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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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10회 작성일 2012-01-21 20:41본문
이사야 9:1-7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
영국 런던의 국제법 협회가 지난 4000여년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날은 268년만이 전쟁이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인류는 전쟁의 역사 속에 살았다는 말입니다. 최근 20세기는 한마디로 전쟁의 연속이었다.
영국에서 발행한 평화 속에 전쟁이란 보고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 후만 해도 100개국에서 130건의 군사 분규가 있었고 3500만 명이 전쟁으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만 1000만 명이 죽었고 2차 대전 6,25 월남전 걸프전에서 약 5000만 명이 희생되었다.
북쪽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년에 남북 전쟁이 일어난다는 말이 파다하게 펴져 있습니다.
최근에 이란과 이스라엘이 핵으로 인한 전쟁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습니까?
전쟁을 경험한 자만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것입니다.
본문에도 전쟁을 경험한 힘든 세대가 있었습니다.
5절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는 겉옷이라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라 함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지칭하니 곧 이스라엘 민족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전쟁의 고통에서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예언 할 당시에 아람과 앗수르가 침공하였고, 북쪽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완전히 멸망을 당하였고 그 뒤에는 남쪽 유다는 더욱 강대한 나라인 바벨론에 망하고 70년 동안 통치를 받아 오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이 전쟁으로 인하여 당한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렇게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였습니다.
8:21-22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나3:2-3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즉,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분노하여 자신들의 왕과 하나님까지도 저주했던 것입니다.
위에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지금 한국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습니다.
효순 미선이 촛불이 미국소 광우병, 4대강, 한미FTA
그리고 거기다가 더불어 기독교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습니다.
하여튼 힘들고 배고프면 하나님도 욕을 얻어먹습니다.
그들은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소망이라고는 없고 흑암과 고통만이 그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정치·경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어두운 땅에 큰 빛이 비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빛이 임하자 흑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1-2절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 빛이 곧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본문에서는 한 아기가 태어날 것임을 예언합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그 때 그 시대에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희망했고 확신했고 노래하게 했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어떠하십니까? 역시 캄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딤후3:1-4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강 건너 광진구에 우등생 고3학년이 공부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공부를 강요하는 모친 살해 하고 8개월간 방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 누가 누구를 탓해야 할까요?
5년 전부터 어머니와 별거했던 아버지는 이날 경찰조사를 받고 애 엄마는 외국어를 잘하는 아들에게 외교관이 되라고 주입했지만 아이는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다. 애 엄마는 극단적이긴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내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고모 C씨는 엄마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심리적 불안감이 더해져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던 것 같다. 조카에게 엄마는 거역할 수 없는 존재였다 A군은 큰아버지와의 면회에서 내가 혼자라고 생각해 아무에게도 힘든 것을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자 잘못하기 전에 각자 나름대로 감당 할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다른 집 가정 문제가 아니라 내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일어 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막상 나에게도 막다른 상황이 온다면 길을 찾지 못하면 어떤 일을 할지를 모르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 상황에 예수께서 빛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번 성탄절에는 내 삶에 내 인생에 내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빛이 비지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모든 축복이 어떻게 나에게 주어집니까?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의 이름은 기묘자(The Wonder)입니다. 원더우먼이라고 있었지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분이란 말입니다.
사 55장에서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뜻은 너희 뜻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높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인류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도 나타내셨습니다.
대속의 죽음, 그리고 이를 통해 구속사를 완성하신 하나님의 지혜는 기묘 그 자체입니다.
그 이름은 모사(Counsellor)입니다.
모사는 책사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컨설턴트입니다.
모든 고뇌하는 문제를 그에게 털어놓고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사는 옳은 것을 택하도록 도와줍니다. 가장 좋은 길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카운슬링 하셨습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사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과연 세상을 감당 할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오늘 새벽에도 이것저것 기도하면서 주께서 모든 것을 다 인도하신다는 은혜를 받고서는 기분 좋게 제자리에서 일어 설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The mighty God)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중 가장 특별난 것은 바로 이 이름입니다.
다른 직함은 사람에게 붙여질 수 있지만 이것은 붙여질 수 없는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을 가진 신적 존재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본체인 분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신인 여호와가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 가장 불만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이사야는 한 아기는 아무리 강력한 제국도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으며 모든 이방신들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전능한 하나님임을 선포합니다.
불신을 회개하고 이 하나님을 믿도록 도왔습니다.
이사야는 실제로 이 하나님이 바벨론을 통해 아수르를 제거하시고, 그 바벨론을 또한 바사를 통해 제거하시고, 바벨론 포로들을 고레스를 통해 귀환하게 하시고 성전을 재건하게 하실 것까지, 승리를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일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를 의지하기만 하면 현실 논리에 연연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음을 이사야는 믿었습니다.
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The everlasting Father)입니다.
아버지는 히브리어로 ‘아비’이며 아람어로 ‘아빠’입니다. 우리말과 똑같습니다.
