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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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63회 작성일 2011-05-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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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25- 26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부산에 호산나 교회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그 교회 어느 여 집사님이 믿지 않는 남편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하였답니다. 여보 나 혼자 교회에 나가면 나를 과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한번만 같이 나가서 내가 과부가 아님을 증명해 줄 수 없어요 했더니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따라 나오더니 그만 예수님을 만나 믿게 되어 열심히 믿어 장애인 사역을 7년 동안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마침 한 아이가 이태리에 유학 중이었는데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비보를 받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의 시신과 짐을 정리하기 위해 서둘러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옆에 앉은 승객에게 계속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승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뭘 하시는 분이시기에 이렇게 예수 믿으라고 하십니까? 이에 부부는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승객은 아들의 생명을 잃었음에도 영적으로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자신에게 전도하는 것을 보고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 부부라고 왜 인간적인 슬픔과 고통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영적으로 죽어가는 한 영혼의 생명 또한 소중한 생명이었기에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려 가는 그 순간에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 부부의 감동적인 실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태리에 도착해 보니 사고를 낸 사람은 평소 자기 아들이 전도하려고 친하게 지내던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러자 아무런 보상도 요청하지 않은 채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로 되돌아오는 중에도 옆에 앉은 사람에게 전도했습니다.
나중에 교회에 돌아와서 이들 부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돌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제가 극심한 슬픔 가운데서도 이렇게 주님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 곧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만날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나는 슬픔의 늪에서도 전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먼저 가신 부모와 형제들을 예수님 때문에 만날 것을 생각 할 적에 슬픔 가운데 기쁨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과연 이 집사님이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을 이기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었는데 이 예수가 어떤 분이시기에 그렇게 했는지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25-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부활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분이십니다.
사실 오늘은 부활절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을 소개 한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이 계심을 알려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분은 없습니다.
간혹 귀신이 되어 혹은 꿈에서 보았다거나 아니면 환생하여 다른 모습으로 왔다는 말들을 하지만 결코 사람이 귀신이 될 수도 없고 환생하여 다른 모습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부활에 대한 실제적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예수가 십자가 틀에서 공개처형 되었다는 소식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가 다시 살아 부활했다는 증거가 많습니다.
첫째 증거 :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적에 다시 살아 날 것에 대하여 그의 제자들에게 몇 차례나 예언하였는데 예언한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눅18:32-33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둘째 증거 부활은 그의 빈 무덤에 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입니다.
세상의 영웅호걸은 모두 다 나 역시 죽었어 묻혔노라 하고 무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죽어 사리가 나왔다고 그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과학적으로 보면 사리는 담석의 일종으로 식물성 단백질이 둥글게 뭉친 것이다. 담석은 콜레스테롤이 많이 쌓여 생기기도 하지만 운동 부족의 결과로 생기기도 한다. 담낭의 수축이 약화된 결과인 것이다.
이렇듯 사리는 오랜 시간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경우에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죽었을 때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유명한 이유는 그 무덤이 텅 비었기 때문입니다. - 샘 모리스
저도 그 빈 무덤 속을 한번 들어갔다 왔습니다.
마28:5-6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헛된 신화나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언도하였던 당시 총독 빌라도가 쓴 보고서 원문이 지금 터어키의 성 소피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보고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각하께 문안드립니다. ⋯ 원치 않았지만 폭동이 두려워서 희생양으로 예수라는 청년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비었고 그의 제자들은 용기를 내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전파하였습니다. 예수의 생애는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이 모든 것이 그의 손에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다를 잠들게 하고 폭풍을 멈추게 하고,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은전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메시야라고 말한 그의 주장이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 이 사람은 하나님에 아들이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각하, 이것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각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입니다. 본디오 빌라도
예수를 죽인 빌라도의 보고서가 그가 살아났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셋째 증거 :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많은 사람 한꺼번에 500명이 보는 앞에 나타나신 가장 합리적인 증거입니다.
죽음의 사실 앞에 벌벌 떨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살아왔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눅24:37-39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넷째 증거 : 부활은 교회창설의 유일한 합리적인 설명이다.
교회는 세상에 가장 핍박을 받고 위기에 처했지만 그리고 가장 왕성하게 일어나고 망하지 않습니다.
