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당신은 영혼구원을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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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62회 작성일 2011-11-1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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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4:13-17 지금의 당신은 영혼구원을 위함입니다
1940년 여름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했을 때 폴란드에 살고 있던 많은 유태인들이 인접한 나라 리투아니아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곳 역시 안전한 곳은 못되어 유태인들은 또 다시 다른 나라로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리투아니아에 있는 각국 영사관에도 이미 철수 명령이 내려져 비자를 발급하는 각국 영사관들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고, 접촉이 가능한 곳은 일본 영사관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둘러 일본 영사관으로 몰려 갔습니다. 그곳이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일본 영사관의 스기하라 부영사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본국 정부에 문의 전보를 쳤습니다. 본국에서는 곧바로 회신을 보냈습니다. 비자를 발급하지 말라는 지시였습니다. 독일과 우호관계에 있던 일본으로서는 독일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사관 담장 밖에서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유태인들을 바라보면서 스기하라 부영사는 다시 두 차례나 본국 정부에 비자발급 허락을 요청하는 전보를 쳤습니다. 하지만 회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절대로 비자를 내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밤을 고민하던 스기하라는 마침내 본국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도저히 저 많은 사람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사관 문을 열고 유태인들을 들어오게 한 스기하라는 그날 이후 리투아니아에서 철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잠과 식사를 거른 채 비자를 발급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목숨을 구한 유태인 숫자는 무려 6천명이 넘었습니다. 스기하라는 얼마 후 독일군을 물리치고 새로 점령해 온 소련군에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억류 상태에서 풀려난 스기하라는 곧바로 일본 정부에 복직 신청을 냈지만 일본 정부는 그의 복직을 거부했습니다. 중요한 전시 상황에서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개인의 판단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공직에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스기하라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대해서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스기하라는 죽기 전에 아내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소
세월이 흐른 뒤 리투아니아에서는 수도 한복판의 큰 거리를 스기하라 거리로 이름을 붙였고, 이스라엘 정부는 스기하라를 기념하는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인도적인 행동 덕분에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뉴욕에 모여서 그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본문에서도 한 여인의 헌신을 통하여 유대인의 구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대신이었다.
모든 백성들이 왕 다음으로 자신을 존경하고 받드는데 오직 유다인 모르드개만 자신을 받드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만을 따르는 것을 알고 모르드개를 포함한 온 유다인을 합법적인 방법으로 죽이고 유대인들을 멸절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그 음모를 알아챈 모르드개는 당시 왕비 와스비를 폐하고 공채를 통해 왕비가 된 자신의 조카 에스더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에스더의 헌신으로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여 그의 목을 잘라 자신의 앞마당에 걸어 놓기 위해 만들어 놓은 오십규빗(약 75ft=22M)의 장대에 자신의 목이 잘려서 걸리게 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 날을 기념하여 죽음의 날이 생명의 날이 되었음을 부림절이라는 날을 정하여 그들의 구원을 기념하였습니다.
스기하라나 에스더는 자신이 리투아니아의 부영사로 혹은 아하수에로의 왕후로의 위치가 영혼의 구원이라는 자리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오늘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왜 여기에서 무엇을 하여야 하나?
이대로 살아도 좋으냐?
자신의 위치를 만족해하지 못하고 또 다른 어떤 위치를 찾고 있습니다.
소히 자신의 처한 위치의 불만을 말하기도 합니다.
다른 어떤 만족을 구하고 있지 지금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처한 곳이 곧 만족 할 만하다고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만족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처한 그 곳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 곳이라면 곧 내가 선 그 자리가 영혼의 구원의 자리입니다.
14-16절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왕후의 자리가 되면 자기만족을 위하는데 최상의 위치입니다.
여태까지 고생해서 고아로 자라 이방인으로 자라 이제 내 꿈을 펼쳐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인생은 자기만족을 위함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후회하고 불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만족을 위한 삶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롬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내 마음대로 나를 위한 내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한 삶이 인생입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 남미 에콰도르 선교사로 간 필립 제임스 엘리어트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명문 기독교 대학인 휘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에콰도르의 후아오라니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선교한지 얼마 안 되어 네 명의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인디언의 창에 맞아 순교합니다. 당시 후아오라니 족은 너무 포악해서 다른 사람이 한 번도 접촉을 하지 못한 종족이었습니다. 처음 접촉에서 바로 순교를 하고만 것입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밀림이라 위험해서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총은 한 발도 쏘지 아니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정당방위라도 인디언을 사살하고 나면 이후로는 선교의 문이 닫힐까 싶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1956년에 있었던 이 사건은 미국의 신문에 그대로 보도가 되었고 미국 사회와 기독교에 큰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한 기독교 잡지사 기자가 엘리어트 선교사의 부인을 인터뷰하는 중에 위로의 말을 던졌습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으로 비극입니다.
