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붙잡힌 삶에 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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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99회 작성일 2012-04-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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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10-14 예수님께 붙잡힌 삶에 상이 있습니다.
자동차 부품 생산하는 대의그룹 채의숭(73·화양장로교회) 회장이 예수를 믿고 세 가지 꿈을 꾼 소년이 있었다. 박사가 되는 것,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 그리고 전 세계 오지에 100개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었다. 시골 소년에게 그것은 허황된 꿈처럼 보였지만 마침내 그는 40대 중반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됐고, 대우그룹 아메리카 사장에 올랐다. 지금은 대기업 회장이 되어 10여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5대양 6대주를 돌아다니며 그동안 98개의 교회를 건축, 100개 교회 건축의 꿈이 코앞에 와 있다. 며칠 전 자손들에게 나는 100개의 교회를 세울 테니 너희들은 1000개의 교회를 세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행히 신앙 안에서 잘 자라 이 아비의 말을 이해해 주더군요. 먹을 것은 남겨 놓을 테지만 나머지 재산은 모두 선교를 위해 쓰겠다고 말했는데 모두 동의해 주었어요. 그는 최근 목사 안수를 받았다. 오지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픈 마음도 한몫했다. 설날과 추석 등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오지의 선교활동에 나선다. 채 회장은 자신을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4대째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으로 3대가 장로요, 삼형제가 장로다. 일가친척이 모두 550여명인데 모두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시더라고요. 신앙을 가진 뒤 늘 십일조를 10분의 3 내고 있지요. 이제 점점 늘여서 10분의 9를 내려고 해요. 복을 많이 받았으니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선한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드리는 삶의 노력을 통해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갚아 주시는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싶습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본문에도 목적을 가지고 달리는 자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상을 위하여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사도 바울입니다.
삶의 목적은 예수님께 붙잡힌 삶이 되셔야 합니다.
붙잡힌 삶이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참여함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맛보는 삶입니다.
죽음을 맛본 자 많이 살아 있음의 환희를 알 수 있습니다.
10-11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려 함 죽으심은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함
내가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기를 원했다하는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데 그 고난에 참여함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을 알고 싶다는 것일까요?
먼저 예수님께서 당하신 그 고난은 인간이 당 할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이 당 할 고난을 왜 예수님이 그 고난에 참여 하셨는가를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한 고난이 누구의 고난인가?
예수님의 고난인가 나의 고난인가
알고 보니 예수님의 고난이 아니라 나의 고난을 예수님이 참여 하셨다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죄도 흠도 없으신 분이 죄인이 당 할 고난에 참여 하신 것입니다.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했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간이 당해야할 고난에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교제 중에 하나로서 뜻과 의지를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상대를 수용하고 받아 드린 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궁물 음식을 함께 한다는 것은 더욱 그러 할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서 킹 제임스 버전에서는 궁물로 변역되어 있었는데 가장 리얼한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이스-헬라어 koinwniva 코이노니아 라는 말은 원래 친교, 교제의 의미를 지닙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없으셔서 얼마든지 그 고난을 피할 수 있으셨던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또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또 인간들이 당하는 고난을 외면치 않으시고 동참하시고자 친히 그 십자가를 코이노니아적 사랑으로 지신 그 깊은 은혜를 알고 싶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장면이 나오지만 의인이라 하는 자는 음식을 같이 하기는 커녕 구역질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막2: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예수님은 인간들의 죄의 결과로 당할 진노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그리고 대표로 홀로 담당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의로움으로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떻게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고난을 다 당하시고 다 경험하시고 나누실 수 있었을까요?
이해되지 않는 은혜의 차원과 사랑의 깊이와 의미와 뜻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한 어려움만 알아 달라고 하지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받은 은혜는 없고 당한 어려움만 있다고 힘들어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당한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측량 할 수 없는 은혜
인간의 속마음, 그 추하고 더럽고 냄새나고 악취 풍기는 그것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그 자업자득의 고난들을 온전히 용서해주시고 구원해 주신 그 은혜를 알고 싶은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은 것입니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이제 내가 당 할 고난에 참여하신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는 더 이상 내가 사는 삶이 아니라 그 은혜를 힘입어 사는 삶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어 내가 죽는 것을 속상해 하지 않고 오히려 자원하고 더 나아가서 기쁨으로 여기게 됩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10-11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축복이라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의 능력을 힘입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께 붙잡힌 받은 자의 삶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목적을 가져야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저서 독서의 바퀴에서 인간은 노예이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선택된 바에 의해서 노예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누구의 노예인가 하는 사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노예라고 생각하나요?
