 하나님의 뜻은 지진같이 쓰나 미같이 몰려 온 것입니다.
역시 복음의 준비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요7:38-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나병환자들이 갔더니 너무나도 풍족하였습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 모든 것을 버리고 가버린 것입니다.
8절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이것이 이들의 삶의 끝이 아닙니다. 이것이 인생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을 얻고 자유함을 얻고 염려 없고 잘 먹고 잘 살고가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나만 잘 살고 나만 잘 먹으면 되는 것 아닙니다.
왜 이 현장에 나를 불러 주셨는가?
나병환자인 나를 왜 이런 대접하시는가? 죄인 된 나를 불러 왜 구원하셨는가?
과거에 나와 같은 자들에게 이 좋은 현장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명감이 따릅니다
아직도 도성에는 굶주려 죽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나만 꾸역꾸역 배터지게 먹고 있으면 사람이 아니지 이러다가 벌 받지
9절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습니까?
나병환자들이 아람 진영에서 풍족한 양식을 발견한 것처럼, 하나님의 집에서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찾았습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배불리 먹고, 여러분의 영혼을 살찌우게 하며, 기운을 얻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영적 기근으로 시시각각 죽어 가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시급히 아름답고 복된 소식을 전해야만 합니다.
사명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복음이 복음이 아니요 은혜가 은혜가 아니요 구원이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나만 좋아라 하고 은혜 많이 받았다고만 혼자 자위하고 자만해 있지 않습니까?
나만 믿으면 됐지 귀잖게 힘들게 수고하며 다른 이들에게 전하지 말아야지 이런 못된 생각 큰일입니다.
마치 한달란트 받은 자가 한달란트 그대로 있다가 있던 것도 빼앗기고 슬피 울고 이를 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도 치밀어 오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제라도 복음의 사명을 깨닫게 됨이 참으로 감사 할 일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빛이라고 합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밝은 아침이 오듯이, 죄악으로 캄캄해진 이 세상이 다하면, 의의 태양이신 예수께서 광명한 새벽별처럼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밝히 비취실 것입니다.
만일 그때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래서 많은 영혼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해 굶주려 죽는다면, 받을 벌이 얼마나 중하겠습니까?
9절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사실 복음 전파가 전하지 않으면 벌을 받기 때문에 전해야 하는 것으로만 여겨서는 안 될 일입니다.
사명감이지요
바울은 내가 세상의 심장부인 로마에 가서도 전하리라 사명감 아니겠습니까?
사명을 무시하는 것은 사망이지요
겔3:18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이 복음은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사실 내가 믿음이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불러내어 만인에게 선교사로 파송이 된 자입니다.
나병환자가 복음의 출발자입니다.
전도자 스펄전은 전도란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빵을 얻어먹을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이미 빵을 얻었고, 그 빵을 제공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나를 들어 복음의 출발자로 세우십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꼭 교회의 성장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는 충분히 도와 줄 힘이 있고 풍족한 양식이 있는데도, 눈앞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인생을 보고도 모른 체 한다면, 그러한 사람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잔치집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혼자서만 예수를 믿고 교회에 왔다 갔다 한다면, 그는 분명히 나병환자들보다 훨씬 더 못한 신자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도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면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은 혼자 오셨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면, 두 번째 질문은 더욱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당신은 혼자 올 수 있었던 말입니까? 라는 질문이라는 것이지요.
어떻게 당신은 천국에 혼자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만일 그들이 성안에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았으면 성안에서는 여전히 자식을 잡아먹는 비극이 계속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비탄과 공포가 점차 극에 달했을 것입니다.
이미 준비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약속을 믿고 나는 복음의 입을 열어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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