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선한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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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57회 작성일 2011-07-1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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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13-17 당신은 선한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견리망의(見利忘義) 이익을 보면 의리를 잊는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見 볼 견/利 이익 리/忘 잊을 망/義 의로울 의
장자가 조릉(雕陵)이라는 정원에 놀러 갔다. 큰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 새를 활로 쏘기 위해 자세히 보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미얀마제비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자세히 보니 그 미얀마제비는 나무그늘에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다. 미얀마재비가 노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매미는 맴맴 하고 즐겁게 울고 있었다. 살아 있는 생물은 눈앞에 이익이 있으면 그것에 열중해서 자기의 처지를 잊어버린 다. 새도 미얀마재비도 매미도 모두 눈앞의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서 지금 자기에게 어떤 위험이 닥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장자는 만물은 이런 것이라고 깨닫고 득의양양해 있으니 뒤에서 정원지기가 다가와서, 여기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하며 이 정원에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장자를 책망했다. 장자도 또한 이(利)를 보고 자기의 처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본문에도 어떤 사람이 장사하여 이익을 보려하였는데 그것이 선이 되지 못하고 헛되고 말았으니 악이 되어버렸습니다.
일찍이 솔로몬은 그의 글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2:1-1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 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나를 위한 삶이 가장 잘 사는 삶인 줄 알았는데 지나가고 보니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탐하다가 의를 잃어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지향해야 할 삶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오늘 본문에는 17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이를 탐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참된 삶이 라는 것입니다.
데이빗이라는 한 청년이 말을 많이 해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런데 데이빗이 의사에게 말합니다. 저는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빨리 저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 주세요 의사가 말합니다. 너는 이상한 말들을 많이 하여 입원하였는데, 바른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데이빗은 의사에게 이제부터는 바른 말만 할게요. 한번만 봐 주세요. 청년이 하도 졸라서 의사가 퇴원시켜 주었습니다. 이 청년은 병원에서 나서자마자 사람을 붙잡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저의 이름은 데이빗이고요. 저의 부모님의 이름은 누구고요, 우리 집 전화번호는, 주소는, 저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요 했습니다. 그러자 곧 다시 붙잡혀서 병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청년이 한 말 중에는 틀린 말을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말을 하는 시간과, 장소, 상대방을 구분하지 못하고, 왜 이런 말을 하여야하는 의미도 없이 매우 열심히, 진지하게만 말하니,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내가 열심히 살고, 많은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혜롭게, 바르게,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본문에 한 사람이 미래에 대하여 철저히 계획을 세웠고 남을 해롭게 하거나 거짓되게 살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도시에 가서, 행선지가 분명합니다. 어느 장소에서 사업을 할지 확실합니다.
일 년을 유하며, 체류 기간이 분명합니다.
장사하여, 할일이 분명합니다. 사기를 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익을 보리라, 목적이 분명합니다.
이 사람은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열심히 부지런히 비즈니스를 시작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당시는 유명한 무역과 상업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나 다마스쿠스, 안디옥 같은 곳으로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상업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대다. 당시 사람들이 가장 흔히 들었던 이야기는 누가 어디 가서 물건을 싸게 사서 팔았는데 떼돈을 벌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본문에 나오는 사람처럼 자신들도 기회가 주어지면 그들처럼 큰돈을 벌어 성공하는 날을 꿈꾸며 살았다 당연합니다.
사실 내 인생이 지금까지 인생 계획을 세우고 비즈니스를 잘못 세워서 헛되고 망한 것 아닙니다.
다 좋은 일이지만 인생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그 인생이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아무리 계획을 완벽하게 잘 세워 놓았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취하시면 그 좋은 계획은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의 계획 속에는, 자기의 영혼의 문제, 죽음 이후에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계획, 영혼의 귀중성을 깨닫지 못한 생활은 모두 헛된 일입니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 인생인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삶으로 살아 갈려고만 하니 그 삶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야고보는 이와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인생은 짧고 인생은 불확실하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올시다. 그러면 어때요? 그런 고로 인생은 근본적으로 불안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아도 참 평안이 없어요.
아무리 지위가 높고, 아무리 소유가 많고,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그 마음에는 불안이 가득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불안을 잊어버리려고 술을 마시고, 오락에 취하고, 자포자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아꾸다와 류노스끼라는 사람은 아주 수재로 문학가입니다. 그가 뭐라고 했어요? 나는 이 막연한 불안에 견딜 수가 없다. 내 마음에 무엇인지 안개와 같이 막연한 불안, 이것 때문에 나는 기쁠 수가 없고 마음은 언제나 무엇인가 검은 구름이 덮여 있다고 하면서 자기 목숨을 끊었어요.
네 생명이 무엇이뇨? 이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할렐루야!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뿐입니다.
