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구원이 사실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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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66회 작성일 2011-09-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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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26:1-6 꿈같은 구원이 사실로 다가왔습니다.
평생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수잔 보일(Susan Boyle)입니다. 12살 때부터 가수가되겠다는 꿈을 꾸었던 보일은 47살이 될 때까지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09년 4월 11일. 영국의 리얼리티 오락프로그램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Braitan's Got Talent)에 출현하여, 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3명의 심사위원과 관중들은 그의 투박한 말투와 좀 안 생긴 외모, 그리고 그가 가수가 되겠다는 포기에 콧방귀를 끼면서 시큰둥했습니다. 그러나 보일이 두 손을 모으고 장발장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빅토르 위고 원작의 뮤지컬 레 미제라불 안에 삽입곡인 I dreamed a dream.을 부르자,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관객 모두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올렸습니다. 수잔 보일은 자신의 데뷔곡 I dreamed a dream.를 제목으로 해서 음반을 내놨는데, 1주 만에 200만장을 팔아 미국 영국 호주 아일랜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보일은 12살부터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35년이 지난 뒤에서야 드디어 이룬 뒤, 이런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47세 동안 키스한번 못한 처녀로 고양이와 함께 살았다고 했습니다.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그런 시련이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나를 버티게 해 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수가 되겠다는 꿈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부른 노래가 누군가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내일 당장 이 모든 꿈같은 상황이 사라진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꿈은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내일은 일제의 식민지 치하에서 광복한 광복절 66주년입니까?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서 가장 가까운 시대의 광복의 날입니다.
36년간의 일제 치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영토뿐만 아니라 한글도 김씨 이씨 박씨라는 성씨도 심지어 민족의 얼조차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광복의 날은 꿈같이 다가 왔습니다.
해방 당시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에는 거리 곳곳에 벽보가 붙었다고 합니다. 정오에 중대한 방송이 있으니 라디오를 들으라는 벽보였습니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일본 천왕이 무조건 항복한다는 성명이 발표가 되었고, 우리 대한민국은 그 시간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악수하고 끌어안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뻤다고 전합니다.
지난 주 서북지역 노회협의회에서 새터민 학생들을 위한 장학위원회 창립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자리에 새터민들이 참석하였는데 새터민이 누구인 줄 아시죠 북한을 벗어나서 대한민국으로 와서 새롭게 생활을 시작한 이들을 말합니다. 국내 대학생들과 해외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도 참여 했는데 그들 중에 통일인제 육성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말 그대로 통일을 대비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것입니다. 그 인사말 중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8.15해방이 예고 없이 다가왔던 것처럼 북한 변화도 예고 없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꿈같지 만은 사실로 다가 올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은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나라를 잃어버리고 언어도 성도 민족적 정신도 잃어버렸는데 꿈같은 사실이 이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형편과 상황을 볼 때에 거의 불가능 한 상태였습니다.
이 일은 꿈을 꿀 때나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든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니 꿈을 꾸는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바벨론 포로시대의 억압은 끝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삶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2절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웃음과 찬양이 있는 삶은 억압에서 구원을 맛 본 자의 삶입니다.
이 시간에 꿈같은 구원의 삶이 내게도 찾아 온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욘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서 깨달은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고백입니다.
요나는 자기가 니느웨 백성을 버리면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줄 알았습니다.
구원이 사람의 손에 달려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사람의 손에 있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고깃 뱃속에 들어가야 알아요
여러분 무엇인가 모르게 삶이 상쾌하고 유쾌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삼복더위에 땀과 먼지가 섞여 몸을 끈적끈적하게 하는 그런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못하고 마음이 우중충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는 고깃 배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정신이 몽롱해 가지고 술로 담배에 쾌락에 세상에 찌들어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있어
고깃배 속에서 소화액이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해 보세요.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셨고 그 물고기는 요나를 토해 내셨습니다.
구원은 내게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구원은 주시기로 약속이 된 것입니다.
삼상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바벨론과 비교하여 볼 때에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으로 너무나 보잘 것 없었던 유다가 고국으로 해방되어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외견상으로는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한 포로귀환이었으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이루게 하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스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하신 것을 이루게 하시려고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다른 이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전혀 예측하지도, 또한 기대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3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허락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으려는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을 누리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을 얻으려는 믿음은 막막합니다. 구원을 내가 받으려니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구원은 이미 공짜로 나와 상관이 없이 내 행위와 내 노력과 관계없이 그냥 하나님이 좋으셔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원은 이제 누리는 일입니다. 누리는 구원은 기쁨이 함께 합니다.
