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성령을 원하는 자마다 부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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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43회 작성일 2012-07-06 09:54본문
사도행전 2:14-21 구원의 성령을 원하는 자마다 부어 주십니다.
물리학의 천재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1955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당시 프린스턴 대학의 토머스 S. 하비 병리학 교수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목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천재의 머리는 보통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연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40여년의 연구결과 아인슈타인의 뇌는 보통 사람과 별로 다른 것이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다만 하부두정엽이 정상적인 크기보다 15%정도 넓었다는 것입니다. 이 뇌의 하부두정엽은 시공간을 인지하고 수학적 사고를 돕는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하부두정엽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수학적 언어로 변환시키는데 뛰어난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결론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광선을 타고 우주공간을 비행하는 상상을 하면서 특수상대성이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상 가장 탁월한 천재 과학자가 만들어 낸 수학공식은 인간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꿈과 환상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꿈과 환상은 사람의 한계를 넘는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본문에서도 환상을 보고 꿈을 꾸라고 일러 주고 있습니다.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 환상과 꿈은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무엇인가? 예수의 영입니다. 예수의 영은 무엇인가?
또 다른 보혜사 예수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보혜사는 무엇인가? 지난 주 설교에서 말씀하셨듯이 내 곁에 서서 아니 내 마음 속에서 가르치고 인도하고 도와주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 성령님이 오늘 오신 날입니다.
이 성령님의 함께 하심이 아니면 아무도 아무런 꿈도 환상도 가질 수가 없고 물론 어떤 위로도 도움도 가르침도 인도함을 받을 수 없지만 그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그 꿈과 환상 가운데 놀라운 일 즉 모든 이가 구원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성령이 언제나 주님의 제자들로 하여금 꿈과 환상을 품게 합니다.
살다보면 현실의 삶이 나의 앞을 가로막을 때가 많습니다.
소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현실 속에서 어떤 해답을 찾지 않고 내 안에 충만하신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환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 가지를 축복했습니다. 하나는 평안하라는 축복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평안을 얻어야 참 평안을 누립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을 받으라는 축복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꿈을 꿀 수 있고 환상과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 이런 성령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 성령님이 내 마음 속에 계십니까?
교회를 다녀도 성령을 경험치 못하는 자가 있고 믿은 지 얼마되지 않아도 성령을 경험하고 그 은혜 가운데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복되게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래 다녀도 자기 생각대로 사는 자가 있고 처음 출석해도 성령의 감동으로 사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행8:15-17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이 구원의 성령은 모든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17절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라고 하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내 생각으로 하려고 하니 더욱 힘이 듭니다
이럴수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제 나름대로 힘들고 속상하고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래서 화도 내기도 하고 속이 얺잖고 마음이 불편한 가운데도 이상하리만큼 성령님이 그 모든 것으로 갇히지 않고 자유함을 주시고 그리고 인도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너무나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순전히 내 힘으로 아님을 아닙니다.
슥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나는 할 수 없는데 성령으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러니 성령 충만을 받기에 힘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니 간음죄를 지은 다윗왕의 고백과 같이 자신에게 어떤 벌을 받더라도 좋으니 제발 성령님만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습니까?
사업이 되고 안 되고 가 문제가 아니요 병이 들고 낫고 가 문제가 아니요 죽고 살고가 문제가 아니라 성령님이 떠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시51:10-12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이기에 잘 알기 때문입니다.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얻을 때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꿈과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이요 힘입니다.
어려울수록 성령님은 나로 하여금 꿈과 환상을 품게 합니다.
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이기에 쉽게 말해서 그 약속을 빙자하여 구하면 성령이 임재하십니다.
성부에 대한 믿음은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는 것이다.
베드로는 오늘 임한 성령은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 하셨다고 하여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엘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사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약속 하신 것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은 가슴이 설레고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믿고 원하는 자는 누구에게든지 주십니다.
