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공로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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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44회 작성일 2012-01-21 20:39본문
히 4:14-16 예수님의 공로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며칠 전에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이 올랐습니다.
저의 딸을 소개합니다.
현재 고3인데 청교도 신앙을 본받아 사회와 공동체 유익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합니다.
사회봉사 리더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유방암 퇴치 운동을 위해서 3년간 머리를 길러서 이제 짤라 도네이션 합니다.
이 머리를 짜를 수 있는 것은 이미 3년 전에 약속을 합니다.
그래서 3년 동안 머리를 기르다가 3년의 정한 날에 학교에서 약속한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수집해서 갑니다.
이 머리카락은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고급 가발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없는 환우들에게는 평생을 커버할 수 있는 좋은 가발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딸을 소개한 목사님은 현재 신학교 교수로 있으며 오래 전에 우리 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님으로 헌신적으로 수고한 기억이 있습니다.
한 환자를 위하여 3년간에 걸쳐 자신의 머리를 짜르지 않고 기르는 아름다운 마음을 기억하십니까?
사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를 저질러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죄인을 살리신 분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언제,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그리고 그 일을 갈보리 십자상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이루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엡1:4-7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나와 꼭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죽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했고, 받은 나에게는 값없이 그냥 주시는 선물 곧 은혜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위한 구원의 길을 다 마련하시고 부활, 승천하시었습니다.
롬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본문을 기록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큰 대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제사장 중에 대제사장이요 그것도 부족하여 큰 대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죄인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제사장이란 백성들의 죄의 문제, 절망적인 어떤 일이 있을 때 죄인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을 대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는 자입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누구든지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된 인간을 하나님께로 나아 갈수 있도록 중보적인 다리역활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14절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높고 높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이 낮고 천한 죄인인 나 같은 사람의 처한 괴로운 심정을 얼마나 알고 이해하실 수 있겠는가?
그러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체휼(體恤)은 몸 체 혹은 형상 체, 불쌍히 여길 휼로 모두 동정적인, 동정심이 있는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긍휼히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로 보면 될 것입니다.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은 사람이 당 할 수 있는 모든 어려움을 다 당해 보셨다는 것입니다.
한 칸의 집도 거 할 곳도 없이 살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중에 살점이 찢어지도록 채찍에 맞아 본 분이 있습니까?
침 뱉음을 당하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부모 형제에게 동족에게 버림을 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의를 위하여 살다가 오히려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 언도를 당해보신 분이 있습니까?
나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당하신 분입니다.
예수께서는 나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아픔 사람이 되어보아야 아픈 사람의 고통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아픔과 고통을 잘 알고 계시는 사랑하는 주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그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여러분 모두에게 간절히 권면합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긍휼히 여김을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와 백성, 음란이 행하는 자, 교만한 자, 감사하지 아니하고 불평불만만을 말하는 자, 자기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자 등은 긍휼히 여기지 아니합니다.
겔7:4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보다도 더 큰 은혜와 긍휼을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해결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두 소경이 따라가며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그냥 지나치셨습니까? 아닙니다.
손으로 그들의 눈을 만져 주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말속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고 내가 어려울 때마다 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내용을 다 포함하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에 우리는 언제나 나와 우리의 소원을 기도로 아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나님의 보좌는 내가 필요할 때 언제나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새벽 기도 시간에 제 자신을 내어 놓고 주위의 사람들을 내어 놓고 기도하는데 참으로 힘들고 자신의 역량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봅니다.
이때에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다 아시고 계시니 나는 할 수 없으니 하고 주여 주여 하고 소리쳐 기도가 나오는데 얼마나 속이 다 시원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힘을 주시는지
다 치유되고 다 해결되고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롬8:32-3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반드시 더 큰 은혜로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 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에 따라서 망설이고 의심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여 주실까? 나는 너무나 추해.
아버지의 말을 끝끝내 듣지 않고 기어이 아버지의 곁을 떠났던 아들.
아버지가 일생을 피땀 흘려 번 돈을 기생들과 함께 쾌락에 탕진한 아들.
그는 거지가 되었지만 차마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며 생각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니 결코 용서해 주시지 아니할 거야. 그래도 돌아가야지. 가서 종으로라도 사는 것이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것보다 나을 거야.
그는 용기를 내어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를 어떻게 맞아 주셨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이 떠난 후 방탕한 세월을 보내는 그 동안 내내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아버지가 달려 나와 거지 아들을 끌어 앉습니다. 집안에 들어오게 하여 목욕을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우고, 소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 돌아 온 아들을 환영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나의 죄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어떠한 죄로 인하여 주저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담대하게 예수이름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천국의 모든 천사와 함께 나를 환영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어떤 고통 중에 있습니까? 질병 중에 있습니까? 사업이 풀리지 않아 절망 중에 있습니까? 아직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이 올랐습니다.
