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옮겨 놓고 수건을 풀어 다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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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67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요한복음 11:37-44 돌을 옮겨 놓고 수건을 풀어 다니게 하라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내 앞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그 음식이 내 배를 부르게 하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지를 않습니다.
지식적으로 음식의 영양을 논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내가 손으로 집어 입으로 먹어야 만이 그 음식은 내 배를 부르게 하고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아는 지식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아무런 역사 하심이 없습니다.
그기에 대한 우리 사람의 믿음적인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얄밉고 속 상하는 것이 무엇인 줄로 아십니까?
성경적인 지식은 쌓아 가는데 소이 은혜는 받는데 그기에 따르는 믿음의 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믿음으로 하다가 그만 정지하여 버리고 선을 그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더 크게 사용되는 축복을 받지를 못합니다.
당신은 맨 날 그 자리에서 그 정도 밖에 안 되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 하심이 있지만은 사람이 믿음으로 해야하는 것을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만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한 인격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고 그 인격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무조건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실 것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계획하고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고 무모한 믿음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봅시다.
하늘에서 비를 내릴 때에 적당하게 내리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너무 많이 내려 홍수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내리지 않아 큰 가뭄으로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 사람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 비를 적당하게 내려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비가 많이 오면 비를 조금만 내려 주십시오 라고 하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비를 내려 달라고 해야 합니까?
물론 그렇게 해야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기도도 기도이지만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믿을 진데 비를 많이 내려 주시면 내려 주시는 데로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적게 내려 주시면 그런 데로 감당 할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은 원하시고 계십니다.
기도도 하지만 사람이 댐을 짓고 상수도 하수도 농업 용수 공업용수등 물의 흐름을 잘 관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많이 내리면 많이 준다고 야단이고 자 하나님께 그만 오도록 기도하자
또 적게 내리면 적게 준다고 야단이고 자 기도하자 비내려 달라고 이렇게만 되어서는 안됩니다.
일단 하늘에서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니 우리 사람들이 그기에 합한 행위가 따라야 한 것입니다.
베짱이는 왜 한 여름동안 노래만 부르고 한 겨울에는 거지가 되어야 합니까?
먹을 것 많은 여름에 겨울에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한 동화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가운데 우리가 행할 것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찾는 어리석은 믿음이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친히 원하시는 뜻대로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 사람이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따라 행 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은 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사로의 시신이 썩어서 냄새가 나지만 그 냄새가 나는 것하고 나사로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마르다가 그것까지 다 신경을 써서 주님께 설명하고 이해를 시킬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죽은지 사흘이 된 것을 모르겠어요 또 썩어 냄새가 나는 것을 모르겠어요 다 아시고 계십니다.
다만 마르다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에 자신이 따르는 일만이 그가 신경을 쓰고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의 처한 사정을 주님이 모르시고 계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은 그 사정이 어떠하든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것뿐입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자신들을 지위를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을 수 있도록 간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너희들이 관심거리가 아니다 지금은 내가 마시는 쓴잔을 마시는 일이 더 급해 이것이 너희들의 관심거리야 라고 하셨습니다.
때때로 우리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요구 될 때에 주님은 내 사정을 아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하면서 열심히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설명을 하고 인정을 받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입장을 몰라서 우리의 설명이 필요하고 우리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응 그래하고 이해를 당하거나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먼저 이해하시고 아시고 계십니다.
마6:32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절대시하여 하나님의 뜻을 가리우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려는 마르다에게 주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이사야 55:8-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우리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길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할렐루야!
온 우주만물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종이요,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주인의 위치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광야에서 남자만 5천명,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수 만 명이 있는데 주님께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은 직접 기적을 베푸셔서 주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인간의 믿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역사 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믿음의 증거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행위가 없는 죽은 믿음은 아무리 태산같아도 아무런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이면에는 믿음 있는 사람들의 실천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믿음으로 돌을 옮길 때에 비로소 예수님은 나사로를 그 가운데서 나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를 하고, 헌신을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미 하나님은 구원의 축복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주님은 이미 그 가운데 구원을 선포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주님을 구원을 이미 허락하셨기 때문에 구원함을 받고 받지 못함의 문제는 우리의 편에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직 때가 아니야 하며 우리 마음대로 생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아직 주를 위해서 무엇인가 할 때가 아니야 무엇인가를 주께 더 받아야 할 수 있어 이렇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미 선을 행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다음에 나중에 더 나아지면 해 보십시오
그 사람에게는 절대로 믿음을 통하여 오는 미래의 축복은 그가 미루는 만큼 그 사람에게는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영원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의 기회를 주신 것은 나중에, 더 형편이 나은 후에가 아닙니다.
오직 지금일 뿐입니다.
