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위로와 구원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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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15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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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1:8-10 영원한 위로와 구원의 하나님
성경 어디를 봐도 환난에서 면제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신앙 생활을 잘 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다 환난과 고통을 당하며 삽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 같은 사람도 환난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욥 같은 사람도 동방의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환난을 당했습니다. 환난이 온다고 겁을 내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① 세상의 죄악 때문에 : 개개인의 직접적인 죄악이 아니라도 인류 전체가 죄악을 범함으로 세상이 어지럽고 많은 재앙과 환난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세계 각처에서 겪는 기상 이변도 사실은 인간이 지구를 파괴한 죄의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② 마귀의 방해 때문에 : 타락한 천사인 마귀는 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삶을 훼방하고 휘저어 놓습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의 배후에 때때로 마귀의 역사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한에는 반드시 환난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라도 천국 가기 전까지는 수시로 환난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동일한 환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일반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전혀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럴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마음이 착잡합니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어려움이 겹쳐 올 때면, 대개 다음의 몇 가지 반응을 나타내게 됩니다.
1) 원망하며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합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고 ...
2) 잊어버리려고 일부러 다른 일을 합니다. 술을 마신다든지, 혹은 향락에 빠져 버립니다. 직장인들 스트레스 풀려고 평균 주1.6회 술집에 가고 노래방 가고
3) 체념하고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이제는 죽든지 살든지 에라~ 모르겠다는 될 대로 되어라 하는 식으로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 중 어느 것도 환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진정한 해답은?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 위로는 환난보다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해답은 없습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는 살 수 없습니다. 위로도 받아야 삽니다. 위로는 힘이 됩니다. 위로는 용기가 됩니다. 또 위로는 재도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더더구나 지금 우리 주변에는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회사를 잃어버린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질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실패를 자주 당하여 낙담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각박한 경쟁 사회 속에서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이리 저리 시달리고 지쳐서 몸과 마음이 피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에게는 언제나 따뜻한 격려와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위로하기보다는 위로 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위로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위에 끝없는 사랑으로 돌보아 주는 부모나, 애정 어린 친구나 선후배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위로 가운데서도 때로는 고독을 느끼고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위로, 영원한 위로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과연 항상 우리의 위로자가 되실 분, 영원한 위로자가 되실 분은 누구 실까?
우리 사람에게는 원래 세상을 감당 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심지어는 극한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 누가, 수고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부모가 하실 수 있습니까? 공자, 맹자요. 석가가 그렇게 말했나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 구세주 예수님, 그 예수님만이 죄악의 짐, 질병의 짐, 가난의 짐 여러 가지 염려, 근심, 불안, 공포의 짐 또 외로워서 눈물짓고 고통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처럼 위로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요한복은 5장 2-9절에 보면, 38년을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은 가끔 천사가 와서 물을 막 끓어 동하게 합니다. 그 때 들어가기만 하면 어떤 병에 걸렸던지, 치료받고 해결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 물이 끓어 동할 때 들어가서 치료받고 돌아가는데, 38년된 환자는 두 다리가 힘이 없었는지 눈을 똑똑하게 뜨고 보고 있으면서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를 들어서 물이 끓어 동할 때 넣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외롭게 기다리는 겁니다. 그냥 기다리는 겁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어요? 얼마나 슬펐겠어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38년 동안이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그에게 가까이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요5:6)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그 말을 듣는 순간 38년된 환자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야,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분이 계시구나! 나에게 위로해주시는 분이 계시구나!’ 그는 힘을 얻었습니다.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신이 생겼습니다.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5:8)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 그 말씀을 듣자마자 그는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자리를 들고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위로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로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참으로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위로해주는 깊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는 그런 사람도 전혀 위로가 되질 못합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69:20)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확실히 위로해 주고 구원해 주실 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미국 최고의 의사들ꡑ이라는 책을 쓴 미국의 작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는 34세에 머리 속에 10년 이상 자리잡고 있던 양성 뇌종양이 갑작스럽게 악성으로 변해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앞으로 3개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사들로부터 듣고는 그의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며칠 후, 텔레비전에서 기상통보관이 ꡒ내일은 우산을 준비하지 않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ꡓ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는 그의 수명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을 거라고 했던 의사의 진단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기상통보관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불변의 자연법칙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한 예측을 전달할 따름이다. 그는 확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바로 그날부터 그는 무엇이든 의문이 생기면 끝까지 추적하여 뿌리를 뽑게 되었다. 그는 미국 내에서 아니 세계에서 종양 치료에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의사들을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고 있는 병원의 명성, 그들의 출신교, 또는 그들이 어떤 유명 인사들을 치료했는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그가 목표한 것은 그에게 나타난 증상과 같은 증상을 보인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는 의사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그는 ‘미국 최고의 의사들ꡑ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미국 전역의 우수한 의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자기 분야의 최고의 전문의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고, 괜찮다 싶은 의사를 추천을 받으면 그때마다 그들과 통화를 하거나 그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그의 뇌 사진을 그들에게 보내거나 했는데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뉴욕의 신경방사선 전문의 사덱 힐럴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혈액 속에 약물을 투입하여 종양의 크기를 줄이는 치료법을 권했는데 그 방법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한지 수주만에 종양의 크기가 50% 정도 줄고 그는 수술을 받았는데 뇌종양 수술의 권위자 버지니아 대학교의 빈코 돌렌스 박사의 치료 덕분에 G. W. Smith는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그는 의사만 제대로 만나면 ꡐ기적ꡑ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사를 찾아내기는 몹시 어렵고. 질병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경우, 그 사실을 부인하거나 그 사실에 감정적으로 굴복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의 병을 치료해줄 의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모든 일이 허망하게 느껴져서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형선고를 받고도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소생 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영혼의 병자들로서 살 소망이 끊어진 죽음을 선고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우리의 병을 고쳐 줄 훌륭한 의사를 보내 주셨는데 그분은 멀리 계시거나 찾기 어려운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심판에 대하여 듣고 괴로워하면서 구원을 요청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만 의뢰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만나기만 하면 놀라운 일이 생기고 맙니다.
