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라 형통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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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72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여호수아 1:1-9 두려워 말라 형통케 하리라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낼 때마다 긍정적인 면을 말하기보다는 대체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가 불안하다. 경제가 어렵다. 사회가 무섭다. 힘들다. 어렵다. 등등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한 해에 기대를 걸며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또 한 해를 보내지 만은 모두가 별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 만은 진정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이것저것 없다 하지 말고 돈이 없다하면 되듯이 인간의 생사화복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쥐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속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참다운 생명이 없기 때문에 헛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축복의 한 해가 되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나의 생활 가운데서 함께 하시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한 해를 보내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마당에서 이제는 세상만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부정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형통케 되는 축복을 받은 긍정된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대다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사의 모든 일을 인간의 감각적인 지식을 가지고 주위 환경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두려워해서 하나님 말씀을 저버릴 때 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으로 만지는 것등의 경험들에 의해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걸어나갈 때 베드로는 물위로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위환경인 바람과 파도를 보고 그만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머뭇거리자 그는 물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니 (마14:29-31)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면 우리는 환경과 운명의 노예가 되고 세속의 물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수1:9)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그처럼 사랑하고 그의 나아가는 길에 크게 승리만이 있었습니까? 다윗이 윤리와 도덕적으로 정말 의롭고 거룩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윤리나 도덕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것은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강하게 담대하게 인생을 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년 다윗은 양 무리를 칠 때 곰이나 사자 가 공격을 할 때도 피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대적했습니다. 다윗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의지하여 나가자 하나님의 천사가 함께 하여 주어서 사자와 곰같은 맹수들을 무찌를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장수 골리앗을 죽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 경험이 많고 훈련된 장수가 많았으나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기세에 눌려서 그와 대결해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었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면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삼상17:8-11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소년 목동 다윗은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극히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하고 이방인 군대를 향해 나아가 싸우겠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제구에 물 맷돌 다섯 개를 넣고 물매에 돌을 넣어 골리앗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고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굴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하나님께서 너를 네 손에 붙이시리라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삼상17:45-46)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물 맷돌을 흔들어서 돌을 날려보내니 돌이 골리앗의 이마 정통을 때리자 골리앗이 돌에 맞아 거꾸러지자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그때야 용기와 힘을 얻고 일제히 일어나서 블레셋을 공격해 블레셋은 완전히 전멸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을 통해서 강하고 담대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음에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사자도 곰도 거꾸러지고 골리앗도 거꾸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함을 가지고 우리의 운명과 환경에 도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형통케 되는 자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게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큰 혼란과 위기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40년간 인도한 지도자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모든 백성들은 갈팡질팡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은 큰 곤경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를 위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시 일러주시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 그 위기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약속의 말씀에 다시 상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니......
우리 성도들의 승리의 비결도 마찬가지입니다.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혹은 위기가 찾아온다 할 적에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억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안타가운 일 중에 하나가 있다면 말씀을 의지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위력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말씀으로 이 천지가 조성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말씀으로 온 세상이 운행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 나아가는 길에 빛이요 등불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네 할렐루야!
얼마나 말씀이 위대하고 능력이 많는지 우리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말씀이요 생명의 떡인 줄로 믿으시기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 우리 성도들이 삶의 두려움에 메이지 않고 형통게 되려고 하면 말씀이 내게 풍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도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면 돼지새끼가 꿀꿀거리는 모습 호랑이 모습 복조리 원앙새 등등을 다 치워 버리고 말씀을 걸어 놓고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무리에게 축복을 할 때 말씀에 의한 축복을 했습니다.
신 6:6-9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또 두려움에서 벗어나 형통케 되는 그 말씀에 부정적인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고 말씀에 언제든지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죄를 지은 다음에 하나님 보기를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란 하나님과의 분리인데 자녀가 그 부모에게 떨어져 있으면 두렵듯이 죄는 하나님을 떨어지게 하여 우리 사람을 두렵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계시지 않자 두려워하였으나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고 그의 평안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이 예수님과의 교제를 회복 할 수 있는 방법은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 안에 거한다면 원하는 대로 이루리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거함이란 말씀 안에서 생활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원하는 것도 이루며 기쁨도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세상의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포로민으로 왕의 명령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담대하게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두려움이 없이 말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세상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헤롯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헤롯은 사람을 두려워하다 보니 세례요한까지도 두려운 존재로 여겨졌으며 (막 6:20). 빌라도는 자신의 판단과 아내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소리가 강압적이었기 때문에 백성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었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 소리에도 두려워 할 것이요 온 세상이 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미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서 형통을 맛볼 수 있음은?