저의 딸을 소개합니다.
현재 고3인데 청교도 신앙을 본받아 사회와 공동체 유익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합니다.
사회봉사 리더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유방암 퇴치 운동을 위해서 3년간 머리를 길러서 이제 짤라 도네이션 합니다.
이 머리를 짜를 수 있는 것은 이미 3년 전에 약속을 합니다.
그래서 3년 동안 머리를 기르다가 3년의 정한 날에 학교에서 약속한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수집해서 갑니다.
이 머리카락은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고급 가발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없는 환우들에게는 평생을 커버할 수 있는 좋은 가발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딸을 소개한 목사님은 현재 신학교 교수로 있으며 오래 전에 우리 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님으로 헌신적으로 수고한 기억이 있습니다.
한 환자를 위하여 3년간에 걸쳐 자신의 머리를 짜르지 않고 기르는 아름다운 마음을 기억하십니까?
사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를 저질러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죄인을 살리신 분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언제,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그리고 그 일을 갈보리 십자상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이루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엡1:4-7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나와 꼭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죽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했고, 받은 나에게는 값없이 그냥 주시는 선물 곧 은혜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위한 구원의 길을 다 마련하시고 부활, 승천하시었습니다.
롬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본문을 기록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큰 대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제사장 중에 대제사장이요 그것도 부족하여 큰 대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죄인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제사장이란 백성들의 죄의 문제, 절망적인 어떤 일이 있을 때 죄인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을 대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는 자입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누구든지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된 인간을 하나님께로 나아 갈수 있도록 중보적인 다리역활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14절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높고 높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이 낮고 천한 죄인인 나 같은 사람의 처한 괴로운 심정을 얼마나 알고 이해하실 수 있겠는가?
그러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체휼(體恤)은 몸 체 혹은 형상 체, 불쌍히 여길 휼로 모두 동정적인, 동정심이 있는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긍휼히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로 보면 될 것입니다.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은 사람이 당 할 수 있는 모든 어려움을 다 당해 보셨다는 것입니다.
한 칸의 집도 거 할 곳도 없이 살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중에 살점이 찢어지도록 채찍에 맞아 본 분이 있습니까?
침 뱉음을 당하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부모 형제에게 동족에게 버림을 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의를 위하여 살다가 오히려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 언도를 당해보신 분이 있습니까?
나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당하신 분입니다.
예수께서는 나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아픔 사람이 되어보아야 아픈 사람의 고통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아픔과 고통을 잘 알고 계시는 사랑하는 주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그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여러분 모두에게 간절히 권면합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긍휼히 여김을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와 백성, 음란이 행하는 자, 교만한 자, 감사하지 아니하고 불평불만만을 말하는 자, 자기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자 등은 긍휼히 여기지 아니합니다.
겔7:4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보다도 더 큰 은혜와 긍휼을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해결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두 소경이 따라가며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그냥 지나치셨습니까? 아닙니다.
손으로 그들의 눈을 만져 주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말속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고 내가 어려울 때마다 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내용을 다 포함하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에 우리는 언제나 나와 우리의 소원을 기도로 아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나님의 보좌는 내가 필요할 때 언제나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새벽 기도 시간에 제 자신을 내어 놓고 주위의 사람들을 내어 놓고 기도하는데 참으로 힘들고 자신의 역량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봅니다.
이때에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다 아시고 계시니 나는 할 수 없으니 하고 주여 주여 하고 소리쳐 기도가 나오는데 얼마나 속이 다 시원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힘을 주시는지
다 치유되고 다 해결되고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롬8:32-3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반드시 더 큰 은혜로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 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에 따라서 망설이고 의심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여 주실까? 나는 너무나 추해.
아버지의 말을 끝끝내 듣지 않고 기어이 아버지의 곁을 떠났던 아들.
아버지가 일생을 피땀 흘려 번 돈을 기생들과 함께 쾌락에 탕진한 아들.
그는 거지가 되었지만 차마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며 생각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니 결코 용서해 주시지 아니할 거야. 그래도 돌아가야지. 가서 종으로라도 사는 것이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것보다 나을 거야.
그는 용기를 내어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를 어떻게 맞아 주셨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이 떠난 후 방탕한 세월을 보내는 그 동안 내내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아버지가 달려 나와 거지 아들을 끌어 앉습니다. 집안에 들어오게 하여 목욕을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우고, 소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 돌아 온 아들을 환영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나의 죄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어떠한 죄로 인하여 주저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담대하게 예수이름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천국의 모든 천사와 함께 나를 환영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어떤 고통 중에 있습니까? 질병 중에 있습니까? 사업이 풀리지 않아 절망 중에 있습니까? 아직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