나인성 과부
나인성 과부는 남편을 잃고 오직 아들 하나를 바라보며 사는데 그 아들마저 죽게 되었습니다. 나인성 온 동네가 울음바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과부를 향해 울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울지 말라는 말속에는 책임지겠다는 뜻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청년아 일어나라는 말씀을 주셨고 그 결과 관속에 있던 아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됐으니, 하나님의 참된 위로를 받게 된 것입니다(눅7:11-17).

욥이 고난에 처할 때 그의 친구들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그의 아내도 더더욱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이러한즉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욥21:34)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욥이 오직 하나님의 위로만을 믿고 인내하며 시험을 통과했다는 말입니다. 창37장에도 야곱의 모든 자녀가 요셉으로 말미암아 상심한 아버지 야곱을 위로했지만 야곱은 그 위로를 받지 않았습니다(창37:35). 예레미야 선지자도 시온을 향해 위로 자를 기다렸지만 위로자가 멀리 떠나고 없음을 슬퍼하며 한탄했습니다(애1:2,16-17). 이러한 내용들을 볼 때 오직 참된 위로 자는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므온과 안나
이들은 나이 많아 늙었지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들이었습니다(눅2:25). 그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아기 예수를 만남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위대한 신앙인 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환난이 닥쳐 올 때 스파링 상대가 온다고 생각하십시오. 앞으로 우리의 불투명한 미래에 그 어떤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한 이후 다 죄인의 특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원죄) 이 죄의 대표적 속성은 하나님을 등지고 멀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나 권세 등의 세속적인 힘을 의지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생명(영생)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
따라서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 중 한 가지가 바로 믿음을 유지케 하는 환경을 조성시켜 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가지 못하도록 적당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 바울조차 - 육체의 가시(고후12: ) -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할까봐 하나님에 채운 족쇄 ...
본문에서도 바울은 그런 사실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증거 합니다. 9절(하) “ ...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하나님을 의뢰하는 이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곧 영생을 보장하고, 그것이 인생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인생의 유일한 ‘살 길’!
다윗 - 망명 시절 블렛 땅의 시글락에 거주했는데, 그의 부재중에 아말렉이 노략질 - 부녀자 포로, 집은 불타고, ... 부하들마저 기기 막혀 흥분한 나머지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 함 - 삼상30:6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더라”
그러므로 환난의 때에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오히려 안전하고,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본에 어떤 젊은 크리스천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인이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해산하는 시간에 남편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해산의 고통 가운데서 태어난 아이는 의외로 기형아였습니다. 남편은 그 사실을 숨기고 몇 시간 동안 고민하다가 드디어 결심하고 부인께 사실을 다 말했습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부인은, 여보,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 부부에게 양육하도록 맡기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젊은 부부에게 그 아이는 부끄러운 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통해 그 부부는 다른 어느 부부보다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곤란한 생의 문제를 가지고 있든 그것을 가지고 우리의 생을 아름답게 성취시켜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생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드리는가에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미래의 구원에 대한 승리 확신을 얻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환난을 잘 이긴다고 해도,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많은 환난이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인생은 늘 불안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주 강해지면 무슨 일을 만나도 두려워 할 게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환난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연단 하시는 것입니다. 연단 되면 우리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승리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스파링 - 권투 연습 - 무거운 글러브를 끼고 적당한 상대를 정해서 싸워 보는 것 - 그럼으로써 앞으로 당할 상대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 줍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0절에서 말씀합니다. “ ... ” 과거에 그렇게 큰 환난(=큰 사망)에서 건져 주셨을진대 앞으로 어떤 환난이 닥쳐와도 분명히 건져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다윗의 확신 - 골리앗과 싸울 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캐리어가 있기에 ... 삼상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이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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