구원을 받았는데 그 기쁨이 없다면 아직 구원을 실감하지 못하거나 지식적으로는 구원을 말하지만 아직 구원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으신 줄로 믿습니까? 삶에 사는 맛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삶에 함께 하십니다.
어제 직접 끊인 추어탕을 한 그릇 먹었더니 그 에너지 오늘 새벽 기도회에 나타는데 힘이 나고 눈이 밝아지고 의욕이 넘치더라고요 그 추어탕이 제 몸 속에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요6:53-5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후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통하는 그 자체입니다.
지금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언제까지 하며 나의 구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삶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지요 구원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이들이 구원을 기다리는 울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5-6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런데 보십시다 이울음을 자세히 보십시다 고통으로 인한 울음입니까?
보통 울음은 고통을 인한 울음입니다. 울분과 억울함과 절망의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울음은 기쁨을 전제한 울음입니다. 울었더니 기쁨이 구원의 기쁨이 찾아온 것입니다.
기쁨을 바라는 울음입니다. 그러므로 이울음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울음도 웃음도 구원에 근거한 것입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제가 모 목사님의 간증을 가끔 이야기 합니다.
이 목사님은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가정도 힘이 들고 교회도 힘이 들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외항선을 타려고 부산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눈에는 형용 할 수 없는 눈물이 줄줄 흘렸습니다.
그랬더니 옆 좌석의 손님이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렇게 눈물을 흘리느냐?
그 목사님의 대답이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감사해서 눈물을 흘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로 하여금 이 힘든 가운데서도 억울하고 분통하여의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눈물이었습니다.
눈물과 웃음은 절대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넘칠 적에는 그 상황이 달라집니다.
너무 기쁘면 웃다가 울어버립니다. 너무 감동하면 우는 것입니다.
행복도 웃음을 넘어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입니다.
내가 나를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이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나를 감동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자들을 보셨습니다.
바리새교인들은 도덕적으로는 확실히 세리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의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했고 눈물이 없었습니다.
세리는 저 멀리서 무릎을 꿇고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통곡합니다. 그가 위로를 받았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자기 부정이 없을 때 통곡할 수 없고, 통곡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정체를 바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애통하는 마음, 그건 축복입니다. 애통하는 그 마음 자체가 축복입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심판 받은 자는 눈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들의 눈물은 구원을 받는 자의 눈물인 것입니다.
이울음을 울 수 있음은 구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그 모든 것은 구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나라 첫 번째 순교의 제물이 되신 토마스(Jermain Thomas) 선교사의 아버지는 영국 웨일즈 하노버 교회 담임목사인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였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를 중국으로 보내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며느리와 손자가 순교의 제물이 되어 가슴 아파 하던 때 1866년 아들 토마스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조선으로 들어갑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 후 아들이 조선 땅 대동강 변에서 참수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27살의 젊은 아들 토마스가 조선 땅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절망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오히려 아들이 순교한 그 땅에 기도의 씨를 뿌리기 시작하여 무려 20년 동안 뿌렸습니다. 아버지 목사는 1884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났지만 바로 그 해 미국의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순교의 제물로 드린 아버지의 눈물의 기도가 복음의 문을 여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본인의 죽음도 아들의 희생도 그들에게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으며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예수 안에서 받아 드린다면 그 자체가 구원이 됩니다.
이제 구원받는 성도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하심으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1-3절 모두 여호와께서 그래야 쭉정이가 아니라 알맹이가 됩니다.
호두농사를 짓던 농부가 하나님께 일 년 동안 내 뜻대로 날씨가 바뀌도록 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간곡히 사정하기에 하나님은 농부에게 날씨에 대한 것을 조정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날씨가 농부의 마음대로 되었습니다. 햇볕을 원하면 햇볕이 내려 쬐었고, 비를 원하면 비가 내렸습니다. 덜 여문 호두알을 떨어뜨리는 천둥도 바람도 없애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 농부는 그늘아래서 잠만 자면 되었습니다.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호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풍년이었습니다. 기쁨에 들뜬 농부는 산더미처럼 쌓인 호두 하나를 깨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알맹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실망한 농부는 빈껍데기의 호두를 들고 하나님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제 내 삶을 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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