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충성이 큰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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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79회 작성일 2012-07-06 09:50본문
누가복음 19:11-27 작은 충성이 큰 축복입니다
어떤 교회 주보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너무 바쁘면 교회에 나오지 마시오 집안일이나 회사 일로 시간이 없고, 너무 바쁘면 교회에 나오지 마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억하고 드린 정성스런 시간을 원하시지, 다 쓰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일, 저런 일 일로 쓰다 보니 물질이 없으면 헌금하지 마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첫 열매와 정성을 원하시지 여러분이 쓰다 남은 물질을 받으시는 거지가 아니십니다.
집안일과 회사 일로 찌들고 힘들면 교회 봉사하지 마시오!
하나님은 찌든 마음과 귀찮은 마음으로 하는 봉사를 받을 만큼 구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봉사를 받으십니다.
직분을 받고 그 직분을 잘 감당치 못하려면 그 직분을 포기하시오!
하나님은 직분의 종류를 보시는 분이 아니고, 그 직분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잘 감당했는지를 보시며, 맡은 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으십니다.
계명을 지켜 정직하게 살고, 투기하지 않으며,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을 드러내지 마시오!
하나님은 아들의 목숨까지 희생시키며 사탄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우리가 거짓을 행하고 투기한다면 그것은 배은망덕한 일입니다.
겉옷만 화려하게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었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벌써 알아서 하고 있다고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충하라고 하시지 않고 열심히 하라고 하십니다.
본문에 어떤 왕위를 계승 받을 귀인이 내가 왕위를 받아 올 때까지 열 명의 종에게 돈을 주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왕위를 계승 받을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열 명의 종들은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입니다.
그런데 장사하고 안하고는 자기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옵니다.
더 풍족하게 되는 자가 있고 있는 것도 빼앗기는 자도 있었습니다.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사망에 이르는 자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 역시 마찬가지여서, 헤롯 대왕이나 그 아들 아켈라우스 같은 이들도 그 왕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멀리 로마까지 가서 황제를 직접 찾아 갔어야 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에 가시면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기대에 들떠 있는 유대인들을 일깨워 주시기 위하여서, 지금 예수님은 왕권을 인수하기 위하여 잠시 먼 나라로 떠나간 귀인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1-12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장차 심판권을 가지신 왕으로서 재림하실 날을 준비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을 잠시 떠나실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믿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훼방하려는 자들도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 귀인이 떠나자마자 저를 미워하는 백성들이 자기네들의 대표들을 뒤로 몰래 보내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고 반역을 시도했다고 했습니다.
14절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그런 자들의 모함이 그 뒤에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혀 아무 효과도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헛일일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은 이 세상의 불신자들과 배교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이 제아무리 부인하고 핍박한다 해도 조금도 방해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기정사실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마지막에 보면 바로 그런 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밝혀놓으셨습니다.
27절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유대 역사에도 헤롯 아켈라우스가 왕위를 받기 위해 로마로 갔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고, 이로 인하여 나중에 그가 돌아왔을 때에 거기에 연루된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사형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상 나라에서도 누군가 왕권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 흔히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꼭 같은 일이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 재림하실 때에도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아켈라우스 같은 악한 왕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죽임을 당했다면,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왕 중의 왕을 거역하고 반대하고 미워하는 자들에게 내려질 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삶을 살아 갈수록 빼앗기는 기분이 드는 자이십니까?
그리고 죽을 것만 같은 망 할 것만 같습니까?
아니면 살아 갈수록 무엇인가 자꾸만 풍성해 지고 무슨 기대감이 있는 자이십니까?
남은 삶이 더욱 영육 간에 풍성해지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귀인의 말을 듣고 장사를 잘하는 자만이 기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복 받을 기회를 다 주셨습니다
13절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이 므나는 은화의 단위입니다.
본래 종들이 가진 것이 아니라 종이 받은 므나는 주인이 맡겨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종들은 주인이 돌아왔을 때, 말하기를 당신의 므나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내 것이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 하나라도 잇습니까?
문제는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라고 여기고 우기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이 단지 나에게 당신의 의지를 받들어 잘 관리하라고 주셨습니다.
그리니 집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것을 당신의 뜻을 이루도록 위탁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잊는 순간 청지기의 직분은 실패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종이 주의 므나라고 고백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16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8절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20절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다. 시간, 재산, 재능, 자녀 모든 것들입니다.
그 정신에서 시작해야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내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들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잃는다 하여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주인이 가져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중에 교회의 성장도 그리고 중단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라는 은혜를 받고 보니 더욱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행해야 갰다는 의지가 섰습니다.
