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과 금보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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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87회 작성일 2012-09-1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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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10 은과 금보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독일의 유명한 사회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이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따라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인 삶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분석을 했습니다.
소유 지향적인 삶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소유(to have)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될수록 행복해지리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내 소유로 만들고 보자는 삶을 말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유 지향적인 삶을 사는 자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42년간 이어진 카다피 독재가 무너진 뒤 첫 선거로, 헌법을 제정할 의원 200명을 뽑게 됩니다. 베잔티(트리폴리 시민)민주주의의 결혼식 같은 날, 신랑이 된 기분입니다. 처음으로 통치자를 우리 손으로 선출하는 겁니다. 라고 기쁨을 시민들에게 주었는데 그 동안 국민을 위한 다는 카다피의 재산은 엄청납니다. 1500억 달러 170조원입니다. 황금을 걸고 생명을 구걸하였지만 이 엄청난 황금이 그를 구원해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은금이 내 소유가 되지 못해서 힘들어 하고 불행해 하고 거기에다가 희로애락을 걸고 있는 삶입니다.
에릭 프롬은 이 책에서 현대 산업사회에서의 대부분 사람들은 가져야만 행복하다는 소유 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현대인들은 인간소외를 경험하며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고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존재 지향적인 삶이란 내가 무엇을 소유했으며 얼마나 소유했는가에 집착하지 않고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to be)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말합니다.
이 땅에 인간의 존재 아니 내가 왜 존재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아니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 하겠는가? 입니다.
지금 잘 살고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아니면 못 살고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에릭 프롬의 말처럼 세상 사람만이 아니라 신앙인들에게도 신앙생활의 모습에 따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끊임없이 무엇을 얻으려는 소유 지향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 그래서 예수를 통하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불만하고 불평하고 간구하고, 얻고자 하는 신앙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잠30:15-16절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늘 불만입니다.
반면에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고 그 존재로서의 위치를 지키려는 곧 부름심에 합한 자로 살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 빌1:20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다윗 시23: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본문에도 두 가지 양상의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 모두 성전이 사람의 중심인 것은 같습니다.
무엇인가 얻기를 바라는 자는 사람이 들락날락 많이 하는 성전 미문 앞에서 선을 행하는 교인들이 많은 성전을 중심으로 삼고서는 구걸하기가 목적이었습니다. 사람만 지나가면 구걸(求乞)을 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무슨 말만하여도 무엇을 줄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3-5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물론 신체적 장애로 인하여 구걸하는 것으로 삶을 연명해야만 충분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이든지 자신의 소유화로 만들라는 말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부족함마저도 핑계를 대어 나를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왕상17:10-13절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부족함을 핑계 삼아 나의 소욕만을 위한다는 그 부족함은 말 그대로 자신을 위한 후에 자신을 망 하게 할 것입니다.
먼저 나를 위하고가 아니라 나의 소유화가 아니라 먼저 할 것 나의 존재의 인식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일러 주시는 삶의 형태입니다.
마6:31-33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다른 부류인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이 아니라 소유가 아니라 됨됨이가 되어야 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6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지금 앉은뱅이에게 필요한 것은 은금 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구한다고 말들을 합니다.
본문에서도 사람들은 그 자를 은금을 구하기 위하여 걷지 못하니 메고 오고 구걸하기 위하여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습니다.
조금 더 메어 성전 안으로 들어오면 좋겠는데 은금이 아니라 이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해 볼 때에 마치 미문에 앉아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자들일 뿐이었습니다.
당장에 내 소유로 삼아야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금과 은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은 은금을 구원으로 여긴다
앉은뱅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보기보다 나에게 유익이 되는가 아닌가의 잣대로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늘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습관이 생깁니다.
특히 자녀들을 키울 때 보편적인 도덕관념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 지나쳐서 자식 귀여워하는 마음이 보편적인 도덕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 결국 내 가족만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예의는 소홀하게 됩니다.
