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 같은 어버이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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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22회 작성일 2012-07-0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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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11-24 하나님의 심정 같은 어버이의 은혜
행복한 고물상이란 책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물상을 하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일을 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돈벌이가 시원치 않던 중에 그마나도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지붕에서 비가 새기 시작합니다. 한두 방울씩 천정에서 비가 새더니 점점 심해집니다. 엄마는 양동이를 받쳐놓고 연실 걸레질을 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다녀올 때가 있다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밤 12시가 되도록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비는 점점 더 심해져서 가족들은 불안해 졌습니다. 엄마와 누나가 아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동네 구석구석 다 다녀봐도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누나가 지붕 위에 누군가 우산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다가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오려 하자 엄마가 말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가엾어도 지금은 아버지를 부르지 말자. 너희들과 엄마를 위해서 아버지가 그것마저 하실 수 없다면 더 슬퍼하실 지도 모르잖니
이게 나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능력이 없으신 아버지로 보기 보다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로 보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 자리를 함께한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이 다 그러하십니까?
다윗에게는 아버지의 왕권을 노리고 아버지를 축출한 아들 압살롬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장군 요압에게 그 아들을 죽이지 말고 쿠데타를 진압하려고 명을 내렸으나 후사가 두려워 아들 압살롬은 다윗에게 살해를 당하게 됩니다.
노심초사 하던 다윗은 아들의 무사를 기원했지만 살해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 그는 그렇게 슬퍼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삼하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아비의 왕권을 노리고 아비를 살해하려는 이런 불효자의 죽음을 두고서 내가 너 대신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내 자녀가 잘 된다면 이게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자녀는 부모를 두었다는 만큼 큰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누가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부모 되어 보고 자녀를 키워 볼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모를 자녀된 내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을 하고 그 관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 서울 YMCA 청소년 사업부에서 서울 시내 중고등 학생 2374명을 대상으로 가출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가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 학생이 76.4%였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모를 떠나서 가출하고 싶다는 마음의 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실제로 가출 경험을 한 경우는 남학생이 15.6%, 여학생 9%, 중학생이 8.6%로 나타났습니다. 왜 가출했느냐고 물으니까 이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부모와의 갈등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여튼 부모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 아니 내가 더 잘 할 것 같으니 떠나고 싶은 것입니다.
본문에도 아들 2명을 둔 아버지가 있는데 작은 아들이 가출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마음을 한번 읽어 볼 수 잇는데 이 아버지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참 진정한 자녀는 궁극적으로 부모 품으로 돌아오는 자입니다.
결국 성경에 나타난 탕자와 같이 이기주의와 탐욕으로 아버지 집을 떠나 세상에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도록 이 세상이 내 자녀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집을 떠나고 싶습니까? 아버지를 위함입니까? 나를 위함입니까?
집나간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아버지의 은혜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기껏 아버지의 은혜를 받으며 사랑을 받고서 머리가 돌아간 것이 아버지집을 떠나서 나가서 살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살 수 있고, 만족스럽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욕망이 있었고, 아버지는 없어도 재산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받게 되자, 바로 아버지를 떠났던 것이다.
사실 이 재산도 누구에게서 받는 것입니까?
아니 내가 이 땅에 존재한 원인 제공이 누구입니까?
아버지 아닙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고 아니 내 자신의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 아니십니까?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이 어느 날 뱀의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인간에게 하늘과 땅, 햇빛과 비, 그리고 좋은 열매 등 모든 것을 주셨다.
인간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은혜로, 에덴을 누릴 수 있는 복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은혜가 그렇게 귀한 것이고 고마운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역에서 벗어나면 자신도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니 이 얼마나 겁대가리가 없는 것 아닙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사이드로 빼버리니 이 얼마나 죽을 짓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더 행복해지고자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찾아온 것은, 부끄러움과 고통과 눈물과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이었고, 결국은 죽음 앞에 서게 되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면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를 떠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집나간 탕자는 이 땅의 인생의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사는 것이 불편스러워서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내가 예수를 안 믿고 좀더 열심히 돈을 벌면 육신의 쾌락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을 텐데…. 하며 사는 인간의 모양을 그린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 예수 때문에 돈도 잘 못 벌고, 잘 놀지도 못하고, 잘 즐기지도 못한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기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짐이고 부담이며, 불편스럽기만 하다고 넋두리를 하고 있습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아버지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고, 내가 무얼 한들 이렇게 못 살겠는가? 하며 불편스러워 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라 는 말씀처럼,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허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먼 나라에는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돈도 넉넉하기 때문에, 둘째 아들은 육신의 정욕과 쾌락과 유혹을 따라 먹고 마시고 즐기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냥 쾌락과 정욕 속에 빠져서 어울려 술을 마시며 음란하고 노름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다.
