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헌신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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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67회 작성일 2015-05-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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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2:4-14 하나님께 헌신된 가정
이번 달은 하나님이 주신 가정에 관심을 두는 주일이 많습니다.
가정에 한 중요한 멤버인 어린이에 관심을 가지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는 것이 가장 복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곧 믿음입니다.
오늘 좋은 본보기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의 부자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믿음의 관계입니다
백세가 돼서야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은 그 무엇보다 귀한 존재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다.
재물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놀라움이 아니라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그 아버지도 그 아들이 너무나도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충격적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10-12절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도 놀라워 하셨다는 것입니다.
노년에 얻은 아들은 아브라함의 전부였습니다.
아니 아브라함의 생명이었고 그의 장래의 기대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다. 그런데 바쳤다는 것입니다.
모리아산은 브엘세바에서 사흘 길에 있는 다윗성 북쪽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후일 다윗이 오르난에게 돈을 주고 이곳을 매입한 후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솔로몬은 이곳에 성전을 건축하였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지금은 그곳에 이슬람의 황금 돔 사원이 있고 서쪽에 성벽 일부가 조금 남아 있는데 이곳은 유대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는 통곡의 벽이란 곳이다.
믿음대로 되었다.
아브라함은 길에서 아들의 질문을 받습니다.
7-8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그런데 이 말이 현실화 된 것이다.
13-14절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뿔이 수풀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한 숫양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는 그 양을 잡아 번제를 드렸다.
모든 것이 여호와 이레였다.
도대체 이 양은 어디서 왔는가?
어쩌다가 뿔이 수풀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으며 하필 그때 그 장소에 있게 되었단 말인가?
불신앙의 눈으로 보면 우연의 일치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여호와 이레인 것이다.
숫양이 길을 잃게 된 것도, 모리아 산 아브라함의 제단 앞까지 오게 된 것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으려던 그 찰나에 뿔이 수풀에 걸리게 된 것도 그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길 잃은 수양의 발걸음의 속도까지 조절하시어 아브라함이 칼을 빼들던 바로 그 시각에 도착케 하셨고 그 풀에 뿔이 걸리게 하셨다.
만일 이 숫양이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이삭을 죽었을 것이다.
반대로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번제물을 예비하여 주셨구나하고 좋아하면서 이삭을 묶어 제단에 올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더욱이 칼을 뽑아 높이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다고 할 수 없게 된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이 입증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 모든 일의 속도까지 조정하신다.
하나님은 최선을 결과가 있도록 우리의 삶의 범사를 조절하여 주신다.
하나님보다 앞서가서는 안 된다. 너무 뒤에 가서도 안 된다.
하나님과 함께 가야 한다. 곧 믿음으로 가야합니다
그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 온다.
부자가 언제든지 함께 예배하는 가정입니다.
어려운 일이 잇을 때 함께 기도하며 찬양하며 말씀을 묵상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나옵니다.
대화의 내용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까도 아니었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까도 아니었으며, 어떻게 하면 성공해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 까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제사를 바로 드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5-10절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라면 어떠한 희생이나 죽음도 기쁘게 받아드리려는 각오로 충만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결국 이와 같은 대화는 두 사람의 삶을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부자간에 부모 자식 간의 대화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자가 되었습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시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예수님이 구주이십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은 엄청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역사 속에 대리자로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로 부름을 받는 것 자체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버지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직장생활 하는 것도 어렵고 재능을 가지고 일을 성취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곧 하나님의 성품을 지녀야 되고 또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자녀에게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류를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면 자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바로 부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을 닮고 있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됩니다.
최근에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 이 운동은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성들이 산업 사회에 몰입하면서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저들의 일터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가정에서는 아버지 없는 가정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여자들의 자연히 커지게 되고 남편들은 가정에서 그 권위를 서서히 상실해 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남성들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그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 아버지가 제 위치에 돌아와야 한다. 는 부르짖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에게는 아버지의 권위가 서 있었습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권위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준비하셨습니다.
13절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모리아산 제사의 실제적인 주인공은 번제 할 어린양 즉 수양이죠. 수양이 왜 이리 늦게 나타나서 아버지와 아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왜 뿔이 수풀에 걸려 꼼짝을 못 했을까요?
아브라함은 어린 양이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발견하리라 생각했고 이삭은 아예 어린양이 제사 지낼 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나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 도착하여도 아무것도 없자 아버지와 아들은 속으로 굉장히 당황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이 이 순간에 나타납니다.
인간적인 잔꾀를 쓰지 않고 즉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묶은 것이죠.
히브리서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은 이삭을 지정했고,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자기보다 이삭이 그에게 더 중요했습니다.
그의 미래는 오직 이삭에게 달렸습니다.
이삭이 없으면 자기의 재산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땅의 티끌처럼 늘어나게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딜레마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미래를 포기하라는 요구와 미래를 준비하라는 요구 사이에서 힘들어 합니다
이삭은 언약의 씨, 즉 아브라함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알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삭을 통하여 성취하실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왜 자식을 잡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실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었다.
이삭을 통하여 후손이 번창하리라는 것을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일지라고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려서 자손이 번창하게 될 것으로 믿었다.
히브리서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바로 이러한 믿음이 이삭을 제물로 마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기에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갔다.
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리아산으로 향한 것은 이삭을 죽을 것으로만 생각하고 침통한 마음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보기 위하여 기대에 찬 마음으로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사흘 길이었다.
더욱 믿음이 요구 되었던 것은 아들과의 관계입니다.
모리아산 아래 두 사환을 머물게 하고 번제에 쓴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이삭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평상시에 드리는 제사법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번제물을 사람이 준비해 갔던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드렸을 뿐입니다.
이제는 사람의 한계를 넘는 재물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도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마음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더 이상 왈가왈부 할 필요도 다툴 이유도 없고 절대 평안 절대 안심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그 방법입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7-10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이 장면에서 여러분은 누구에게 주목하고 있는가?
칼을 든 아브라함인가? 묶여있는 이삭인가?
누구의 믿음이 더 큰가? 누구의 순종이 더 큰가?
죽이는 입장과 죽는 입장, 어느 쪽의 희생이 더 큰 것인가?
더 이상 이것은 논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순종과 희생의 재물은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활한다면 이제 나에게는 여호와 이레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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