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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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14회 작성일 2012-04-0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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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16:5-14 선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미국의 C.I.T.대학은 카네기공과대학을 말합니다. 이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 인생살이에 실패한 사람들 다시 말해서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중에 일만 명을 표본 조사하여 이들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연구원들이 연구하기에 앞서 이분들이 지식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혹은 무능해서, 능력이 없어서 실패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의외의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이 결여되어 실패한 사람은 불과 15% 밖에 없었고, 그밖에 85%의 사람들이 인간관계의 잘못에서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람관계가 왜 그리 중요한 것인가?
성경에서 보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곧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사람만이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약3:8-10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가 사람을 저주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입니다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사람을 욕하는 것은 지옥을 면치 못한다고 했으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의 행동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사람과의 바른 관계가 형성되어 지는 것입니다.
마22:36-40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제 내 자신이 축복의 사람이 되어지는구나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나와 관계된 사람을 하나님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곳에서 시작이 됩니다.
본문은 역시 사람과의 관계성이 하나님과의 관계로 바라보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10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절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그리고 이 모든 일에 판단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12절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오히려 그 저주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을 가져 올 수 있는 모습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관계성을 하나님과 관련지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선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롬8:2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화라도 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신23: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사람과의 모든 관계성을 인간적으로 힘든 것으로만 여기지 말고 선으로 복으로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관계에서 당하는 힘든 이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
이것은 자신에게 잘못이 없으나 당하는 고난이다.
그 때 그 고난을 인하여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잔 인줄 알고, 하나님을 생각하여 참으면 좋은 인격이 만들어진다.
하나님께서 이런 고난을 주시는 것은 그 고난을 통해 성도를 연단시켜 쓸 만한 그릇을 만들고 결국은 큰 복을 주시려는 사랑입니다.
벧전 2:19-20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내 잘 못으로 인하여 오는 고난.
죄로 인하여 받는 고난은 칭찬받을 바는 못 되나 그로 인해 회개하게 되고 낮아지게 되므로 그것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나아가다가 멸망의 자리에 들어갈 터인데 고난을 당하므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키게 되므로 복된 일이다.
롬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끝까지 감당하시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바르게 행함으로 받는 고난.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은혜요 상급이다. 선을 행한 것 자체가 벌써 은혜이며 영적 소득이 되었고 그 고난 가운데서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마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 역시 십자가의 고난을 하나님 앞에서 잘 감당하셨습니다.
벧전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내가 바르게 하는데 왜 어려움이 오지 하고 투덜투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예수님은 영광이라고 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그러므로 성도에게 잘했든지 잘못했든지 상관이 없이 오는 고난은 다 유익을 주기 위해 주시는 것이며 제일 좋은 것은 적극적으로 선을 위하여 허락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잘 감당하지 못함은 하나님을 생각하기 보다는 인간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원로인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욕을 하며 저주를 합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베냐민 지파인 사울의 왕통을 유다 지파의 다윗이 폭력으로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이 세우셨는데 시므이는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지금 그 벌을 그 아들 압살롬에게서 받는 것이야
아들이 아버지의 왕권을 노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살해하고 왕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인간적으로 이 사실을 못 마땅하게 바라보는 자가 있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입니다.
그는 다윗에게 저주하는 시므이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여기고 다윗 왕에게 목을 베도록 청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목을 쳐는 것이 맞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시므이도 그리고 아비새도 잘 못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는 시므이도 아비새도 잘 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가운데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10-11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저주하도록 버려둠은 하나님이 저주케 하였다.
피를 흘린자여 사악한 자여 이 말은 왕인 다윗으로서는 도저히 참기 어려운 저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참기 어려운 저주의 말과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므이가 저주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시켜서 자기에게 징벌로 주신 줄 알고 믿음으로 잘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시므이를 시켜 다윗을 저주하라 하셨는데 어느 누구도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들 압살롬도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하물며 다른 지파 출신인 시므이가 자신에게 저주 한 마디 한 것쯤이야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 여겼다.
잠26: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저주 받을 만한 일이 없는 사람에게 공연히 저주하는 것은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같이 그 저주가 그 사람에게 이르지 아니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저주하도록 버려둠은 자신의 죄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였다.
애3: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도 자기의 죄 값인 줄 알고 회개하여 겸비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압살롬의 반역은 물론 시므이의 저주까지 포함하여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저질렀던 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인정하였다.
삼하12: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를 괴롭히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보복하거나 불평하기 보다는, 자신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여기고 철저히 근신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이는 과거에 저질렀던 자기의 추악한 죄를 먼저 생각하고 이제 인간들을 통해 당하는 억울함이 모두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달았습니다.
무조건 내 어려움에서 탈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끝까지 달게 받는 것도 큰 은혜입니다.
저주하도록 버려둠은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맡긴 믿음입니다.
12절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잠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잠16:2-4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주님이 어떻게 보시는가가 문제이며 하나님께 어떻게 인정받는가가 문제이지 사람의 판단에 문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후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로저스의 인간관에서 인간마다 현실을 각기 달리 지각하고 주관적인 경험이 행동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외부현실 보다는 오히려 내부적인 경험에 의해 이끌어 진다는 것이다.
자기충족, 성숙의 방향을 지향하는 모든 동기를 인간 내부에서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전제하지 못한 인간관이라고 하겠습니다.
모든 관계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 맡기는 믿음
시므이를 통해서 받는 억울한 참소와 거짓된 정죄들로 마음이 아픈 상황에서도 다윗은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여호와의 편에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당하는 어려움이 오히려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12절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작은 긍휼 자체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살다가 보면, 아니 그것도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보면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서 치른다면 선이 되고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가 됩니다.
긍휼은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있는 그 자체가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나를 보시면서 불쌍히 여기시고 선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시므이의 저주로 인하여 자기에게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을 기대하였다.
현재 자기의 억울한 형편을 살펴보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또한 일정한 징계의 기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위기 가운데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시므이를 통해 자기를 더욱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게 만들고 그 은혜를 받을 기회를 만드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고난의 대명사로 욥은 역시 멋있는 말을 했습니다.
고난을 고난으로만 보았던 자신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42:2-6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이제 다윗의 삶은 사람을 대적으로 만드는 삶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기 보다는 자기의 부족함을 먼저 살피는 삶이었습니다.
11절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세상을 살면서 좋지 않은 관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남을 탓하기 보다는, 사람을 대적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대하여 자기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진실로 세상의 잘못을 용서하기를 구할 때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변화 시키고 내입의 저주를 축복의 말로 바꾸고 남의 저주도 선으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의 사람이 될 것이다.
내 사람만을 대하고 산다고 한다면 내 인간 본성은 전혀 변화를 기대할 수도 없으며 진정한 신앙인 이라 할 수도 없을 것이며 끊임없는 다툼과 미움 시기 질투와 저주 속에서 한없는 괴로운 삶을 살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저주를 선으로 바꾸어 내 주위의 삶을 하나님의 축복의 삶으로 바꾸어나가는 일에 내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사람과의 관계성에서 보여 주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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