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힘을 공급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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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988회 작성일 2011-07-16 21:25본문
이사야 40:27-31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힘을 공급 받읍시다
짐을 나르는 당나귀가 쓰러지는 건 맨 마지막에 올려놓은 모자 하나 때문이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짐 싣는 당나귀가 자기 힘에 넘치는 짐을 지고 억지로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짐을 다 올린 주인이 땀을 닦으려고 모자를 벗어 당나귀 위에 올려놓는 순간 당나귀가 가벼운 모자 하나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사람들은 그깟 모자 하나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 그것 때문에 당나귀가 쓰러질까? 라고 생각하지만, 당나귀가 쓰러진 것은 모자 때문이 아니라 모자를 올려놓기 그 전까지 당나귀가 지고 있던 짐들의 무게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에서 힘에 부친 일들을 감당하느라 있는 힘을 다해 겨우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의 한계까지 온 상황에서는 사소한 일 하나라도 덧붙여지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게 됩니다.
이런 사정을 사람들은 몰라줍니다.
오히려 그깟 일로 그렇게 상처받고 낙심하고 주저앉아 버릴까? 라며 위로하기보다는 비난하고 책망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들은 각자 과분한 짐을 지고 있으니 피곤한 존재입니다.
피곤하죠 지금 여기에다가 한 짐을 더 보태면 소리치고 넘어 질 것 같습니다.
얼굴에 피곤 지쳐있음 이렇게 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인생을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무슨 일들이 그렇게 많은지 세월이 가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피곤해집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들어가면 고민 끝 행복 시작 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 때는 취직만 되면 했는데, 취직하고 나니 더 피곤에 지칩니다.
그래서 결혼에 소망을 가져봅니다. 나도 결혼문제만 해결되면 정말 행복할거야. 그럴 수도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짐이 하나 더 생깁니다.
살아가면 갈수록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또 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노후문제, 노후 대책입니다. 지금 살기도 힘드는데 노후까지 신경 써야 하니 힘듭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 한 50대가 되면 뒷짐 지고 에헴 하고 사는데 지금은 한창 때요 나이 70이 되어도 일 해야 합니다.
세상은 힘의 한계를 느끼고 지쳐 있습니다
지쳐있는 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이 다 피곤합니다.
전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사람만 피곤한 것이 아닙니다. 개도 피곤합니다. 미국의 어느 애완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 마당에 개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집주인이 현관으로 들어가니 그 개가 따라 들어옵니다. 그러더니 소파에 누워 잠을 잡니다. 한 시간쯤 자더니 나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비슷한 시간에 그 개가 또 왔습니다. 또 소파에서 자고 갑니다. 집주인은 개 목줄에 다음과 같이 써서 보냈습니다. 매일 오후만 되면 당신네 집개가 우리 집에 와서 낮잠을 자고 갑니다. 그 다음날 그 개가 다른 쪽지를 달고 왔습니다. 그 개는 4마리의 새끼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하고 쪽지가 왔다는 것입니다.
30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피곤하면 무엇을 할 수 없습니다.
이 피곤의 해결책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 이 피곤의 문제도 해결하십니다.
29-31절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피곤의 문제를 해결하십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28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나의 과거도 현재의 어려움도 또한 나의 불확실한 미래도 다 알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시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27절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약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사41: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또한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여기서 당신 자신을 창조주라고 창세기 때의 이야기를 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옛날에 창조주였다는 것을 말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창조한 것을 돌아보신다는 뜻입니다.
창조하신 것이 시간이 지나 문제가 생기면 고쳐주시고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살후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소위 창조주 하나님의 애프터서비스(A/S)입니다.
만드시고 팽개친 존재가 아니라 보살피고 인도함을 받을 존재입니다.
우리의 몸도 시간이 지나면서 망가집니다. 망가진 몸을 하나님이 애프터서비스 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생각도 애프터서비스 해주셔야 합니다. 늘 부정적으로, 늘 의심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각을 A/S해 주셔서 긍정적인 생각과 확신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해 주신 줄 믿습니다.