내가 주도가 된다면 될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을 텐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슈베르트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 열병으로 요절하기까지 가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가난하여 악보 용지를 살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는 때로 미완성 교향곡과 같이. 돈을 벌 수 있는 유명한 작품을 썼지만, 출판업자만 이익을 챙겼을 뿐이다. 그러나 가난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는 하나님을 믿었고, 자기 영혼이 불멸함을 확신했다.
매일 계속되는 어려움들이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간절한 소망을 굴절시킬 수는 없었다.
슈베르트는 젊은 날에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치명적인 실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하여 많은 고통(매독)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보배로운 걸작들을 창조할 수 있었던 배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 위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 어떤 이유로 핑계를 될 수가 없다
모두가 똑같이 받은 기회의 므나는 믿음의 노력에 따라 그 성과와 보상이 달랐습니다.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를 차지했고, 다섯 므나를 남긴 자는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했습니다.
17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9절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4절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재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받은 만큼의 성과를 거두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기회를 사용하지 않은 자는 죽임을 당했고 재능을 묻어 두었던 자는 흑암 속으로 추방당했다.
누가 여기에 토를 달수 있습니까?
인생이라는 수많은 기회를 핑계를 삼고 하나님이 공평치 못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그의 생명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또 받은 것에 감사하지 않고 남이 받은 것을 시기하는 자도 심판의 자리에서 고개를 떨어뜨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리는 삶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각자 제 하기 나름대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기회가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6:1-2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남아 있다고 아는 자는 열심을 낼 것이지만 이것마저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아직도 자기 마음대로 살아 갈 것입니다.
20-21절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착각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자기 의지대로 하나님의 의지를 말하고 살아가는 태도는 착각 그것은 자유지만 그 대가는 엄청난 것입니다.
내 스타일대로 열심히 믿으세요
바쁘면 교회에 나오지 마시오, 없으면 헌금하지 마시오, 힘들면 교회 봉사하지 마시오, 잘 감당치 못하려면 그 직분을 포기하시오
아 알아서 하고 있다고요 네 감사합니다.
인생은 누구나 한 므나의 원금을 허락 받은 자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 한 므나가 열므나 백무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 기대에 부응 하는 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다.
죄의 종에서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자이다
단순히 내가 가진 것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이는 종에서 권력자로 상승하는 사이 종에서 원수로 전략하고 말 것입니다.
급기야는 나를 만든 창조자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이 벌어 질 것입니다.
창조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구원은 모두에게는 아닙니다.
누구는 자유를 얻었는데 누구는 죽음으로 간다
처음에는 누구나 동일한 시험지를 받았는데
그냥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므나를 확인해야 합니다.
원금이 있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예수님은 원금으로 수익을 내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임무를 잊어버리고 그냥 교회에 다니는 것은 나중에 크게 후회 할 일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현원복의 하이테크의 불가사의한 세계라는 책에서
1960년대 초에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g)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바람의 패턴이 약간 변할 때 결과적으로는 기상 전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1963년 어느 날 그는 연구를 하다가 컴퓨터에게 계산 작업을 맡긴 뒤 커피를 마시려고 연구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 연구실에 돌아온 그는 컴퓨터가 그동안 뱉어낸 데이터가 뜻밖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는 전에 계산했던 결과를 다시 점검해 볼 생각으로 당초 사용했던 같은 데이터로 계산을 시작했으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혹시 컴퓨터에 고장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고 살펴보았지만 컴퓨터는 멀쩡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본래는 예컨대 0.506127과 같이 소수점 이하 여섯 자리까지 입력해야 하는 것을 소수점 이하 세 자리까지만 넣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0.506까지만 입력한 것이 계산하는 가운데 오차가 불어나서 결과는 크게 달라졌던 것입니다.
로렌츠는 이를 통해 초기에 입력한 데이터의 사소한 차가 결과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이른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남미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팔랑거리면서 대기를 흩뜨리면 이런 작은 역항이 쌓이고 쌓여 한 달쯤 후에는 미국 텍사스 주에 큰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믿기지는 않으나 나비가 만든 작은 공기의 흐름이 수만 리를 이동하면서 다른 산들바람을 흔들리게 하여 결국은 다른 지방의 기상까지 바꿔 놓는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차이가 나중에는 큰 차이를 만듭니다.
갑자기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바람처럼 스쳐 가는 아주 작은 일들이 어느 날 구름이 되고 천둥이 되고 비가 되어 뿌려집니다.