영원히 살아계시는 아빠라는 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젠 아버지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혁명 그 이상의 호칭입니다.
구약에서 그 백성을 자녀, 자식이라고 표현한 곳은 많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이는 너무나 친밀하고 인격적이고 따뜻한 호칭입니다. 아버지를 아빠라고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버지가 무섭거나, 부를 아버지가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분들,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롬8:14-1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아빠로 부르게 하셨으니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자상한 육신의 아버지도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한 아기는 영원히 함께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도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페이스 북에서 한 음악을 전공하는 여대생이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학력도 좋지 않고 돈도 없고 남들처럼 뛰어난 외모도 가지지 않았고 잘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그래도 감사하다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어서
댓글 중에 학력 좋고 돈도 많고 뛰어난 외모에 할 줄 아는 것 많으면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없을거야
성도 중에서는 옥중에서도 요양병원중에도 가족과 떨어져 멀리 외국에서도 극한 가난 중에도 실연을 당하고 그리고 말 못 할 힘든 가운데서도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은 너무나도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 이름은 평강의 왕(The Prince of Peace)입니다.
평강은 평화, 평안 등의 뜻이며, 원어로 샬롬입니다.
예루살렘도 평화의 성읍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엔 샬롬(평화)이 임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 천사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눅2:13-14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십자가를 앞두고 불안에 떠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부활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 안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에서 나를 건지십니다. 그래서 평강이 넘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할 때마다 그 분이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을 체험합니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어깨에 정사를 메었습니다. 통치권자란 말입니다. 강력한 힘과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신 것이며 전쟁을 종식시키신 것입니다
이제 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죽겠다가 변하여 살겠다가 될 줄로 믿습니다.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원래 죄인된 인간은 사망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 될 떼부터 그랬습니다.
언도 받은 사형수가 언제 사형장으로 끌려갈지 모를 독방에서 마른 침을 삼키며 초초해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세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그리고 방탕하게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목이 조였다는 것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 빛은 700년 후에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온 세상을 밝히 비췸으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내 삶을 즐겁게 할 것입니다.
3절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당시 농경문화, 전쟁문화 속에서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은 추수하는 즐거움이요 전쟁에 승리해서 전리품을 나누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즐거움을 상실한 인생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을 덜어 줄 것입니다.
4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멍에는 짐(burden)이고 채찍은 강요(push)이고 막대기는 짓누름(oppress)입니다.
인간은 짐승이 아닙니다. 자유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죄와 사망에서 자유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그러므로 주님을 모르면 인생이 죽음입니다. 주님을 알면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이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심으로 참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영국 런던의 국제법 협회가 지난 4000여년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날은 268년만이 전쟁이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인류는 전쟁의 역사 속에 살았다는 말입니다. 최근 20세기는 한마디로 전쟁의 연속이었다.
영국에서 발행한 평화 속에 전쟁이란 보고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 후만 해도 100개국에서 130건의 군사 분규가 있었고 3500만 명이 전쟁으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만 1000만 명이 죽었고 2차 대전 6,25 월남전 걸프전에서 약 5000만 명이 희생되었다.
북쪽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년에 남북 전쟁이 일어난다는 말이 파다하게 펴져 있습니다.
최근에 이란과 이스라엘이 핵으로 인한 전쟁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습니까?
전쟁을 경험한 자만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것입니다.
본문에도 전쟁을 경험한 힘든 세대가 있었습니다.
5절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는 겉옷이라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라 함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지칭하니 곧 이스라엘 민족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전쟁의 고통에서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예언 할 당시에 아람과 앗수르가 침공하였고, 북쪽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완전히 멸망을 당하였고 그 뒤에는 남쪽 유다는 더욱 강대한 나라인 바벨론에 망하고 70년 동안 통치를 받아 오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이 전쟁으로 인하여 당한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렇게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였습니다.
8:21-22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나3:2-3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즉,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분노하여 자신들의 왕과 하나님까지도 저주했던 것입니다.
위에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지금 한국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습니다.
효순 미선이 촛불이 미국소 광우병, 4대강, 한미FTA
그리고 거기다가 더불어 기독교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습니다.
하여튼 힘들고 배고프면 하나님도 욕을 얻어먹습니다.
그들은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소망이라고는 없고 흑암과 고통만이 그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정치·경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어두운 땅에 큰 빛이 비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빛이 임하자 흑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1-2절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 빛이 곧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본문에서는 한 아기가 태어날 것임을 예언합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그 때 그 시대에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희망했고 확신했고 노래하게 했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어떠하십니까? 역시 캄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딤후3:1-4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강 건너 광진구에 우등생 고3학년이 공부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공부를 강요하는 모친 살해 하고 8개월간 방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 누가 누구를 탓해야 할까요?
