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두시지 않고 함께 하시는 성령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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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68회 작성일 2012-07-06 09:53본문
요한복음 14:16-20 버려두시지 않고 함께 하시는 성령하나님
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무엇입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인생 최대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40년대 스피치 박사는 시설에 자라는 아기들에게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좋은 시설과 젖을 주고 아기를 양육해도 그 아기를 안아주고 사랑해주며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아기가 15개월이 되어도 3개월 정도의 성장에서 멈추거나 잘 자라지 못하며 병이 들거나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부모의 돌보아 줌이 없는 고아들이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제대로 성장하기는 아주 어렵다. 그들은 참된 사랑으로부터 제외되었고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어느 환경에도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고아는 생기게 마련입니다.
과거에 625 동란 때에는 전쟁고아가 많았습니다.
미혼모에 의한 고아, 에이즈 고아가 있고 부모 결손으로 인한 고아, 경제적 고아, 정신적 고아, 사회적 고아 등등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얻는데도 힘들 것이며 사랑과 관심을 얻지 못함으로 인해 마음 또한 힘들 어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2000년 전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고아는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불쌍한 존재로 인식되어져 왔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고아와 과부는 율법적으로 관습적으로 보호의 대상이었다.
출22:22-24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예수님도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염려는 아버지가 없는 자들의 삶의 제목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사실 제자들과 함께 했던 3년 동안 예수님은 아버지 같았다. 제자들을 먹이고 입혔다. 가는 곳마다 그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그들 을 보호해 주셨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떠나시게 되자 뒤에 남은 제자들은 자신들이 고아처럼 여겨져 한없이 슬퍼하며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것은 그 당시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제자들에게 보내 주시기로 약속한 성령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고아가 아니다.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이다.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나만 외로이 던져진 것처럼 느끼지 않습니까?
외롭고 힘들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고 답답하고 누가 나 알아 주지는 않지.....
내가 웃지만은 속으로는 울고 있어
이 사실을 접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말씀이 가슴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생활 가운데 느꼈고 기뻤고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요16:21-24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더욱 가까이서 나를 사랑하시고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절대로 나를 혼자 두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성령으로 내안에 계시며 이 세상 끝 날까지 나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그분은 누구십니까?
그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는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곁에 부름을 받고 와서 도와주는 자, 그 사람을 위하여 변호하고 권고하며 위로함으로 그 사람을 굳세게 하는 자, 나아가서 대적하는 자를 대항하여 물리침으로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 협력자를 말합니다.
보혜사는 돕는 자(helper)입니다.
히말라야 등반을 하여 이름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혼자 그 산을 올라 갈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등반을 도와주는 헬프들이 있습니다. 헬프들의 도움으로 그 산을 등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믿는 자들을 돕기 위해 항상 우리 곁에 와 계셔서 나를 도와주십니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해운대에는 용팔이가 있다. 홍반장이 있고 마징가 젯이 있어요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보혜사는 교사(teacher)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서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부음 이란 성령의 임하심입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성령님께서 최고의 교사이십니다.
보혜사는 위로자(comforter)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인간이나 이 세상이 위로하지 못하는 극한 슬픔과 고통을 위로해 주십니다.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보혜사는 상담자(counsellor)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나의 모든 문제를 자상하게 상담해 주시는 가장 훌륭한 우리의 개인적 상담자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복잡하고 혼란한 문제 가운데 있는 나를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심으로 자유와 평안과 승리를 얻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 곧 진리의 영입니다.
지금은 통신이 WWW(World Wide Web:월드 와이드 웹) 수만은 정보들이 인터넷을 통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간혹 off line, on line이라는 말을 하지요 줄이 연결 되었다 안되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조상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어 하나님께는 그야말로 off line 상태였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도 만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모세를 비롯해서 더러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율법과 성막이란 하늘 성소의 모형을 주셔서 하나님이 지명한 대제사장을 통해 자신을 대신하는 희생의 제물을 드리고 겨우 지성소에서 1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나님을 면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율법의 종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대속의 사역을 성공하시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돌아가셨다는 증거는 진리의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하나님과 off line 관계로 있다가 이제 on line이 된 것은 하나님의 자비이며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사역과 성령의 연결사역의 결과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 할 수 있는 login, 로그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모르므로 login이 안 될 뿐 하나님 측에서 이 은혜가 고장이 날리는 만무입니다.
인터넷에서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는데 login이 안 된다고 해 보세요. 이것만큼 답답한 일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로그인 되지 않는 인생은 너무나도 답답하게 살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은 오셔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대속의 은총을 자세히 설명하시고 예수그리스도와 하나 곧 자동로그인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 분이 진리의 성령님이십니다. 성령 안에서 믿음의 ID를 얻고 그리스도의 비밀의 Password를 얻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와 그 분이 하신 일을 믿음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진리의 성령의 임하심을 믿고 그 분 안에서 주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게 하십니다.
내 안에 계십니다.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귀로 음성만을 들을 수 있었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성령 안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알고, 듣고, 교제할 수 있다.
