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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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689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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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3:16-23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자
뷔페 식당에 가면 갖가지 음식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곳에 있는 음식을 다 먹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입에 맞는 것을 골라서 먹게 됩니다.
또한 각 가정에서 보면 진열장이나, 찬장에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리를 하는 주부들은 잘 알듯이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있지만 그 그릇들을 식탁을 차릴 때마다 다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날에 음식의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그릇은 다 달라집니다.
옷을 하나를 고르는데도 제 마음에 기준을 두고 고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상의 55억의 인구가 있지만 그의 나라로 불러들이는 사람은 55억 인구 전체를 불러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기뻐하는 자를 부르십니다.
한국에 1,000만의 그리스도인 들이 있지만 이 들 모두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교회의 직분자로 다 삼지 않으시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를 삼는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직분을 주시고 또한 특별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다윗의 시대에도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었지만은 다 사용하시기보다는 다윗을 특별히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구약의 사무엘상 16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던 신정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으로 세움을 입었던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제2대왕을 세우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으로 인도하셨고, 이새의 8아들 중에 한 사람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는데 그 8형제 중 막내인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어 왕이 되었으며, 하나님은 목동인 다윗을 통하여 그의 뜻을 다 이루어 나가시고 그 씨에서 약속하신 우리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다윗이 그런 인물이 되게된 이유는 딱 한가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건이나 사람이나 누가 쓰느냐에 따라 가치(價値)가 달라집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보는 칼이 어느 누구에 의해 쓰이느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집니다. 주부의 손에 들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유용한 칼이 되지만, 그러나 강도의 손에 들리면 그 칼은 흉기가 되고 의사의 손에 잡히면 사람을 살기는 수술용 칼이 됩니다.
가끔씩 신문이나 뉴스에 보면 어떤 물건이나, 물품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가격에 팔렸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유명한 인사나 혹은 연예인등이 사용하였다고 해서 놀라운 부가 가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에 의해 쓰임 받느냐? 하는 문제는 엄청난 차이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똑 같이 사람이 같은 학교를 졸업을 했는데 대통령이 쓴다면 그 사람은 비서도 되고 국무총리도 되고, 장관도 되지만 그러나 깡패나 사기꾼이 사용한 한다면 그 수하의 똘마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게 붙잡혀 사용되느냐에 따라 상당히 그 인생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이스라엘 왕은 왕이기는 하지만 사탄에 의해 쓰임을 받으니 매일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의 종국은 비참하게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다윗이라는 사람은 비록 목동이지만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큰 일들을 이루어 가시고, 그 어떤 누구와도 논 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놀라운 은혜와 복들을 받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다윗처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고, 은혜와 복을 주심을 경험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다릅니다. 은혜가 있고 복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큰 믿음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 보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쓰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불행합니다. 그의 종국은 비참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그러했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가룟유다가 그러했습니다. 똑같이 은혜의 자리에 참여하고, 말씀을 배우고, 놀라운 기적과 이적을 목도하면서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하고 사탄에 쓰임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은혜의 일들에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은 한 사람도 사탄에, 마귀에게 쓰임을 받아 종노릇 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복된 자들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고 그리고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결점이 있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가 결점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점을 회개하지 안았기 때문에 사용되지 못하는 것이지 회개 할 때에는 놀랍게 사용되어 집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사용하실 때에 때때로 사람에게 나타난 결점이 있음에도 그를 사용하십니다.
