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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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91회 작성일 2011-07-1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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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8-9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하자
이 지구를 비취는 빛의 원천은 태양이지만 캄캄한 밤에 하늘에서 또 다른 빛이 비취는 달빛이 있습니다.
햇빛처럼 눈이 부시도록 밝지는 않지만, 특별히 보름달이 뜰 때는 은은하게 비치는 환한 빛을 발합니다.
그런데 그 빛은 달이 직접 발광하는 발광체의 빛이 아니라, 태양의 발광채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빛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그 달빛이 실제로는 태양에서 온 것을 알면서도 오늘 밤 달빛이 참 밝다고 합니다.
태양빛이지만 달빛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그같이 비유될 수가 있습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참 빛 진짜 빛은 예수 그리스도시고 그 빛이 각 사람들에게 비친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어두운 이 세상을 비취는 빛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빛을 받는 자 또한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달이 태양 빛을 받아 그것을 반사시켜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취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참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빛을 받아 죄로 어두워진 세상을 비추는 사람들입니다.
원래 인생은 스스로 빛이 없었습니다.
본문에서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전에는 어두움 가운데서 거했는데 이제는 주님 안에서 빛을 받아서 빛가운데 거하고 있으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 할 수 있음은 신분이 바꿔졌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까지는 어두움의 자녀였습니다.
어두움의 자녀란 무엇입니까? 마귀의 자녀를 말합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마귀는 그 본질이 살인자요 그 속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에 항상 거짓말하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현대 미술의 아버지 뒤상, 북쪽은 위대한 수령 어버이 김일성 그 아들 김정일 또 그 아들 젊음의 지도자 김정은
내가 구원받기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는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살인자 거짓말쟁이의 자녀이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두움의 자녀란 죄의 자녀를 말합니다.
롬3:9-12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러니 죄를 먹고 마시는 삶이 되니 그 결국은 어두움의 자녀란 죽음과 멸망의 자녀를 말합니다.
살후1:8-9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이같이 전에는 어두움 가운데서 어두움의 자녀이었지만 이제는 빛 가운데서 빛의 자녀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돌아가시겠습니까? 제대로 깨달은 자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인격은 돌아가지 않지만 개돼지는 돌아갑니다.
벧후 2: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예수님으로 신분 변경을 가져왔습니다. 할렐루야!
바뀐 자로 살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빛의 자녀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빛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원리에서 빛은 강한 힘이 있는 쪽으로 구부러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양 근처를 지나는 빛이 태양에 의해 생긴 시공간의 휘어짐 속에서 굽어진다는 것입니다.
1919년 일어난 개기일식 중 별빛이 태양을 지나면서 구부러지는 현상의 관찰을 통해 검증되었는데 즉 강력한 중력장이 있는 쪽으로 빛이 구부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오는 별빛은 실제로는 지구 쪽으로 구부려져있기에 육안으로 보는 위치와 원래의 위치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가진 빛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하늘과 땅이라는 평행선상에서 걸어가고 있지만 빛 된 그리스도인은 어느덧 나도 모르게 강력한 하나님의 힘이 미치는 쪽으로 인생행로가 구부러져서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빛은 강한 힘이 있는 쪽으로 구부러지기 마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살게 마련입니다.
바뀐 자로서의 삶에는 그 열매가 있게 마련입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흥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낙후된 골목에 상태가 비슷한 자동차 두 대를 세우고 한 대는 보닛을 조금 열어둔 상태로, 다른 한 대는 보닛을 열고 유리창도 조금 깨진 상태로 방치했습니다.
그리고서 1주일 후에 보았더니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는 배터리와 타이어를 빼가고 사방에 낙서를 하고 돌을 던져 거의 고철상태가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유리창이 조금 깨진 것밖에 차이가 없는 데도 그런 차이가 났습니다.
여기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나왔습니다.
일단 금이 간 유리창은 전체가 쉽게 망가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망하는 자들은 자신을 방탕하게 내어 놓고 살아가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엡4:17-24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비침을 받지 못한 자는 자신을 방탕에 방임 할 실력 밖에 없습니다.