범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1969년 7월 20일의 얘기가 됩니다. 로켓을 타고 처음으로 달나라를 다녀온 3사람 중인 한 사람인 어윙 대령달나라에서 지구를 보는 그 광경은 우리가 여기서 달을 보는 거와는 다르답니다. 우리가 달을 보면 달은 작기도 하고 흑백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달에서 지구를 보면 엄청나게 크고 그리고 총 천연색이라 합니다. 좌우간 만리장성이 보인다니 이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그 구경하고 온 얘 기를 많는 가운데 심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캡슐을 타고 지구를 향해 떨어질 때 낙하산이 둘이 펴 공기저항을 이용해서 조 용히 안착하게 되여 있었는데, 낙하 산 하나가 터지고는 하나는 터지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비상 수단을 써 봐도 안됩니다. 휴스턴 사령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 대로 떨어지면 아주 박살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큰 난리가 났을 때에 속수무책입니다. 모두가 딱 한마디, 기도하자! 그랬답니다.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 이 캡슐을 타고 지금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그도 기도하고 휴스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기도했 답니다. 이 길밖에 없었어요. 그런 데 이상한 것은 땅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이 올라 부는 겁니다. 치솟아 불어 올라오는데 그 바람을 맞으면 서 낙하산 둘 터진 것과 같은 속도로 조용히 떨어질 수가 있었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기적이랍니 다.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답니다. 이건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 인간이 하는 줄 알았 는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간증을 하 고 끌어안고 울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믿거나 말거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건 확실한 것입니다. 여러분, 로켓은 휴스턴 사령탑에 서 조정하는 줄 알았는데 그 뒤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는 겁 니다. 사람과 하나님이 협력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 과 함께 하는 것이요, 하나님 안에 서 살아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귀중한 간증을 모두가 가지 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 10:32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낼 때마다 긍정적인 면을 말하기보다는 대체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가 불안하다. 경제가 어렵다. 사회가 무섭다. 힘들다. 어렵다. 등등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한 해에 기대를 걸며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또 한 해를 보내지 만은 모두가 별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 만은 진정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이것저것 없다 하지 말고 돈이 없다하면 되듯이 인간의 생사화복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쥐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속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참다운 생명이 없기 때문에 헛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축복의 한 해가 되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나의 생활 가운데서 함께 하시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한 해를 보내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마당에서 이제는 세상만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부정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형통케 되는 축복을 받은 긍정된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대다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사의 모든 일을 인간의 감각적인 지식을 가지고 주위 환경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두려워해서 하나님 말씀을 저버릴 때 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으로 만지는 것등의 경험들에 의해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걸어나갈 때 베드로는 물위로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위환경인 바람과 파도를 보고 그만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머뭇거리자 그는 물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니 (마14:29-31)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면 우리는 환경과 운명의 노예가 되고 세속의 물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수1:9)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그처럼 사랑하고 그의 나아가는 길에 크게 승리만이 있었습니까? 다윗이 윤리와 도덕적으로 정말 의롭고 거룩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윤리나 도덕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것은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강하게 담대하게 인생을 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년 다윗은 양 무리를 칠 때 곰이나 사자 가 공격을 할 때도 피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대적했습니다. 다윗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의지하여 나가자 하나님의 천사가 함께 하여 주어서 사자와 곰같은 맹수들을 무찌를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장수 골리앗을 죽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 경험이 많고 훈련된 장수가 많았으나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기세에 눌려서 그와 대결해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었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면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삼상17:8-11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소년 목동 다윗은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극히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하고 이방인 군대를 향해 나아가 싸우겠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제구에 물 맷돌 다섯 개를 넣고 물매에 돌을 넣어 골리앗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고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굴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하나님께서 너를 네 손에 붙이시리라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삼상17:45-46)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물 맷돌을 흔들어서 돌을 날려보내니 돌이 골리앗의 이마 정통을 때리자 골리앗이 돌에 맞아 거꾸러지자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그때야 용기와 힘을 얻고 일제히 일어나서 블레셋을 공격해 블레셋은 완전히 전멸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을 통해서 강하고 담대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음에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사자도 곰도 거꾸러지고 골리앗도 거꾸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함을 가지고 우리의 운명과 환경에 도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형통케 되는 자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게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큰 혼란과 위기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40년간 인도한 지도자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모든 백성들은 갈팡질팡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은 큰 곤경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를 위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시 일러주시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 그 위기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약속의 말씀에 다시 상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니......