성령님은 말씀으로 들려주시던 하나님을 만나게 하심과 동시에 볼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을 육신으로 체험하게 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하신다.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은 어떤 힘이나 능력으로만 거하시지 않는다.
말씀을 진리 되게 하시며,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시며,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를 친밀하게 도우시기 위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다가오신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지금 몸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고 있는가?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영의 생각을 해 보았는가?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 보았는가? 성령님의 보여주심인 환상을 보았는가? 성령님의 음성인 예언의 음성을 들어 보았는가?
행2:17-18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내 몸 안에서 인격적으로 역사하시며 도우시는 성령님을 외면하고 있다.
신앙생활의 모습은 있으나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깊은 교제, 친밀한 교제, 인격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성령님을 만나라.
성령님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내 안에 들어오시어 나를 중생케 하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내 안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시며 나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도우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격적으로 도우신다.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모르고서는 온전히 예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도 알 수 없다. 그리스도를 닮을 수도 없고 변화될 수도 없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없다.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영원토록 거하시며 우리를 돕는 성령님에게로 나아가는 길만이 하늘에 속한 모든 은혜를 누리는 길이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은 온 우주에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지만 내 몸 안에 들어오셔서 친히 나를 돕고 계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는 생각이 있어 생각하고, 감정이 있어 느끼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내 몸 안에 계신 성령님을 알려고 할 때, 나의 영적인 감각 기관은 깨어날 것이고, 영적이고 신비로운 자신의 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자신의 겉모습만 바라보지 말고 속사람을 보라. 이제부터 겉모습을 따라 살지 말고 속사람의 뜻을 좇아 살아가라.
이제 자신의 부족한 모습만 보지 말고, 온전하신 분을 모신 속사람을 보라. 이제 고통과 슬픔, 상처로 아픈 겉모습만 보지 말고, 치유의 성령을 모신 속사람을 보라.
이렇게 자신을 볼 수만 있다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돕고 계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 함께 하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말씀이 없기에 분별력이 없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주일날 와서 예배 1시간 드리고 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전반적인 모습 속에서 분별력이 있는 삶을 살고, 뜻을 쫒아 살려고 할 때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그들 중에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새벽기도, 수시로 하는 기도가 생활화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회개하는 자들에게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쳐야 합니다.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하늘로 가시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로 가시지만 성령이 오심으로써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과 함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오심으로써 진리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길을 가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고 어떤 길로 인도하든 불평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그 길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이 일하신 결과임을 말씀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가장 확실한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알고 깨달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증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은 사람은 그 어떤 수고를 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진리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진리가 앞에 있는데 진리가 무엇인가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이 오셨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리의 영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무엇입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인생 최대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40년대 스피치 박사는 시설에 자라는 아기들에게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좋은 시설과 젖을 주고 아기를 양육해도 그 아기를 안아주고 사랑해주며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아기가 15개월이 되어도 3개월 정도의 성장에서 멈추거나 잘 자라지 못하며 병이 들거나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부모의 돌보아 줌이 없는 고아들이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제대로 성장하기는 아주 어렵다. 그들은 참된 사랑으로부터 제외되었고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어느 환경에도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고아는 생기게 마련입니다.
과거에 625 동란 때에는 전쟁고아가 많았습니다.
미혼모에 의한 고아, 에이즈 고아가 있고 부모 결손으로 인한 고아, 경제적 고아, 정신적 고아, 사회적 고아 등등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얻는데도 힘들 것이며 사랑과 관심을 얻지 못함으로 인해 마음 또한 힘들 어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2000년 전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고아는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불쌍한 존재로 인식되어져 왔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고아와 과부는 율법적으로 관습적으로 보호의 대상이었다.
출22:22-24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예수님도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염려는 아버지가 없는 자들의 삶의 제목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사실 제자들과 함께 했던 3년 동안 예수님은 아버지 같았다. 제자들을 먹이고 입혔다. 가는 곳마다 그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그들 을 보호해 주셨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떠나시게 되자 뒤에 남은 제자들은 자신들이 고아처럼 여겨져 한없이 슬퍼하며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것은 그 당시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제자들에게 보내 주시기로 약속한 성령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고아가 아니다.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이다.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나만 외로이 던져진 것처럼 느끼지 않습니까?
외롭고 힘들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고 답답하고 누가 나 알아 주지는 않지.....
내가 웃지만은 속으로는 울고 있어
이 사실을 접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말씀이 가슴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생활 가운데 느꼈고 기뻤고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요16:21-24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더욱 가까이서 나를 사랑하시고 보살피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절대로 나를 혼자 두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성령으로 내안에 계시며 이 세상 끝 날까지 나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그분은 누구십니까?
그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는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곁에 부름을 받고 와서 도와주는 자, 그 사람을 위하여 변호하고 권고하며 위로함으로 그 사람을 굳세게 하는 자, 나아가서 대적하는 자를 대항하여 물리침으로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 협력자를 말합니다.
보혜사는 돕는 자(helper)입니다.