인생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요 오늘이 내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오늘이 있는 사람이 과거도 있었고 오늘이 있는 사람이 미래가 있습니다.
오늘을 무시하고 과거를 말해서도 미래를 기대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고후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이 최선의 기회입니다
어떤 묘비에 이런 말이 새겨 있다고 합니다, 인생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짧다.
중세기에 신령하게 살자고 하던 수사들은 인사할 때 서로 메멘토 모리라고 했습니다. 메멘토라는 말은 기억하라, 모리라는 말은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인사할 때에도 메멘토 모리, 저녁에도 메멘토 모리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죽음을 언제나 기억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위시하여 동양의 문화는 죽음을 생각하기 싫어서 병원에 가면 4자가 없지요? 4층도 없고 4호실도 없어요. 동양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으려고 하는데, 성경은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왜 그런가?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하겠고, 죽음을 정말로 준비하고 사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무엇인가? 생명이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은 궁극적인 문제(ultimate question)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이 문제를 해결할 때에만 우리에게 참 평안이 있고, 참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고 하는 이 질문은 심히 중요한 것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쌍둥이 빌딩을 비행기가 폭발시켰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오사마 빈 라덴을 잡지 못 하였는데 얼마 전에 영웅시 여기던 빈 라덴은 사살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빌딩에 대하여 이런 안타까운 뒷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뉴욕에 유명한 부동산 업자 한 명이 있습니다. 그는 유명한 빌딩을 소유하는 것을 유일의 취미로 여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건물들을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대단한 집념을 가지고 목표하는 것을 기어코 이루고 마는 집념의 사람입니다. 그는 뉴욕에서는 가장 유명한 건물 중에 하나인 쌍둥이 빌딩도 자기 것을 만들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팔지 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동산 업자는 그 뜻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애쓰고 노력하다가 드디어 99년 동안 빌리기로 하고 임대료 32 억불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리고 6주 후에 그 빌딩은 폭발되고 말았습니다.
주의 뜻만이 이루어 질뿐입니다.
주의 선한 뜻을 찾아 사는 자가 가장 잘 사는 자입니다.
이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입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는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예수님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예수님의 생활도 그렇고, 말씀도 그렇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정신병자 취급했어요.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기 동생 야고보를 찾아갔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야고보는 멋있는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격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어요. 베드로보다 앞선 지도자가 되었어요.
그가 크리스천이 된 후에 이 야고보는 두 가지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첫째는, 과거에 자기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만하게 살던 그 죄를 회개하고 뉘우치며 이제는 다시 이런 실수를 행치 않겠다. 하나님과 가까운 삶을 살아야겠다면서 야고보는 기도에 힘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지, 그의 무릎이 약대의 무릎과 같이 굳어졌기 때문에 그의 별명은 약대의 무릎이었어요.
둘째로, 그는 주님의 은혜를 깨달았으니까 이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지. 믿기만 하면 되나? 선행을 행해야지.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주여, 주여 하지만 말고 주님의 뜻을 행해야지 하고 선행에 힘쓴 사람이 되었어요.
야고보가 쓴 이 야고보서의 주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기도에 힘쓰면서 동시에 믿음만 가지지 말고 행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그는 무엇에나 주의 뜻을 찾으니까 선한 행동,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선은 복음입니다.
어떤 종교에도 선을 행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은 어떤 선행이나 착하고 덕스러운 당시의 윤리나 도덕적이요 인간의 의를 요구하는 것이 태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을 행하는 것은 그런 차원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마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부자 청년이 예수께 찾아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는 것인지 질문한 적이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어떤 규칙을 지키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일까? 그래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일까?
굳이 한문을 풀이해 본다면 선(善)=양(양羊)+(풀 초)+口(입 구) 양의 입에다 꼴을 먹이는 것이 선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즉 내게 주신 영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서 그 존재를 살려내는 것이 진정한 선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마19:20-22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던 선에 대한 의미를 올바르게 살펴봐야 하겠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했던 말씀에서 내 이익을 위하여 모은 가진 소유를 통한 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119: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소유는 어떤 금전적인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 즉 선을 행한 것을 말한다.
더 심도 있는 뜻을 찾아본다면 내가 가진 것으로 내게 주신 존재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살리는 일이 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어떤 규칙이나 조문에 얽매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조문의 정신인 영혼들을 살려내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때까지 얻은 나의 소유를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께 환원하는 것이 바로 복음을 나누어주는 것이 참다운 부자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나오는 차원이 아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면서 또 다른 영혼을 살려내는 자로 나를 불렀습니다.
복음은 내일이 없습니다. 복음에는 오늘만 있을 뿐입니다.
괜히 유법에 매여 지키니 안 지키니 회개하니 안하니 바리새인 수준에 머물지 말고
오늘 복음을 위해 살았으면 잘 산 것입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것이 가장 복되게 잘 사는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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