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처신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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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05회 작성일 2015-04-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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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4:11-13 삶의 처신의 비결
오늘날 사람들은 더 많은 소유가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부요함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얼마나 많이 주는 직장이 행복한 직장이 됩니다.
이런 경제적인 사상이 어린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생각의 큰 비중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세상에서 형성한 가치관을 크게 바꾸어 놓지 못합니다.
믿음도 더 많은 소유의 추구에 종속되고 믿음은 더 많은 소유를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물신(物神)의 환상이 지배하는 문화입니다.
이런 소유욕의 지배 아래 있는 사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은 지쳐있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떻게 세상 사람들의 삶과 다를까요?
주께서 가르치신 삶은 자족의 삶입니다.
가난이나 궁핍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치명적인 결함이지만 주님을 오히려 가난한 가운데 궁핍한 가운데서의 자족을 명하십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가난한 성도가 주님의 축복을 받아 부자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목표는 가난한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자족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삶의 방향과 예수 안에서의 삶의 방향은 다른 방향입니다.
내게 주신 믿음을 더 많이 소유하여 행복하게 되려는 세속적인 삶의 가치관 대신에 주님이 삶의 목적이 되고 그분 안에서 자족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택하여 살아야 합니다.
소유의 욕망을 위한 추구의 삶에서 주 안에서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족 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만족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처세술을 말해 봅시다
만족은 형편에 있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 5가지를 말했습니다.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입니다.
이같이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찾고 있습니다.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11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족이란 말의 반대되는 말은 아마 불만, 불평, 혹 원망, 이런 말들일 것입니다.
불만과 불평은 어떤 경우에는 필요합니다.
배운 것이 없는 이가 그 무식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에 공부할 의욕이 생길 것입니다.
80이 넘어 중학교에 다니시는 할아버지도 보았습니다.
혹은 극빈한 가정이 그 빈곤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에 돈을 벌기 위하여 무단한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부정, 부패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있을 때에 사회정의를 위해서 그 국민들이 좀 더 투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제아무리 노력하여도 내 자신이 고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의 경우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데에 계속해서 불만, 불평, 원망만 한다고 하는 것은 백해에 무익합니다.
원망한다고 짐이 가벼워지는 것 아닙니다.
쓴 잔이 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이 적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환경이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 자신에게만 악영향을 줄 겁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다른 이에게도 악영향을 줍니다.
가정에 이런 불만과 원망을 하는 가족이 하나만 있어도 온 가족이 불안하여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범한 죄는 불만과 원망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득이 광야를 지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려면 광야를 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광야에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그들이 불만과 불평을 계속해서 애굽에서 떠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 아닌가?
아,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는 고기 가마 옆에서 살았는데. 하며 먹을 것이 없다, 마실 물이 없다며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계속해서 원망했습니다.
결과는 그들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족이란 외부조건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충분히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든 주어진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명론이나 체념론도 아닙니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어떤 상황을 무조건 참는 것도 아닙니다.
자족이란 상황과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면 모든 노력을 다 하되 힘든 처지를 벗어날 길이 없다 해도 거기에 지배당하거나 그것 때문에 주저앉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겸손해져 더욱 주님의 은혜가 머물게 했으며 자신의 약함 때문에 주님의 능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게 해 사람들에게 더욱 유용한 은혜의 통로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자족이란 상황이 나를 지배하지 못 하게 하고 내가 상황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억울하고 침울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기도와 찬미로 그 상황을 지배했습니다.
행16:23-25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자족하는 마음이란 심리요법 또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자기만족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만족, 그리스도로 채워짐으로써 얻는 만족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억지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 감옥에서도 평강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자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외부조건이 아니라 내부조건의 문제며 환경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나온 마음입니다.
바울은 어떤 외부적 환경과 조건이든 영향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그의 마음과 생각이 지켜지게 한 것입니다.
헬라의 철학 가운데 스토아학파에서는 이 자족이라고 하는 말, 바로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스스로 족하게 여기는 마음, 이 자족이라고 하는 말을 아주 강조해 가르쳤습니다.
사실 스토아학파 윤리의 최고 목표를 이 자족에 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란 어떤 물건이나 어떤 인간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족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방법을 두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자족을 배우려면 먼저 욕망을 제거해 버려라.
둘째는 네 감정을 제거해 버려라.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자족이란 욕망을 줄이는 데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인 줄 압니다.
소크라테스에게 가장 부한 이가 누구입니까? 가장 작은 것에 자족하는 사람이니라.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디오게네스라고, 스토아학파의 유명한 성자는 일생토록 몸에는 짧은 바지 하나만 걸고 살았고, 집도 없이 밤에 잘 때는 산기슭에 가서 나무통에서 잤다고 합니다.
한번은 헬라 나라의 왕이 이 성자를 찾아와서 당신이 무엇을 원합니까? 원하는 것대로 내가 다 올릴 터인데, 원하는 것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하니, 이분 하는 말이, 나는 원하는 것 하나도 없어요. 그저 왕께서 지금 내 앞에 서서 햇빛이 좀 가리어지는데, 그것만 좀 비켜주시오. 그 얘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비결은 예수로 만족함입니다.
12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예수 믿으면 다 잘 된다가 아니라 예수 믿으면 어느 형편이든 다 살아낸다. 남모르는 비결이 있다. 그리스도로 얻는 만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 중의 하나입니다.
이 비결 이 그리스도인이 삶의 조건에 상관없이 그리스도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입니다.
이 자족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비밀이자 그것이 곧 신앙입니다.
이 비밀을 가진 바울은 그의 삶의 환경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면 이런 비밀이 없이는 자족하는 삶이 될 수가 없을 압니다.
고린도전서4:11-13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이런 생활 어디서 자족의 비결을 배웠는가?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도 그는 자족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또 그의 생활의 모습을 엿보입니다.
고린도후서11: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런 환경 가운데 자족의 생활을 할 수가 있었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계셔서 능히 감당하도록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만족을 주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족하는 마음을 배우려면 무엇보다도 주님과 더욱 깊은 친밀감을 쌓아야 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단순히 외부환경을 무시하는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풍족하게 채워져서 다른 것의 부족을 오히려 느끼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족은 주님과의 적극적인 교제를 통해 얻어지는 참된 만족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견고해져야 합니다.
얼마나 견고해져야 합니까?
연합보다 더 강한 유기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요15:5-7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제는 만족을 삶의 조건에서 찾으려는 태도를 끊고 오직 주님 안에서만 찾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환경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는 태도는 만족이 아니라 불만이 더 늘어 날 것입니다.
자족이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안에서 모든 삶의 환경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로 대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누가 나의 삶을 맡아 주고 참 만족을 얻게 할 분이 누구입니까?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다윗이 하프를 뜯으면서 불렀을 것 같은 시편 23편이 생각이 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자족이란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심을 알고 그분이 주실 공급을 기대하며 삶의 전체를 그분께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자족이란 무엇인가 부족함 가운데 드러납니다.
바울의 자족은 옥중에서 모든 것이 궁핍하고 결핍되어 있는 환경 안에서 시작되고 자랍니다.
이제까지의 세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생관, 가치관을 드러내시고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가치관, 인생관을 깨우치십니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고 오히려 돈이 없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인생의 유익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잘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자족은 성숙한 신앙의 인격입니다.
내가 당하는 삶의 고난과 어려움들은 주께서 자족의 삶으로 인도하신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주로 자족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욥기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이름에 찬송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화라도 복이 되게 하십니다.
로마서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자족하는 자만이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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