허드슨 테일리선교사님는 삶의 문제는 환경이 얼마나 어려운가가 아니다. 삶의 진정한 문제는 하나님과 당신과의 관계이다.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 그것이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떠한 환경에 처해있는지 여호와를 앙망하는 상향적 반응이 중요합니다.
시123:1-4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공급 받읍시다
지구로부터 3 억 마일 (5 억 km) 떨어져있는 화성에는 미국에서 보낸 로봇트 두 대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물의 흔적, 미생물 생존등 다목적 연구를 위해 8억 달러를 투자해서 만든 이 로봇들은 원래 90일 동안 탐사하는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5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빛의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Solar Panel을 이용해 햇빛으로 재충전 받아서 움직이다가 또 힘이 모자라면 다시 햇빛으로 재충전 받아서 화성에 대한 연구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새 힘을 받습니다. 신령한 힘입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간절히 기다리며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원어적으로는 비틀어서 하나로 묶는다는 뜻입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모든 생각과 의지와 관심을 비틀어 묶어서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오직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절대 딴 생각하지 않고,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고 그 분에 마음과 뜻과 힘을 집중시켜 쏟아 붓는 것을 말합니다.
죽을병이 걸린 히스기야는 어떻게 앙망하였습니까?
38:12-14절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 나를 떠나 옮겨졌고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 같이 내가 내 생명을 말았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조석 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 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조석 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내 눈이 쇠하도록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앙망했으면 눈이 희미해지기까지, 눈에 핏발이 서기까지 하나님께 집중했겠습니까?
그는 왕이지만, 그래서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도 많고, 자신이 바라보며 즐길 것도 많았지만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면벽하고 눈물을 흘리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 영원하시고, 땅 끝까지 창조하시고, 명철이 한이 없으시고,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무능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신령한 능력을 부어 주셔서 죽을병에 걸린 그의 수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자세로 믿고 있습니까? 그냥 입으로만, 머리로만 막연하게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히스기야가 한 것처럼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두 눈이 퉁퉁 붓기까지 눈물 콧물 다 쏟아가며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서 매달려 보셨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할 때에 이것은 정말 오늘의 양식이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 먹어야지, 이 양식 먹지 않으면 나 쓰러져, 죽어. 그런 자세로 양식을 먹어 보셨습니까?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에 내가 빨리 가서 마음을 준비하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지, 내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지 그런 자세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정말 그렇게 해 보세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시면 주고 말면 마십시오
주면 감사하고 아니면 할 수 없고 하면 안 됩니다. 목마른 사슴 배고픈 아이의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또 앙망하다는 새끼 새가 어미 새를 향하여 입을 좍 좍 벌리면서 먹이를 기다리는 그 모습을 앙망한다고 합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앙망(wait for)이라는 말이 기다리라라는 의미입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앙망하는 것은 내 문제를 해결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앙망하는 것은 내 삶을 주관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 삶 속에, 내 가정 속에, 내 직장 속에서 하나님을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누가 기다릴 수 있습니까?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을 포기하면 기다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에 어떤 무거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기다림의 역사입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독수리가 평소에는 다른 새와 별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일단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그 날개를 한번 휘저으면 창공을 박차고 올라갑니다. 다른 새들은 비바람이 몰아치면 다 처마 밑에 몸을 숨기지만 독수리는 폭풍우를 뚫고 저 높은 곳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이때 다른 새들은 감탄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저 힘이 어디서 나올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낙심하고 있을 때, 좌절하고 있을 때, 그래서 인생의 시련의 때에 병든 병아리처럼 실의에 빠져 있는데 오직 앙망하는 자는 분연히 일어나서 날아가는 인생, 달음박질하는 인생, 도전하고 개척하는 인생을 삽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입니다.
