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열매를 맺는 떨어지는 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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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88회 작성일 2011-05-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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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23-26 많은 열매를 맺는 떨어지는 밀알
한 여인의 아주 작은 희생이 이 커다란 기적의 열매를 맺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소련의 공산주의를 무너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 전 러시아 대통령 옐친이 기자회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소련의 민주화를 위하여 투신할 것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폴란드의 노동운동지도자 바웬사의 수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웬사는 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노동운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영향은 미국 흑인의 민권운동을 인도한 마틴 루터킹 목사님의 전기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또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내가 민권운동에 나선 결정적 동기는 저 이름 없는 한 흑인 여자 로자 파크스 때문입니다. 어느 버스 안에서 운전기사가 흑인석에 앉으라고 명령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백인석에 앉아서 일어서지 않았던 이 무식한 한 아주머니의 용기에 나는 크게 감동을 받고 그 순간 나의 전 생애를 흑인의 민권옹호에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내 생애의 가장 큰 목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인 공산주의의 대 붕괴는 한 이름 없는 미국 땅 무명의 흑인 여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 자신이 그 한 알의 밀이었습니다.
그는 "땅에 떨어졌다." 그는 죽었었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대속의 죽음과 무덤에 묻히심과 부활하심의 결과로써, 약속대로 세계 구속과 사람의 영혼의 구원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이들에 대해서 정하신 뜻이었다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그런데 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도 역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다.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었던 바, 세상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구원을 흡족히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이로써 그가 우리의 죄의 형벌을 대신 지셨다는 것을 알기만 하거나 그것을 시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해방을 받기 위하여 우리도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헌신(獻身)은 굴욕이 아니라 영광입니다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주후 4세기에 텔레마쿠스라는 유명한 수도사가 세상을 등지고, 광야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는 세상을 등지고 살았지만, 이제는 늙어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러니 남은 기간 동안은 세상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
그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서 그 당시 세계의 심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마로 갔습니다. 때마침 로마에서는 404년에 고트족에게 승리를 거둔 장군의 개선을 축하하기 위해서 축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원형극장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원형극장 안에서는 포로로 잡혀온 검투사들의 칼싸움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싸우는 경기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잔인한 칼싸움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텔레마쿠스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이것을 막으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로마로 보내셨구나! 그리고는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면서 온 힘을 다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텔레마쿠스는 두 검투사의 사이에 들어가서 결사적으로 그 싸움을 막았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의 입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마쿠스는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싸움을 멈춰라!
급기야 경기를 진행시키던 지휘관이 텔레마쿠스를 먼저 처치해버리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번쩍이는 칼과 함께 텔레마쿠스는 피를 흘리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숨이 멈추기까지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싸움을 멈춰라!
그 순간 주변은 갑자기 숙연해졌습니다. 황제 호노리우스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경기장 밖으로 퇴장했습니다. 그의 뒤를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한 사람씩 두 사람씩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중에는 두 검투사들마저도 고개를 푹 숙인 채 퇴장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로마에서는 더 이상 검투사들의 경기가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텔레마쿠스의 외침과 그의 희생적인 죽음이 그 잔인한 검투 경기를 영원토록 종식시킨 것입니다.
이 죽음은 개죽음이 아니라 영광된 죽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되었던 관계를 십자가로 화목케 하시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심은 영광이셨습니다.
나 또한 그 은혜 가운데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한 알의 밀은 그 가치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가치는 예수 생명이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밀이 아무리 탱탱하고 멋있고 반짝 반짝 윤이 나고 보기 좋아도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안에는 3000년의 밀씨가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밀이 지난 3000년 동안 썩고 열매 맺고 또 썩고 열매 맺고를 거듭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열매들을 수확했을 텐데 지금도 하나로 있는 그 밀은 정말 죄악된 밀인 것입니다.
생명의 구원을 받고 그대로 있다는 것은 최악의 죄가 됩니다.