인생은 작은 것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 주보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너무 바쁘면 교회에 나오지 마시오 집안일이나 회사 일로 시간이 없고, 너무 바쁘면 교회에 나오지 마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억하고 드린 정성스런 시간을 원하시지, 다 쓰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일, 저런 일 일로 쓰다 보니 물질이 없으면 헌금하지 마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첫 열매와 정성을 원하시지 여러분이 쓰다 남은 물질을 받으시는 거지가 아니십니다.
집안일과 회사 일로 찌들고 힘들면 교회 봉사하지 마시오!
하나님은 찌든 마음과 귀찮은 마음으로 하는 봉사를 받을 만큼 구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봉사를 받으십니다.
직분을 받고 그 직분을 잘 감당치 못하려면 그 직분을 포기하시오!
하나님은 직분의 종류를 보시는 분이 아니고, 그 직분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잘 감당했는지를 보시며, 맡은 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으십니다.
계명을 지켜 정직하게 살고, 투기하지 않으며,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을 드러내지 마시오!
하나님은 아들의 목숨까지 희생시키며 사탄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우리가 거짓을 행하고 투기한다면 그것은 배은망덕한 일입니다.
겉옷만 화려하게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었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속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벌써 알아서 하고 있다고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충하라고 하시지 않고 열심히 하라고 하십니다.
본문에 어떤 왕위를 계승 받을 귀인이 내가 왕위를 받아 올 때까지 열 명의 종에게 돈을 주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왕위를 계승 받을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열 명의 종들은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입니다.
그런데 장사하고 안하고는 자기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옵니다.
더 풍족하게 되는 자가 있고 있는 것도 빼앗기는 자도 있었습니다.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사망에 이르는 자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 역시 마찬가지여서, 헤롯 대왕이나 그 아들 아켈라우스 같은 이들도 그 왕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멀리 로마까지 가서 황제를 직접 찾아 갔어야 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에 가시면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기대에 들떠 있는 유대인들을 일깨워 주시기 위하여서, 지금 예수님은 왕권을 인수하기 위하여 잠시 먼 나라로 떠나간 귀인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1-12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장차 심판권을 가지신 왕으로서 재림하실 날을 준비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을 잠시 떠나실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믿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훼방하려는 자들도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 귀인이 떠나자마자 저를 미워하는 백성들이 자기네들의 대표들을 뒤로 몰래 보내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고 반역을 시도했다고 했습니다.
14절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그런 자들의 모함이 그 뒤에 어떤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혀 아무 효과도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헛일일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은 이 세상의 불신자들과 배교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이 제아무리 부인하고 핍박한다 해도 조금도 방해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기정사실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마지막에 보면 바로 그런 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밝혀놓으셨습니다.
27절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유대 역사에도 헤롯 아켈라우스가 왕위를 받기 위해 로마로 갔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고, 이로 인하여 나중에 그가 돌아왔을 때에 거기에 연루된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사형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상 나라에서도 누군가 왕권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 흔히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꼭 같은 일이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 재림하실 때에도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아켈라우스 같은 악한 왕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죽임을 당했다면,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왕 중의 왕을 거역하고 반대하고 미워하는 자들에게 내려질 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삶을 살아 갈수록 빼앗기는 기분이 드는 자이십니까?
그리고 죽을 것만 같은 망 할 것만 같습니까?
아니면 살아 갈수록 무엇인가 자꾸만 풍성해 지고 무슨 기대감이 있는 자이십니까?
남은 삶이 더욱 영육 간에 풍성해지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귀인의 말을 듣고 장사를 잘하는 자만이 기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복 받을 기회를 다 주셨습니다
13절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이 므나는 은화의 단위입니다.
본래 종들이 가진 것이 아니라 종이 받은 므나는 주인이 맡겨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종들은 주인이 돌아왔을 때, 말하기를 당신의 므나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내 것이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 하나라도 잇습니까?
문제는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라고 여기고 우기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이 단지 나에게 당신의 의지를 받들어 잘 관리하라고 주셨습니다.
그리니 집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것을 당신의 뜻을 이루도록 위탁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잊는 순간 청지기의 직분은 실패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종이 주의 므나라고 고백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16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8절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20절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다. 시간, 재산, 재능, 자녀 모든 것들입니다.
그 정신에서 시작해야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내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들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잃는다 하여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주인이 가져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중에 교회의 성장도 그리고 중단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라는 은혜를 받고 보니 더욱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행해야 갰다는 의지가 섰습니다.
