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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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62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사도행전 26:13-23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기를 총신대학을 졸업하고 그 다음 해 대학원 1학년 3월에 결혼을 하고 그 해 9월 달에 개척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 딸아이가 그 다음 해 4월에 태어났으니 지금으로부터 20년이나 되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감히 개척하기를 주저하고 다른 기성 교회에 부임이나 받을 것을 생각했을 터인데 그 때는 거의 겁이 없이 개척을 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아직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요 아이는 갓 태어났지요.
우리 집 사람은 아주 순수한 새색시입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넉넉합니까?
있는 돈 없는 돈 다 교회 세우는데 드리고 학교 갈 동전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누구들은 말하기 좋아서 우리 교회를 두고서는 아직 이 정도 받게 되지 않나 하고 능력이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할지는 모르지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큰 능력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서울에서 개척 교회가 한 해도 수 백 개 세워지고 수 백 개 없어지는 것을 모르실 것입니다.
누가 말하지 않습니까?
교회 한 백 개가 생긴다면 하나 정도가 성장하여 세워진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 만큼 개척교회가 힘이 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세태가 모든 것이 대형화를 추구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세상에서도 거의 작은 규모들은 날고 기어도 유지 조차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러한 사상이 교계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대형화를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사고조차도 큰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커서 능력이 많고 작은 교회는 하나님도 외면하시는 정도로 여깁니다.
요새는 한 술 더 떠서 거의 이단시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래서 기피를 합니다. 동정어린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하나님 앞에 가서보면 압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러한 우리 교회가 큰 교회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저는 가끔 요사이는 그런 확신이 들고 그런 꿈이 생겨요
이방인의 왕 고레스의 오른 손을 붙잡고 바벨론 포로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아무도 이런 역사가 일어 날 것으로 여긴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하는 말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라고 그런 일이 없서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과연 누구를 붙잡고 이런 역사를 할까?를 기도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합니다.
제 친구 목사님들이 교회 건축을 서울에서 몇 군데 했는데 그 되어지는 과정을 볼 때에 많은 이들이 교회 건축에 동참을 하지만은 실상은 몇 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건축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라고 그런 일이 없으라는 법이 있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가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부터 교회의 짐을 지고 감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성장하며 지나온 과정을 살펴 볼 때에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고 묵묵히 교회를 섬긴 자들의 헌신의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신 분들이 앞으로도 더 수고 할 것입니다.
오늘내일 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이런 헌신 한 분들을 장로님도 세우고 안수집사님도 세우고 권사님도 세우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보다 약한 교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도 교회를 책임지는 직분 자들을 벌써 세웠더라고요
그래서 목사가 무슨 말을 하더러도 의논의 상대가 되어 할 수 있는 자들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교회 살림을 맡기면 재정을 책임 질 수 있는 자들을 이제 하나님께서 세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재정을 감당한다는 말은 이걸 어디에 써나 저걸 어디에 썼나를 간섭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재정이 필요 할 때 자신의 집이라도 팔아서 그 필요를 채우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여태까지 목사가 넉넉지 못한 살림을 이 모양 저 모양 감당하느라고 했는데 생활비를 받으면 아니 아예 받지를 못하고 계산상으로는 받는 것으로 하고 재정을 충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 사람은 목회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번도 목사 생활비를 받아 본 적이 없어요 맨날 계산상으로만 주었다 받았다가 되기 때문입니다.
불쌍해 죽겠어요
단돈 한 푼을 써도 제 눈치를 봐야하니 그리고 눈치를 주는 저 자신인들 무슨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아직까지도 본인의 손으로 제대로 된 옷 하나 구두하나 사보지 못했고 저 자신 역시 그렇게 하였으니 만약에 이것이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생각을 하면 너무 비참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도 어떠한 모양의 살림도 감당하는 자들이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장로님, 안수집사, 권사 이런 분들을 뽑을 것입니다.
이번 달에 세울지 올 해 안에 세울지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면 세우려고 합니다.
여태까지 교회가 좀더 성장하면 해야지 하고 왔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면 언제든지 해야겠습니다.
직급이 올라 갈수록 축복도 그 만큼 큰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교회의 일을 할 수가 있을까? 입니다.
교회는 그 때마다 그 시기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그러합니다.
누가 사도 바울이 교회에 큰 일꾼이 될 것으로 여겼습니까?
아무도 예상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큰 일군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큰 일군이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사람들은 예측 할 수가 없습니다.
여태까지 예측하여 맞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하나님은 하실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군은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고 복음의 일군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군을 잘 세워 성장하는데 큰 일을 하지만 잘 못된 일군을 세움으로서 망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이 망하는 자들이고 어떤 이들은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이들입니까?
