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믿음이 가져오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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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6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누가복음 17:11-19 감사하는 믿음이 가져오는 구원
나환자 시인 한하운씨가 이런 시를 썼습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라.
낯선 친구를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 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십리 길 전라도 길
나환자 된 지치고 병들고 소망이 없는 자신의 심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함남 함주 출생.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함남 ·경기 도청 등에 근무하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 이 황톳길은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천형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오히려 바라보는 세계는 아름답고 한이 많다. 아랑곳없이 다 잊은 듯 산천초목과 인간의 애환이 다시금 아름다워 스스로 나의 통곡이 흐느껴진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보리피리라는 시에 자신의 인간사의 그리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양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 지나 필리리
그러나 그는 살아서 그 몸이 정상인이 되지 못함을 알고서는 죽어서라도 그 몸이 마음껏 자유로워지고 싶어 나 죽어 파랑새 되어 라는 시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이 같은 나환자의 마음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오직 그 병을 앓아 본 자만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만약에 이 나병에서 누군가가 낫게 해준다면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 주겠느냐? 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마도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가 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 있는 어느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열 명의 문둥병자가 달려와서 병 고쳐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문둥병을 고쳐 주셨는데 그런데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하는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그 열 사람이 다 고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 사람은 어디로 가고 너만 혼자 와서 감사하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되돌아오지 않은 아홉 사람도 깨끗함을 받았을 때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감사는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표현하는데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는 그분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란 마음속으로만 이루어지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표현되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해결되지 않는 죄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가운데서 망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멀고 험한 이 세상 길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 쓰러지고 넘어져도 위로 받지 못했서네 의지 할 곳 없는 이 몸 위로 받고 살고 파서 아버지의 집에 와서 죄인임을 깨달았네
이러한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예수님 때문에 죄에서 자유 함을 얻고 생명의 축복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열 명의 나환자가 나음을 받았지만 오직 한 명이 그 감사를 표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듯이 우리 가운데에는 감사하는 마음의 표가 너무나도 없다는 것이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감사가 없으면 받은 은혜도 은혜가 되지 못하고 더 큰 은혜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오직 감사를 표한 자만이 감사를 하지 못한 자들이 받지 못한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에는 받은 은혜에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범사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구원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를 표 할 때가 되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일년에 특별히 감사하여 감사 예물로 몇 번이나 영광을 돌리십니까?
어떤 이는 일년 365일이 지나도 마음으로는 입으로는 얼마나 감사를 많이 하는 지는 모르지만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감사를 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른 헌금을 나는 열심히 하는데 하며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히 일년에 3차에 감사 예물을 들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축복된 삶을 살도록 모두가 감사 예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감사를 표현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이 살아 날 수가 있고 삶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여러 가지 덕목가운데 최상의 덕은 감사입니다.
성숙한 크리스천의 표식은 감사의 자세입니다. 성숙치 못한 크리스천은 원망과 불평의 영을 가지고 살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감사의 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공학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에 의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IQ나, 재능이나, 능력이 특별히 뛰어나기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와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공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성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하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와 자세가 다른 어떠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세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정신과의사인 Victor Franck은 비엔나 의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독일의 Hitler 나치 정권 때 유대인 집단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살아남은 분입니다. 그는 의미를 향한 인간의 탐색(Mans Search for Meaning)이라는 책에서 그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집단수용소에서 신체적으로 튼튼하고 건장한 사람들이 연약한 자세와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수용소의 지옥과 같은 환경을 견디지 못해 일찍 쓸어져 죽었지만, 신체적으로는 몹시 허약한 사람들이라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와 태도로 인하여 지옥과 같은 환경 속에서 끝까지 살아 남았더라 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 집단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 남은 사람들은 자기 몸이 성치 못한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간호하고 돌보며 위로한 사람들, 자기도 배고파 먹어야하는 빵 한 조각을 더 배고파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적극적이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주변에서 가장 행복하고 복 받은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감사의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삶에서 만족과 기쁨을 맛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열악한 상황 속에서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성령님께서 내 안에 내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감사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패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최후의 승리를 주심을 믿기에 항상 감사의 자세를 가지고 살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가져오는 감사하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자신의 만족만을 위한 교만의 신앙을 벗어나야 합니다.
헨리 워드 비쳐 목사님은 교만은 감사하는 마음을 죽인다. 그러나 겸손한마음은 감사가 자연히 자라게 하는 토양이다.
겸손한 사람이 감사도 잘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자신은 감당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 자신은 기대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때 뜨겁게 감사를 합니다.
결국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가 죄스러웠고 불행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과 무능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람이 감사하게 됩니다.
받은 은혜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감사하게 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만이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고 느낄 때 감사하게됩니다.