내가 주도가 된다면 될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을 텐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슈베르트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 열병으로 요절하기까지 가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가난하여 악보 용지를 살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는 때로 미완성 교향곡과 같이. 돈을 벌 수 있는 유명한 작품을 썼지만, 출판업자만 이익을 챙겼을 뿐이다. 그러나 가난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는 하나님을 믿었고, 자기 영혼이 불멸함을 확신했다.
매일 계속되는 어려움들이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간절한 소망을 굴절시킬 수는 없었다.
슈베르트는 젊은 날에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치명적인 실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하여 많은 고통(매독)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보배로운 걸작들을 창조할 수 있었던 배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 위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 어떤 이유로 핑계를 될 수가 없다
모두가 똑같이 받은 기회의 므나는 믿음의 노력에 따라 그 성과와 보상이 달랐습니다.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를 차지했고, 다섯 므나를 남긴 자는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했습니다.
17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9절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4절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재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받은 만큼의 성과를 거두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기회를 사용하지 않은 자는 죽임을 당했고 재능을 묻어 두었던 자는 흑암 속으로 추방당했다.
누가 여기에 토를 달수 있습니까?
인생이라는 수많은 기회를 핑계를 삼고 하나님이 공평치 못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그의 생명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또 받은 것에 감사하지 않고 남이 받은 것을 시기하는 자도 심판의 자리에서 고개를 떨어뜨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리는 삶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각자 제 하기 나름대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기회가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6:1-2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남아 있다고 아는 자는 열심을 낼 것이지만 이것마저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아직도 자기 마음대로 살아 갈 것입니다.
20-21절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착각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자기 의지대로 하나님의 의지를 말하고 살아가는 태도는 착각 그것은 자유지만 그 대가는 엄청난 것입니다.
내 스타일대로 열심히 믿으세요
바쁘면 교회에 나오지 마시오, 없으면 헌금하지 마시오, 힘들면 교회 봉사하지 마시오, 잘 감당치 못하려면 그 직분을 포기하시오
아 알아서 하고 있다고요 네 감사합니다.
인생은 누구나 한 므나의 원금을 허락 받은 자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 한 므나가 열므나 백무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 기대에 부응 하는 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다.
죄의 종에서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자이다
단순히 내가 가진 것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이는 종에서 권력자로 상승하는 사이 종에서 원수로 전략하고 말 것입니다.
급기야는 나를 만든 창조자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이 벌어 질 것입니다.
창조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구원은 모두에게는 아닙니다.
누구는 자유를 얻었는데 누구는 죽음으로 간다
처음에는 누구나 동일한 시험지를 받았는데
그냥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므나를 확인해야 합니다.
원금이 있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예수님은 원금으로 수익을 내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임무를 잊어버리고 그냥 교회에 다니는 것은 나중에 크게 후회 할 일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현원복의 하이테크의 불가사의한 세계라는 책에서
1960년대 초에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g)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바람의 패턴이 약간 변할 때 결과적으로는 기상 전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1963년 어느 날 그는 연구를 하다가 컴퓨터에게 계산 작업을 맡긴 뒤 커피를 마시려고 연구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 연구실에 돌아온 그는 컴퓨터가 그동안 뱉어낸 데이터가 뜻밖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는 전에 계산했던 결과를 다시 점검해 볼 생각으로 당초 사용했던 같은 데이터로 계산을 시작했으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혹시 컴퓨터에 고장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고 살펴보았지만 컴퓨터는 멀쩡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본래는 예컨대 0.506127과 같이 소수점 이하 여섯 자리까지 입력해야 하는 것을 소수점 이하 세 자리까지만 넣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0.506까지만 입력한 것이 계산하는 가운데 오차가 불어나서 결과는 크게 달라졌던 것입니다.
로렌츠는 이를 통해 초기에 입력한 데이터의 사소한 차가 결과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이른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남미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팔랑거리면서 대기를 흩뜨리면 이런 작은 역항이 쌓이고 쌓여 한 달쯤 후에는 미국 텍사스 주에 큰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믿기지는 않으나 나비가 만든 작은 공기의 흐름이 수만 리를 이동하면서 다른 산들바람을 흔들리게 하여 결국은 다른 지방의 기상까지 바꿔 놓는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차이가 나중에는 큰 차이를 만듭니다.
갑자기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바람처럼 스쳐 가는 아주 작은 일들이 어느 날 구름이 되고 천둥이 되고 비가 되어 뿌려집니다.
인생은 작은 것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감당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