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자 하면 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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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53회 작성일 2011-07-1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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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34-44 하고자 하면 하게 하십니다
지난 금요 기도회에 백배의 결실에 대한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강대상에서 내려오던 중에 한 성도가 달려와서 목사님 저는 백배가 아니라 천배 만 배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머리 띵했습니다. 너무 적게 축복했나? 아니면 양이 차지 않았나
아니 여태까지 마이너스 인생을 살고 있는 지친 성도들에게 플러스 인생 배가 결실을 이야기해도 힘들 판에 백배의 결실에 대하여 겨우 하나님의 은혜를 열심히 전하고 내려오는데 천배 만 배를 말하니 아니 이렇게 앞설 수가
그런데 성경에는 천배 만 배가 문제가 아니라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결실을 약속하기도 하시고 이루시기도 했습니다.
창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사실 본문에서도 5천배 아니 2만 배의 결실이 이루어 졌습니다.
도시락 하나로 남자장정 5천이 먹고 12 바구니가 남겼다고 하였습니다.
여자 아이 노인 다 합하면 2만이 되니 2만 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이들의 삶 속에서 일어 날 수 있겠습니까?
선한 사역의 몫은 다른 이가 할 일로 생각하지 말로 내가 할 몫임을 아는 자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에게 선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이자 체신부장관을 지냈던 존 워너메이커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에 12살 어린 나이에 벽돌공장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열심히 교회에 나갔습니다. 존이 다니던 제일독립교회는 오래된 건물이라서 비만 오면 지붕이 새고, 교회 마당은 포장이 안 되어 진흙탕이 되기가 일수였습니다. 그가 13세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가 다니던 교회당은 낡은 건물이었다. 비가 오면 비가 여기저기서 새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지붕을 수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비가 오면 교회 마당은 진흙탕이 되었다. 옷에 흙탕물이 튀지 않게 하려고, 이리저리 춤을 추듯이 걸으면서도 아무도 마당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내게 요구는 되지만 하필 내가 해야 하나 이었습니다.
어린 존 워너메이커는 그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13살 정도 된 워너메이커는 벽돌공장에서 한 주간 동안 일한 돈으로 일부를 쪼개어 벽돌을 한 장씩 사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이른 새벽에 교회 마당 입구에 깔기 시작했습니다. 그 넓고 긴 교회 마당 입구를 어린 존이 혼자서 포장하려면 족히 수년도 넘게 걸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한 달도 채 못 되어 일어났습니다.
제일독립교회 담임목사님인 챔버스목사님이 교회를 위해서 벽돌을 까는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 하며 숨어서 지켜보았더니 그 교회에서 가장 어려운 가정의 13살 난 소년 존 워너메이커였습니다. 목사님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그 이야기를 하자 모든 성도들이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진입로와 마당을 마무리 합시다. 한술 떠서 아니, 그렇잖아도 예배당이 낡아서 여러모로 불편했는데 이 기회에 예배당을 새로 건축합시다.
그 자리에서 헌금을 작정하여 예배당을 짓기로 하였는데 1년 만에 깨끗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이 지어졌습니다. 어려운 가정의 소년의 작은 헌신을 통하여 그야말로 놀라운 결실이 일어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한번 내 주위의 필요를 한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해야 된다는 말씀하십니까? 네가 주어라. 네가 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도 제자들이 저녁 식사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자신들이 할 엄두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왜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각자 해결 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35-36절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이렇게 편 할 수가 없습니다. 부담도 되지 않습니다.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게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각자 해결이 아니라 제자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하셨습니다.
37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필요의 사역은 내 자신의 몫입니다
핑계할 일도 원망일 일도 아닌 내가 할 일입니다.
내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여길 때에는 핑계도 원망도 있을 수가 없다 다만 내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 연예인이 한 여자와 3번 이혼을 하였다고 텔레비전에서 고백합니다.
그리고 20년간 아이 남매를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자신은 평생 자녀들에게 죄인같이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렀는가? 하면 아이들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의지가 되고 소망이 되고 위로가 되는 절대 존재인데 그 엄마와의 생활을 엮어가지 못한 자신의 책임을 느끼고 평생 죄인같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부정을 저질은 그 아내에게 둘 수도 있습니다.