그 기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을 믿기를 열심을 낸다고 하였지만 실상은 교회를 훼방하는 방해 자였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교인을 때리고 잡아 가두고 죽이고 이렇게 하면서 얼마나 복음에 걸림돌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자기 나름대로 신앙 생활을 잘 한다고 한 것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그 사람하고 가까이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믿음이 떨어지고 시험에 빠지게 되는 일들을 종종 봅니다.
분란이 일어나고 시기 질투가 일고 다투고 교회와 교역자와 교인들을 헐뜯고 결국은 이런 일을 하는 자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바울과 같이 자신에게는 가시 채를 뒤 발질하는 것 같은 고통일 것입니다.
면면히 흐르는 진리를 거슬려 행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런 성도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스로 고난과 고통의 길로 가는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은 이런 가문들은 참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속을 썩이고 자식들이 엉망진창이 되고 말입니다.
이런 바울이 이제는 그렇게도 방해했던 그 예수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확신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가 어떻게 살아 왔든지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화가 서서히 오는 사람도 있지 만은 한꺼번에 팍 깨어져 변화한 자들도 있습니다.
오늘의 사도 파울입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되고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세상에서도 의리를 이렇게 굳히는데 하물며 한번 예수는 영원히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렇게도 비난을 했던 예수를 이제는 그의 생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연연하지 않고 총독 아그립바 왕 앞에서 그가 만난 예수님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의 증인이요 그를 선전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 누구도 예수에게서 자신을 끊어 놓을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저 부산에 호산나 교회에 어떤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 아내는 열심히 교회에 다녔는데 그 남편이 통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한번은 그 아내가 지혜를 얻어서 남편에게 여보 우리 교회에서 사람들이 나 과부 줄 알아 그러니 한번만 교회 나와서 내가 과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이 그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하며 교회에 한번 나왔다가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만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에서 등록을 하였답니다. 열심히 봉사를 했습니다.
부잣집입니다. 벤츠를 타고 다닐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그런데 7년의 세월이 지냈는데 자신의 아들이 국내에서 유명한 대학을 나와 이태리에 유학을 간 엘리트 청년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 청년도 신앙 생활을 잘한 청년입니다.
이 정도 되면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믿음이 송두리체 뽑힐 것입니다.
조그만 일이 안되어도 시험이 팍팍 드는 판에
몇 달을 일어나지를 못하고 끙끙 들어 누울 것입니다.
나중에 그가 교회에 와서 간증하기를 이태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승객들이 이상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 온 것도 아니고 멀쩡한 아들이 죽었는데 무슨 전도를 전하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내가 행하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내 슬픔과 내 아픔을 회답을 알 수 있고요
이것이 비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위로와 봉사를 받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참으로 기쁨모습으로 만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옥돌 할머님이 기쁨으로 신앙 생활을 하시다가 천국 가신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 할머님들이 이 교회에서 예수 믿고 천국간 사람들이 많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치 바울과 같은 심정이 아닙니까?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있으리요
죽음이야 기근이야 적신이랴 칼이랴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할렐루야!
진정 예수님을 만난 자들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이런 일군들을 통하여 교회는 성장되고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이 교회의 일군이 되어 많은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킬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이런 일군들이 많이 일어 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의 일군이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노라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함이라 할렐루야!
사실 제가 교회에 일군들을 함부로 세우지 못하고 일감을 맡기지 못하는 것은 제가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잘 못 맡겨 그기에 속한 자들을 살리기보다는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맡기겠습니까?
예수를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자들이 성도들을 양들을 이리에게 맡긴 것과 같아요
아직도 우리 교회는 복음의 일꾼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보라 추수 할 것은 많되 일군이 심히 적으니 추수 할 주인에게 일 할 일 군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모두가 복음의 일군이 되고 또 많은 일군들을 우리 교회로 모여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에 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복음의 일군은 복음 밖에 더 중요하고 귀한 일이 없다 아니 복음 외에는 다른 일은 할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번 교회는 여러분들의 기도와 헌신을 통한 영혼 구원을 기대합니다.
교회가 앞장을 쓰면 무엇합니까? 여러 성도들이 따라 해주셔야 합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에게 교회가 사명을 맡겼습니다.
한 사람이 2명 주일학교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각 기관이 이 일을 위하여 힘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가운데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래도 주를 위하여 살아 온 것이 있었기에 이 만큼이라도 서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마 복음에 매인 것이 없다면 참으로 어떻게 되었을 지를 모릅니다.