우리 성도들의 승리의 비결도 마찬가지입니다.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혹은 위기가 찾아온다 할 적에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억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안타가운 일 중에 하나가 있다면 말씀을 의지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위력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말씀으로 이 천지가 조성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말씀으로 온 세상이 운행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 나아가는 길에 빛이요 등불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네 할렐루야!
얼마나 말씀이 위대하고 능력이 많는지 우리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말씀이요 생명의 떡인 줄로 믿으시기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 우리 성도들이 삶의 두려움에 메이지 않고 형통게 되려고 하면 말씀이 내게 풍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도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면 돼지새끼가 꿀꿀거리는 모습 호랑이 모습 복조리 원앙새 등등을 다 치워 버리고 말씀을 걸어 놓고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무리에게 축복을 할 때 말씀에 의한 축복을 했습니다.
신 6:6-9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또 두려움에서 벗어나 형통케 되는 그 말씀에 부정적인 것은 무엇이든지 버리고 말씀에 언제든지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죄를 지은 다음에 하나님 보기를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란 하나님과의 분리인데 자녀가 그 부모에게 떨어져 있으면 두렵듯이 죄는 하나님을 떨어지게 하여 우리 사람을 두렵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계시지 않자 두려워하였으나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고 그의 평안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이 예수님과의 교제를 회복 할 수 있는 방법은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 안에 거한다면 원하는 대로 이루리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거함이란 말씀 안에서 생활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원하는 것도 이루며 기쁨도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세상의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포로민으로 왕의 명령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담대하게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두려움이 없이 말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세상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헤롯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헤롯은 사람을 두려워하다 보니 세례요한까지도 두려운 존재로 여겨졌으며 (막 6:20). 빌라도는 자신의 판단과 아내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소리가 강압적이었기 때문에 백성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었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 소리에도 두려워 할 것이요 온 세상이 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미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서 형통을 맛볼 수 있음은?
범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1969년 7월 20일의 얘기가 됩니다. 로켓을 타고 처음으로 달나라를 다녀온 3사람 중인 한 사람인 어윙 대령달나라에서 지구를 보는 그 광경은 우리가 여기서 달을 보는 거와는 다르답니다. 우리가 달을 보면 달은 작기도 하고 흑백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달에서 지구를 보면 엄청나게 크고 그리고 총 천연색이라 합니다. 좌우간 만리장성이 보인다니 이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그 구경하고 온 얘 기를 많는 가운데 심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캡슐을 타고 지구를 향해 떨어질 때 낙하산이 둘이 펴 공기저항을 이용해서 조 용히 안착하게 되여 있었는데, 낙하 산 하나가 터지고는 하나는 터지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비상 수단을 써 봐도 안됩니다. 휴스턴 사령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 대로 떨어지면 아주 박살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큰 난리가 났을 때에 속수무책입니다. 모두가 딱 한마디, 기도하자! 그랬답니다.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 이 캡슐을 타고 지금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그도 기도하고 휴스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기도했 답니다. 이 길밖에 없었어요. 그런 데 이상한 것은 땅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이 올라 부는 겁니다. 치솟아 불어 올라오는데 그 바람을 맞으면 서 낙하산 둘 터진 것과 같은 속도로 조용히 떨어질 수가 있었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기적이랍니 다.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답니다. 이건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 인간이 하는 줄 알았 는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간증을 하 고 끌어안고 울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믿거나 말거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건 확실한 것입니다. 여러분, 로켓은 휴스턴 사령탑에 서 조정하는 줄 알았는데 그 뒤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는 겁 니다. 사람과 하나님이 협력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 과 함께 하는 것이요, 하나님 안에 서 살아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귀중한 간증을 모두가 가지 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 10:32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