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승리하는 교회와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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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6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출애굽기17: 8-16 기도로 승리하는 교회와 성도가 됩시다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88문에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혜택을 전하는 외적인 방편 세 가지를 말씀과 성례와 기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할 일이 업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기도를 은혜의 방편으로 이해하고 기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우리는 구속의 은혜라고 할 때 내세 구원에만 제한시켜 생각해 버리는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모든 구원의 은혜들을 일상의 생활에서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 삶의 어느 한 영역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 전 영역에서 경험할 수 있는 통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들은 기도를 통하여 체험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알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다시금 기도하게 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므로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어서 계속하여 기도할 마음을 품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들을 체험하지 못하고 또한 할 수도 없습니다. 성도가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을 받음으로 하나님을 체험하여 더욱 기도할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체험이 없기 때문에 기도의 필요성을 계속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죽으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기도를 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크신 은혜를 체험 할 수 있도록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느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기도하라고 하실 때에 얼마나 축복의 말씀 인 줄 모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도와주시려고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출애굽기 17장 1-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들에게 므리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사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기도 전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8절을 보면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이 아말렉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 거주하는 유랑민족입니다. 이들은 므리바의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이 오아시스를 빼앗고자 지친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되는 여행과 여러 가지 시련들로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현재 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쉼은커녕 더욱더 암담한 시련들이 닥쳤습니다. 아말렉은 전쟁에 능한 민족입니다. 아말렉이라는 이름의 뜻 자체가 전쟁을 좋아하는 백성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한번도 전쟁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의 공격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하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기도를 하기만 하면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
물질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심지어 미움을 받아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직장의 일들이나, 여러 가지 일들이 잘 풀리면 좋을 텐데 더욱 암담하고 꼬이기만 합니다. 육신에 질고가 생기고 가족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길에 계속적으로 닥쳐오는 시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런 일들로 인하여 괴로워하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모두다 기도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오늘 이 아말렉을 앞에 두고 모세는 산으로 올라가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네 여러분들에게 닥친 모든 문제를 두고 기도하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방해하는 무리들을 이기고 승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패배하기도 했는데 그 비결이 순전히 기도하는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의 모든 문제가 내 스스로 기도하느냐? 하지 않느냐? 에 성공과 실패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책임을 져 주시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전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아멜렉과의 싸움을 앞에 두고 기도로 시작하는데서 부터 출발을 하였습니다.
현실의 그 어떠한 일보다 더 중요 한 것이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놓여 있는 어떠한 일이라도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하는 것을 대수롭게 여깁니다 만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꾸만 다른 이유를 들지 마시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보면서 그리고 자기의 동족들이 피를 흘리며 지금 죽어가며 싸우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발걸음은 전쟁터로 가지 않았고, 기도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죽을 것만 같은 현실을 피해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모세와 같이 그렇게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승패의 본질은 현실에 주어진 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내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자기가 해볼 방법 다 해보고 안되면 그 후에 마지막으로 기도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기도도 한 번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 하나님 찾으세요. 사업 잘될 때 하나님 찾으세요. 만사형통 할 때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세요. 다 망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엎어져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산꼭대기로 먼저 가세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겸손히 그분 앞에 나가시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광야의 삶이 축복과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같이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이루는데도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축복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의 기회들은 기도함으로서 내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들은 아셔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손해보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 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두고 상당히 괴로워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요
와다나베라고 하는 일본 목사님의 간증 가운데 다음과 같은 간증이 있었습니다.
요시다 게이다로라는 정치범이 독감 방에 수감되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감방에 비치되어 있는 서적을 주문하였으나 독감 방에는 불교서적과 성경책만이 허용되었는데 그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기독교 신자도 아니었지만 성경책을 읽기로 하였는데 처음으로 대하는 책을 뒤적였지만 아무런 깨달음이 없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성경을 통독하기로 작정하고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 읽어 가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심취되어 하나님의 실존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음으로써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위력을 알고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도가 재미있었습니다. ꡒ하나님, 나는 지금 독감 방에서 콩밥만 먹으니 배가 고픕니다.ꡓ 지금 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배고픔이었습니다. 옆의 감방에는 잡범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그들은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가운데 토마토 농사를 많이 짓고 있었는데 그들도 요시다 게이다로가 독방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고는 그들은 ꡒ그분이 감방에서 배고플 테니 우리들이 토마토를 따다가 몰래 넣어주면 어떨까?ꡓ하고 서로 이야기 하다가 간수의 눈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잡범들은 한 사람이 토마토 한 개씩을 따 가지고는 들어오는 길에 요시다 게이로의 독감 방 문틈으로 넣어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배고픈 죄수의 기도를 들으시고 실제로 먹을 것을 주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내 주위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과연 누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 새벽에 깨어 기도하고 밤늦게 깨어 기도하고 계십니까?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의 모친상을 당하여서 방문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연이 어떠하신 줄 아십니까?