신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 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안 하겠다고 가 죄가 아니라 지금 안 하는 것이 죄가 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믿음으로 행하려고 합니다 하는 그럴듯한 미명 아래 지금 해야 하는 기회를 미루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하나님 제가 교회를 위하여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제게 10억만 주시면 9억 9천만 원을 교회에 바치고 전 천만 원밖에 안 갖겠습니다. 이것은 봉사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빙자한 자랑 일 뿐입니다. 자기 합리화를 핑계 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런 일에다 동원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약4:17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지 만은 주를 위하여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주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자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하여 모든 힘을 다 기울이고 주를 위하여는 전혀 노력도 생각도 없지 않습니까?
자신을 위한 생각에 주를 위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니 어찌 잘 살 수 있으며 잘 살겠다고 생각을 가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게는 참으로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나를 위하여 잘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살아서 무엇을 남에게 내어놓고 나를 위하여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내어놓을 것이 없습니다.
돈을 벌어 논 것이 있습니까? 출세를 했습니까? 자식이 괜찮습니까? 가문이 빛납니까? 비단 저만 그렇습니까?
어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용서 해줄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마음은 좁을 대로 좁아서 아무런데 쓸모가 없고 이 세상에서 당장 사라져도 아쉬워 할 사람 없고 다만 불쌍하다 하는 소리 받게 듣을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나를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나만을 위한 삶이 잘 사는 삶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확실하게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비록 세상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할지라도 아니 이 시간에 주님이나를 부르신다고 하여도 내가 주를 힘입어 무엇인가를 하였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자라도 용납하고 받아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더라고요
내 자존심하고 상관이 없이 주가 원 하 시면은 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주를 위하여 내가 살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크리소스톰이란 기독인이 법으로 금한 기독교 복음을 증거 한다고 체포당하여 감옥에 갔을 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복음 화하라고 이곳에 저를 파송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그는 감옥 속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크리소스톰은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나 성 크리소스톰에게 교수형이 집행되려고 할 때 갑자기 사형 중지령이 내렸습니다. 그때도 크리소스톰은 눈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더 남았다는 것입니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내일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큰 소리 칠 수가 없습니다.
후회하는 인생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선의 기회를 수도 없이 뒤로 미루고 왔습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라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구원을 믿고 합당하게 행하는 일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은 게으른 자는 결코 할 수가 없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주께 무엇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제 주님은 큰 구원을 준비하시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인간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가로막은 돌을 옮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볼 수 없도록 가리워 진 수건을 풀어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주님의 의지에 여러분 자신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이미 약속한 구원의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더 이상 인간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진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가 여러분 가운데서 걸어 나오게 되는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내 앞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그 음식이 내 배를 부르게 하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지를 않습니다.
지식적으로 음식의 영양을 논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내가 손으로 집어 입으로 먹어야 만이 그 음식은 내 배를 부르게 하고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아는 지식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아무런 역사 하심이 없습니다.
그기에 대한 우리 사람의 믿음적인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얄밉고 속 상하는 것이 무엇인 줄로 아십니까?
성경적인 지식은 쌓아 가는데 소이 은혜는 받는데 그기에 따르는 믿음의 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믿음으로 하다가 그만 정지하여 버리고 선을 그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더 크게 사용되는 축복을 받지를 못합니다.
당신은 맨 날 그 자리에서 그 정도 밖에 안 되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 하심이 있지만은 사람이 믿음으로 해야하는 것을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만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한 인격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고 그 인격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무조건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실 것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계획하고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고 무모한 믿음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봅시다.
하늘에서 비를 내릴 때에 적당하게 내리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너무 많이 내려 홍수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내리지 않아 큰 가뭄으로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 사람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 비를 적당하게 내려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비가 많이 오면 비를 조금만 내려 주십시오 라고 하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비를 내려 달라고 해야 합니까?
물론 그렇게 해야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기도도 기도이지만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믿을 진데 비를 많이 내려 주시면 내려 주시는 데로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적게 내려 주시면 그런 데로 감당 할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은 원하시고 계십니다.
기도도 하지만 사람이 댐을 짓고 상수도 하수도 농업 용수 공업용수등 물의 흐름을 잘 관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많이 내리면 많이 준다고 야단이고 자 하나님께 그만 오도록 기도하자
또 적게 내리면 적게 준다고 야단이고 자 기도하자 비내려 달라고 이렇게만 되어서는 안됩니다.
일단 하늘에서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니 우리 사람들이 그기에 합한 행위가 따라야 한 것입니다.
베짱이는 왜 한 여름동안 노래만 부르고 한 겨울에는 거지가 되어야 합니까?
먹을 것 많은 여름에 겨울에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한 동화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가운데 우리가 행할 것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찾는 어리석은 믿음이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친히 원하시는 뜻대로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 사람이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따라 행 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은 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사로의 시신이 썩어서 냄새가 나지만 그 냄새가 나는 것하고 나사로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마르다가 그것까지 다 신경을 써서 주님께 설명하고 이해를 시킬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죽은지 사흘이 된 것을 모르겠어요 또 썩어 냄새가 나는 것을 모르겠어요 다 아시고 계십니다.
