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삶이 되도록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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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53회 작성일 2011-11-10 21:07본문
요한복음 15:16 열매 맺는 삶이 되도록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저희 집 베란다에는 알로에 선인장이 심겨져 있는 화분이 있는데 몇 년 전에 얻어서 키워서 크게 자랐습니다.
다음해에 새끼를 낳아서 옆으로 3개의 촉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너무 귀해서 분양을 하여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한해가 지나니 또 새끼를 3촉을 내는 것입니다. 옮기기도 마땅찮고 비좁지 만은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비좁은 화분에 한 해가 지나니 또 새끼를 3촉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비좁은 그 공간에 이름 모를 풀이 났는데 그 풀이 무럭무럭 자라 그 곳에 우거지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서도 주렁주렁 씨를 맺어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잘 돌보지도 않았는데 아파트 베란다 작은 화분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창1:11-12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비단 식물뿐이겠습니까?
골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오늘 나 역시 하나님의 귀하신 뜻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소원하거나, 노력행동하거나, 어떤 공로가 있거나, 남보다 좋은 점이 있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로, 절대주권으로, 단독적인 역사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하는 모든 현실과 세상에서의 모든 삶을 하나님 편에서 나를 세워 주신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16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열매 맺는 삶이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꽃보다 열매입니다.
사람들은 분별없이 꽃의 미학에 빠져들고 있다.
열매가 어떠하던지 예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꽃의 유혹은 강렬하기만 하다. 꽃의 환상은 성공과 쾌락, 인기와 권력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꽃의 이미지가 그렇게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꽃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허영의 가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간 실존의 허무를 상징하고 있다.
꽃이 많은 곳이 있지요 세칭 화류계라고 하지 않습니까?
화류계(花柳界) 국어사전에는 노는 계집들의 사회라고 하고 한자자전에는 창녀나 기생들의 사회라고 하였습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우리말에도 예로부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꽃의 붉은 아름다움은 십일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해온 것을 기억한다.
꽃만 좋아하고 열매가 없으면 화류계의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꽃만 피우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꽃의 이미지와 반대되는 열매의 의미를 아주 특별하게 강조하고 있다.
유1:11-12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인생의 가치를 열매에 비유했고 제일 비천자들을 가리켜 열매 없는 사람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선택된 사람으로 사는 것 자체가 바로 열매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요15:1-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8절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존재 목적은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16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그러면 이 열매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랑이나 기쁨 같은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요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막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한복음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성도의 삶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감 곧 따르는 삶입니다.
이게 열매입니다.
꽃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 그리스도인을 구분합니다.
마7:16-20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갈5:19-23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서의 성령의 열매란 내 안에 내재(內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표현입니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갈5: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 열매들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그리고 자신에 관한 열매들입니다.
제가 오늘 새벽기도회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멀쩡히 잘 살아 있는 제가 죽으려고 한 것이지요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를 먹으면서 살면 대는데 그것을 육체적인 열매로 억지로 바꿔 본 것입니다.
제가 기도를 하면서 그렇게 생각으로 한 것뿐입니다.
왜 장로님들은 힘들게 되어있지 안수집사들이 성도들이
교회 성장은 고사하고 유지하기도 힘들잖아
그리고 보니 무엇이든지 희망 사항이 보이지 않잖아
이것이 누구 때문이야 무슨 일을 잘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게 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내적으로 근신을 하고 대외적으로도 모든 사역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동시에 두려움과 공포와 염려가 몰려오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로 순식간에 다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를 하는 중에 성령님이 제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 지금까지 부족한 것이 뭐가 있었다고 그래 그리고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거야 앞으로도 내가 인도 할 거야 너는 지금 이 믿음으로 감당하고 나아가기만 하면 돼
사실 저는 육체적인 기도를 억지로 만들어서 기도를 들었습니다.
열매보다는 꽃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번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라운 일은 이런 와중에서 화려한 꽃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볼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꽃 보다 열매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약1:16-17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오늘 이 열매들을 맺히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미움으로 살지 말고 사랑으로 살아갑시다.
사랑은 열매 중에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아무리 영적인 은사를 많이 소유하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잠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항상 기쁨으로 살게 하십니다.