사실 믿는 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성령이 나에게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상은 다른 세상의 그 무엇을 원하지 성령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부어 주실 사람들에게는 제한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린 딸과 아들들, 젊은 청년들, 그리고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그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언하게 하고, 환상을 보게 하고, 꿈을 꾸게 하십니다.
예언과 환상과 꿈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구원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고 그의 주권의 성취를 말하게 하십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꿈을 꾸게 되고, 그런 환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 그들이 본 것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전도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나를 들어 그의 영을 부어 주셔서 나를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나이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종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제한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성경에서 표현이 그러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늙은이라는 표현 속에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노인들도 소망의 꿈을 꾸게 됩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교회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난 이제 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75세에 새로운 이민을 떠납니다. 모세는 80세에 부름을 받아 120세까지 쓰임 받았고 죽었습니다.
갈렙은 85세에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 곧40세 때와 같이 오늘날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이라.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그 방향이 서로 다르게 열심히 일한다면, 그 열심을 낸 속도만큼 서로 다른 엉뚱한 곳에 서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에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아람 군사의 활을 맞고 죽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거짓 영의 인도함을 받고 가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가만히 계셨는가 아닙니다. 가면 죽는다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성령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지 않고 거짓 영의 소리에 귀를 기우렸나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소리는 듣기 싫고 거짓 영의 소리는 제 마음에 든다는 것입니다
롬8:5-7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자주 교회는 한 배를 탄 것과 같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어떤 배가 적절한 배일까요?
유람선과 군함이 있습니다. 유람선은 한 배 안에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람하는 승객들과 일하는 선원들입니다.
그러나 군함은 다릅니다. 한 배에 탄 모두가 다 싸우는 군인입니다. 누구 하나 그 임무를 소홀히 하게 되면 전투에서 지게 됩니다. 교회는 영적인 군함입니다. 주님께서 함장 되시는 군함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에 그 배는 최상의 군함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부어 주실 때에,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현세와 내세에 구원함을 받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선포합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와 함께 다니던 자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나니 달라졌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권능을 받았습니다.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다고 했습니다.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떠 올리는 것이 베드로의 능력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부 출신이었던 베드로가 무슨 배움이 많았기에 그 말씀을 떠올렸겠습니까?
성령께서 할 말을 주신 것입니다.
인색하기로 유명한 놀부가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을 때, 한 승려가 시주를 받으러 왔습니다. 조금만 시주하시지요. 놀부는 코웃음을 치며 눈앞에서 빨리 사라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불경을 외었습니다. 가나바라 가나바라 가나바라 그러자 놀부도 지그시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답니다. 주나바라 주나바라 주나바라 하나님께서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 받지 못했습니까? 아직 왜 성령님을 체험하지 못했습니까? 내가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영을 부어주시는데, 내가 받나바라 받나바라 하면서 거절하고 있다면 문제 아닙니까? 주님께서 나의 마음 문을 열라고 두드리고 계시는데, 우리가 여나바라 여나바라 하고 있기에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초대하십시오. 비워 드리십시오. 마음껏 성령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어 우리 삶을 다스리시도록 내어 드리십시오. 그것이 성령 충만을 경험케 되는 첫 단추입니다.
그릇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득 차 있으면 부어 주셔도 더 이상 채울 수 없습니다. 기름을 채워주셔도, 받을 만한 그릇이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은혜가 모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내 삶을 전적으로 맡겨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결코 성령충만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내려놓으면 어떻게 될까 봐 불안하십니까? 내려놓으십시오. 나의 인생을 맡겨 드리십시오.
성령 충만의 사건은 일회적인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 맡겨 드렸다면 나의 일생 가운데 계속 되어야 합니다.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부어 주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의 시제는 미완료 형입니다.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내려주신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여러분 모두가 부어주시는 성령님을 계속 만나는 충만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 되어야 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영국이 낳은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 목사님께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목사님이 되돌아오기에 왜 오셨냐고 묻는 옥사장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이 나라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옥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결코 내 고집이나 방법대로 생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생활하십시오. 양심에 비쳐오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심에 비쳐오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행동하십시오.