딤후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런 세상을 원망하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어두움은 빛을 더 밝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어두움은 빛이 더욱 빛나게 하고 어두움은 빛을 더욱 갈망하고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 소속 어떤 주교의 무덤에 세워진 묘비에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약간 좁혀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다면, 그것을 보고 내 가 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 되었을 지도…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자신이 변화되는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자는 빛의 자녀처럼 살수가 있습니다.
제발 세상을 탓하지 말고 환경을 탓하지 말고 남을 탓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가운데서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둡고 타락한 시대에 함께 묻어가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게 밝은 빛과 같이 살아가는 삶의 기준을 제시하는 자입니다.
9절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착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착함은 단순한 선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관대한 정신을 의미합니다.
캐나다의 존 케디 라는 선교사는 식인종이 사는 작은 섬으로 복음을 들고 나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언어를 습득하여 성경을 번역하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기념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1848년에 그가 이 섬에 처음 왔을 때 이곳에는 그리스도인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1872년에는 여기에 식인종이 한 명도 없다.
즉 그는 섬사람들 모두를 그리스도인 되게 한 것입니다.
넓은 아량과 폭넓은 이해심, 모든 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지고 모든 이에게 희망을 주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라는 프랜시스코의 기도와 같아야 합니다.
의로움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의로움이란 인류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의로움이란 자신이 행해야 할 의무에 대한 온전한 수행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가정과 사회와 교회에서 이런 사람들이 가정을 지키고 사회를 지키고 교회를 지킵니다.
자기의 의를 가진 자가 자기 하나 다스리지 못합니다.
그러니 가정은 어떻고 그가 속한 사회는 어떻습니까?
더욱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나는 교회가 세워져 가지 못합니다.
주의 교회가 자신의 감정과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자신의 의무를 감당하는 자들로 세워져 가고 있지 않습니까?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여기 진실은 실제로 행하는 도덕적인 진실을 뜻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 목숨을 버림으로 자신의 사랑에 대한 진실성을 증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처럼 행위로 증명되는 사랑, 공의, 자비, 긍휼에 있어서 거짓 없는 참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없는 거짓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큐디하면 안됩니다. 말로만 기도하면 안 됩니다. 말로만 봉사 하는 것 아닙니다.
비록 큐티를 못해도, 기도가 달변이 아니더라도, 그 행위가 그 사람의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필연코 빛의 열매를 맺는 자 입니다.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니 할 수없는 것입니다.
자꾸 옛날 행실 밖에 실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가 함께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미 독수리가 높은 하늘로 새끼 독수리를 물고 올라가 떨어뜨립니다.
너는 닭이 아니야 독수리야 날갯짓을 열심히 해봐 날 수 있어
맹수 호랑이 사자가 절벽에서 새끼들을 떨어뜨리며 죽으면 호랑이가 아니야 사자가 아니야 살아남아야지 호랑이 사자로 살아 갈 수 있어
독수리도 맹수도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듯이 하나님도 그리스도인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독수리 새끼기 병아리 틈 속에서 살고 있고 맹수가 돼지 새끼 속에서 구정물이나 먹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마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제 우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가로등이 어떻게 출발하신 줄 아십니까?
미국의 정치가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기가 사는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선한 일을 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답고 좋은 등을 하나 준비해서 집 앞에 선반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등불은 집 안에 두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집 밖에 두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뭔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에 등불을 두니까 밤에 지나가는 사람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멀리서도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좋게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집 밖에 등불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가 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로등의 시작이었습니다.
만약 길거리에 가로등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캄캄하고 어둡겠습니까? 세계적으로 가로등이 생기게 된 것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위하여 집 밖에 등불을 둠으로써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준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맹인이 등불을 켜들고 밤길을 나섰다. 자신은 비록 불빛을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자신이 들고 있는 등불 빛을 보고 부딪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고 한참을 가는데 어떤 사람과 그만 탁! 하고 부딪치고 말았다. 맹인은 화를 내었다. 당신은 눈도 없소? 나는 맹인이라 앞을 못 보지만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이 등불도 보지 못하시오? 그러나 부딪친 사람이 자네가 들고 있는 등불은 이미 꺼졌네.
등불을 들고는 있지만 이미 꺼진 줄 모르고 들고 다닌다. 꺼진 것을 모르고사니까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빛으로 나타나야 한다.
세상의 어두움은 세상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을 드러내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나에게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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