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구원은 영원히 빛나는 상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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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96회 작성일 2012-04-0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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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2:1-4 영혼구원은 영원히 빛나는 상급
청소년들의 희망직업 1순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방송연예 관련학과가 전국에 136개 대학이 있고 그 정원도 1만4,000명에 달합니다. 스타를 만드는 연예기획사도 2,000개가 넘고 스타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100만 명이 넘었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스타는커녕 스타킹이 되어 고전을 면치 못하지 않습니까?
스타가 되면 대단하지요
잘 모르기는 하지만 군에서도 별을 따면 은 그 별 때문에 오는 특혜가 80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나 모두가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스타는 결코 본인을 만족 시켰다거나 하기 보다는 유지하기 위한 힘듦이 그들을 더 힘겹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스타가 되지 않았더라면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께서 전화가 온 적이 있는데 헐레벌떡 거리며 목사님 아무개 스타가 자살을 하였답니다. 스타가 자살을 해 빅 뉴스였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이 자살을 자랑스럽게 하기 시작했어요
스타가 자살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스타도 자살을 하였으니 스타가 스타가 아니라 스타가 된 것이 자살을 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도 보니 아주 빛나는 스타를 소개합니다.
세상적인 스타가 아니라 우주 적인 스타입니다.
3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고 별과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꺼지지 않는 영원한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스타는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함으로서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옳은 데로 돌리키므로서 스타가 된다는 말은 진정한 스타는 생명을 살리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연기를 하든지 코미디를 하든지 스포츠를 하든지 노래를 부르든지 춤을 추든지 그것으로 사람을 살리는데 있다면 진정한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웃겼다고 좋고 연기를 잘해서 실감이 나도록 했다 해품달에서 남녀가 키스를 잘했다 실감난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다 스타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빛나는 사람은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종말적으로 생각 할 때에 생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된 학생이 한명 있는데 어제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올립니다.
오늘 역시 예배는 내가 갈망하던 것의 정답이 나왔다 아무개 대학 열심히 섬기겠습니다.
내가 갈망하던 것 정답 내가 힘 있게 살아야 할 것을 얻었답니다.
이것을 전하여 준 자는 틀림없이 그에게는 스타입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을 가르쳐 종말론적인 궁극적인 삶이다고 말합니다.
종말론적인 삶이란 무엇입니까
이 말은 말세가 되었으니까 모든 것을 팽개치고 교회당에 모여서 기도나 하고 성경이나 공부하자 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삶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개판을 치니 말세구나가 아닙니다.
종말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책임 있고 성실 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종말을 언급할 때 그 종말은 두 가지 유형의 종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고 인류 역사가 마지막 막을 내리는 날을 뜻합니다.
성경의 누누이 거듭거듭 계속해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오늘 하루가 그 마지막 최후의 순간을 향해서 더 가까이 임박 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의 확실한 종말이 있는데 개인적인 종말입니다.
비록 우주적 종말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아니 내가 관심이 없다고 해도 개인적인 종말이 눈앞에 임박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누구든지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내가 내 생일을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듯이, 내 마지막 가는 날도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가까와 오고 있으며 여기에 나의 개인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정해진 종말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 때에 나의 존재가 확실해 지기 때문이며 구원이라는 참 맛을 보게 됩니다.
1-2절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그 때는 마지막 종말의 때를 말합니다.
환난 중에 구원을 받고 음부 중에서 영생을 받는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종말이 또한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마지막을 전제할 때에만 그 처음이 진지한 출발이 될 수 가 있습니다.
새 해라는 것도 연말을 전제할 때 비로소 새 해의 출발이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삶은 죽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그 삶은 진정한 의미 있는 삶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옛날 로마의 어떤 황제는 자기의 신하들이 찾아와 알현하고 인사를 할 때마다 이런 인사를 하도록 시켰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그는 자기 삶을 순간순간마다 최후 앞에 세우는 결단을 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당신의 삶은 달라 질 것입니다.
예수님도 종말적인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요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지금 내가 바르게 살아 갈 수 있는 큰 이유는 종말론 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는 하나님이 노아와 그 식구들만을 구원을 맛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노아는 종말의 사상을 가진 삶을 살았습니다.
창6:12-14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노아는 종말 사상을 가지고 120년을 한결같이 배짓는 일 곧 생명을 구원하는 바른 일을 하였습니다.
종말을 알고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모든 사람은 세상적인 것이 삶이 전부인양 살았습니다.