그 때 부인은 단호하게 말씀을 삼가주세요. 비극이라니요? 남편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그 곳에 갔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 위하여 그 땅에 갔습니다.
남편의 희생은 분명 그곳에서 하나님의 생명 역사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 후 1959년 부인은 다른 죽은 선교사의 여동생과 함께 후아오라니 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고, 결국은 저들은 선교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인은 남편이 일기의 한 부분을 공개했습니다. 그 내용은 미국 전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세상에는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이 있는가하면 끝까지 붙들 수 없는 것이 있다. 끝까지 붙들 수 없는 것을 위해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나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을 위하여 끝까지 붙들 수 없는 것을 바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일기는 계속됩니다. 주님은 내가 영원히 붙들어야 할 분이시다. 나는 주님을 위해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내 모든 것을 다 바쳐드리기를 원한다. 생명까지 드리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주를 위한 다른 영혼들을 위한 내게 주어진 기회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사는 것입니다.
갈2:19-20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어떠한 사정도 형편도 긍정적으로 받아 드려야합니다.
만약 네가 입을 다문다면 우리 백성은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내버려두시겠느냐?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구원해주실 줄로 나는 믿는다.
그러나 네가 너 혼자의 안전을 위해 민족이 처한 위기를 모르는 척 한다면 하나님께서 너와 네 집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삶은 아무리 잘 살았다 고해도 후회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의 위를 얻는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네가 왕후가 된 것이 바로 오늘을 위하여, 바로 이 순간, 이 사건을 위하여 예비 된 일이 아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너 한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네게 이런 복을 주신 것, 바사 나라 왕후의 자리에 앉힌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때를 위하여, 민족을 살리는 바로 이 엄청난 역사를 위해 하나님은 너를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위험과 희생이 있더라도 네가 나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헌신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모르드개의 말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가만히 있어도 이 민족은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민족 망하게 할 리 없습니다. 다른 방법을 통해 하나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내가 선교하지 않아도 선교는 이루어집니다.
다른 교회를, 다른 민족을 통해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역사가 실패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네 집이 무사하리라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복을 빼앗아 간다는 뜻입니다. 사명 감당하라고 주셨는데 감당하지 않을 때 하나님 거두어 가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 잃고서 건강할 때 헌신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물질 다 잃어버리고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내 손에 있을 때 일해야 합니다. 내 손에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다윗은 전쟁터에 면회 갔다가 선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사무엘상17: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스라엘의 큰 구원을 일으킬 왕이 되는 기틀이 되었습니다.
기회를 놓치는 자가 있습니다.
유1:11-13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들은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그러므로 내 삶은 구원을 위한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한계상황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내 생명을 걸고 내 인생을 걸어야 할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내 인생을 걸고 내 생명을 거는 것이 있습니까?
저는 날마다 아침마다 기도하며 거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 붙잡지 않으면 내 인생은 아무 가치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고 예수가 사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당신은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모으고 나를 위해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갈 것입니다.
왕이 홀을 내밀어주면 왕을 만날 수 있지만 내밀어주지 아니하면 처형당할 것이나 규례를 어기고 나가겠습니다.
죽게 되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에스더가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서 자기의 사명을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내가 왜 왕후가 되었고, 왜 여기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이제 망설일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무엇이든 희생하며 생명도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내가 안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 하신다. 그러나 나에겐 주신 사명을 거두실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내가 생명을 걸면 한 여인을 통해 유다 민족을 구원하신 것처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나타날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닐까!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라고 주신 생명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나 혼자 살겠다고 목숨 구걸하는 일 없게 하시고 죽을 일이 생길 때,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놓아야 할 일이 생길 때 바로 그 때를 위해 내가 존재함을 깨닫게 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 박사에게 한 부인이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님, 당신은 위대한 학자요, 천재적인 음악가입니다. 당신같이 훌륭한 분이 어떻게 미개한 아프리카에서 보수도 없고 대우도 없이 한 평생을 헌신하며 살기로 결심하셨습니까?
그 질문에 슈바이처 박사는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능을 주신 것도, 학문을 주신 것도, 능력을 주신 것도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선교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그는 일찍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가치관을 깨달아야 하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서 내 인생의 보람을 느낄 것인가를 하나님 앞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재래 시장 통에서 69세의 할머니가 백반을 천원을 받고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장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봅니다. 한 달에 100만원을 적자라 합니다.
이 경비는 아들딸들이 주는 용돈으로 대처를 합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문 닫게 된 재래시장 활력을 위하여 나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감을 느낀거에요 언제까지 앞으로 6년 더 75세까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디서 행복을 추구하고 어디서 보람을 느껴야 하겠습니까? 나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역사를 나타내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지 않고, 앞장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역사하시지만, 동참하지 않은 나는 살아온 인생은 의미가 없고, 그 사람이 받은 재산과 건강과 권력과 욕망도 결국 소멸되어 아무런 가치가 없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전12:1-2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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