본문에 9명의 문둥이가 되었다가 나은 사람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신앙이었기에 그들은 결코 감사의 표가 없고 더 이상 예수를 필요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가져오는 감사는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자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는 것이지만 그러나 은혜는 감사를 표함으로 은혜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힌 사람이 요구를 하지 않아도 받은 자가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와서 하는 사례일 뿐입니다.
의무가 아닙니다. 자원하여 드리는 것뿐입니다.
사마리이안이 이렇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감사가 복 받는 감사이며, 순수한 감사인 것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얼마나 감사 할 일입니까?
저는 가끔 가끔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누가 저에게 일러주기를 매주 감사를 해라하기에 옳지 하고 그래 이 방법이 감사를 잊지 않는 길이구나 하고 지금까지 감사를 하는데 감사헌금을 드릴 때마다 그렇게 감사하고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은혜를 감사합시다.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여러분의 감사는 더 큰 축복을 가져옵니다..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 기적을 보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이 오천명 앞에서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를 받으시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축사했습니다. 축사했을 때에 그 오병이어가 오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을 만큼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풍성한 축복을 체험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Readers Digest에 메리 로빈슨이라는 사람이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는 트럭 운전수입니다. 한번은 그가 운전을 하고 가다가 큰 사고를 당해 청각을 잃고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건진 것만도 너무나도 감사해서 매일 저녁마다 뜰에 나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한 지 석달 만에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다시 온전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죄입니다.
1720년대에 유럽에서 배 두척이 떠났습니다. 하나는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북미대륙으로 향하는 것이었고 북미의 프리하우스에 닻을 내리던 첫날 그들은 그 땅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가며 농사를 지어 한해 겨울을 지낼 때 먹을 것이 없어 1인당 옥수수 5개씩을 배급받아 그것으로 연명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은 그 옥수수 몇 개를 놓고 하나님께 추수 감사절기를 감사제를 드렸습니다. 그런 북미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로 번영했습니다. 다른 한 척은 남미에 가서 금덩어리를 찾아 금을 캤습니다. 그러나 그 금덩어리가 있었지만 감사의 제단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그곳은 어려움을 당하고 가난한 상태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될 때, 감사하는 언어, 행위, 헌신이 있게 될 때에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어떻게 감사의 절기를 지켜야 합니까?
신16장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 찌니라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나환자 시인 한하운씨가 이런 시를 썼습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라.
낯선 친구를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 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십리 길 전라도 길
나환자 된 지치고 병들고 소망이 없는 자신의 심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함남 함주 출생. 중국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함남 ·경기 도청 등에 근무하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 이 황톳길은 애조 띤 가락으로 하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천형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오히려 바라보는 세계는 아름답고 한이 많다. 아랑곳없이 다 잊은 듯 산천초목과 인간의 애환이 다시금 아름다워 스스로 나의 통곡이 흐느껴진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보리피리라는 시에 자신의 인간사의 그리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양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 지나 필리리
그러나 그는 살아서 그 몸이 정상인이 되지 못함을 알고서는 죽어서라도 그 몸이 마음껏 자유로워지고 싶어 나 죽어 파랑새 되어 라는 시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이 같은 나환자의 마음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오직 그 병을 앓아 본 자만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만약에 이 나병에서 누군가가 낫게 해준다면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 주겠느냐? 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마도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가 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 있는 어느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열 명의 문둥병자가 달려와서 병 고쳐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문둥병을 고쳐 주셨는데 그런데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하는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그 열 사람이 다 고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 사람은 어디로 가고 너만 혼자 와서 감사하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되돌아오지 않은 아홉 사람도 깨끗함을 받았을 때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감사는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표현하는데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는 그분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란 마음속으로만 이루어지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표현되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떠하였습니까?
해결되지 않는 죄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가운데서 망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멀고 험한 이 세상 길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 쓰러지고 넘어져도 위로 받지 못했서네 의지 할 곳 없는 이 몸 위로 받고 살고 파서 아버지의 집에 와서 죄인임을 깨달았네
이러한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예수님 때문에 죄에서 자유 함을 얻고 생명의 축복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열 명의 나환자가 나음을 받았지만 오직 한 명이 그 감사를 표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듯이 우리 가운데에는 감사하는 마음의 표가 너무나도 없다는 것이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감사가 없으면 받은 은혜도 은혜가 되지 못하고 더 큰 은혜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오직 감사를 표한 자만이 감사를 하지 못한 자들이 받지 못한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에는 받은 은혜에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범사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구원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를 표 할 때가 되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일년에 특별히 감사하여 감사 예물로 몇 번이나 영광을 돌리십니까?
