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쓰고 간절히 원하는 아버지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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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34회 작성일 2012-04-05 10:46본문
누가복음22:39-46 힘쓰고 간절히 원하는 아버지의 뜻
미국의 번성은 청교도들의 신앙을 근거를 둔 삶의 실천이었다고 합니다.
청교도 신앙이란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그리스도의 정신을 모든 생활가운데 적용하는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가정생활등 모든 분야에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모든 곳에는 이런 정신이 묻어져 있음을 보고 강대한 미국이 유지되어 가는 정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이러한 정신이 퇴각되어 모든 이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이제 성경을 두고 선서를 하듯이 이슬람 코란을 두고 행하자는 이들이 나오고 교육적인 면에서는 국공립학교의 채플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을 필수 과목에서 제하려고 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모든 지폐와 동전에 기록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IN GOD WE TRUST 라는 문구를 삭제를 요구하고 사회 가정에서는 이미 켈리포니아주를 위시하여 몇몇 주에는 동성연애자 합법화를 동성부부가 탄생하고 성적인 혼란을 가져 오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마저 세속화 되고 변질이 되어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가고 있는 기업들과 교회와 인물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을 돌릴 일입니다.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칙필레(Chick-Fil-A) 요식업은 지난해 처음으로 연매출 4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불경기 중에는 오히려 2010년보다 13% 가량 성장한 수치다. 44년 연속 성장하는 기록을 세웠다. 성경적 운영방식으로 잘 알려진 크리스천 기업 칙필레는, 1967년 트루엣 캐시에 의해 설립됐다. 현재는 그의 아들 댄 캐시가 이어받아 기업의 목적이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칙필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의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기업의 목적 역시 꾸준히 지키고 있다. 설립 이후부터 칙필레는 지금까지 40년 넘게 보수적인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일례로 남자 직원들은 꼭 정장 바지를 착용하고 칙필레 넥타이를 매야 한다. 콧수염까지는 허용되지만 턱수염은 허용되지 않는다. 칙필레가 여는 연례행사에는 그 흔한 알코올은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다. 주일에는 식당 문을 닫는 것을 철칙으로 하며, 직원들이 쉬거나 예배를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일주일의 14%의 매상이 주일에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5억7300만 달러를 손해 본 것이지만, 칙필레 경영진들은 그 돈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고 말한다. 설립자 트루엣 캐시는 주일에 문을 닫는 것에 대해 우리가 선택한 가장 좋은 경영 전략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체인점 사장들이 모이는 수련회에는 모든 것이 기도로 시작될 정도다. 트루엣 캐시 회장은 2007년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한다며 우리가 하는 일에서 연합하고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본문에도 너무나도 놀라운 기도가 있습니다.
42절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며
44절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바로 이 같은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나 같은 죄인까지 구원에 이루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내 뜻을 주장하는 때가 없습니다.
과연 내 뜻을 세우므로 인간이 무엇을 이루었습니까?
사실 인류 역사를 볼 때에 그 뜻은 이루어 진 것이 없었습니다.
공들어 애쓴 바벨탑과 같이 무너졌습니다.
한나의 고백과 같이
삼상 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행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이제 더 이상 내 뜻에 목을 매는 어리석은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가륫유다는 내 뜻에 진짜로 목을 매 버렸습니다.
아버지의 뜻 이것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하고 편하게 하고 짐을 덜게 만들고 소망적이게 하고 실제로 그 뜻만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시37:5-6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그러면 내 뜻과 하나님의 뜻과의 관계성을 보겠습니다.
내 뜻이 하나님의 뜻으로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곧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아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내 뜻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기도 속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보게 됩니다.
42절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기도가 잘 못 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형을 치루지 않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방법이 없겠느냐? 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이 당해야 할 고난의 잔이 지나가게 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알고도 피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닥칠 어려운 일을 피하게 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 기도는 내가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품위 있는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요, 수치스러운 죽음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손대대로 나무에 달리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신21:2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사실 하나님을 믿되 다른 방법으로 내 프라이버시 상하지 않게
주님은 밤새도록 이를 두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42절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생각의 반전(反轉)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매력입니다.
자기의 부인 사실 누가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하느냐?