히말라야 등반을 하여 이름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혼자 그 산을 올라 갈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등반을 도와주는 헬프들이 있습니다. 헬프들의 도움으로 그 산을 등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믿는 자들을 돕기 위해 항상 우리 곁에 와 계셔서 나를 도와주십니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해운대에는 용팔이가 있다. 홍반장이 있고 마징가 젯이 있어요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보혜사는 교사(teacher)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서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부음 이란 성령의 임하심입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성령님께서 최고의 교사이십니다.
보혜사는 위로자(comforter)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인간이나 이 세상이 위로하지 못하는 극한 슬픔과 고통을 위로해 주십니다.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보혜사는 상담자(counsellor)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나의 모든 문제를 자상하게 상담해 주시는 가장 훌륭한 우리의 개인적 상담자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복잡하고 혼란한 문제 가운데 있는 나를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심으로 자유와 평안과 승리를 얻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 곧 진리의 영입니다.
지금은 통신이 WWW(World Wide Web:월드 와이드 웹) 수만은 정보들이 인터넷을 통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간혹 off line, on line이라는 말을 하지요 줄이 연결 되었다 안되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조상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어 하나님께는 그야말로 off line 상태였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도 만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모세를 비롯해서 더러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율법과 성막이란 하늘 성소의 모형을 주셔서 하나님이 지명한 대제사장을 통해 자신을 대신하는 희생의 제물을 드리고 겨우 지성소에서 1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나님을 면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율법의 종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대속의 사역을 성공하시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돌아가셨다는 증거는 진리의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하나님과 off line 관계로 있다가 이제 on line이 된 것은 하나님의 자비이며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사역과 성령의 연결사역의 결과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 할 수 있는 login, 로그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모르므로 login이 안 될 뿐 하나님 측에서 이 은혜가 고장이 날리는 만무입니다.
인터넷에서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는데 login이 안 된다고 해 보세요. 이것만큼 답답한 일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로그인 되지 않는 인생은 너무나도 답답하게 살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은 오셔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대속의 은총을 자세히 설명하시고 예수그리스도와 하나 곧 자동로그인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 분이 진리의 성령님이십니다. 성령 안에서 믿음의 ID를 얻고 그리스도의 비밀의 Password를 얻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와 그 분이 하신 일을 믿음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진리의 성령의 임하심을 믿고 그 분 안에서 주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게 하십니다.
내 안에 계십니다.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귀로 음성만을 들을 수 있었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성령 안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알고, 듣고, 교제할 수 있다.
성령님은 말씀으로 들려주시던 하나님을 만나게 하심과 동시에 볼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을 육신으로 체험하게 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하신다.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은 어떤 힘이나 능력으로만 거하시지 않는다.
말씀을 진리 되게 하시며,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시며,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를 친밀하게 도우시기 위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다가오신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지금 몸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고 있는가?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영의 생각을 해 보았는가?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 보았는가? 성령님의 보여주심인 환상을 보았는가? 성령님의 음성인 예언의 음성을 들어 보았는가?
행2:17-18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내 몸 안에서 인격적으로 역사하시며 도우시는 성령님을 외면하고 있다.
신앙생활의 모습은 있으나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깊은 교제, 친밀한 교제, 인격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성령님을 만나라.
성령님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내 안에 들어오시어 나를 중생케 하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내 안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시며 나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도우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격적으로 도우신다.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모르고서는 온전히 예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도 알 수 없다. 그리스도를 닮을 수도 없고 변화될 수도 없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없다.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영원토록 거하시며 우리를 돕는 성령님에게로 나아가는 길만이 하늘에 속한 모든 은혜를 누리는 길이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은 온 우주에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지만 내 몸 안에 들어오셔서 친히 나를 돕고 계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는 생각이 있어 생각하고, 감정이 있어 느끼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내 몸 안에 계신 성령님을 알려고 할 때, 나의 영적인 감각 기관은 깨어날 것이고, 영적이고 신비로운 자신의 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자신의 겉모습만 바라보지 말고 속사람을 보라. 이제부터 겉모습을 따라 살지 말고 속사람의 뜻을 좇아 살아가라.
이제 자신의 부족한 모습만 보지 말고, 온전하신 분을 모신 속사람을 보라. 이제 고통과 슬픔, 상처로 아픈 겉모습만 보지 말고, 치유의 성령을 모신 속사람을 보라.
이렇게 자신을 볼 수만 있다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돕고 계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 함께 하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말씀이 없기에 분별력이 없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주일날 와서 예배 1시간 드리고 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전반적인 모습 속에서 분별력이 있는 삶을 살고, 뜻을 쫒아 살려고 할 때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그들 중에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새벽기도, 수시로 하는 기도가 생활화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회개하는 자들에게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교만함을 뉘우쳐야 합니다.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하늘로 가시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로 가시지만 성령이 오심으로써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과 함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오심으로써 진리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길을 가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고 어떤 길로 인도하든 불평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그 길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이 일하신 결과임을 말씀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가장 확실한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알고 깨달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증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은 사람은 그 어떤 수고를 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진리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진리가 앞에 있는데 진리가 무엇인가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이 오셨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리의 영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