오늘만 즐기자. 오늘만…. 하면서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인생의 낙이 다 할 때까지 방탕하고 타락한 삶을 살았다.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 하면서도 술과 담배와 마약과 음란한 쾌락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사56:12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사22: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이런 자들의 말로는 정말 좋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나오는 사람의 모양은,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방탕한 삶으로 재산을 모두 탕진한 둘째 아들은, 아주 궁핍하고 비참한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그는 후회했지만, 이미 아버지를 떠난 후였고, 허랑방탕한 삶으로 재산도 다 잃어버린 후였다. 그런 상태에서 둘째 아들은 어떤 마음을 가졌겠는가?
내가 재산을 다 잃어버렸으니 이 모양으로는 아버지께 돌아가지 못하겠다. 잃어버린 재산을 다시 찾고 아버지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이제부터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둘째 아들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부끄러운 자신의 모양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하면서 회개하고, 그 모양을 바꾸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한다.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 하고, 착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며,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을 책하면서 때로는 죄인같이 여기며 절간으로 머리 깎고 가는 사람도 있고 숨어서 살거나 고행을 수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바른 처신이 아닙니다. 내가 왜 아버지를 떠났던가?,
내가 왜 음탕하고 방탕하게 지내며 재산을 허비하였던가? 하며 후회를 많이 했으며, 돼지우리 안에서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형편은 점점 더 나빠졌고, 결국 죽음의 위치에 도달했다.
저가 돼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죽을 일만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 자녀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집을 나올 때부터 세상 쾌락을 따라 살아가는 그 순간에도 죽은 길 밖에 길이 없는 이 시점까지 한시라도 일분일초라도 그를 잊지 않고 기다리는 분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욥7:16-19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그 자녀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한자어 어버이 친(親)자는 나무 목(木)에 설립(立)을 붙이고 볼 견(見)을 옆에 붙이면 어버이 친(親)자가 됩니다. 자녀를 찾기 위해서, 자녀를 보살피기 위해서, 나무 위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고 있는 모습 - 그것이 아버지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본문에도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며 지붕 위에 올라가 긴 목을 뽑아 멀리 살피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난 뒤에 내가 도둑질을 했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 내가 간음을 했다. 하며 그러한 일들을 뉘우치지만, 그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다.
그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전히 돼지우리 속에 있었던 것이다.
돼지우리에서 열심히 일하여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여비와 깨끗한 옷을 준비하는 등, 자신을 좀 회복해서 아버지께 가려고 애쓰는 상태는 회개한 상태가 아니다.
나쁜 일 청산하고 예수 믿겠다는 자있습니다.
술 끊고 도박 끊고 여자 끊고 돌아온다던 자는 아직도 못 돌아왔습니다.
그냥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이 그래도 복된 것은 모든 나쁜 짓을 다 끊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도 주님 앞에 나와서 경배하는데 함께 하는 자 인줄로 믿습니다.
아들이 해야 하는 참된 회개는, 아버지 집을 떠나왔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혹시 육신의 부모에게 잘해서 돌아가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 찾아뵙는 것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에고 자식이 뭔데
하나님이 바로 나 같은 자를 자녀 삼으시고 부모의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한 것을 뉘우치며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에, 자기 방법을 모두 버리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하나님의 방법과 다른 자기의 방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참된 회개는, 죄를 지은 것을 뉘우치는 것도 아니고, 괴로워하는 것도 아니며 잘살려고 각오하며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참된 회개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익한 사람이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자신의 모든 방법과 수고를 버리고, 자신을 아버지께 내어 맡기고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다.
벌이 아닌 큰 즐거움을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우리를 고쳐서 온전케 하시며, 다시 아들의 위치에 세우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시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갔을 때 그가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오직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목욕을 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아들임을 인정하는 가락지를 손에 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마련한 상에서 주인이 되어 먹고 즐겼을 뿐이다.
그것은 그의 노력이나 수고와 전혀 상관없이 순수하게 아버지의 사랑을 인하여,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되어진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온전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내 아버지집이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저는 새벽에 기도하려고 이 자리에 앉으면 얼마나 편안한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째 아들이 할 수 있었던 가장 위대한 일은 아버지께로 돌아간 것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잘 알고 계신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은 그들의 각오와 노력으로는 당신께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범죄한 후 즉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
예수님이 대신 죽어 주셨던 것입니다.
인간이 했던 가장 비참한 일은 하나님을 떠난 일이다. 가장 잘한 일은 하나님께로 돌아 온 일입니다.
돌아갈 때, 누가 누더기를 입었다고 뭐라고 하거나 동네 사람들이 욕을 해도, 종들이 손가락질을 하거나 형이 꾸짖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의 유명한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람이 하나님을 등질 때 모든 것을 등진다고 했습니다.
해를 등지면 어둠을 안게 되듯이 하나님을 등질 때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흑암 가운데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아버지 가슴에 못 박고 나간 자식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아버지는 무조건 받아 줍니다. 무조건 용서합니다. 이놈아, 이 꼴이 뭐냐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어디 가서 뭘 했냐고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삶, 묻지 않아도 너무나 뻔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웠는지 물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열 마디 말보다 한마디 포옹으로 모든 것을 녹여 버립니다. 용서를 빌어서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이미 용서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쁨의 잔치의 주인공을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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