마25:24-30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한 알 그대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밀씨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 매달려 있으면 지나가던 새가 쪼아 먹어 버립니다. 겨울에 추위에 얼어 죽어서 열매도 못 맺고 사라져 버립니다.
남 제자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나를 통하여 구원 받은 영혼이 있느냐? 라고 물었을 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렀지만 그 구원은 나에게서 중단이 되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원은 자신 헌신에서 출발합니다.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헌신은 자기부인에서 출발 합니다.
그러므로 한 알의 밀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에 떨어져서 적당한 깊이에 묻히고 썩고 죽어야 합니다. 즉 자기 분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밀알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이 터지고 깨져서 밀의 본래의 모습은 없어져야 합니다.
밀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영양분은 새롭게 터오는 새싹에게 다 주어야 합니다. 이런 자기 분해의 과정을 통해서 땅속에서 자신이 조용히 썩어지고 죽어지고 없어질 때에 마침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새싹이 터 올라서 줄기가 되고 꽃을 피워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갈수록 자기에 대한 집착이 더욱더 강해져 갑니다. 그래서 어떤 사회학자는 오늘날의 시대를 가리켜서 meism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하였습니다. I. my. me. 입만 열었다 하면 자기 이야기, 내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에게 집착한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자기 것이 됩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내가 아무리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하고 지키고 닦고 조이고 기름 쳐도 그것은 언젠가는 닳아서 없어집니다. 오히려 자기 것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내 손안에 있는 것은 더 빨리 빠져 나갑니다.
그리고는 허무와 헛됨을 노래하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후회가 있을 것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내 자가가 깨뜨려 질 때에 드디어 생명을 탄생을 합니다.
모든 일을 대함에 있어서 그것이 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를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아는 언제나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자아의 특징은 쉽게 성을 내는 일이다.
자기 생각에 자기를 우대해야 할 경우에 그렇지 않거나 하면, 이 자아는 울화를 품고, 까다로운 언행을 하게 된다.
어제 문답하는 중에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것이 있습니까?
날카롭고 예민한 성질이 많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자아의 또 다른 증거는 타인에게 무례히 대하는 일이다.
한 마디로 끝낼 수 있는 말을 한 시간 동안이나 하며, 일을 시끄럽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며, 그러면서 언제나 자기의 이익을 다른 모든 사람 앞에 내세운다.
사53:6-7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1865년 지금으로부터 144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아주 추운 겨울 눈보라치는 날 영국의 사우스 웨일즈라는 곳에 한 여인이 작은 언덕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품에는 작은 어린아이를 품고 이 언덕을 넘어가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여인은 추위를 이기지 못해 떨다가 그만 아이를 품에 안은 채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눈보라가 그친 다음 지나가는 행인이 이를 발견하고 달려가 보니 여인은 알몸으로 죽어있었고 품에 안겨있는 아이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여인은 아이를 살리고자 자기의 옷을 하나하나 벗어 아이를 덮어 감싸주고 자기는 얼어서 죽고 만 것입니다. 이 아이의 내일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엄마는 죽고 아이는 살렸습니다. 마음 착한 사람이 이 아이를 데려다 키웠습니다. 이 아이가 커서 1916년에 영국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이가 바로 데이비드 로이드조지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 어머니의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날 위해 죽으신 어머니, 나를 대신해서 죽은 어머니의 사랑, 나를 위해 알몸으로 죽은 그 사랑에 감격하며 한평생 부모 없이 살았으나 그는 위대한 영국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나한 사람 죽으면 많은 사람이 삽니다. 오늘 죽으면 내일을 삽니다. 순간 죽으면 영원히 삽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종이 되면 하나님께서 귀히 여겨주십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새 생명 얻는 내가 나의 희생을 통하여 얻을 생명이 누군가를 알고 이번 부활절에 새 생명을 어는 새로운 구원을 맛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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