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행2:36-41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천당 다음에 높은 분당에 지금 선거가 치러지고 있는데 기독교인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25%가 넘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들이
유력한 당선자 강모 손모 두 후보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요 생명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고전15:16-17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이 예언하고 그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마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까?
첫째로,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더라면 그는 평범한 종교가나 맹자 공자 석가모니같이 4대 성인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병 고침과 선행 등이 그의 죽음도 하나의 비극적인 순교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 시대에 한 인물이 선행을 행하다가 일찍 33세에 장가도 한번가지 못하고 죽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고, 예수님의 병 고침이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되었으며, 그의 죽으심이 인류를 구속하는 대속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죄를 속함 ,즉 구원의 보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인류의 죄값인 사망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함인데,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죄값을 치르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살아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모든 죄 값이 다 청산되고 우리는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가 얻을 부활에 대한 확증이 됩니다.
고전15:20-22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넷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역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25-26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주님께서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죄와, 죽음과, 마귀를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차 다가올 부활은 나의 삶을 승리로 이끄는 소망이 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수년전에 타임스에 실린 내용입니다
울리암 제닝스 브라이이언 이라는 사람이 3000년 전에 이집트에 미이라를 조사하다가 미이라 옆에 완두콩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람이 완두콩을 한 움큼 집어 다가 집안에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3000년 된 완두콩에서 싹이 돋아나는 것입니다.
아 ! 완두콩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3000년을 살아 있는데 어찌 인간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겠는가?
라고 부활을 의심했던 믿음을 회개하고 이후로 전도자가 되었답니다
의심이 많은 고린도지역 사람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나는 못 믿겠다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고전15:36-38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아 너희가 밭에 씨앗을 뿌릴 때에 씨가 죽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의 나오지 않지만 씨가 썩어서 죽었을 때에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그래서 보리의 생명을 품은 보리씨를 뿌리면 보리가 나오고
밀의 생명을 품은 밀의 씨를 뿌리면 밀이 나오지 않느냐 이와 같이 너희가 예수 생명의 씨를 품으면 예수의 자녀로 즉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디엘 무디가 장례식 설교를 요청 받았다고 합니다(젊었을 때). 무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례식장에서 했던 설교가 있나하고 성경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복음서를 다 뒤져보았지만, 주님의 장례식 설교를 결코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참석했던 장례식에는 장례식이 뒤엎어지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셨던 장례식에는 죽음이 아닌 생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인해 장례식장은 잔치식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25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세상에 살기가 어렵고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예수 사랑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가정은 가난과의 전쟁이 아니라 경제와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는 먼저 사랑과의 전쟁을 벌이고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없다고 하여도 그곳에 충만한 예수의 사랑이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요 낙원이요 사는 맛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수백억의 재산이 있다 할지라도 그 가정에 예수사랑이 없고 반목과 질투와 미움과 갈등이 있다면 그곳은 지옥이요 그곳은 절망이요 사단의 나라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에 부활이라는 영화를 보았거나 소설을 읽었을 것입니다.
러시아에 네프류도프 라는 젊은 공작이 있었습니다 이 공작이 재판에 배심원으로 앉아 있는데 한 매춘부가 돈 많은 남자를 독살하였다는 협의로 재판정에 끌려 나왔습니다. 그런데 네프류도프 공작은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예전에 자기 집에 하녀였던 카투사였으며 그가 그녀를 유혹하여 범한 뒤에 백루불의 돈을 주고 내보낸 여자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 공작의 아기를 베고 먹고 살기가 힘들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타락하여 매춘부로 일을 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 네프류도프공작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유산도 약혼도 파기하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끝가지 따라 갑니다 결국 네프류도프의 헌신과 희생적인 사랑이 결국 그녀로 하여금 매춘의 죄악된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부활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부활은 우리가 죄악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죄인 대신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증거들을 보세요...
그림자는 빛의 존재를 증거하고, 울림은 소리의 존재를 증거하고, 수증기는 열의 존재를 증거하고, watermark는 홍수가 있었음을 증거하고, 잎사귀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바람이 있음을 증거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고,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아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증거하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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