그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닙니다. 세상의 힘과 권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힘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새 힘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세상이 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쏟아 부어 주시는 영적인 파워를 가리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보프의 독수리와 닭이라는 책에 인간은 그의 내면에 독수리의 성향과 닭의 근성을 함께 갖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독수리가 되기를 포기하고 닭의 삶에 안주한다.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나가는 일터가 유일한 활동 영역이고 일상의 스트레스와 경쟁이 주는 중압감을 존재에 대한 최대의 위협으로 알고 버거워하는 닭의 범주에 머무르고 만다. 자기 안에 숨겨진, 혹은 잊혀진 독수리의 날갯짓을 살려 일으켜 좀 더 가치 있는 이상을 향해 비상하라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지 않는 자는 가능한 소망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닭의 근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독수리의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치 있는 이상을 향해 비상하는 각오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불평하거나, 거기에 침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 환난 가운데서 희망을 보고, 비전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구름 속에 숨겨진 무지개를 보듯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비행기가 뜨는 원리가 있습니다. 처음 이륙할 때에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입니다. 연료의 반 이상을 그때에 쓴다고 합니다. 그 에너지의 힘으로 비행기가 한번 하늘로 비상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스무스하게 날아간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앙망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 하늘의 에너지를 공급받아 보세요. 새벽 첫 시간에 양식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힘, 하늘의 에너지, 새 힘을 덧입어 보세요. 그러면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어려워도 우리는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 비상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새 힘을 부어 주십니다. 풍성한 하늘 에너지로 채워 주십니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가볍습니다. 나의 꿈은 벌써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창공을 나르는 비행기와 같이, 폭풍 속을 뚫고 올라가는 독수리와 같이 비상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두운 밤을 물러가게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밤은 물러가고 밝은 아침이 찾아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입니다. 어둔밤 보초를 서는 군인은 어두음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더할수록 시간이 지나가면 동쪽에서 먼동이 터오고 환하고 밝은 아침이 밝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폭풍과 바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지나갑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삶이 피곤하고 힘들고 어렵습니까? 지쳤습니까? 외롭습니까? 답답하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새 힘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고후4:8-9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짐을 나르는 당나귀가 쓰러지는 건 맨 마지막에 올려놓은 모자 하나 때문이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짐 싣는 당나귀가 자기 힘에 넘치는 짐을 지고 억지로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짐을 다 올린 주인이 땀을 닦으려고 모자를 벗어 당나귀 위에 올려놓는 순간 당나귀가 가벼운 모자 하나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사람들은 그깟 모자 하나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 그것 때문에 당나귀가 쓰러질까? 라고 생각하지만, 당나귀가 쓰러진 것은 모자 때문이 아니라 모자를 올려놓기 그 전까지 당나귀가 지고 있던 짐들의 무게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에서 힘에 부친 일들을 감당하느라 있는 힘을 다해 겨우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의 한계까지 온 상황에서는 사소한 일 하나라도 덧붙여지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게 됩니다.
이런 사정을 사람들은 몰라줍니다.
오히려 그깟 일로 그렇게 상처받고 낙심하고 주저앉아 버릴까? 라며 위로하기보다는 비난하고 책망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들은 각자 과분한 짐을 지고 있으니 피곤한 존재입니다.
피곤하죠 지금 여기에다가 한 짐을 더 보태면 소리치고 넘어 질 것 같습니다.
얼굴에 피곤 지쳐있음 이렇게 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인생을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무슨 일들이 그렇게 많은지 세월이 가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피곤해집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들어가면 고민 끝 행복 시작 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 때는 취직만 되면 했는데, 취직하고 나니 더 피곤에 지칩니다.
그래서 결혼에 소망을 가져봅니다. 나도 결혼문제만 해결되면 정말 행복할거야. 그럴 수도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짐이 하나 더 생깁니다.
살아가면 갈수록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또 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노후문제, 노후 대책입니다. 지금 살기도 힘드는데 노후까지 신경 써야 하니 힘듭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 한 50대가 되면 뒷짐 지고 에헴 하고 사는데 지금은 한창 때요 나이 70이 되어도 일 해야 합니다.
