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직무는 상 받을 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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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67회 작성일 2011-11-1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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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4:5-8 전도자의 직무는 상 받을 만한 일입니다.
독일의 루터파교회 목사요 신학자인 본회퍼는 그는 평상시 설교에서 히틀러에 대하여 심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어느 미친 운전사가 미친 듯이 운전을 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미친 운전사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미친 운전사를 차에서 끌어 내리겠습니까?라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미친 운전사는 바로 히틀러를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1943년 3월 13일 히틀러 암살음모가 실패로 돌아가자 본회퍼는 체포되고 말았다. 1945년 4월 9일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처형되었다. 이러한 본회퍼를 히틀러는 교수형에 처했고 교수형이 집행되기 전에 본회퍼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 서는 날에 대한 환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날에 히틀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있고 하나님은 히틀러를 심판하시는데 히틀러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하나님! 나는 죽은 후에 이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누구 하나 나에게 이러한 것을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라고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히틀러도 할 말이 있어서요
이것을 본 본회퍼는 그 순간 가슴을 치며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그동안 저는 히틀러를 정권에서 끌어내리려고만 했었지 그를 구원하려고 또한 그를 불쌍히 여겨 그를 위해 기도하지는 못했나이다.
더욱이 그를 전도 하려고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개 했다고 합니다.
본회퍼가 처형된 3주 후 히틀러는 자살, 5월 8일에 독일 항복. 본회퍼 사후 50년 만에 베를린의 한 법정에서 본회퍼 복권이 되었다고 합니다.
본회퍼는 그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것을 원통해 하지 않고 죽은 그 순간 앞에도 전도자의 직무를 제대로 하지 못함을 원통해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본회퍼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아니 죽음을 앞둔 순간에 깨달은 것이 내 생애에 주어진 직무가 이 세상을 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도자의 직무임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정권을 새롭게 하고 가정을 바로 해 보겠다고 자신의 의를 주장하기 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본문에서도 한 노병이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아들같이 여기는 한 젊은이에게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5-7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인생의 직무를 다하고 가니 너 역시 전도자의 직무를 다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가장 잘 사는 삶이니 반드시 상이 따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대체로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논 할 때에 그렇게 만족해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이 순간에도 별로 만족함이 없어요
그래서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는 이렇게는 떠날 수는 없다고 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몇 십 년의 주어진 인생을 복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마치 삶을 저주된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만 외치다가 죽음이 찾아 올 때에 죽음이 두렵다 나를 위하여 어두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사도 바울은 그 하나님을 전하다가 죽음 앞에서 하는 말이 나 겨우 구원을 받아서 공짜로 받아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승리의 면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인생이란 하나님에 곧 하나님을 나타내는 전도에 관한 일입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이 앞으로가는 길은 바다요 옆으로는 절벽이요 뒤로는 바로의 병거를 타고 온 특공대가 따라오고 이때에 이들은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아주 불안해하였습니다.
이렇게 죽으려고 여기까지 왔느냐?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일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나면서 소경이 된 자에게 사람들은 엄청난 죗값을 정하였습니다.
네 잘못이야 너 부모의 잘못이냐 저주된 인생을 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보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이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은 문제 그 자체로만 나를 찾아 온 것이 아닙니다.
비록 죽을 일이라도 말입니다.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을 보여 주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여 주는 전도요 복음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미국 뉴저지에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들이 열 살 되던 해(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열 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이 아버지의 마음은 자기 아들과 아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 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줄 수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 지혜로운 아버지는 아들 앞으로 스물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우체국에 특별 부탁을 했습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니까, 이 편지를 6개월 간격으로 1년에 두 번씩 자기아들 앞으로 배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그의 아들은 6개월 만에 한 번씩 아버지 이름으로 배달되는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는 아들이 결혼할 때 전해 달라고 하면서 아내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그 동안에 사춘기를 지냈습니다. 때로는 나쁜 친구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시험과 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버지의 편지가 아들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그 편지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충고가 들어있었고, 아버지로서 간곡히 유언하는 말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마지막 편지를 받은 것은 결혼하기 전날이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너를 기른 것이 아니고, 내가 너에게 충고한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에게 전했을 뿐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너를 맡긴다.