어떤 이는 일년 365일이 지나도 마음으로는 입으로는 얼마나 감사를 많이 하는 지는 모르지만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감사를 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른 헌금을 나는 열심히 하는데 하며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히 일년에 3차에 감사 예물을 들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축복된 삶을 살도록 모두가 감사 예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감사를 표현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이 살아 날 수가 있고 삶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여러 가지 덕목가운데 최상의 덕은 감사입니다.
성숙한 크리스천의 표식은 감사의 자세입니다. 성숙치 못한 크리스천은 원망과 불평의 영을 가지고 살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감사의 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공학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에 의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IQ나, 재능이나, 능력이 특별히 뛰어나기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와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공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성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하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와 자세가 다른 어떠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세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정신과의사인 Victor Franck은 비엔나 의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독일의 Hitler 나치 정권 때 유대인 집단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살아남은 분입니다. 그는 의미를 향한 인간의 탐색(Mans Search for Meaning)이라는 책에서 그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집단수용소에서 신체적으로 튼튼하고 건장한 사람들이 연약한 자세와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수용소의 지옥과 같은 환경을 견디지 못해 일찍 쓸어져 죽었지만, 신체적으로는 몹시 허약한 사람들이라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와 태도로 인하여 지옥과 같은 환경 속에서 끝까지 살아 남았더라 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 집단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 남은 사람들은 자기 몸이 성치 못한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간호하고 돌보며 위로한 사람들, 자기도 배고파 먹어야하는 빵 한 조각을 더 배고파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적극적이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주변에서 가장 행복하고 복 받은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감사의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삶에서 만족과 기쁨을 맛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열악한 상황 속에서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성령님께서 내 안에 내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감사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패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최후의 승리를 주심을 믿기에 항상 감사의 자세를 가지고 살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가져오는 감사하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자신의 만족만을 위한 교만의 신앙을 벗어나야 합니다.
헨리 워드 비쳐 목사님은 교만은 감사하는 마음을 죽인다. 그러나 겸손한마음은 감사가 자연히 자라게 하는 토양이다.
겸손한 사람이 감사도 잘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자신은 감당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 자신은 기대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때 뜨겁게 감사를 합니다.
결국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가 죄스러웠고 불행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과 무능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람이 감사하게 됩니다.
받은 은혜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감사하게 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만이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고 느낄 때 감사하게됩니다.
본문에 9명의 문둥이가 되었다가 나은 사람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신앙이었기에 그들은 결코 감사의 표가 없고 더 이상 예수를 필요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가져오는 감사는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자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는 것이지만 그러나 은혜는 감사를 표함으로 은혜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힌 사람이 요구를 하지 않아도 받은 자가 마음으로부터 우러 나와서 하는 사례일 뿐입니다.
의무가 아닙니다. 자원하여 드리는 것뿐입니다.
사마리이안이 이렇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감사가 복 받는 감사이며, 순수한 감사인 것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얼마나 감사 할 일입니까?
저는 가끔 가끔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누가 저에게 일러주기를 매주 감사를 해라하기에 옳지 하고 그래 이 방법이 감사를 잊지 않는 길이구나 하고 지금까지 감사를 하는데 감사헌금을 드릴 때마다 그렇게 감사하고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은혜를 감사합시다.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여러분의 감사는 더 큰 축복을 가져옵니다..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 기적을 보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이 오천명 앞에서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를 받으시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축사했습니다. 축사했을 때에 그 오병이어가 오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을 만큼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풍성한 축복을 체험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Readers Digest에 메리 로빈슨이라는 사람이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는 트럭 운전수입니다. 한번은 그가 운전을 하고 가다가 큰 사고를 당해 청각을 잃고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건진 것만도 너무나도 감사해서 매일 저녁마다 뜰에 나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한 지 석달 만에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다시 온전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죄입니다.
1720년대에 유럽에서 배 두척이 떠났습니다. 하나는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북미대륙으로 향하는 것이었고 북미의 프리하우스에 닻을 내리던 첫날 그들은 그 땅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가며 농사를 지어 한해 겨울을 지낼 때 먹을 것이 없어 1인당 옥수수 5개씩을 배급받아 그것으로 연명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은 그 옥수수 몇 개를 놓고 하나님께 추수 감사절기를 감사제를 드렸습니다. 그런 북미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로 번영했습니다. 다른 한 척은 남미에 가서 금덩어리를 찾아 금을 캤습니다. 그러나 그 금덩어리가 있었지만 감사의 제단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그곳은 어려움을 당하고 가난한 상태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될 때, 감사하는 언어, 행위, 헌신이 있게 될 때에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어떻게 감사의 절기를 지켜야 합니까?
신16장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 찌니라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