희락이란 헬라어로 카라로서, 이는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 것들을 통해 얻는 인간적인 기쁨은 일시적이지만,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기쁨은 영원히 변치 않는 참다운 기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외적 환경의 변화에 좌우되는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시련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내면적인 기쁨을 말합니다.
사람사이에 화목을 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화평이란 헬라어로 에이레네로서, 그 뜻은 조화를 의미합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위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아래로는 사람들과 화목하게 되어 주님 안에서 한 시민이요,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마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대인관계에 분노를 참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이란 말은 헬라어로 마크로뒤미아로서, 이는 남에게 학대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분노를 즉시 나타내지 않고 오랫동안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지 못해 별별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없는 일들을 저지려 놓지 않습니까?
참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비란 헬라어로 크레스토테스라고 하는데, 여기는 성품으로서 남에게 온유한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하며 관용을 베푸는 행위를 말합니다.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남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때 우리도 하나님께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친절 양선은 헬라어로 아가도쉬네로서, 선함, 의로움, 친절 등을 의미하는데, 자비가 성도들의 성품을 말한다면 양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선을 베푸는 보다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뜻이 들어 있습니다.
뻣뻣하지 말고 사근사근하면 사랑을 받습니다.
간사하지 않고 묵묵하게 감당하는 충성은 헬라오로 피스티스라고 하는데, 믿음에 입각한 부지런함과 열심을 말합니다.
믿음과 충성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야 생활 속에서 충성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잘 받는 온유는 헬라어로 프라우테스로서 공손, 겸손의 뜻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과 가르침을 잘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정(人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온유는 겸손의 결과로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온유함이 나약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만큼 강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쾌락과 정욕을 극복하는 자제력 절제란 헬라어로 엥크라튜오마이로서 모든 탐욕을 극복하는 자제력을 의미합니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오늘날은 어느 때보다도 모든 면에서 절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러한 열매를 가는 곳마다 열매를 맺고
항상 열매가 있게 하며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응답받는 생활입니다
택한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제자의 특권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예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내 욕심을 위해서 기도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기도하는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깊은 곳에 질문해 보아야합니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응답하여 주십니다.
저희 집 베란다에는 알로에 선인장이 심겨져 있는 화분이 있는데 몇 년 전에 얻어서 키워서 크게 자랐습니다.
다음해에 새끼를 낳아서 옆으로 3개의 촉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너무 귀해서 분양을 하여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한해가 지나니 또 새끼를 3촉을 내는 것입니다. 옮기기도 마땅찮고 비좁지 만은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비좁은 화분에 한 해가 지나니 또 새끼를 3촉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비좁은 그 공간에 이름 모를 풀이 났는데 그 풀이 무럭무럭 자라 그 곳에 우거지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서도 주렁주렁 씨를 맺어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잘 돌보지도 않았는데 아파트 베란다 작은 화분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창1:11-12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비단 식물뿐이겠습니까?
골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오늘 나 역시 하나님의 귀하신 뜻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소원하거나, 노력행동하거나, 어떤 공로가 있거나, 남보다 좋은 점이 있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로, 절대주권으로, 단독적인 역사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하는 모든 현실과 세상에서의 모든 삶을 하나님 편에서 나를 세워 주신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16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열매 맺는 삶이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꽃보다 열매입니다.
사람들은 분별없이 꽃의 미학에 빠져들고 있다.
열매가 어떠하던지 예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꽃의 유혹은 강렬하기만 하다. 꽃의 환상은 성공과 쾌락, 인기와 권력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꽃의 이미지가 그렇게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꽃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허영의 가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간 실존의 허무를 상징하고 있다.
꽃이 많은 곳이 있지요 세칭 화류계라고 하지 않습니까?
화류계(花柳界) 국어사전에는 노는 계집들의 사회라고 하고 한자자전에는 창녀나 기생들의 사회라고 하였습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우리말에도 예로부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꽃의 붉은 아름다움은 십일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해온 것을 기억한다.
꽃만 좋아하고 열매가 없으면 화류계의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꽃만 피우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꽃의 이미지와 반대되는 열매의 의미를 아주 특별하게 강조하고 있다.
