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허락하신 크신 축복이 있음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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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45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에베소서 1:17-19 나에게 허락하신 크신 축복이 있음을 알자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은 일제치하 36년간의 굴욕과 치욕에서 해방을 맞이한 기념일이었습니다.
긴 세월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우리 민족은 일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는 감을 금 할 수가 없습니다.
총리의 전범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교과서 왜곡이 그렇습니다.
일제치하에 그렇게도 만행한 일들을 미화시켜 오히려 우리 민족을 위한 일이었다는 망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일제치하 때에는 우리 민족이 몰라서 무시당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선구자들은 이 백성들을 무지에서 일깨워서 일제의 치하에서 벗어 보려는 안 갖 힘을 다 기울였고 동네마다 다니면서 글을 깨우치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김영신의 상록수의 글에서 보면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하며 열심히 가르치는 것을 볼 수있었습니다.
지금도 후진국들의 수반들의 정치는 많은 백성들을 무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눈을 가리우고 귀를 막게 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한 나라와 국가가 발전된 곳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한 예로 북한의 김정일 정치를 보십시오
얼마나 주민들을 무지하게 만들어 암흑의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철두철미하게 온 백성의 눈을 가리우고 귀를 가리우고 있지 않습니까?
온 세계가 다 아는 사실들을 북한 주민들만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외부에 절대로 들어내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세계가 어떻게 건전하게 발전을 가져 올 수 있겠습니까?
온 주민은 다 굶어 죽어가고 오직 깡패가 믿는 것은 그 주먹이듯이 이북은 주먹만을 키워서 주위를 위협하며 무엇인가를 뜯어 가는 깡패 같은 나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툭하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이 되면 무식하게 말도 하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그고 교제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 툭하면은 미사일을 쏘겠다고 무슨 자랑처럼 떠들어 붙이는 참으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식으로 그러하였습니다.
이 나라는 다른 나라에 유익을 주기는커녕 불길하고 불안을 주는 나라며 자기네들도 결국은 다 죽게 생겼습니다.
잠언서 말씀에도 17;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무식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나라나 개인이나 다 한가지로 망하고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무식하여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이 지식은 다른 지식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죽게 된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게 되었습니다.
다른 무슨 이유 이것저것 때문이 아닙니다.
죽게된 이유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드러난 어떤 현상만을 가지고 어쩔 수 없어 하는 자가 아니라 먼저 여호와를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지식이 없어 망하게된 백성들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절망과 낙심에 찬 성도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크신 축복을 주신 것을 모르고 방황하는 자들이 알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 모두가 축복 가운데 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떠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십니까?
지혜의 말씀을 통하여 영안을 열어 주십니다.
신령한 눈을 가지면 살 소망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영안의 눈이 열리지 않아 상당히 절망가운데 있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은 엘리사와 게하시라는 종이 함께 사마리아 성에 있을 때였습니다.
아람 군대가 그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 게하시라는 종이 이 광경을 보고 겁을 먹고서는 이제 우리는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하고 절망이 가득하였습니다.
육신적인 눈으로 볼 때에 이제는 절망이었습니다.
이 때에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하는 말이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우리와 함께한 자는 절대로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영안의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게하시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사환의 영안의 눈을 열게 하시는데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 지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자 이제 이 종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직도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절망 가운데 빠졌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게도 절망으로 몰아 넣었던 빽빽한 구름이 사라지고는 광명의 햇볕이 비취는 것 같은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성도들이 이러한 소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들의 삶은 얼마나 큰 축복된 삶이 되는지 모릅니다.
성령은 지금도 여러분 가운데서 뜨겁게 역사 하시고 소망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낙심되십니까?
그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를 간구하십시오
여러분을 분명히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면 충만히 받지 못할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말세에 내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물 붙듯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악한 부모라도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주는 부모가 있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으로 얻지 못하느니라? 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도를 하지 않고 왜 염려만 하고 걱정만 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할렐루야!