나 자신입니다. 엉뚱한 사람을 정죄하고 못을 박아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주관대로 내 뜻대로 하려는 나를 못 박은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의 요건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머리나 능력이나 힘이나 돈이 아닙니다. 학문이나 혈통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제일 조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자는 누구입니까?
많은 일을 한 사람, 인류의 평화와 복지에 공헌한 사람?
에디슨처럼 발명을 많이 하거나 알렉산더처럼 땅을 많이 정복한 사람? 슈바이처나 테레사 수녀처럼 남을 위해 산 사람? 누구입니까?
가장 큰 사람은 남과 상관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과 상관이 있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크게 되는 방법 역시 간단합니다. 땀과 피를 흘려서 될 일이 아닙니다. 자기를 낮추면 됩니다.
마귀는 스스로 높아지려고만 하다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사14:13-15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스스로 낮아지려고만 했던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 되셨습니다.
요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이런 예수님을 하나님은
빌2:8-1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구하는 바는 내 뜻의 관철이 아니라 내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을 쳐 하나님께 복종시키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러니 그 기도가 내 육신의 소욕과 얼마나 충돌이 되겠습니까?
마귀가 얼마나 유혹하고 조롱하였을 것입니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걸 들고 나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으로 시험합니다.
미치겠습니다 내가 그래도 목산데 장로데 권사데 이것 때문에 힘이 듭니다.
마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27:40-42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이런 상황에서 기도가 간절해 지지 않을 수 없고 삶이 깨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44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이 보여주신 기도에 의하면,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기도에 대한 주님의 교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6:33-3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이런 기도에 성령이 역사하고 천사가 도와주는 것입니다.
맨날 기도하기는 하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응답이 없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러니 하지 말자 하는 것 아닙니까?
맨날 내 기도 들어 달라는 것으로 목이 메어 있으니 제대로 시원함을 얻지 못하고 기도하는 재미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2주 만에 제 자리에서 기도하는데 이 자리가 얼마나 감사하고 명당자리인지 제게 기도하는데 힘을 주었습니다. 무슨 기도 드리신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화평 제단에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성도들에게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종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하는데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자신감이 쏟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이기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마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했드라면 상당히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시기 전에는 고민하여 죽게 생겼습니다.
마26:37-38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구한 후에는 벌떡 일어나셔서 로마 병사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할렐루야!
내가 너희가 찾는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뜻을 안 이상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담대하고 당당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떳떳하시고 피하지 않았습니다.
눅 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주님은 사명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신앙생활을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에 생명을 바치고 전력을 쏟아야 합니다.
누구라도 십자가에서 치욕스럽게 죽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십자가를 피하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좋은 신앙의 습관입니다.
시험에 드는 사람은 맨날 시험에 듭니다. 이기는 사람은 시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맨날 이깁니다.
예수님도 신앙의 습관이 있으십니다.
39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신앙의 습관이 안 된 제자들은 맨날 시험이 들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니 기도하지 않고 슬픔에 잠겨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나의 뜻을 이루어주소서라고 기도한 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과 별도로 자신의 뜻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올리브기름을 짜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는데 먼저 올리브 열매를 부수어야 하고, 다음에 부순 열매를 바구니에 넣어 무게 추나 나사 등을 이용해 기름을 짜냅니다. 무게 추에 올리는 돌은 각 단계마다 무게가 달랐습니다. 처음 가장 가벼운 돌을 사용해서 짠 기름은 성전에 바치는 가장 거룩한 기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처음 짜고 남은 찌꺼기를 더 무거운 무게 추를 사용해서 다시 짜서 얻은 기름은 가정에서 식용으로 사용했습니다. 남은 찌기에 다음 단계의 무게 추를 올려서 세 번째로 짠 기름은 가정에서 올리브 등잔을 밝히는데 쓰였고, 여자들 화장품과 약품으로 쓰였습니다. 더 무거운 무게 추를 이용해서 남은 찌꺼기를 짜면 이 기름에 잿물을 부어 비누를 만드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올리브 나무는 성서 시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땔감이었기에 찌꺼기조차 버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겟세마네는 틀을 뜻하는 가트와 올리브기름을 뜻하는 슈마님이 합쳐진 복합단어로서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기 위해 치열한 영적 전투를 벌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도와야 할 만큼 처절했습니다.
그렇게 힘을 썼는데 기도하고 나면 힘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신 후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온전히 불태우셨습니다.