유1:11-12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인생의 가치를 열매에 비유했고 제일 비천자들을 가리켜 열매 없는 사람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선택된 사람으로 사는 것 자체가 바로 열매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요15:1-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8절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존재 목적은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16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그러면 이 열매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랑이나 기쁨 같은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요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막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한복음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성도의 삶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감 곧 따르는 삶입니다.
이게 열매입니다.
꽃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 그리스도인을 구분합니다.
마7:16-20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갈5:19-23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서의 성령의 열매란 내 안에 내재(內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표현입니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갈5: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 열매들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그리고 자신에 관한 열매들입니다.
제가 오늘 새벽기도회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멀쩡히 잘 살아 있는 제가 죽으려고 한 것이지요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를 먹으면서 살면 대는데 그것을 육체적인 열매로 억지로 바꿔 본 것입니다.
제가 기도를 하면서 그렇게 생각으로 한 것뿐입니다.
왜 장로님들은 힘들게 되어있지 안수집사들이 성도들이
교회 성장은 고사하고 유지하기도 힘들잖아
그리고 보니 무엇이든지 희망 사항이 보이지 않잖아
이것이 누구 때문이야 무슨 일을 잘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게 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내적으로 근신을 하고 대외적으로도 모든 사역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동시에 두려움과 공포와 염려가 몰려오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로 순식간에 다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를 하는 중에 성령님이 제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 지금까지 부족한 것이 뭐가 있었다고 그래 그리고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거야 앞으로도 내가 인도 할 거야 너는 지금 이 믿음으로 감당하고 나아가기만 하면 돼
사실 저는 육체적인 기도를 억지로 만들어서 기도를 들었습니다.
열매보다는 꽃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번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라운 일은 이런 와중에서 화려한 꽃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볼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꽃 보다 열매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약1:16-17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오늘 이 열매들을 맺히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미움으로 살지 말고 사랑으로 살아갑시다.
사랑은 열매 중에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아무리 영적인 은사를 많이 소유하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잠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항상 기쁨으로 살게 하십니다.
희락이란 헬라어로 카라로서, 이는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 것들을 통해 얻는 인간적인 기쁨은 일시적이지만,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기쁨은 영원히 변치 않는 참다운 기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외적 환경의 변화에 좌우되는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시련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내면적인 기쁨을 말합니다.
사람사이에 화목을 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화평이란 헬라어로 에이레네로서, 그 뜻은 조화를 의미합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위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아래로는 사람들과 화목하게 되어 주님 안에서 한 시민이요,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마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대인관계에 분노를 참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이란 말은 헬라어로 마크로뒤미아로서, 이는 남에게 학대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분노를 즉시 나타내지 않고 오랫동안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지 못해 별별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없는 일들을 저지려 놓지 않습니까?
참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비란 헬라어로 크레스토테스라고 하는데, 여기는 성품으로서 남에게 온유한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하며 관용을 베푸는 행위를 말합니다.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남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때 우리도 하나님께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친절 양선은 헬라어로 아가도쉬네로서, 선함, 의로움, 친절 등을 의미하는데, 자비가 성도들의 성품을 말한다면 양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선을 베푸는 보다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뜻이 들어 있습니다.
뻣뻣하지 말고 사근사근하면 사랑을 받습니다.
간사하지 않고 묵묵하게 감당하는 충성은 헬라오로 피스티스라고 하는데, 믿음에 입각한 부지런함과 열심을 말합니다.
믿음과 충성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야 생활 속에서 충성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잘 받는 온유는 헬라어로 프라우테스로서 공손, 겸손의 뜻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과 가르침을 잘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정(人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온유는 겸손의 결과로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온유함이 나약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만큼 강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쾌락과 정욕을 극복하는 자제력 절제란 헬라어로 엥크라튜오마이로서 모든 탐욕을 극복하는 자제력을 의미합니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오늘날은 어느 때보다도 모든 면에서 절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러한 열매를 가는 곳마다 열매를 맺고
항상 열매가 있게 하며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응답받는 생활입니다
택한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제자의 특권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예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내 욕심을 위해서 기도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기도하는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깊은 곳에 질문해 보아야합니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응답하여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