여러분은 지금 어쩔 수 없이 무엇엔가 계속 끌려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습니까?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자기의 존재의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께 포로된 존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그 나름대로의 생을 살아보고자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뵙고는 그 즉시 예수님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은 인생의 목적까지도 바꾸어진 전혀 다른 운명의 생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그의 전 인생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자신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주님의 포로로, 사도로 거룩히 구별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위하여 주님께 택정된바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하 알고 보니 내 인생의 목적이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갈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다만 내가 모르고 있었지 내 인생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셔서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과거가 그렇고 현재가 그렇고, 앞으로의 미래도 응당 그럴 것입니다.
왜요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알고 보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포로 됨을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7:23-24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예수님의 십자가로, 예수님의 핏값으로 내 자신은 주님께 팔린바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죄인된 바울은 노예가 팔리듯이 주님께 분명히 팔린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쓰든지 그 서두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로 시작합니다
약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독일의 신학자 본훼퍼(Bon'haeffer)의 옥중서신 가운데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하지요.
나는 어떤 자일까? 이 고독한 울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어떤 자이건, 아! 하나님이여, 당신은 아십니다. 내가 누구이든, 선하든 악하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건강하든 병들었든, 나는 분명히 당신의 것입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입니까? 나 자신도 나를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생을 어느 정도 살아왔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가는 길, 이것이 내가 선택한 것입니까? 오늘까지의 나의 운명, 이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으로 나를 붙드시어 당신의 사람으로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붙잡힌 삶에는 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 14절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이것 때문에 죽겠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불굴의 믿음을 가지고 부패한 사회를 하나님의 권능으로 변혁시킨 영국의 양심입니다. 그의 생애는 최근 에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영화로 전 세계에 깊은 감동을 준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에 개봉된 영화입니다. 당시 영국 국가 수입의 1/3에 달하는 노예무역을 근절하기 위한 그의 투쟁은 처절했습니다. 18세기 말 세계 최고의 해군력과 상선이 있던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북미대륙으로 실어 나르는 노예무역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당시 영국, 스페인 등이 식민지에 공급한 노예가 3백만 명이라 하니 노예무역은 연간 수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여 식민지산업의 기둥이었고 국가안보에도 큰 공헌을 하고 있었습니다. 까지 했지만 영국이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한다. 1807년 영국 하원 연설에서 영국이 황금에 눈이 어두워 노예제도를 고집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드디어 은 그에게 유례없는 열광과 존경을 보내면서 노예무역금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의 의지와 신념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아예 인류 최대의 악습인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쪽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게 두 가지 목표를 주셨다. 하나는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것이고, 하나는 악습을 철폐하는 것이다. 마침내 1833년 7월 27일 윌버포스가 뜻을 세운 지 56년 만에 영국의회는 노예제도를 영원히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리고 열흘 후 8월 6일 그는 필생의 목표를 이룬 환희와 감격 속에 생을 마감합니다. 일 년 후 1834년 7월 31일 자정을 기해 80만 명의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전 세계 역사에 획을 긋는 엄청난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윌리엄 윌버포스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성경 진리를 정치 무대로 확산시킨 정치변혁의 산 모델입니다.
아가서에 보면 술라미여인과 솔로몬 왕과의 사랑의 표현이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2: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아5:8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하나님의 진정한 부르심을 받는 자는 그 부름에 합당한 삶을 위하여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병이 나고 그것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합당한 선을 이루는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상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은 좌절도 아니고 실망도 아닙니다.
도리어 소망이고 부활이고 생명입니다.
상급입니다.
십자가를 질 때에는 억지로 졌지만 지고 나서 보니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번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영광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인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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