앞으로 너는 네 아내와 함께 이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네 자녀를 주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
이아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감사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비록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6개월마다 배달되어 오는 아버지의 편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은 아들은 세상의 죄악 속으로 이탈하지 않고 훌륭히 양육되었습니다
내가 통치하고 내가 간섭하고 내가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전10:31-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바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오는 어려움은 고난이 압니다.
오히려 즐거움으로 감당 할 일입니다.
5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중하여 라는 말은 개역 성경에서는 근신하여 라는 말로 번역하였고 본래 헬라어로는 삼가다, 냉정하다, 절제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으며 라는 말은 고난을 겪다, 고난을 참다, 몹시 괴로워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먹고 살기 위한 고난으로 만들지 말고 복음을 위한 전도자의 고난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극복해 나아가는 믿음의 자세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교회 생활 신앙생활까지 하려고 하니 더 죽겠으니 당분간 형편이 풀릴 때까지 교회생활 신앙생활은 대충하자 하면서 당연히 조건이 되는 냥 말하는데 그것은 참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살기 위하여 먹습니까?
먹기 위하여 삽니까?
먹기 위하여 사는 사람 엄청 많습니다.
복음적인 삶이 내 인생이요 내 삶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주 못사는 한 사람을 교회에서 돌봐 주고 전세방까지 내주어서 그 덕택에 그들은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교회에 와서 청소를 하여 9년 동안 돈을 벌었는데 어느 날 그 사람들이 주일에 상점을 열고, 교회도 않나왔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 줘서 우리가 9년 동안 예수를 믿어 주었는데 이제 더 이상 강요를 하지 말아 달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만큼 믿어 주었으면 됐지
그러니 교회 한번 나와 주는 것이 대단하고 헌금 하는 것이 벼슬이나 되고 봉사하는 것이 길이길이 이름에 남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천국의 삶과 지옥의 삶은 어떤 차이가 있는 줄 아십니까?
천국은 자신의 선행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는 곳이고 지옥은 자신의 선행만을 기억하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가고 시집장가가고 국회의원이 되고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가 하는 일을 나를 통하여 보이는 일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하고는 상관이 없이도 하나님의 일은 보이는 것입니다.
눅16:23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부자는 세상에서 자기 원하는 대로 잘 살았던 자고 나사로는 복음을 위한 고난을 감수하였다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전도자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내 속에 산다는 고백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나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나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일입니다.
그 순간 자신은 죽고 예수가 그 안에서 사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독일 전역이 30년간의 종교전쟁으로 폐허가 됐을 때 눈물의 기도를 드리던 한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핍박받는 신자들의 가정을 찾아다니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 전역에 흑사병이 나돌아 1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독일은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습니다. 목사 부부는 어느 날 중병을 앓고 있는 한 신자의 가정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목사 부부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교회와 집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은 서로 껴안은 채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순간에도 복음이 나오고 전도자의 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찬549장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이 사람의 이름은 벤자민 슈몰크목사입니다.
전도의 기회는 마냥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죽기 전에 꼭 남기고 싶은 말, 가장 소중한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순교당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의 유언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시절 AD 67년 경 참수당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디모데후서는 바로 그 전 해 가을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신앙의 결산, 마지막 신앙고백입니다.
그는 먼저 주님을 위해 순교할 것을 고백합니다.
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전제는 구약의 제사 가운데 하나로서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이 희생제물 위에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붓는 제사 의식입니다
전제는 제물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나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지요 주를 위한 그것만 남아 있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의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교의 피를 쏟겠다는 고백입니다.
행20:24-27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전도는 상을 보장 받습니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목표로 삼아 뛰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물, 명예, 권력, 쾌락, 취미 등에 삶의 목표를 두고 인생의 마라톤을 뛰고 있습니다.
다 달리고 보면 크게 잘못 달렸다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복음에 전도자의 직무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도구에 불과 한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싸움을 싸우며 살아갑니다.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미신과 그리고 자기 동족의 괴롭힘, 헬라의 철학과의 싸움 그리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서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는 이제 복음을 증거하고 이제 개선장군처럼 하늘나라로 입성하게 된 것처럼 우리 하나님이 나에게 의의 면류관을 예배하였다고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하나님 앞에 주어진 직무를 행한 자는 떳떳합니다.
그리고 기대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루어집니다. 현세에도 백배나 내세 영생을 복 받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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