세상은 힘의 한계를 느끼고 지쳐 있습니다
지쳐있는 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이 다 피곤합니다.
전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사람만 피곤한 것이 아닙니다. 개도 피곤합니다. 미국의 어느 애완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 마당에 개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집주인이 현관으로 들어가니 그 개가 따라 들어옵니다. 그러더니 소파에 누워 잠을 잡니다. 한 시간쯤 자더니 나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비슷한 시간에 그 개가 또 왔습니다. 또 소파에서 자고 갑니다. 집주인은 개 목줄에 다음과 같이 써서 보냈습니다. 매일 오후만 되면 당신네 집개가 우리 집에 와서 낮잠을 자고 갑니다. 그 다음날 그 개가 다른 쪽지를 달고 왔습니다. 그 개는 4마리의 새끼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하고 쪽지가 왔다는 것입니다.
30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피곤하면 무엇을 할 수 없습니다.
이 피곤의 해결책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 이 피곤의 문제도 해결하십니다.
29-31절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피곤의 문제를 해결하십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28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나의 과거도 현재의 어려움도 또한 나의 불확실한 미래도 다 알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시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27절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약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사41: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또한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여기서 당신 자신을 창조주라고 창세기 때의 이야기를 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옛날에 창조주였다는 것을 말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창조한 것을 돌아보신다는 뜻입니다.
창조하신 것이 시간이 지나 문제가 생기면 고쳐주시고 새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살후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소위 창조주 하나님의 애프터서비스(A/S)입니다.
만드시고 팽개친 존재가 아니라 보살피고 인도함을 받을 존재입니다.
우리의 몸도 시간이 지나면서 망가집니다. 망가진 몸을 하나님이 애프터서비스 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생각도 애프터서비스 해주셔야 합니다. 늘 부정적으로, 늘 의심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각을 A/S해 주셔서 긍정적인 생각과 확신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해 주신 줄 믿습니다.
허드슨 테일리선교사님는 삶의 문제는 환경이 얼마나 어려운가가 아니다. 삶의 진정한 문제는 하나님과 당신과의 관계이다.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 그것이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떠한 환경에 처해있는지 여호와를 앙망하는 상향적 반응이 중요합니다.
시123:1-4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공급 받읍시다
지구로부터 3 억 마일 (5 억 km) 떨어져있는 화성에는 미국에서 보낸 로봇트 두 대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물의 흔적, 미생물 생존등 다목적 연구를 위해 8억 달러를 투자해서 만든 이 로봇들은 원래 90일 동안 탐사하는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5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빛의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Solar Panel을 이용해 햇빛으로 재충전 받아서 움직이다가 또 힘이 모자라면 다시 햇빛으로 재충전 받아서 화성에 대한 연구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새 힘을 받습니다. 신령한 힘입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간절히 기다리며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원어적으로는 비틀어서 하나로 묶는다는 뜻입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모든 생각과 의지와 관심을 비틀어 묶어서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오직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절대 딴 생각하지 않고,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고 그 분에 마음과 뜻과 힘을 집중시켜 쏟아 붓는 것을 말합니다.
죽을병이 걸린 히스기야는 어떻게 앙망하였습니까?
38:12-14절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 같이 나를 떠나 옮겨졌고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 같이 내가 내 생명을 말았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조석 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주께서 사자 같이 나의 모든 뼈를 꺾으시오니 조석 간에 나를 끝내시리라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내 눈이 쇠하도록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앙망했으면 눈이 희미해지기까지, 눈에 핏발이 서기까지 하나님께 집중했겠습니까?
