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풍성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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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2012-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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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1-7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풍성한 삶
로버트 멍어(Robert Munger)의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My Heart Christ's Home)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멍어는 날마다 새벽에 예수님을 만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바쁜 삶 가운데서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어느 날 응접실 앞을 지나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주님과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기다리신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들어가 묻습니다. 주님, 새벽마다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그때 음성이 들려옵니다. 너는 네가 필요해서 나를 찾는 존재로만 알았느냐? 나에게는 너를 만나는 일은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단다. 그 순간 멍어는 예수를 마음에 모셔들었습니다. 그 후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저는 그 분과 친해지기 위하여 마음의 집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지저분한 서재를 깨끗하게 치워주셨습니다. 식욕을 채우던 주방을 하나님의 양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거실을 그리스도와 대화하는 장소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작업실에는 그 분의 손길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예 집문서를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자신으로는 이룰 수 없는 행복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이 그의 삶에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서의 풍성한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내 삶이 풍성하지 못함은 어찌 된 일입니까?
진정으로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입으로는 예수를 주라 고백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주님을 진정으로 영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님이 심령 속에 계시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집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내 삶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풍성한 삶이 되시려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 그리스도와 관여치 못한 것은 정리해 버려야 합니다.
왜요
그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기 전에 순전히 인간적으로 아들을 만들었는데 그게 이스마엘이라고 합니다.
그 이스마엘과는 아무런 하나님과의 약속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복을 이어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아내 사라를 통하여 얻는 아들 이삭을 통하여 주시는 축복입니다.
창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삭이라는 약속의 자녀로 인하여 영육 간에 풍성함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아닙니다. 이것은 내 쫒아야 합니다.
한 때는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는 위로가 되었지만 이제는 내 보내야 합니다.
놔두면 놔둘수록 분쟁이 되고 근심이 되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 버리라고 합니다.
갈4:28-31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혹시 농사가 끝난 밭에서 가지치기를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까?
과수원 밭은 묵혀 둠으로서 밭을 망친 적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내 밭의 수확을 위하여 밭의 주인은 당연히 밭의 과수의 가지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에게 가지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포도밭의 농부이시기 때문입니다.
1절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가지를 치는 일은 고통을 유발할 것이지만 칼을 대시는 분은 아버지시다.
농부는 과실이 더욱 알차고 더욱 많이 열리도록 하기 위하여 해롭게 자라나는 곳을 잘라 버린다
토마스 굿윈 지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에서는
성화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라는 두 과정이 있습니다.
본문에서의 포도나무 비유에는 이 두 가지 내용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2절의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씀은 소극적인 의미의 성장, 곧 그리스 도안에서 죽거나 자신의 죄를 죽이는 과정을 통한 성장에 대한 언급입니다.
또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적극적인 의미의 성장, 곧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에 대한 언급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주(主)로 시인하지만, 진실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겉모습은 커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회에 다닌 연륜도 있고 봉사의 경력도 있고 주를 향한 약속을 붙잡는 믿음도 있습니다.
반드시 이러한 모습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를 못을 박아 버리고 내 자신의 죄를 미워하며 합당치 않는 삶을 정리함으로서 얻어지는 진정한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심이 없이 함께 살아나심이 없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다시 살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죽음이 없이 살아나려고만 하니 누가 사느냐 맨날 맨날 나 자신만이 살아 있지 않습니까?
내가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엄청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지금도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내가 정리를 못하니 하나님이 정리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가지가 가지를 못 친다 아닙니까? 농부가 가지를 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볼 때에 야속 하리 만큼 가기를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기가 막힐 웅덩이라고 했고 사망의 골짜기라고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으로 사형 선고를 내렸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다 하나님의 가지치기 옅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굿윈이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관하여 저술한 강론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뿌리로 삼아 열매를 맺어야 할 가지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신비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가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위해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으로써 성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반면 거짓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도,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하여질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잘려지고 마르게 되어 결국 모아 불에 던져지는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열매를 원하십니다. 자기변명, 자기변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순간에도 열매의 때가 아니라고 아직 나는 믿음이 없어서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런 핑계는 통하지 않고 열매를 원하시고 게십니다.
열매를 이 시간 다 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내 놓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때이지 내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내 때를 말하면 언제든지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까지 열매의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기변호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11:12-14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하나님께 가치가 없으면 사람에게도 가치가 없습니다.
시장하시기는 예수님이 시장하셔서 열매를 찾았는데 결국은 사람에게 열매를 줄 수 없는 자로 여겼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는 자는 사람에게도 바로 합니다.
이게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는 작사 사람에게 바로 하는 자 보지를 못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 무화과나무 입사귀가 번지러하게 폼은 좋았지만 열매가 없는 그 무화과나무 그 자리에 서있지 않았습니다.
마11:20-22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만 받으려고만 했지 실제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정지 작업은 없지 않았습니까?
왜 믿음을 가졌는지 변화가 없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친히 손을 대어 정지 작업을 하실 것입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삶에 닥치는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통해 나의 교만함과 거만함을 낮추시고 이기심을 꺾으시며 고집을 꺾으심을 믿습니까?
그래도 모른다면 사랑하시기 때문에 알 때까지 하실 것입니다.
야곱이 환도 뼈를 꺾어버렸습니다.
창32:24-29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더 이삭 사기꾼 같은 야곱이라는 이름으로 살지 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기 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약속의 축복을 받는 자 답게 이스라엘로 살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시험의 자리에 두심으로 그들이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신뢰하는지를 보고자 하신다.
인간적인 연결을 끊으시고 사람들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계획을 변경시키신다.
시험은 이 땅에서 천국에 이르는 날까지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시험은 내 욕심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약1:12-15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험 받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누구 때문에 시험 받았다 하지 마세요 시험은 자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내 개떡 같은 성격은 시험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성향 즉 자신의 길과 교만과 야망을 고집하는 성향에 의해 방해받게 될 것이다.
엘렌 G. 화잇, 하늘 처소에서 주님의 허락에 의해 매서운 시험이 그들에게 닥칠 때 그들은 참된 신앙의 결핍과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겸손함의 부족을 느끼고 성령의 필요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
가지치기를 잘한 가지는 열매를 더 맺도록 하십니다.
생명력이 있게 하심, 성령의 역사하심,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은 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것입니다.
4-5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성령을 받고 그 삶이 풍성해 집니까?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유기체적인 삶입니다.
주 없이 살 수없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 주 없이도 얼마든지 돈으로 자존심으로 다른 무엇으로 살 수 있는 사람들 더러더러 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 붙여있는 사람은 예수의 능력 곧 생명의 능력을 힘입습니다
제임스 무어(James W. Moore) 의 다 실패했을 때라는 책에 나오는 사업가 로버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정이 악화되어 파산하고 맙니다.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주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 살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의지했더니 죽은 딸이 살아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가슴을 방망이로 마구 치는 것 같았습니다. 왜 내 사업체가 죽었느냐? 예수님과 같이 안 했기에 죽었구나! 예수님과 같이 한 야이로는 죽은 딸이 살아났다는데, 내 사업체는 왜 죽었는가? 예수님을 떠나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녔기에 죽은 것이로구나! 로버트는 그 날 설교를 들으며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자금도 아니고 은행도 아니었습니다. 가지인 자신이 포도나무인 예수에게 붙어있지 못했던 결과이었습니다.
원하는 대로 들어 주십니다.
기도의 생활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약4:2-3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는 삶의 두 번째 특징은 열매를 맺는 삶, 곧 계명을 지키는 생활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삶입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으면 그 나무로부터 자양분을 받고 결실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와 교제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주시는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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