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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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39회 작성일 2011-09-1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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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5:1-5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초대교회시대는 교회에 대한 많은 핍박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서머나의 감독 이었던 속사도 폴리캅이 있었습니다.(A. D.69-155) 그가 순교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자기를 체포하러온 로마 병사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준뒤 화형대 앞에 섰습니다. 그때 호민관이 폴리갑에게 지금이라도 신앙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나는 86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겨왔고 주님은 나를 한 번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왕이시오, 나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겠는가? 하고 화형의 장작더미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화형을 집행하는 형리에게 외칩니다. 그대들은 한 시간 가량 나를 사르고 없어질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여 장차올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심판의 불을 모르는가?
왜이리. 지체하고 있느냐 어서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라 하고 순교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생명을 구걸하도록 큰소리치는 로마의 권세가 이긴 것입니까?
아니면 죽음 앞에서도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못하고 그 믿음을 드러내고 순교한 폴리갑의 패배입니까?
여기서 그 누구도 부인 할 수없는 사실은 로마가 패하였고 폴리갑의 승리입니다.
역시 그의 믿음이 승리하게 한 것입니다.
생명의 연장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다고 한다면 생명은 연장이 되었지만 그는 세상에서 패배자로 로마에 굴욕하며 살아가야만 했으며 로마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어야 할 것이며 결국은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여기면 로마는 그를 버릴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승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았지만 죽은 자가 있습니다.
딤전 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그러나 죽어지만 살아있는 자가 있습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본문에서도 세상에서 승리하는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4-5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왜 믿음이 이기느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긴다는 단어가 있음은 패배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려고 발더둥치고 이를 악물고 살아 왔는데 결국은 어떠하십니까?
그런데 세상으로 인하여 크게 두려워하고 놀라워하고 세상에 항복하고 패배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패배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승리자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고대에 노예제도는 국가와 민족을 불문했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노예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전쟁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헬라 사람들 사이에서 포로와 죄인들과 채무자들은 종의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Delos 섬에서는 종종 10000명이나 되는 노예들이 하루에 팔렸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에서 노예는 헬라사회에서 보다 더 참혹했다고 합니다.
노예는 사람이지만 사람의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국법도 노예들을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고대의 전쟁사에 그들의 장군들이 전쟁에 나아 갈 때에 수하 병사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나의 전사들이여 살아서 승리의 전쟁터에서 만나자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서 만나자
승리하도록 끝까지 싸우자 목숨을 걸고 싸우자 패배 할 바에는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패배자의 치욕은 죽느니 못하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패배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으로 패배 의식 속에서 살아 갈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승리감을 가지고 승리를 확신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은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어제 청년회에서 김대호 장로님 병원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이야기하는 가운데 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본인이 수술하는 가운데에서 기도를 하는데 교회를 위하여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더 기도 할 것도 없고 해서...... 몹쓸 병이 확정되었을 때에 이 사실을 받아 드리기는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하나님의 뜻에 맡기겠다는 신앙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저 역시 장로님이 지금까지 헌신하며 소망하며 의지하며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그리고 믿어온 하나님을 이 질병으로 인하여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당신만을 의지하였듯이 이 질병가운데에서도 내 믿음의 확실함을 보여드리자고 했습니다.
질병 때문에 내가 패배하고 좌절하고 모든 소망을 잃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질병을 이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수술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통의 줄을 놓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을 하였는데 사실 기도를 들어가서 그리고 끝날 때까지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줄을 끊어지면 패배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취 중에서는 비몽사몽간 이었겠지만 그 위험한가운데 기도 할 수 있었다니 더욱이 교회를 위하여 하였다니 물론 좋은 수술 결과를 가져와 저녁에 끝나고 그 다음 날로 병실이 나는 대로 올라와 그날 아침 중환자실에서 식사를 다 해치우니 간호사가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야기는 수술이 잘되고 식사를 다 먹었다고 가 아니라 내게 처한 그 가운데서 나의 믿음을 보였으니 그 결과가 어떠하였던지 이미 자신의 주어진 상태에 매여 있는 자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승리를 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결과도 은혜로 받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
이럴 수가 있었던 것은 사람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가 조건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롬8:36-37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두려움은 패배를 가져오게 합니다.
두려움은 죄로 인하여 오는데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을 짓지 않는 삶이 두려움이요 곧 두려움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면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이길 수 있으며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그 자체가 이미 죄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의 힘으로 통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애기가 태어나서 으앙 하고 웁니까? 물론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산소 호흡을 하지 않아요. 엄마와 아기가 연결된 탯줄로 산소와 각종 영양분들이 공급되기 때문에 탯줄로 산소를 받아들여 숨을 쉬게 되는 것이죠 . 따라서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에는 탯줄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폐호흡을 해야 합니다 호흡의 적응 수단이 울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고요 아기가 울지 않는다면 의사들이 아기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면서 고통을 주어 인위적으로라도 울게 만듭니다 따라서 아기가 밖으로 나올 때 울지 않는다면 폐호흡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는 꼭 울음을 터뜨려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애기가 우는 이유를 하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하하 웃으면서 세상의 공기를 맞이하지 않고 울면서 시작하는 것은 이 세상 어떻게 살꼬! 무섭다는 말입니다.
시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상을 부정으로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도 부정적으로 평가를 내립니다.
다 죄의 산물이요 두려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 제목도 두려움에 가득한 내용입니다.
어떻게 살아 가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건설적이지 못합니다. 이것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런 기도를 드리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있어야 할 것은 내가 다 알고 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통상 나의 기도는 어떻게 살아 가노 살려주십시오 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실과를 먹고 나서 숨었습니다.
자기 소욕과 욕심을 구하는 삶의 형태가 하나님에 관심이 없고 더욱이 말씀은 더 관심 밖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중에 하나님도 없고 말씀도 없고 나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고 찾으실 때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창3: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드디어 인간 세상에 두려움이 어떻게 들어 온 것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피하게 되고 자기중심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결핍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함으로 오는 현상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중에 예수님은 주무시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 물결이 배 안으로 넘쳐 들어올 때 제자들이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마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예수님은 두려워하여 아무 것도 할 수없도록 하는 죄를 멸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눅5:23-24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러므로 이 두려움의 근거가 되는 죄를 소멸하여야 하는데 이 죄의 멸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5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로 이길 수 있음은 세상에서 패배 할 수밖에 없는 죄악을 예수님께서 다 도말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란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복하는 믿음입니다.
말씀으로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은 돈 주세요 떡주세요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 주세요 해서 내가 구하는 대로 들어 주셨다는 자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자가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드려야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마8:5-13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세상에서의 승리하는 믿음은 믿습니다가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삶입니다.
말씀으로 다가 갈 때에 두려움은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은 말씀으로 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수1:7-9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믿음으로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누룩이 가루 속에 침투하여 부풀게 합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루터는 신앙이 없는 사람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겁에 질려 배를 타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두려움에 막혀 믿음의 출발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해야 될 부분이 무엇일까? 첫발을 내디디는 것입니다.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하고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두려움은 사탄을 활동하게 만듭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 역사하게 만듭니다.
마음과 생각에 시야에 들어오는 고백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말씀에 비추어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사탄으로부터 온 것일 수 있습니다.
시119: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증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내 안에 있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내 믿음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 존 녹스(John Knox 1514~1572)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라. 그리하면 육체의 죽음에도 두려움이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담대하게 용기 있게 사는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삶을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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