시골 교회에서 40일 작전 새벽 기도회를 열심히 다니시든 어머니가 작정 며칠을 남겨두고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를 피하다가 논두렁에서 넘어졌는데 뇌수술을 받고 깨어나지 못하고 돌아 가셨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나이에 기도하시다가 돌아 가셨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이 죽는 것은 모두가 한 번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목사님들이 말씀들을 하십니다.
오 목사님이 목회를 잘 하시는 것을 보니 이런 기도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저는 때때로 우리 성도들이 교역자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절실히 요구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쓸데마다 성도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느냐?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주변에 같이 일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러나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줄 사람은 있는가 이거예요. 이 기도의 동역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영적 전쟁에 있어서,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있어서 여러분이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이것 때문에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아내의 기도로 남편이 축복을 받습니다.
부모의 기도로 자녀가 바르게 자랍니다.
모세의 그의 동역자인 아론과 훌이 산에 올라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모세가 편안하게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새벽에 기도를 하였지만 목회자가 성도를 위하여 기도를 하지만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도가 목사를 기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모두다 위하여 깊이 있는 기도를 드리지 못합니다. 시간적으로도 그리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꼭 기도를 해야 하는 성도는 기억하고 기도를 합니다.
마치 피곤한 모세를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잡고 편안히 기도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일어나는 역사는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할렐루야.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적인 싸움을 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전투가 벌어 졌는지 실감을 하십니까?
축복과 저주가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 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고 잠만 주무실 것입니까?
세상일에만 분주하다고 핑계를 하실 것입니까?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입니다. 마실 물이 업고, 먹을 양식이 늘 없게 느껴지는, 내일 어떻게 사나? 난 직장도 다 잃어버렸는데, 난 지금 암에 걸렸는데, 우리 가정을 보면 눈물밖에 나는 것이 없는데, 내 인생의 미래는 어떻게 갈 것인가? 이런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많은 게 광야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광야에서, 식탁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쓴 물이 변하여 뭐가 되요? 단물이 되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 쏟아내 주시는 만나를 먹을 것이고, 원수가 여러분들을 쳐서 죽이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승리케 하여 주십니다.
이 축복이 오늘 기도하는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임하시기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기도하십시오 내 평생 기도하십시오 내 평생 은혜를 맛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88문에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혜택을 전하는 외적인 방편 세 가지를 말씀과 성례와 기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할 일이 업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기도를 은혜의 방편으로 이해하고 기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우리는 구속의 은혜라고 할 때 내세 구원에만 제한시켜 생각해 버리는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모든 구원의 은혜들을 일상의 생활에서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 삶의 어느 한 영역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 전 영역에서 경험할 수 있는 통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들은 기도를 통하여 체험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알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다시금 기도하게 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므로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어서 계속하여 기도할 마음을 품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들을 체험하지 못하고 또한 할 수도 없습니다. 성도가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을 받음으로 하나님을 체험하여 더욱 기도할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체험이 없기 때문에 기도의 필요성을 계속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죽으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기도를 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크신 은혜를 체험 할 수 있도록 성도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느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기도하라고 하실 때에 얼마나 축복의 말씀 인 줄 모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도와주시려고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출애굽기 17장 1-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들에게 므리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사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기도 전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8절을 보면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이 아말렉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 거주하는 유랑민족입니다. 이들은 므리바의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이 오아시스를 빼앗고자 지친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되는 여행과 여러 가지 시련들로 지칠 대로 지쳐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현재 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쉼은커녕 더욱더 암담한 시련들이 닥쳤습니다. 아말렉은 전쟁에 능한 민족입니다. 아말렉이라는 이름의 뜻 자체가 전쟁을 좋아하는 백성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한번도 전쟁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의 공격은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하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기도를 하기만 하면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
물질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심지어 미움을 받아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직장의 일들이나, 여러 가지 일들이 잘 풀리면 좋을 텐데 더욱 암담하고 꼬이기만 합니다. 육신에 질고가 생기고 가족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길에 계속적으로 닥쳐오는 시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런 일들로 인하여 괴로워하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모두다 기도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오늘 이 아말렉을 앞에 두고 모세는 산으로 올라가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네 여러분들에게 닥친 모든 문제를 두고 기도하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방해하는 무리들을 이기고 승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패배하기도 했는데 그 비결이 순전히 기도하는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의 모든 문제가 내 스스로 기도하느냐? 하지 않느냐? 에 성공과 실패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책임을 져 주시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전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아멜렉과의 싸움을 앞에 두고 기도로 시작하는데서 부터 출발을 하였습니다.