2번이나 용서했지만 더 이상 자신이 감당이 되지 않아 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은 그 여자에게 아니라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품어 주지 못한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를 심어 주지 못함은 자신의 책임으로 여길 때에 누구 원망도 핑계도 있을 수가 없는 다만 그 문제 앞에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상황에 처할 때가 많습니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크기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의견이 나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러 갔던 열두 명의 정탐꾼도 이러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보고는 아닙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해야 할 일임을 놓치는 치명적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원망과 불평과 욕지거리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결국은 자신들도 잘살지 못하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와 용기와 결실을 가져 온 것입니다.
갈렙은 내가 해야 한다는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봅니다.
헤브론 산악지역을 점령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갈렙은 그것도 내가 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한다는데 는 내 조건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다가 죽어도 내가 한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하만의 유대인 몰살 계획을 왕에게 알리는 일이 자신이 할 일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왕후이지만 왕이 부르지도 않고 그리고 부르지도 않는데 왕 앞에 나아가면 아하수에르의 법이 폐위를 당하고 문책을 받는 엄중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 일은 내가 할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말입니다.
그 일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은 내일이며 내가 하다가 역량이 부족하면 죽음으로서라도 내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일상생활 속에 여러 가지 갈등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현실과 믿음의 경계선에서 갈팡질팡하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어떻게 인도받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조건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하나님께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합니다. 벗어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당을 하여야 합니다.
백배의 결실의 밭도 감당할 때에 그 밭이 옥토 밥이 됩니다.
무조건 변명하고 무조건 원망하고 무조건 핑계되고 벗어나고 보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일감 많다고 소리치며 불평할 일이 아니라 일감이 축복입니다.
일감이 없는 곳이 있습니다.
내가 능력이 없을 때 기운이 빠지고 나이 들었을 때 그러나 참으로 일감이 없는 곳이 있습니다.
지옥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나에게 일 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십니까?
일하는 소에 망을 씌우지 아니하시고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그 많은 리더가 되고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힘든 일들을 떠맡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고 각자 책임을 지라고 하였습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그런데 주님은 너희가 해결하라고 하십니다.
야 너는 일꾼이야 리더야 그렇기에 책임을 저라
주님은 지금 책임을 피하는 제자들에게 책임감 있는 사람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회피하고 벗어나려고 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일군이 될 수가 없는 것이요 더욱이 책임 있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가정에도 보면 남편이 되어 가정을 회피하고 생활력이 없이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가정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아내가 가정의 생활의 책임을 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누가 교회를 책임지고 운영하십니까?
교회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교인이면 교회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전혀 책임을 지기는커녕 비난하고 원망하고 따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지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전부 드리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커든지 작든지 희생하는 자들입니다.
누가 말합니다.
교회가 힘들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동참치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힘든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동참을 합니다.
이런 자들이 이 교회에 사실 많이 있더라고요
저는 기도하다가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렇게 작은 것이지만 최선을 드리고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구나
그러면 제부터도 기쁘게 희생 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를 제가 희생하면 감당이 되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은혜롭게 기적같이 운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진정한 리더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라는 것은 너 때문에 저들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명감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다가 느낀 점은 잘되고 크게 되어 보겠다는 생각이 있고 그리고 책임감도 있지만은 이것만으로는 진정한 목회를 할 수가 없습니다.
왜 나를 불러 주셨을까? 예수님도 분명히 사명감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3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목자 없는 양은 길을 잃고 굶주려 죽거나 맹수의 밥이 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들로 하여금 대적을 물리치도록 선지자와 사사들을 일으키셨던 것은 이미 까마득한 일이었습니다. 선지자가 끊어진 지 400년이나 지난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로마의 식민 통치 아래서 각종 세금으로 수탈당하였고 세리들에게 착취당했습니다.
왕은 로마와 고위 관료들의 눈치를 보며 백성들의 삶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성전의 제사장들은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내세우며 백성들을 진리로 자유케 하기보다는 오히려 갈수록 옭아맸습니다.
잠시 선지자로서 그들의 주목과 추앙을 받았던 세례요한마저 맥없이 왕궁의 파티에서 목 베임을 당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잃었습니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도와주는 이 없고 착취와 압제만 있었습니다. 종교적 압박과 사회의 속임수가 사람들의 삶을 힘겹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새로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주님과 제자들의 사역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그들은 필사적으로 주님과 제자들을 좆았습니다.
그런데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10:11-15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이 같은 예수님의 사역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결국은 제자들은 이들을 위하여 자신들을 버리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사명감을 가지고 아니 책임감이라도 가지고 아니 백배나 복을 주실 것을 안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오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주님은 오늘 무슨 말씀을 주실까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나를 보내소서
이 사명감은 큰일을 하는데부터 아닙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대단한 능력자가 아니라 하잖는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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