가정이 제대로 유지되지도 못한 가정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위하여 깨닫고 힘을 쓴다면 아마도 모르긴 모르지 만은 복음 때문에 여러분에게 기적 같은 축복이 임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제가 교회를 개척하기를 총신대학을 졸업하고 그 다음 해 대학원 1학년 3월에 결혼을 하고 그 해 9월 달에 개척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 딸아이가 그 다음 해 4월에 태어났으니 지금으로부터 20년이나 되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감히 개척하기를 주저하고 다른 기성 교회에 부임이나 받을 것을 생각했을 터인데 그 때는 거의 겁이 없이 개척을 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아직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요 아이는 갓 태어났지요.
우리 집 사람은 아주 순수한 새색시입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넉넉합니까?
있는 돈 없는 돈 다 교회 세우는데 드리고 학교 갈 동전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누구들은 말하기 좋아서 우리 교회를 두고서는 아직 이 정도 받게 되지 않나 하고 능력이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할지는 모르지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큰 능력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서울에서 개척 교회가 한 해도 수 백 개 세워지고 수 백 개 없어지는 것을 모르실 것입니다.
누가 말하지 않습니까?
교회 한 백 개가 생긴다면 하나 정도가 성장하여 세워진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 만큼 개척교회가 힘이 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세태가 모든 것이 대형화를 추구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세상에서도 거의 작은 규모들은 날고 기어도 유지 조차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러한 사상이 교계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대형화를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사고조차도 큰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커서 능력이 많고 작은 교회는 하나님도 외면하시는 정도로 여깁니다.
요새는 한 술 더 떠서 거의 이단시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래서 기피를 합니다. 동정어린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하나님 앞에 가서보면 압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러한 우리 교회가 큰 교회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저는 가끔 요사이는 그런 확신이 들고 그런 꿈이 생겨요
이방인의 왕 고레스의 오른 손을 붙잡고 바벨론 포로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아무도 이런 역사가 일어 날 것으로 여긴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하는 말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라고 그런 일이 없서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과연 누구를 붙잡고 이런 역사를 할까?를 기도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합니다.
제 친구 목사님들이 교회 건축을 서울에서 몇 군데 했는데 그 되어지는 과정을 볼 때에 많은 이들이 교회 건축에 동참을 하지만은 실상은 몇 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건축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라고 그런 일이 없으라는 법이 있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가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부터 교회의 짐을 지고 감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성장하며 지나온 과정을 살펴 볼 때에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고 묵묵히 교회를 섬긴 자들의 헌신의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신 분들이 앞으로도 더 수고 할 것입니다.
오늘내일 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이런 헌신 한 분들을 장로님도 세우고 안수집사님도 세우고 권사님도 세우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보다 약한 교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도 교회를 책임지는 직분 자들을 벌써 세웠더라고요
그래서 목사가 무슨 말을 하더러도 의논의 상대가 되어 할 수 있는 자들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교회 살림을 맡기면 재정을 책임 질 수 있는 자들을 이제 하나님께서 세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재정을 감당한다는 말은 이걸 어디에 써나 저걸 어디에 썼나를 간섭하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재정이 필요 할 때 자신의 집이라도 팔아서 그 필요를 채우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여태까지 목사가 넉넉지 못한 살림을 이 모양 저 모양 감당하느라고 했는데 생활비를 받으면 아니 아예 받지를 못하고 계산상으로는 받는 것으로 하고 재정을 충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 사람은 목회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번도 목사 생활비를 받아 본 적이 없어요 맨날 계산상으로만 주었다 받았다가 되기 때문입니다.
불쌍해 죽겠어요
단돈 한 푼을 써도 제 눈치를 봐야하니 그리고 눈치를 주는 저 자신인들 무슨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아직까지도 본인의 손으로 제대로 된 옷 하나 구두하나 사보지 못했고 저 자신 역시 그렇게 하였으니 만약에 이것이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생각을 하면 너무 비참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도 어떠한 모양의 살림도 감당하는 자들이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장로님, 안수집사, 권사 이런 분들을 뽑을 것입니다.
이번 달에 세울지 올 해 안에 세울지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면 세우려고 합니다.
여태까지 교회가 좀더 성장하면 해야지 하고 왔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면 언제든지 해야겠습니다.
직급이 올라 갈수록 축복도 그 만큼 큰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교회의 일을 할 수가 있을까? 입니다.
교회는 그 때마다 그 시기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그러합니다.
누가 사도 바울이 교회에 큰 일꾼이 될 것으로 여겼습니까?
아무도 예상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큰 일군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큰 일군이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사람들은 예측 할 수가 없습니다.
여태까지 예측하여 맞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하나님은 하실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군은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고 복음의 일군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군을 잘 세워 성장하는데 큰 일을 하지만 잘 못된 일군을 세움으로서 망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이 망하는 자들이고 어떤 이들은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이들입니까?