현실의 그 어떠한 일보다 더 중요 한 것이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놓여 있는 어떠한 일이라도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하는 것을 대수롭게 여깁니다 만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꾸만 다른 이유를 들지 마시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보면서 그리고 자기의 동족들이 피를 흘리며 지금 죽어가며 싸우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발걸음은 전쟁터로 가지 않았고, 기도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죽을 것만 같은 현실을 피해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모세와 같이 그렇게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승패의 본질은 현실에 주어진 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내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자기가 해볼 방법 다 해보고 안되면 그 후에 마지막으로 기도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기도도 한 번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 하나님 찾으세요. 사업 잘될 때 하나님 찾으세요. 만사형통 할 때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세요. 다 망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엎어져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산꼭대기로 먼저 가세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겸손히 그분 앞에 나가시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광야의 삶이 축복과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같이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이루는데도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축복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의 기회들은 기도함으로서 내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들은 아셔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손해보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 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두고 상당히 괴로워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요
와다나베라고 하는 일본 목사님의 간증 가운데 다음과 같은 간증이 있었습니다.
요시다 게이다로라는 정치범이 독감 방에 수감되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감방에 비치되어 있는 서적을 주문하였으나 독감 방에는 불교서적과 성경책만이 허용되었는데 그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기독교 신자도 아니었지만 성경책을 읽기로 하였는데 처음으로 대하는 책을 뒤적였지만 아무런 깨달음이 없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성경을 통독하기로 작정하고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 읽어 가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심취되어 하나님의 실존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음으로써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위력을 알고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도가 재미있었습니다. ꡒ하나님, 나는 지금 독감 방에서 콩밥만 먹으니 배가 고픕니다.ꡓ 지금 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배고픔이었습니다. 옆의 감방에는 잡범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그들은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가운데 토마토 농사를 많이 짓고 있었는데 그들도 요시다 게이다로가 독방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고는 그들은 ꡒ그분이 감방에서 배고플 테니 우리들이 토마토를 따다가 몰래 넣어주면 어떨까?ꡓ하고 서로 이야기 하다가 간수의 눈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잡범들은 한 사람이 토마토 한 개씩을 따 가지고는 들어오는 길에 요시다 게이로의 독감 방 문틈으로 넣어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배고픈 죄수의 기도를 들으시고 실제로 먹을 것을 주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내 주위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과연 누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 새벽에 깨어 기도하고 밤늦게 깨어 기도하고 계십니까?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의 모친상을 당하여서 방문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연이 어떠하신 줄 아십니까?
시골 교회에서 40일 작전 새벽 기도회를 열심히 다니시든 어머니가 작정 며칠을 남겨두고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를 피하다가 논두렁에서 넘어졌는데 뇌수술을 받고 깨어나지 못하고 돌아 가셨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나이에 기도하시다가 돌아 가셨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이 죽는 것은 모두가 한 번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목사님들이 말씀들을 하십니다.
오 목사님이 목회를 잘 하시는 것을 보니 이런 기도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저는 때때로 우리 성도들이 교역자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절실히 요구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쓸데마다 성도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느냐?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주변에 같이 일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러나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줄 사람은 있는가 이거예요. 이 기도의 동역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영적 전쟁에 있어서,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있어서 여러분이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이것 때문에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아내의 기도로 남편이 축복을 받습니다.
부모의 기도로 자녀가 바르게 자랍니다.
모세의 그의 동역자인 아론과 훌이 산에 올라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모세가 편안하게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새벽에 기도를 하였지만 목회자가 성도를 위하여 기도를 하지만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도가 목사를 기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모두다 위하여 깊이 있는 기도를 드리지 못합니다. 시간적으로도 그리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꼭 기도를 해야 하는 성도는 기억하고 기도를 합니다.
마치 피곤한 모세를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잡고 편안히 기도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일어나는 역사는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할렐루야.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적인 싸움을 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전투가 벌어 졌는지 실감을 하십니까?
축복과 저주가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 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지 않고 잠만 주무실 것입니까?
세상일에만 분주하다고 핑계를 하실 것입니까?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입니다. 마실 물이 업고, 먹을 양식이 늘 없게 느껴지는, 내일 어떻게 사나? 난 직장도 다 잃어버렸는데, 난 지금 암에 걸렸는데, 우리 가정을 보면 눈물밖에 나는 것이 없는데, 내 인생의 미래는 어떻게 갈 것인가? 이런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많은 게 광야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광야에서, 식탁을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쓴 물이 변하여 뭐가 되요? 단물이 되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 쏟아내 주시는 만나를 먹을 것이고, 원수가 여러분들을 쳐서 죽이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승리케 하여 주십니다.
이 축복이 오늘 기도하는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임하시기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기도하십시오 내 평생 기도하십시오 내 평생 은혜를 맛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