다윗은 인간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문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라합도 여리고 성에서 기생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도 급한 성격을 소유하여 여러 번 실수하며 예수를 부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도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고 그들을 잡기 위하여 내려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결점을 있음에도 외부적인 허물을 보시지 않고 회개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쓰시기를 원하시지만 합당한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렘4:25에 “내가 본즉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다윗을 가리켜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한 사람은 폐하여지고 한 사람은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는가? 다윗이 범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는가?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다윗도 별 수 없는 인간이었음을 압니다. 그는 백성들은 전쟁터에 나아가서 암몬 족속들과 싸우는데 낮잠을 즐기다가 일어나 목욕하는 이웃집의 여인을 향하여 음욕을 품게됩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을 범한 후에 임신하게 되자 이 일을 합법화 하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집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그 장수는 지금 군사들은 전투 중인데 자신만 집에서 쉴 수없다는 생각으로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윗의 계책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국가에 충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신실된 장수 우리야를 전쟁터에 내어 보내 죽게 하는 밀서를 우리야의 손에 쥐어보냅니다. 결국 다윗의 명령대로 군대장관 요압은 격렬한 전쟁 중에 우리야만 남겨놓고 퇴각하므로 그를 죽게 만듭니다.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살인을 행했습니다. 다윗은 살인 교사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파렴치한 죄인이었습니다(삼하 11장).
그 뿐이 아닙니다. 나라가 태평할 때에 그의 생각에는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강성했는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불일 듯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쟁에 나갈 만한 장정들을 헤아리게 하였습니다. 이런 악한 일에 대하여 군대장관 요압은 극구 말렸습니다. 요압은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왕의 눈에 보게 할 수 있다고 하며 간청하는 것도 뿌리치고 백성계수를 명령합니다. 다윗은 교만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비교하면 특별히 더 나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간음을 했다느니 살인을 했다느니 그런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마음에 들고 사울은 마음에 들지 않아 페하였다는 것입니까?
단지 하나 다윗은 회개하는 자였지만 사울은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의 회개는 얼마나 유명합니까?
눈이 짓무를 정도요 밤마다 요를 적실 정도니 급기야(及其也)는 그 마음에 정한 마음이 창조되지 않았습니까?
이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은 잘못을 뉘우치는 회개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큰집에 많은 그릇이 있지만 주인은 금 그릇이라고 사용하고 토기 그릇이라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을 사용합니다.
야곱이 베델로 하나님을 만나려 갈 때에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을 버리고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손이 짧아 너희를 돕지 못함이 아니요 귀가 먹어 듣지 못함이 아니라 다만 나와 너 사이에 죄악이 구렁을 멀어지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쓰임을 받게 됩니까?
여러분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게 있는 재능, 물질, 건강, 지식들을 하나님께 쓰임을 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눅19:29-36 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시는데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할 때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동네에 가서 예비 되어있는 나귀를 끌고 오게 했습니다. 만약에 나귀의 주인이 왜 가지고 가느냐?라고 묻는다면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합니다. 나귀를 키워온 주인은 주가 쓰시겠다할 때에 두말하지 않고 내어 줍니다. 그는 주님에 의해 그의 나귀가 쓰임을 받는 것을 너무나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주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주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복입니다. 또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주께 사용되어 진다는 데는 골리앗 앞에서도 설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위하는데는 풍성하고 주 앞에는 인색하는 자가 아니라 나를 향하여는 죽고 주를 향하여는 사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 할렐루야!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 것이라 할 수 있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까?
사람의 표준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 곧 말씀의 빛에 비추어 그 빛 안에서 부끄러움이 없다면 참된 일군으로 쓰여지는 겁니다.
세상의 높은 지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지는 조건이 아닙니다. 물질과 명예를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출세하여 혹은 돈벌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전에 가졌던 어리석은 생각에서 속히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하게 사용되어 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119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윤리와 기준이 없는 시대요. 참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올바른 사상도 철학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순간마다 달라집니다. 단지 내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즉 유익이 있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고 의미가 있고 그리고 친구가 됩니다. 그 장소에 무슨 유익이 있느냐에 따라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를 판단합니다. 결국 삶의 의미도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하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떤 삶이 가치 있습니까? 참된 가치가 힘에 있지 않습니다. 힘없는 사람이라고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돈의 힘, 권력의 힘, 권세의 힘, 숫자의 힘, 학력의 힘 그래서 그 힘들이 가치 있고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까지도 그 힘을 좇아 살아가시렵니까? 무엇이 나의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는 삶이 그의 삶의 힘입니다.
주를 힘입어 담장을 넘고 발을 타고 전쟁터를 뛰어 다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삶이 가치 있는 삶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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