그 기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을 믿기를 열심을 낸다고 하였지만 실상은 교회를 훼방하는 방해 자였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교인을 때리고 잡아 가두고 죽이고 이렇게 하면서 얼마나 복음에 걸림돌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자기 나름대로 신앙 생활을 잘 한다고 한 것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음을 봅니다.
그 사람하고 가까이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믿음이 떨어지고 시험에 빠지게 되는 일들을 종종 봅니다.
분란이 일어나고 시기 질투가 일고 다투고 교회와 교역자와 교인들을 헐뜯고 결국은 이런 일을 하는 자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바울과 같이 자신에게는 가시 채를 뒤 발질하는 것 같은 고통일 것입니다.
면면히 흐르는 진리를 거슬려 행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런 성도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스로 고난과 고통의 길로 가는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은 이런 가문들은 참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속을 썩이고 자식들이 엉망진창이 되고 말입니다.
이런 바울이 이제는 그렇게도 방해했던 그 예수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확신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가 어떻게 살아 왔든지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화가 서서히 오는 사람도 있지 만은 한꺼번에 팍 깨어져 변화한 자들도 있습니다.
오늘의 사도 파울입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되고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세상에서도 의리를 이렇게 굳히는데 하물며 한번 예수는 영원히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렇게도 비난을 했던 예수를 이제는 그의 생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연연하지 않고 총독 아그립바 왕 앞에서 그가 만난 예수님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의 증인이요 그를 선전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 누구도 예수에게서 자신을 끊어 놓을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저 부산에 호산나 교회에 어떤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 아내는 열심히 교회에 다녔는데 그 남편이 통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한번은 그 아내가 지혜를 얻어서 남편에게 여보 우리 교회에서 사람들이 나 과부 줄 알아 그러니 한번만 교회 나와서 내가 과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이 그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하며 교회에 한번 나왔다가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만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에서 등록을 하였답니다. 열심히 봉사를 했습니다.
부잣집입니다. 벤츠를 타고 다닐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그런데 7년의 세월이 지냈는데 자신의 아들이 국내에서 유명한 대학을 나와 이태리에 유학을 간 엘리트 청년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 청년도 신앙 생활을 잘한 청년입니다.
이 정도 되면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믿음이 송두리체 뽑힐 것입니다.
조그만 일이 안되어도 시험이 팍팍 드는 판에
몇 달을 일어나지를 못하고 끙끙 들어 누울 것입니다.
나중에 그가 교회에 와서 간증하기를 이태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승객들이 이상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 온 것도 아니고 멀쩡한 아들이 죽었는데 무슨 전도를 전하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내가 행하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내 슬픔과 내 아픔을 회답을 알 수 있고요
이것이 비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위로와 봉사를 받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참으로 기쁨모습으로 만나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옥돌 할머님이 기쁨으로 신앙 생활을 하시다가 천국 가신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 할머님들이 이 교회에서 예수 믿고 천국간 사람들이 많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치 바울과 같은 심정이 아닙니까?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있으리요
죽음이야 기근이야 적신이랴 칼이랴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할렐루야!
진정 예수님을 만난 자들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이런 일군들을 통하여 교회는 성장되고 복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이 교회의 일군이 되어 많은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킬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이런 일군들이 많이 일어 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의 일군이 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노라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함이라 할렐루야!
사실 제가 교회에 일군들을 함부로 세우지 못하고 일감을 맡기지 못하는 것은 제가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잘 못 맡겨 그기에 속한 자들을 살리기보다는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맡기겠습니까?
예수를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자들이 성도들을 양들을 이리에게 맡긴 것과 같아요
아직도 우리 교회는 복음의 일꾼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보라 추수 할 것은 많되 일군이 심히 적으니 추수 할 주인에게 일 할 일 군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모두가 복음의 일군이 되고 또 많은 일군들을 우리 교회로 모여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에 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복음의 일군은 복음 밖에 더 중요하고 귀한 일이 없다 아니 복음 외에는 다른 일은 할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번 교회는 여러분들의 기도와 헌신을 통한 영혼 구원을 기대합니다.
교회가 앞장을 쓰면 무엇합니까? 여러 성도들이 따라 해주셔야 합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에게 교회가 사명을 맡겼습니다.
한 사람이 2명 주일학교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각 기관이 이 일을 위하여 힘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가운데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래도 주를 위하여 살아 온 것이 있었기에 이 만큼이라도 서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마 복음에 매인 것이 없다면 참으로 어떻게 되었을 지를 모릅니다.
가정이 제대로 유지되지도 못한 가정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위하여 깨닫고 힘을 쓴다면 아마도 모르긴 모르지 만은 복음 때문에 여러분에게 기적 같은 축복이 임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