물리학의 천재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1955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당시 프린스턴 대학의 토머스 S. 하비 병리학 교수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목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천재의 머리는 보통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연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40여년의 연구결과 아인슈타인의 뇌는 보통 사람과 별로 다른 것이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다만 하부두정엽이 정상적인 크기보다 15%정도 넓었다는 것입니다. 이 뇌의 하부두정엽은 시공간을 인지하고 수학적 사고를 돕는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하부두정엽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수학적 언어로 변환시키는데 뛰어난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결론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광선을 타고 우주공간을 비행하는 상상을 하면서 특수상대성이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상 가장 탁월한 천재 과학자가 만들어 낸 수학공식은 인간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꿈과 환상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꿈과 환상은 사람의 한계를 넘는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본문에서도 환상을 보고 꿈을 꾸라고 일러 주고 있습니다.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 환상과 꿈은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무엇인가? 예수의 영입니다. 예수의 영은 무엇인가?
또 다른 보혜사 예수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보혜사는 무엇인가? 지난 주 설교에서 말씀하셨듯이 내 곁에 서서 아니 내 마음 속에서 가르치고 인도하고 도와주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 성령님이 오늘 오신 날입니다.
이 성령님의 함께 하심이 아니면 아무도 아무런 꿈도 환상도 가질 수가 없고 물론 어떤 위로도 도움도 가르침도 인도함을 받을 수 없지만 그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그 꿈과 환상 가운데 놀라운 일 즉 모든 이가 구원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성령이 언제나 주님의 제자들로 하여금 꿈과 환상을 품게 합니다.
살다보면 현실의 삶이 나의 앞을 가로막을 때가 많습니다.
소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현실 속에서 어떤 해답을 찾지 않고 내 안에 충만하신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환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 가지를 축복했습니다. 하나는 평안하라는 축복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평안을 얻어야 참 평안을 누립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을 받으라는 축복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꿈을 꿀 수 있고 환상과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 이런 성령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 성령님이 내 마음 속에 계십니까?
교회를 다녀도 성령을 경험치 못하는 자가 있고 믿은 지 얼마되지 않아도 성령을 경험하고 그 은혜 가운데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복되게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래 다녀도 자기 생각대로 사는 자가 있고 처음 출석해도 성령의 감동으로 사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행8:15-17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이 구원의 성령은 모든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17절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라고 하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내 생각으로 하려고 하니 더욱 힘이 듭니다
이럴수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제 나름대로 힘들고 속상하고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래서 화도 내기도 하고 속이 얺잖고 마음이 불편한 가운데도 이상하리만큼 성령님이 그 모든 것으로 갇히지 않고 자유함을 주시고 그리고 인도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너무나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순전히 내 힘으로 아님을 아닙니다.
슥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나는 할 수 없는데 성령으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러니 성령 충만을 받기에 힘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니 간음죄를 지은 다윗왕의 고백과 같이 자신에게 어떤 벌을 받더라도 좋으니 제발 성령님만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습니까?
사업이 되고 안 되고 가 문제가 아니요 병이 들고 낫고 가 문제가 아니요 죽고 살고가 문제가 아니라 성령님이 떠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시51:10-12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이기에 잘 알기 때문입니다.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얻을 때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꿈과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자랑이요 힘입니다.
어려울수록 성령님은 나로 하여금 꿈과 환상을 품게 합니다.
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이기에 쉽게 말해서 그 약속을 빙자하여 구하면 성령이 임재하십니다.
성부에 대한 믿음은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는 것이다.
베드로는 오늘 임한 성령은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 하셨다고 하여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엘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사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약속 하신 것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은 가슴이 설레고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믿고 원하는 자는 누구에게든지 주십니다.
사실 믿는 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성령이 나에게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상은 다른 세상의 그 무엇을 원하지 성령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부어 주실 사람들에게는 제한이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린 딸과 아들들, 젊은 청년들, 그리고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그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언하게 하고, 환상을 보게 하고, 꿈을 꾸게 하십니다.