기도하는 그 순간에 여러분은 한없는 소망이 있는 복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떠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십니까?
우리에게 지극히 크신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 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은 이미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한 능력입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악하고 더러운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죄에 깊이 빠진 몸을 그 피로 씻어 맑히네......
영원한 멸망의 길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영원무궁한 천국의 기업으로 바꾸었습니다.
여러분 기적 중에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나 같은 사람들이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죄인 중에 가장 우두머리인 내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까?
솔직히 우리가 세상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나은 것이 무엇이 있고 자랑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어쩌면은 세상 사람보다 더 못하는 것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목회자이지만 때로는 어떤 성도들을 바라 볼 때에 저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고 더 못하다라고 할 수도 있는 자들이 더러 더러 있습니다.
성격이 개떡같고, 아주 이기적이고, 윤리와 도덕도 개판이고요, 뭐가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할 그런 사람이 어찌 구원함을 받았다는 것입니까?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만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참으로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구원을 받지 못한 자가 아니라 지지리도 못나고 인간의 냄새가 푹푹 나도 구원을 받은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한번 따라 합시다.
나 같은 자가 구원함을 받은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로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절대로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넉넉히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절벽에 떨어진 내가 날 수 있다는 것, 곧 내가 구원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절벽의 끝에 서있다고 여겨지십니까?
아니 그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고 여겨지십니까?
여러분에게는 날 수 있는 구원의 날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떠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십니까?
우리를 예수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찍이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도다.
이 서신을 쓴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궁핍 할 때도 내가 비천할 때도 일체 만족하는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되어도 만족을 얻지 못하였던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마음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퍼내도 퍼내어도 갈하지 않는 풍성한 은혜입니다.
마음의 풍요로움은 반드시 여러분의 삶에도 풍성하게 하시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 범사가 잘 되고 강건케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난과 궁색과 빈핍과 곤고와 우울함과 더러운 생각적인 것들이 다 물러가며 흔들어 채워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은 일제치하 36년간의 굴욕과 치욕에서 해방을 맞이한 기념일이었습니다.
긴 세월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우리 민족은 일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는 감을 금 할 수가 없습니다.
총리의 전범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교과서 왜곡이 그렇습니다.
일제치하에 그렇게도 만행한 일들을 미화시켜 오히려 우리 민족을 위한 일이었다는 망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일제치하 때에는 우리 민족이 몰라서 무시당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선구자들은 이 백성들을 무지에서 일깨워서 일제의 치하에서 벗어 보려는 안 갖 힘을 다 기울였고 동네마다 다니면서 글을 깨우치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김영신의 상록수의 글에서 보면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하며 열심히 가르치는 것을 볼 수있었습니다.
지금도 후진국들의 수반들의 정치는 많은 백성들을 무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눈을 가리우고 귀를 막게 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한 나라와 국가가 발전된 곳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한 예로 북한의 김정일 정치를 보십시오
얼마나 주민들을 무지하게 만들어 암흑의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철두철미하게 온 백성의 눈을 가리우고 귀를 가리우고 있지 않습니까?
온 세계가 다 아는 사실들을 북한 주민들만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외부에 절대로 들어내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세계가 어떻게 건전하게 발전을 가져 올 수 있겠습니까?
온 주민은 다 굶어 죽어가고 오직 깡패가 믿는 것은 그 주먹이듯이 이북은 주먹만을 키워서 주위를 위협하며 무엇인가를 뜯어 가는 깡패 같은 나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툭하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이 되면 무식하게 말도 하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그고 교제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 툭하면은 미사일을 쏘겠다고 무슨 자랑처럼 떠들어 붙이는 참으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식으로 그러하였습니다.
이 나라는 다른 나라에 유익을 주기는커녕 불길하고 불안을 주는 나라며 자기네들도 결국은 다 죽게 생겼습니다.