핵가족화 이후에 이런 현상이 많아졌어요.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여기까지 말했을 때 거지의 얼굴에 실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돈이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엇을 주겠다고 하는지 모르지만, 별로 반갑지 않습니다.
그냥 돈이나 몇 푼 던져주고 가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몇 푼 준다고 인생이 해결됩니까? 카다피 170조를 가져도 안되었습니다. 세상을 다가져도 안 됩니다.
믿음이 없이 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세워진 바벨탑 그 무너짐이 더 크게
화려하고 부유한 소돔과 고모라 믿음이 없이는 불타고 말았습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내 믿음을 세상 것만을 위하여 구하다가 그것이 이루어졌다면 만족 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허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때로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 절실하게 필요한 것에 온 마음을 쏟다 보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놓치게 됩니다.
진정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겠다 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그 앉은뱅이를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벌떡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 몇 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돈 대신 준 것은 거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을 돕고 봉사하는 일에 서투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지가 원하는 것의 차원에서는 베드로에게는 거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지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줄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가 교회를 비판하니까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해야 할 유일한 책임이 사회봉사인 것처럼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명령에 따라 물질로 사회를 섬기는 책임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하실 사실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회봉사는 교회 아닌 다른 단체에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만이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지나간 역사에 소위 자유주의 신학이 창궐하던 시절 교회가 복음 증거의 사명을 잊고 사회봉사에만 열중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들은 위축되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전도도 사회봉사도 못하는 영향력을 상실한 공동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눅10:39-42절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주일학교 눈깔 사탕주어서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세상이 훨씬 더 재미있고 그들의 부모가 더 좋은 것을 사주는데 교회 뭐 해 줄려고 해서 되는 것 아닙니다.
피 묻는 복음을 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헌신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가 부자 되어 복음이 필요하지 않고 인간의 교제만 왕성하고 있습니다.
중세 교회는 부자 되어 복음이 필요 없었습니다.
교황이 유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불러서 화려한 금으로 장식된 성당을 보여주며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하는 말은 이제 우리가 못하겠구먼! 하자 신학자 토마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소리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회가 힘들지만은 예수만을 내어 놓을 수 있으니 이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교회가 무얼 내 놓을 만 한 것입습니까?
그러나 진짜 귀한 것을 내어 놓을 수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다른 거 내어 놓을 수 없다고 실망하지 말고 나의 부족함으로 오히려 예수님만을 자랑하게 된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하는 자에게 누구에게나 줍니다
자기는 늘 받기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받는 데만 익숙해진 사람은 가진 것이 많아도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 앉은뱅이 거지는 평생 남에게 받기만 했지 자기가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내게 있는 것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로 평가되지 않고, 얼마나 많이 주었는가로 평가될 것입니다.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베드로의 이 말은 나의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하여 더 헌신할 수 있게 되고, 이웃과 교회를 더 섬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40년이라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은금만 타령했지 그 은금이 자신을 구원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성전이라는 미문 앞에 매일 앉아 있었지만 믿음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실 교회 들락날락 하였지만 믿음에 대하여 관심이 없지 않았습니까?
믿음이 나의 인생의 문제에 해결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앉은뱅이가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역사를 가져 온 것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입니까?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1절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베드로와 요한 이는 하루 3번 씩 기도했습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하루 3번을 정해 놓고 기도하면 예수 이름으로 충만해 질 것으로 믿습니다.
다니엘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아침에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면서 능력을 구하였을 것입니다. 일을 마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코카콜라 창업자인 아서 G 캔들러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캔들러는 의지력이 약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금주 선언을 했으나 말 그대로 선언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하던 그는 마음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캔들러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금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부부는 맞잡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캔들러의 금주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기도의 힘입니다.
세상 것을 끊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기도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시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교회는 생애의 새로운 결심이 서는 새벽 기도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도해야만 은금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 인 줄로 알게 될 것이요 은금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예수 이름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한 분 나의 구주이심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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