예언과 환상과 꿈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구원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고 그의 주권의 성취를 말하게 하십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질 꿈을 꾸게 되고, 그런 환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 그들이 본 것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전도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나를 들어 그의 영을 부어 주셔서 나를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나이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종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제한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성경에서 표현이 그러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늙은이라는 표현 속에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노인들도 소망의 꿈을 꾸게 됩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교회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난 이제 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75세에 새로운 이민을 떠납니다. 모세는 80세에 부름을 받아 120세까지 쓰임 받았고 죽었습니다.
갈렙은 85세에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 곧40세 때와 같이 오늘날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이라.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그 방향이 서로 다르게 열심히 일한다면, 그 열심을 낸 속도만큼 서로 다른 엉뚱한 곳에 서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에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아람 군사의 활을 맞고 죽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거짓 영의 인도함을 받고 가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가만히 계셨는가 아닙니다. 가면 죽는다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성령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지 않고 거짓 영의 소리에 귀를 기우렸나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소리는 듣기 싫고 거짓 영의 소리는 제 마음에 든다는 것입니다
롬8:5-7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자주 교회는 한 배를 탄 것과 같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어떤 배가 적절한 배일까요?
유람선과 군함이 있습니다. 유람선은 한 배 안에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람하는 승객들과 일하는 선원들입니다.
그러나 군함은 다릅니다. 한 배에 탄 모두가 다 싸우는 군인입니다. 누구 하나 그 임무를 소홀히 하게 되면 전투에서 지게 됩니다. 교회는 영적인 군함입니다. 주님께서 함장 되시는 군함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에 그 배는 최상의 군함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부어 주실 때에,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현세와 내세에 구원함을 받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선포합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와 함께 다니던 자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나니 달라졌습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권능을 받았습니다.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다고 했습니다.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떠 올리는 것이 베드로의 능력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부 출신이었던 베드로가 무슨 배움이 많았기에 그 말씀을 떠올렸겠습니까?
성령께서 할 말을 주신 것입니다.
인색하기로 유명한 놀부가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을 때, 한 승려가 시주를 받으러 왔습니다. 조금만 시주하시지요. 놀부는 코웃음을 치며 눈앞에서 빨리 사라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불경을 외었습니다. 가나바라 가나바라 가나바라 그러자 놀부도 지그시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답니다. 주나바라 주나바라 주나바라 하나님께서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 받지 못했습니까? 아직 왜 성령님을 체험하지 못했습니까? 내가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영을 부어주시는데, 내가 받나바라 받나바라 하면서 거절하고 있다면 문제 아닙니까? 주님께서 나의 마음 문을 열라고 두드리고 계시는데, 우리가 여나바라 여나바라 하고 있기에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초대하십시오. 비워 드리십시오. 마음껏 성령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어 우리 삶을 다스리시도록 내어 드리십시오. 그것이 성령 충만을 경험케 되는 첫 단추입니다.
그릇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득 차 있으면 부어 주셔도 더 이상 채울 수 없습니다. 기름을 채워주셔도, 받을 만한 그릇이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은혜가 모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내 삶을 전적으로 맡겨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결코 성령충만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내려놓으면 어떻게 될까 봐 불안하십니까? 내려놓으십시오. 나의 인생을 맡겨 드리십시오.
성령 충만의 사건은 일회적인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 맡겨 드렸다면 나의 일생 가운데 계속 되어야 합니다.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부어 주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의 시제는 미완료 형입니다.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내려주신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여러분 모두가 부어주시는 성령님을 계속 만나는 충만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 되어야 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영국이 낳은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 목사님께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목사님이 되돌아오기에 왜 오셨냐고 묻는 옥사장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이 나라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옥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결코 내 고집이나 방법대로 생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생활하십시오. 양심에 비쳐오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심에 비쳐오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행동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