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찬송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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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10회 작성일 2012-04-0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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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1-10 영원히 찬송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가 이런 말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지 않고서 부자가 되는 사람이 없다. 네가 진정으로 성공하고자 한다면 먼저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성공하도록 도와줘라. 당신이 가진 능력, 열정, 희망, 비전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당신에게 나눠줄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도와주는 것은 곧 나의 성공을 위해 도와줄 사람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과 같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줄 사람들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내용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 예수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시기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백마를 타고 칼을 차고 위엄이 가득한 입성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뛰뚱뛰뚱 거리며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군림하기 위하여 다른 이를 희생시키심도 아니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입성은 당신이 스스로 희생의 재물이 되시기 위하여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사람들은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 땅 위에 가장 이상적인 왕국을 세우실 메시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모든 인류의 적들을 물리치는 정복자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원수가 무엇입니까? 질병 가난 전쟁등 이런 것에서 자유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으로 원하지 않습니까?
성공 풍요 건강 인생살이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 주시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분으로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런 분들이 선거철이 되면 많이 나타나 떠들고 다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루살렘에 모여든 많은 무리들은 이 예수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모여 들기 시작했습니다.
8-10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지금 모 후보가 나가면 사람들이 환호성 하는 것 봤지요
대통령 박( )혜 환호성 치고 있는데 무얼 얻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에 박정희 전대통령후보와 김( )중후보가 대통령 연설을 하는데 그때는 지역감정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대구 수성천 변에서 젊고 똑똑하고 잘생긴 김대중 후보가 온다고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동원한 박정희씨 보다 동원을 방해당한 김대중 씨에게 더 많이 모여 저도 나갔다가 악수 한번 하려고 하다가 차에 치어 죽었을 뻔했습니다.
큰 무리가 환영하였다
그들은 단지 오시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능동적으로 나갔습니다.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를 건설 할 왕이여 호산나 호산나 구원하소서 제발 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호산나 호산나 하였던 것입니다.
대중 민중의 어리석음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민중들이 3-4일도 못되어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아 처형하소서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하여 바른 인식이 있어야 민중이 아니라 참된 신앙인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는 틀림이 없으십니다.
절대 주권자 이십니다
그의 주권성을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1-6절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의 전지하심은 맞은편 마을로 가면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전능하심은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허락하였습니다.
이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섬기는 자로 이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어린나귀를 타심으로써 섬기려 하심을 분명하게 표출되었습니다.
나귀는 고대에는 짐을 나르는데 사용되었으며, 특히 왕이나 왕의 특사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는데 어떤 도시에 평화적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에 평화적인 의도로 나귀를 타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모습에서 보여주시는 것은 예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신 것이지 세상을 정복할 왕으로 오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예루살렘입성에서 호산나라고 찬양한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라면서 고함을 질렀을까 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습니까?
누가복음 23: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누가복음 19: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라고 하였으니 찬양한 것은 이제는 바뀐 세상을 보겠다고 하는 기대였습니다.
나귀를 끌고 오는 것을 볼 때에 아니 그 전에 일어난 모든 치유하심과 기적 등을 볼 때에 입니다.
이제 세상이 내가 원하는 데로 되겠구나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지금 무엇을 이루시려고 하십니까?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자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십자가가 없는, 승리와 정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많은 실망을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기대를 채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예수에게 잘못된 기대를 가졌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당한 기대를 배신한 예수가 미웠고 증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되, 그 십자가를 알지 못하고 믿는다고 하면, 언젠가는 예수님을 못 박게 하소서 고함을 치게 될 사람들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요즘에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기적적으로 치유하시는 분이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믿고 암말기 증상을 고쳐달라고 기도하고 기적적으로 나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해서 해결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를 할 때, 오해할 수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신다고 하는 믿음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병이 고쳐지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기도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고쳐주실 수도 있고 또한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능력의 주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쳐주시고 주시지 않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나는 그저 기도할 뿐입니다.
고쳐주시면 감사하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고쳐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이 부족하다고 자책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주님을 욕해야 하고 믿음을 버려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때에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호산나라고 찬양하였다면, 저주와 죽음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것이 바로 나의 죄의 대속을 위한 것인 줄을 알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제대로 보았던 것입니다.
♬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내가 건너야할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 주셨네.
바로, 죽으심이 바로 나의 죄와 허물과 추함을 씻어주시고 용서하시기 위함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발견하며, 감사하며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참예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저 단순히, 나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에 대한 만족과 평안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와 영광을 위하여 나에게 주어지는 고난을 나도 감수하며 살겠다는 각오와 결심이 이 십자가 앞에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각오와 결심이 없으면, 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의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예수님과 그 복음을 배신하고 저버리며 돌아서 버리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호산나가 호산나 되게 하기위해서는,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세상의 개선장군처럼 말을 타고 들어가신 것이 아니고, 바로 나귀를 타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왕은 왕이되, 평화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왕은 왕인데, 섬기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나 또한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종려주일에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십자가는 저주가 아니라 복이 되는 것은 이런 믿음과 자세로 참예하게 될 때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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