다만 마르다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에 자신이 따르는 일만이 그가 신경을 쓰고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의 처한 사정을 주님이 모르시고 계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은 그 사정이 어떠하든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것뿐입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자신들을 지위를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을 수 있도록 간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너희들이 관심거리가 아니다 지금은 내가 마시는 쓴잔을 마시는 일이 더 급해 이것이 너희들의 관심거리야 라고 하셨습니다.
때때로 우리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요구 될 때에 주님은 내 사정을 아시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하면서 열심히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설명을 하고 인정을 받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입장을 몰라서 우리의 설명이 필요하고 우리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응 그래하고 이해를 당하거나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먼저 이해하시고 아시고 계십니다.
마6:32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절대시하여 하나님의 뜻을 가리우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려는 마르다에게 주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이사야 55:8-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우리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길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할렐루야!
온 우주만물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종이요,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주인의 위치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광야에서 남자만 5천명,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수 만 명이 있는데 주님께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은 직접 기적을 베푸셔서 주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인간의 믿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역사 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믿음의 증거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행위가 없는 죽은 믿음은 아무리 태산같아도 아무런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이면에는 믿음 있는 사람들의 실천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믿음으로 돌을 옮길 때에 비로소 예수님은 나사로를 그 가운데서 나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를 하고, 헌신을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미 하나님은 구원의 축복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주님은 이미 그 가운데 구원을 선포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주님을 구원을 이미 허락하셨기 때문에 구원함을 받고 받지 못함의 문제는 우리의 편에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직 때가 아니야 하며 우리 마음대로 생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아직 주를 위해서 무엇인가 할 때가 아니야 무엇인가를 주께 더 받아야 할 수 있어 이렇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미 선을 행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다음에 나중에 더 나아지면 해 보십시오
그 사람에게는 절대로 믿음을 통하여 오는 미래의 축복은 그가 미루는 만큼 그 사람에게는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영원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의 기회를 주신 것은 나중에, 더 형편이 나은 후에가 아닙니다.
오직 지금일 뿐입니다.
신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 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안 하겠다고 가 죄가 아니라 지금 안 하는 것이 죄가 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믿음으로 행하려고 합니다 하는 그럴듯한 미명 아래 지금 해야 하는 기회를 미루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하나님 제가 교회를 위하여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제게 10억만 주시면 9억 9천만 원을 교회에 바치고 전 천만 원밖에 안 갖겠습니다. 이것은 봉사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빙자한 자랑 일 뿐입니다. 자기 합리화를 핑계 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런 일에다 동원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약4:17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지 만은 주를 위하여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주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자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하여 모든 힘을 다 기울이고 주를 위하여는 전혀 노력도 생각도 없지 않습니까?
자신을 위한 생각에 주를 위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니 어찌 잘 살 수 있으며 잘 살겠다고 생각을 가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게는 참으로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나를 위하여 잘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살아서 무엇을 남에게 내어놓고 나를 위하여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내어놓을 것이 없습니다.
돈을 벌어 논 것이 있습니까? 출세를 했습니까? 자식이 괜찮습니까? 가문이 빛납니까? 비단 저만 그렇습니까?
어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용서 해줄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마음은 좁을 대로 좁아서 아무런데 쓸모가 없고 이 세상에서 당장 사라져도 아쉬워 할 사람 없고 다만 불쌍하다 하는 소리 받게 듣을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나를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나만을 위한 삶이 잘 사는 삶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확실하게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비록 세상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할지라도 아니 이 시간에 주님이나를 부르신다고 하여도 내가 주를 힘입어 무엇인가를 하였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자라도 용납하고 받아 드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더라고요
내 자존심하고 상관이 없이 주가 원 하 시면은 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주를 위하여 내가 살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크리소스톰이란 기독인이 법으로 금한 기독교 복음을 증거 한다고 체포당하여 감옥에 갔을 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복음 화하라고 이곳에 저를 파송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그는 감옥 속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크리소스톰은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나 성 크리소스톰에게 교수형이 집행되려고 할 때 갑자기 사형 중지령이 내렸습니다. 그때도 크리소스톰은 눈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더 남았다는 것입니까?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내일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큰 소리 칠 수가 없습니다.
후회하는 인생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선의 기회를 수도 없이 뒤로 미루고 왔습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라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구원을 믿고 합당하게 행하는 일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은 게으른 자는 결코 할 수가 없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주께 무엇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제 주님은 큰 구원을 준비하시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인간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가로막은 돌을 옮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볼 수 없도록 가리워 진 수건을 풀어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주님의 의지에 여러분 자신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이미 약속한 구원의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더 이상 인간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진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가 여러분 가운데서 걸어 나오게 되는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