주님을 본받아 온 힘을 다하여 기도와 삶을 한번 드려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반드시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미국의 번성은 청교도들의 신앙을 근거를 둔 삶의 실천이었다고 합니다.
청교도 신앙이란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그리스도의 정신을 모든 생활가운데 적용하는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가정생활등 모든 분야에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모든 곳에는 이런 정신이 묻어져 있음을 보고 강대한 미국이 유지되어 가는 정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이러한 정신이 퇴각되어 모든 이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이제 성경을 두고 선서를 하듯이 이슬람 코란을 두고 행하자는 이들이 나오고 교육적인 면에서는 국공립학교의 채플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을 필수 과목에서 제하려고 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모든 지폐와 동전에 기록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IN GOD WE TRUST 라는 문구를 삭제를 요구하고 사회 가정에서는 이미 켈리포니아주를 위시하여 몇몇 주에는 동성연애자 합법화를 동성부부가 탄생하고 성적인 혼란을 가져 오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마저 세속화 되고 변질이 되어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가고 있는 기업들과 교회와 인물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을 돌릴 일입니다.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칙필레(Chick-Fil-A) 요식업은 지난해 처음으로 연매출 4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불경기 중에는 오히려 2010년보다 13% 가량 성장한 수치다. 44년 연속 성장하는 기록을 세웠다. 성경적 운영방식으로 잘 알려진 크리스천 기업 칙필레는, 1967년 트루엣 캐시에 의해 설립됐다. 현재는 그의 아들 댄 캐시가 이어받아 기업의 목적이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칙필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의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기업의 목적 역시 꾸준히 지키고 있다. 설립 이후부터 칙필레는 지금까지 40년 넘게 보수적인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일례로 남자 직원들은 꼭 정장 바지를 착용하고 칙필레 넥타이를 매야 한다. 콧수염까지는 허용되지만 턱수염은 허용되지 않는다. 칙필레가 여는 연례행사에는 그 흔한 알코올은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다. 주일에는 식당 문을 닫는 것을 철칙으로 하며, 직원들이 쉬거나 예배를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일주일의 14%의 매상이 주일에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5억7300만 달러를 손해 본 것이지만, 칙필레 경영진들은 그 돈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고 말한다. 설립자 트루엣 캐시는 주일에 문을 닫는 것에 대해 우리가 선택한 가장 좋은 경영 전략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체인점 사장들이 모이는 수련회에는 모든 것이 기도로 시작될 정도다. 트루엣 캐시 회장은 2007년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한다며 우리가 하는 일에서 연합하고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본문에도 너무나도 놀라운 기도가 있습니다.
42절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며
44절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바로 이 같은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나 같은 죄인까지 구원에 이루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내 뜻을 주장하는 때가 없습니다.
과연 내 뜻을 세우므로 인간이 무엇을 이루었습니까?
사실 인류 역사를 볼 때에 그 뜻은 이루어 진 것이 없었습니다.
공들어 애쓴 바벨탑과 같이 무너졌습니다.
한나의 고백과 같이
삼상 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행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이제 더 이상 내 뜻에 목을 매는 어리석은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가륫유다는 내 뜻에 진짜로 목을 매 버렸습니다.
아버지의 뜻 이것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하고 편하게 하고 짐을 덜게 만들고 소망적이게 하고 실제로 그 뜻만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시37:5-6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그러면 내 뜻과 하나님의 뜻과의 관계성을 보겠습니다.
내 뜻이 하나님의 뜻으로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곧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아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내 뜻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기도 속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보게 됩니다.
42절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기도가 잘 못 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형을 치루지 않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방법이 없겠느냐? 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이 당해야 할 고난의 잔이 지나가게 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알고도 피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닥칠 어려운 일을 피하게 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 기도는 내가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품위 있는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요, 수치스러운 죽음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손대대로 나무에 달리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신21:2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사실 하나님을 믿되 다른 방법으로 내 프라이버시 상하지 않게
주님은 밤새도록 이를 두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42절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생각의 반전(反轉)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매력입니다.
자기의 부인 사실 누가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하느냐?
나 자신입니다. 엉뚱한 사람을 정죄하고 못을 박아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주관대로 내 뜻대로 하려는 나를 못 박은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의 요건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머리나 능력이나 힘이나 돈이 아닙니다. 학문이나 혈통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제일 조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자는 누구입니까?