그는 왕이지만, 그래서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도 많고, 자신이 바라보며 즐길 것도 많았지만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면벽하고 눈물을 흘리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 영원하시고, 땅 끝까지 창조하시고, 명철이 한이 없으시고,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무능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신령한 능력을 부어 주셔서 죽을병에 걸린 그의 수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자세로 믿고 있습니까? 그냥 입으로만, 머리로만 막연하게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히스기야가 한 것처럼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두 눈이 퉁퉁 붓기까지 눈물 콧물 다 쏟아가며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서 매달려 보셨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할 때에 이것은 정말 오늘의 양식이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 먹어야지, 이 양식 먹지 않으면 나 쓰러져, 죽어. 그런 자세로 양식을 먹어 보셨습니까?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에 내가 빨리 가서 마음을 준비하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지, 내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지 그런 자세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정말 그렇게 해 보세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시면 주고 말면 마십시오
주면 감사하고 아니면 할 수 없고 하면 안 됩니다. 목마른 사슴 배고픈 아이의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또 앙망하다는 새끼 새가 어미 새를 향하여 입을 좍 좍 벌리면서 먹이를 기다리는 그 모습을 앙망한다고 합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앙망(wait for)이라는 말이 기다리라라는 의미입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앙망하는 것은 내 문제를 해결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앙망하는 것은 내 삶을 주관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 삶 속에, 내 가정 속에, 내 직장 속에서 하나님을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누가 기다릴 수 있습니까?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을 포기하면 기다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에 어떤 무거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기다림의 역사입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독수리가 평소에는 다른 새와 별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일단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그 날개를 한번 휘저으면 창공을 박차고 올라갑니다. 다른 새들은 비바람이 몰아치면 다 처마 밑에 몸을 숨기지만 독수리는 폭풍우를 뚫고 저 높은 곳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이때 다른 새들은 감탄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저 힘이 어디서 나올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낙심하고 있을 때, 좌절하고 있을 때, 그래서 인생의 시련의 때에 병든 병아리처럼 실의에 빠져 있는데 오직 앙망하는 자는 분연히 일어나서 날아가는 인생, 달음박질하는 인생, 도전하고 개척하는 인생을 삽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입니다.
그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닙니다. 세상의 힘과 권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힘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새 힘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세상이 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쏟아 부어 주시는 영적인 파워를 가리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보프의 독수리와 닭이라는 책에 인간은 그의 내면에 독수리의 성향과 닭의 근성을 함께 갖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독수리가 되기를 포기하고 닭의 삶에 안주한다.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나가는 일터가 유일한 활동 영역이고 일상의 스트레스와 경쟁이 주는 중압감을 존재에 대한 최대의 위협으로 알고 버거워하는 닭의 범주에 머무르고 만다. 자기 안에 숨겨진, 혹은 잊혀진 독수리의 날갯짓을 살려 일으켜 좀 더 가치 있는 이상을 향해 비상하라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지 않는 자는 가능한 소망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닭의 근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독수리의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치 있는 이상을 향해 비상하는 각오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불평하거나, 거기에 침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 환난 가운데서 희망을 보고, 비전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구름 속에 숨겨진 무지개를 보듯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비행기가 뜨는 원리가 있습니다. 처음 이륙할 때에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입니다. 연료의 반 이상을 그때에 쓴다고 합니다. 그 에너지의 힘으로 비행기가 한번 하늘로 비상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스무스하게 날아간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앙망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 하늘의 에너지를 공급받아 보세요. 새벽 첫 시간에 양식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힘, 하늘의 에너지, 새 힘을 덧입어 보세요. 그러면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어려워도 우리는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 비상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새 힘을 부어 주십니다. 풍성한 하늘 에너지로 채워 주십니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가볍습니다. 나의 꿈은 벌써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창공을 나르는 비행기와 같이, 폭풍 속을 뚫고 올라가는 독수리와 같이 비상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두운 밤을 물러가게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밤은 물러가고 밝은 아침이 찾아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입니다. 어둔밤 보초를 서는 군인은 어두음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더할수록 시간이 지나가면 동쪽에서 먼동이 터오고 환하고 밝은 아침이 밝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폭풍과 바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지나갑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삶이 피곤하고 힘들고 어렵습니까? 지쳤습니까? 외롭습니까? 답답하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새 힘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고후4:8-9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