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림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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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88회 작성일 2011-09-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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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3:19-26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림이 좋습니다.
한국본초도감 인진쑥의 효능
인진쑥은 습열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급성간염으로 전신과 눈에 황달이 생기는 것을 치료한다.
소변을 잘못 보는 증상, 피부가 가렵고 창질이 있을 때 효험을 보인다.
만성간염, 간경변증, 간암 등에 1회 15-20g씩 사용한다.
담즙 분비 촉진 작용을 나타내고 항균작용을 보인다.
만성간염, 간경화 간암에 다른 약물과 배합해서 사용하자 현저한 반응을 나타냈다.
담즙은 지방을 유화시키며, 콜레스트롤을 녹여 담석 생성을 방지
웅담은 청혈제로서 피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으므로 어혈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다. 따라서 간이 나쁜 사람, 간염, 황달, 간경화 등과 혈관에 노폐물이 쌓인 사람, 동맥경화와 고지혈증에게 탁월한 효과가 있다.
진통·진경·소염·해열 등의 효능이 있어 위장병·황달·타박상·소아간질·안 충혈(眼充血) 등에 응용된다.
이렇게 좋은 것을 쓰다는 이유 때문에 먹지 않습니다.
쓰지만 몸에 좋다니 인상을 쓰면서도 먹는 것입니다.
하루는 제 어머니가 어릴 때 웅담은 귀해서 먹이지 못했는데 제게 돼지 생담즙을 먹여 는데 몸에 좋다고 먹으라고 해서 먹다가 죽을 뻔 했습니다.
얼마나 쓴지 ...... 그 때 부터는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이 쳐다보고 싶지 않는 삶의 경험을 한 이스라엘을 소개 하고 있습니다.
고초와 재난이 쑥과 담즙같이 쓰디쓴 경험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에 생각을 하기만 하면 낙심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울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먹기 싫으면 울겠습니까?
예레미야의 애가라는 것은 눈물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우리 중에도 많이 울기도 하고, 또 우는 사람을 많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망해가는 조국을 위해 아무리 열심히 사역을 하고 바르게 사역을 하여도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고난과 고통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고난 가운데 낙심하였습니다.
유대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적군의 손에 함락이 되고, 동족들이 대거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그래서 유대 민족들은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유대 민족의 일원이었던 예레미야도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했다.
고초는 핍박을 당하다 낮아지고 비천해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재난은 원래 집 없이 유리하는 것 안식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유다 백성이 심판을 받아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나라도 없이 이방 땅에서 천대와 핍박을 받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아는 이 고통이 얼마나 처절하고 감당하기가 힘들었는지 이해하기 쉽게 쑥과 담즙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나 자신도 심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의심합니다.
나의 고통 가운데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 당신은 정말로 사랑과 능력이 많으신 분입니까?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항변하기도 하고 따지고 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원망과 낙심을 멈추고 고난과 슬픔 가운데서 새로운 소망을 찾기 시작합니다.
환경은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예레미야의 슬픔의 노래가 소망의 노래로 바뀌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의심이 감사와 확신으로 바뀌는 것을 봅니다.
21절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마음에 담아 두었다는 것은 잘 감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 고초와 고난을 원망만하고 쓰다고 밷어버리 것이 아니라 꿀꺽 삼켜드니 약 효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초와 고난을 생각하고 원망만 하고 있으면 낙심이 됩니다.
20절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고초와 고난을 잘 감당하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고난 때문에 내 인생 망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 망하지 않느냐? 것입니까?
22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사극을 보면 이런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까?
한 명도 살려두지 말고 진멸(殄滅)하라 모조리 죽여 끝장을 내버려라 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일 때문에 어떠한 일이라도 끝장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왜요 이스라엘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자는 헤세드를 말하며 이는 하나님의 언약적 나와의 변함이 없는 그 사랑을 의미합니다.
요1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렇게 하였고, 저렇게 하였기에 내가 사랑한다는 조건적 사랑이 아니라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반대로 범죄하고 약속을 파기 하였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국가적인 이 어려움이 르호보암 왕으로부터 더불어 온 백성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로 걸은 것에 대한 징계임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것으로는 심판을 벗어날 길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헤세드 만이 살 길임을 알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도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요1서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롬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조건 없이 주시는 사랑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중단 되지 않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절대로 망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망하지 않음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도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긍휼은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아버지가 쳐다 볼 때에 불쌍히 여기는 측은함입니다.