5년 전부터 어머니와 별거했던 아버지는 이날 경찰조사를 받고 애 엄마는 외국어를 잘하는 아들에게 외교관이 되라고 주입했지만 아이는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다. 애 엄마는 극단적이긴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내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고모 C씨는 엄마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심리적 불안감이 더해져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던 것 같다. 조카에게 엄마는 거역할 수 없는 존재였다 A군은 큰아버지와의 면회에서 내가 혼자라고 생각해 아무에게도 힘든 것을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자 잘못하기 전에 각자 나름대로 감당 할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다른 집 가정 문제가 아니라 내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일어 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막상 나에게도 막다른 상황이 온다면 길을 찾지 못하면 어떤 일을 할지를 모르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 상황에 예수께서 빛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번 성탄절에는 내 삶에 내 인생에 내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빛이 비지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모든 축복이 어떻게 나에게 주어집니까?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의 이름은 기묘자(The Wonder)입니다. 원더우먼이라고 있었지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분이란 말입니다.
사 55장에서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뜻은 너희 뜻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높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인류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도 나타내셨습니다.
대속의 죽음, 그리고 이를 통해 구속사를 완성하신 하나님의 지혜는 기묘 그 자체입니다.
그 이름은 모사(Counsellor)입니다.
모사는 책사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컨설턴트입니다.
모든 고뇌하는 문제를 그에게 털어놓고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사는 옳은 것을 택하도록 도와줍니다. 가장 좋은 길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카운슬링 하셨습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사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과연 세상을 감당 할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오늘 새벽에도 이것저것 기도하면서 주께서 모든 것을 다 인도하신다는 은혜를 받고서는 기분 좋게 제자리에서 일어 설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The mighty God)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중 가장 특별난 것은 바로 이 이름입니다.
다른 직함은 사람에게 붙여질 수 있지만 이것은 붙여질 수 없는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을 가진 신적 존재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본체인 분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신인 여호와가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 가장 불만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이사야는 한 아기는 아무리 강력한 제국도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으며 모든 이방신들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전능한 하나님임을 선포합니다.
불신을 회개하고 이 하나님을 믿도록 도왔습니다.
이사야는 실제로 이 하나님이 바벨론을 통해 아수르를 제거하시고, 그 바벨론을 또한 바사를 통해 제거하시고, 바벨론 포로들을 고레스를 통해 귀환하게 하시고 성전을 재건하게 하실 것까지, 승리를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일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를 의지하기만 하면 현실 논리에 연연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음을 이사야는 믿었습니다.
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The everlasting Father)입니다.
아버지는 히브리어로 ‘아비’이며 아람어로 ‘아빠’입니다. 우리말과 똑같습니다.
영원히 살아계시는 아빠라는 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젠 아버지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혁명 그 이상의 호칭입니다.
구약에서 그 백성을 자녀, 자식이라고 표현한 곳은 많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이는 너무나 친밀하고 인격적이고 따뜻한 호칭입니다. 아버지를 아빠라고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버지가 무섭거나, 부를 아버지가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분들,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롬8:14-1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아빠로 부르게 하셨으니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자상한 육신의 아버지도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한 아기는 영원히 함께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도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페이스 북에서 한 음악을 전공하는 여대생이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학력도 좋지 않고 돈도 없고 남들처럼 뛰어난 외모도 가지지 않았고 잘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그래도 감사하다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어서
댓글 중에 학력 좋고 돈도 많고 뛰어난 외모에 할 줄 아는 것 많으면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없을거야
성도 중에서는 옥중에서도 요양병원중에도 가족과 떨어져 멀리 외국에서도 극한 가난 중에도 실연을 당하고 그리고 말 못 할 힘든 가운데서도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은 너무나도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 이름은 평강의 왕(The Prince of Peace)입니다.
평강은 평화, 평안 등의 뜻이며, 원어로 샬롬입니다.
예루살렘도 평화의 성읍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엔 샬롬(평화)이 임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 천사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눅2:13-14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십자가를 앞두고 불안에 떠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부활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 안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에서 나를 건지십니다. 그래서 평강이 넘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할 때마다 그 분이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을 체험합니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어깨에 정사를 메었습니다. 통치권자란 말입니다. 강력한 힘과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신 것이며 전쟁을 종식시키신 것입니다
이제 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죽겠다가 변하여 살겠다가 될 줄로 믿습니다.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원래 죄인된 인간은 사망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 될 떼부터 그랬습니다.
언도 받은 사형수가 언제 사형장으로 끌려갈지 모를 독방에서 마른 침을 삼키며 초초해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세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그리고 방탕하게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목이 조였다는 것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 빛은 700년 후에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온 세상을 밝히 비췸으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내 삶을 즐겁게 할 것입니다.
3절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당시 농경문화, 전쟁문화 속에서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은 추수하는 즐거움이요 전쟁에 승리해서 전리품을 나누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즐거움을 상실한 인생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을 덜어 줄 것입니다.
4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멍에는 짐(burden)이고 채찍은 강요(push)이고 막대기는 짓누름(oppress)입니다.
인간은 짐승이 아닙니다. 자유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죄와 사망에서 자유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그러므로 주님을 모르면 인생이 죽음입니다. 주님을 알면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이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심으로 참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