눅17:26-29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이들은 종말이라는 사상이 그들에게 없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사는 자 같이 살고 죽음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자 같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종말론적인 인식의 삶이 나를 올바르게 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다른 이들을 올바르게 인도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스타는 생명의 구원에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이 죽어 가면서까지 스타의식을 가집니다.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 중에 스데반 집사도 있었습니다.
스데반이 죽으면서 고백합니다. 내가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도 원한을 갚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행7:58-60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 사람 스데반이 스타입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올바른 삶의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 사울이 바울이 됩니다.
사울이 회개를 하게 됩니다.
결국 스데반의 이 고백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이 스테반이야 말로 영원토록 빛나는 스타입니다.
다른 이들을 구원하도록 인도하는 삶이 지혜 있는 자의 삶입니다.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히브리어로 이것의 기본적인 뜻은 올바르다, 의롭다, 로서 신앙적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불변하는 신앙적 도덕적 절대기준이 하나님이십니다.
시145: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그러므로 본문의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자 곧 전도자를 의미합니다. 전도자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 잘못을 인정케 하는 회개와,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믿음입니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의를 행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는 스스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을 멀리하고 올바른 행실을 힘쓰는 성결입니다.
그러므로 어원적 의미의 전도자는 세 가지 일을 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며, 성결한 삶으로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전도자에게 주는 축복이 있습니다.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진정한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전도하면 이런 상급을 받게 됩니다. 영원한 빛을 발하는 영원한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살전 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너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종말적으로 진정으로 기뻐하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나로 인하여 구원된 영혼들입니다.
지금까지 장례식을 많이 보았지만, 한 번도 고인은 평생 살면서 몇 명을 전도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고 소개하는 것을 해보지도 본 적도 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케냐의 어느 사업가는 죽을 때까지 평생 273명을 전도하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니 그 부인이 고인의 수첩을 목사님께 전달해주었습니다. 수첩에 보니까, 전도한 사람은 동그라미,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세모, 아직 가능성이 낮은 사람은 X, 이런 식으로 표시해두었습니다. 동그라미를 세어보니 273명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몇 명을 전도하셨습니까?
지금까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고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아직도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만 입니까?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까?
어느 부자가 하나님께 자기 재산을 천국으로 가져가겠다고 졸랐습니다. 거절하다 마지못해 허락합니다. 단 가방 하나에만 담아 올 수 있네. 부자는 꾀를 냈습니다. 자기의 재산을 다 정리하여 금 덩어리로 바꾸었습니다. 큰 여행용 가방에 금을 잔뜩 싣고 천국 문에 도달합니다.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베드로가 그게 뭐요? 하나님 앞에 허락을 받은 겁니다. 한번 보기나 하십니다. 가방을 열어 보았더니 누런 금덩어리가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껄껄 웃으면서 이곳의 길바닥에서 밟고 다니는 보도블록을 왜 가져왔소?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온 바닥에 금이 널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황금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욱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새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행위가 중요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왜 멸망했습니까?
일차적인 이유는 극심한 타락 때문이지만 보다 깊은 이유는 회개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어떤 죄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은 죄를 짓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결국 소돔에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악인이 아니고 의인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작은 의라도 크게 보시고 그 의로 전체를 감싸주십니다.
큰 사건이 나면 세상이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누구누구의 책임이라고 논리적으로 잘 분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논리적으로 명석하게 비평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사람을 찾지 않고 한 사람의 의인을 찾습니다. 즉 나 하나 때문에 내가 속한 곳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게 되는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가져다주지는 않아도 봄이 온다는 사실은 깨우쳐줍니다.
나 한 사람이 용기 있게 일어서면 내가 속한 공동체도 큰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을 소개할 때마다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고 합니다. 악한 길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왕이 되고선 어떻게 정치를 할까 할 때 그 악한 선조 여로보암이 간 길을 따라가 악정을 베풀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여러 남 왕국 유다의 왕들을 소개할 때는 다윗의 길을 따랐다고 소개합니다. 역시 앞선 이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너무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길이 되어 봅시다.
뭐 거창한 인류애 어쩌고저쩌고도 좋지만 그저 삶의 현장에서 주님께로 향하는 생명과 진리로 향하는 조그마한 오솔길이 되어 봅시다.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옵니다.
길은 처음부터 있지 않습니다. 맨 처음 한 걸음을 내딛고 하루하루 발걸음을 계속하면 없던 길도 새로 생깁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여러 사람이 그 뒤를 따르면 길이 없던 우거진 숲 속에도 길이 생깁니다.
내가 먼저 좁은 길, 십자가의 길, 믿음의 길, 의의 길을 앞장서 가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인도하는 사람이 됩시다.
이 사람이 영원히 빛날 스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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