이것은 아들의 잘못을 다 내 때문에 그런 것같이 여기고 할 수만 있으면 너를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구나 라는 그런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래의 말씀들을 보시면 심판 외에는 없습니다.
맞아 죽습니다.
전염병, 칼, 기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감, 견고한 성채가 허물어짐, 지도자들이 욕됨, 원수가 즐거워 함,
이런 일들만 들이닥칩니다.
이런 진노와 죽음 가운데 주의 긍휼만이 나의 살길이 됩니다.
긍휼이라는 히브리어는 레헴이라는 단어인데 원 뜻은 자궁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태아가 분만될 때까지 수정란을 보호하고 영양을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하나님의 자기 고통으로 생산한 자들이 긍휼을 입은 자 입니다.
나는 긍휼을 입었지만 하나님은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시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제대로 사람 구실하기까지 그리스도인답게 생활 할 때까지 아니 세상 끝날까지 천국 갈 때까지 보호하시는 자궁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010년 1월 15일 유에스 항공 1549편에 탑승했던 155명의 승객들은 모두가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탔던 비행기는 뉴욕공항을 이륙하면서 한 무리의 기러기 떼와 충돌하여 양쪽 엔진이 모두 사용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조종사는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인구밀집 지역을 교묘하게 활공하여 벗어나서 90초가 지나기 전에 그 고장 난 비행기는 차가운 허드슨 강에 수상 착륙을 하였고, 보트들과 연락선들이 신속하게 도착하여 승객과 승무원들을 구조하여 모두가 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조종사와 승무원들을 치하했습니다.
한 승객이 고마워하며 우리들은 인생을 다시 사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매 시간 시간이 위기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지켜주심이 안보하심이 있었음을 아셔야 합니다.
시121:1-6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그러므로 내 일상생활 하루하루가 다시 주어지는 새로운 삶의 기회입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나를 지켜주시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삶의 기회를 다시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시간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그 만큼 귀한 줄 알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께서는 부지런히 이일을 이루십니다.
23절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길거리에 애완용 개 고양이 심지어 자식까지 부모까지 버려져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버림을 당합니다.
죄송하지만 저 역시 언제 어떻게 버림을 받을지 모릅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어쩌면 이미 버림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서 버려두고 간 것입니다.
자식을 버린 부모가 오죽하면 버리고 가겠습니까?
사람의 보살핌의 성실성은 여기까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한 보살핌의 성실성을 포기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함은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피 흘려죽게까지 하신 성실입니다.
성실함은 하나님의 성품이시다. 성실함은 신실하다. 변함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그 언약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변하고, 환경이 변할 때 함께 변하지 않고, 영원토록 동일함을 의미한다.
나는 변한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쉽게 신앙도, 주를 향한 사랑도, 또한 헌신과 결단도 퇴색되고, 합리화를 가장하여 변질된다. 배신 때립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며 한계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나를 향한 사랑이 변함이 없고, 내게 베푸신 긍휼 또한 변함이 없으십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바로 하나님의 성실을 의지함이 오늘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대한 성실함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도 성실하십니다.
이제 이런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다리면 됩니다.
주를 적극적으로 기다리면 됩니다.
이성군 목사의 기다림의 영성이란 책에서 기다림은 문화이면서 한편 신앙이요 영성입니다. 회복되어야 할 하나의 인생길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모자라고 한계점에 이르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어 기다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형 때문에, 환경 때문에 기다림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다림 속에 기도드림, 기도 속에 기다림은 엉켜진 실타래를 풀듯 삶을 명료하게 풀어주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다리면서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의 일생에서 기다림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기도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그 무엇도 없습니다. 아직도 가슴에 품어야 할 것이 있다면 기도요 기다림뿐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기다림이 남아 있고 기도가 남아있는 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더 이상 인간적인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리고를 돌 때에 인간적인 말이 필요 없습니다.
믿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면 됩니다.
나의 인생 여정도 마찬가집니다.
이성희 목사님은 성대 결절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후 두 달 동안 경험한 침묵의 은총을 두루 나누기 위해 침묵의 은총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 침묵의 시간 동안 서서히 하늘 문을 열고 열린 하늘을 보았고 그래서 두 달 동안의 침묵은 내 가슴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내 눈을 크게 뜨게 했습니다. 가슴을 벅차게 했고, 발걸음을 가볍게 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합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고난의 때에 내가 바꾸고 싶은 것이 있고, 하나님이 바꾸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나는 환경을 바꾸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바꾸시기를 원하십니다.
24-26절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는 눈물 가운데 더 이상 환경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탓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변화되어야 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이제 세상의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만족을 얻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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