잠언서 말씀에도 17;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콤을 만날지언정 무식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나라나 개인이나 다 한가지로 망하고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무식하여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이 지식은 다른 지식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죽게 된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게 되었습니다.
다른 무슨 이유 이것저것 때문이 아닙니다.
죽게된 이유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드러난 어떤 현상만을 가지고 어쩔 수 없어 하는 자가 아니라 먼저 여호와를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지식이 없어 망하게된 백성들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절망과 낙심에 찬 성도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크신 축복을 주신 것을 모르고 방황하는 자들이 알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 모두가 축복 가운데 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떠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십니까?
지혜의 말씀을 통하여 영안을 열어 주십니다.
신령한 눈을 가지면 살 소망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영안의 눈이 열리지 않아 상당히 절망가운데 있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은 엘리사와 게하시라는 종이 함께 사마리아 성에 있을 때였습니다.
아람 군대가 그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 게하시라는 종이 이 광경을 보고 겁을 먹고서는 이제 우리는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하고 절망이 가득하였습니다.
육신적인 눈으로 볼 때에 이제는 절망이었습니다.
이 때에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하는 말이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우리와 함께한 자는 절대로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영안의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게하시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사환의 영안의 눈을 열게 하시는데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 지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자 이제 이 종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직도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절망 가운데 빠졌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게도 절망으로 몰아 넣었던 빽빽한 구름이 사라지고는 광명의 햇볕이 비취는 것 같은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성도들이 이러한 소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들의 삶은 얼마나 큰 축복된 삶이 되는지 모릅니다.
성령은 지금도 여러분 가운데서 뜨겁게 역사 하시고 소망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낙심되십니까?
그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까?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를 간구하십시오
여러분을 분명히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면 충만히 받지 못할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말세에 내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물 붙듯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악한 부모라도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주는 부모가 있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으로 얻지 못하느니라? 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도를 하지 않고 왜 염려만 하고 걱정만 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할렐루야!
기도하는 그 순간에 여러분은 한없는 소망이 있는 복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떠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십니까?
우리에게 지극히 크신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 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은 이미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한 능력입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악하고 더러운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죄에 깊이 빠진 몸을 그 피로 씻어 맑히네......
영원한 멸망의 길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영원무궁한 천국의 기업으로 바꾸었습니다.
여러분 기적 중에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나 같은 사람들이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죄인 중에 가장 우두머리인 내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까?
솔직히 우리가 세상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나은 것이 무엇이 있고 자랑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어쩌면은 세상 사람보다 더 못하는 것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목회자이지만 때로는 어떤 성도들을 바라 볼 때에 저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고 더 못하다라고 할 수도 있는 자들이 더러 더러 있습니다.
성격이 개떡같고, 아주 이기적이고, 윤리와 도덕도 개판이고요, 뭐가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할 그런 사람이 어찌 구원함을 받았다는 것입니까?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만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참으로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구원을 받지 못한 자가 아니라 지지리도 못나고 인간의 냄새가 푹푹 나도 구원을 받은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한번 따라 합시다.
나 같은 자가 구원함을 받은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로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절대로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넉넉히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절벽에 떨어진 내가 날 수 있다는 것, 곧 내가 구원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절벽의 끝에 서있다고 여겨지십니까?
아니 그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고 여겨지십니까?
여러분에게는 날 수 있는 구원의 날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떠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십니까?
우리를 예수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찍이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도다.
이 서신을 쓴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궁핍 할 때도 내가 비천할 때도 일체 만족하는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되어도 만족을 얻지 못하였던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마음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퍼내도 퍼내어도 갈하지 않는 풍성한 은혜입니다.
마음의 풍요로움은 반드시 여러분의 삶에도 풍성하게 하시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 범사가 잘 되고 강건케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난과 궁색과 빈핍과 곤고와 우울함과 더러운 생각적인 것들이 다 물러가며 흔들어 채워 풍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