많은 일을 한 사람, 인류의 평화와 복지에 공헌한 사람?
에디슨처럼 발명을 많이 하거나 알렉산더처럼 땅을 많이 정복한 사람? 슈바이처나 테레사 수녀처럼 남을 위해 산 사람? 누구입니까?
가장 큰 사람은 남과 상관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과 상관이 있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크게 되는 방법 역시 간단합니다. 땀과 피를 흘려서 될 일이 아닙니다. 자기를 낮추면 됩니다.
마귀는 스스로 높아지려고만 하다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사14:13-15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스스로 낮아지려고만 했던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 되셨습니다.
요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이런 예수님을 하나님은
빌2:8-1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구하는 바는 내 뜻의 관철이 아니라 내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을 쳐 하나님께 복종시키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러니 그 기도가 내 육신의 소욕과 얼마나 충돌이 되겠습니까?
마귀가 얼마나 유혹하고 조롱하였을 것입니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걸 들고 나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으로 시험합니다.
미치겠습니다 내가 그래도 목산데 장로데 권사데 이것 때문에 힘이 듭니다.
마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27:40-42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이런 상황에서 기도가 간절해 지지 않을 수 없고 삶이 깨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44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이 보여주신 기도에 의하면,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기도에 대한 주님의 교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6:33-3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이런 기도에 성령이 역사하고 천사가 도와주는 것입니다.
맨날 기도하기는 하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응답이 없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러니 하지 말자 하는 것 아닙니까?
맨날 내 기도 들어 달라는 것으로 목이 메어 있으니 제대로 시원함을 얻지 못하고 기도하는 재미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2주 만에 제 자리에서 기도하는데 이 자리가 얼마나 감사하고 명당자리인지 제게 기도하는데 힘을 주었습니다. 무슨 기도 드리신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화평 제단에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성도들에게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종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하는데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자신감이 쏟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이기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마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했드라면 상당히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시기 전에는 고민하여 죽게 생겼습니다.
마26:37-38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구한 후에는 벌떡 일어나셔서 로마 병사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할렐루야!
내가 너희가 찾는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뜻을 안 이상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담대하고 당당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떳떳하시고 피하지 않았습니다.
눅 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주님은 사명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신앙생활을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에 생명을 바치고 전력을 쏟아야 합니다.
누구라도 십자가에서 치욕스럽게 죽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십자가를 피하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좋은 신앙의 습관입니다.
시험에 드는 사람은 맨날 시험에 듭니다. 이기는 사람은 시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맨날 이깁니다.
예수님도 신앙의 습관이 있으십니다.
39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신앙의 습관이 안 된 제자들은 맨날 시험이 들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니 기도하지 않고 슬픔에 잠겨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나의 뜻을 이루어주소서라고 기도한 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과 별도로 자신의 뜻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올리브기름을 짜는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는데 먼저 올리브 열매를 부수어야 하고, 다음에 부순 열매를 바구니에 넣어 무게 추나 나사 등을 이용해 기름을 짜냅니다. 무게 추에 올리는 돌은 각 단계마다 무게가 달랐습니다. 처음 가장 가벼운 돌을 사용해서 짠 기름은 성전에 바치는 가장 거룩한 기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처음 짜고 남은 찌꺼기를 더 무거운 무게 추를 사용해서 다시 짜서 얻은 기름은 가정에서 식용으로 사용했습니다. 남은 찌기에 다음 단계의 무게 추를 올려서 세 번째로 짠 기름은 가정에서 올리브 등잔을 밝히는데 쓰였고, 여자들 화장품과 약품으로 쓰였습니다. 더 무거운 무게 추를 이용해서 남은 찌꺼기를 짜면 이 기름에 잿물을 부어 비누를 만드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올리브 나무는 성서 시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땔감이었기에 찌꺼기조차 버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겟세마네는 틀을 뜻하는 가트와 올리브기름을 뜻하는 슈마님이 합쳐진 복합단어로서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기 위해 치열한 영적 전투를 벌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도와야 할 만큼 처절했습니다.
그렇게 힘을 썼는데 기도하고 나면 힘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신 후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온전히 불태우셨습니다.
주님을 본받아 온 힘을 다하여 기도와 삶을 한번 드려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반드시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