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나아가라 하나님을 알리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70회 작성일 2012-09-16 08:56

본문

출애굽기 14:1-31 믿음으로 나아가라 하나님을 알리라
때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당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사람들은 이해 할 수 없다고 하거나 아니면 자기 나름대로 일을 해석하여 마음대로 행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그들을 돌이켜 다시 애굽 땅 가까운 곳으로 가게 하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닷가에 진을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나왔는데
왜 애굽 땅에서 떠나 다시 돌이켜 애급 가까운 곳으로 가게 하셨는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진퇴양난의 갇혀버리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죽느니 죽이라느니 야단입니다.
그리고 바로와 애급 군대는 이스라엘을 다시 끌어드려 종살이 시키거나 몰살해버리는 기회가 왔다고 병사 총동원령을 내려 진격을 불사했습니다.
이게 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판단에서 일어난 허무맹랑한 일입니다.
정확한 사연을 알 면은 이일들이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모세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놀라운 일을 통해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알고 경외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맛좀 봐라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호되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맛보았습니다
28-31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역사는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산천초목이 자연의 현상이 그냥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위기와 변화를 주시는 것은 한 가지 이유입니다.
시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인생 역시 그냥 태어나서 자기 길로 가다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악한 바로도 결국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선하게 사용되느냐 악하게 사용되느냐가 문제입니다.
롬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 세상에서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겠지 가 아닙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History is His (God) story라고 합니다.
나 역시 우연히 이 땅에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왔습니다.
본문에도 이스라엘이 사막에 갇힌바 것도 바로가 이스라엘을 추격한 것도 그냥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맛을 좀 보여 주려고 합니다.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인간은 착각을 하지만 이 사건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모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13-14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 일의 진행은 하나님이 하신다
여기의 가만히 서서는 고정시키기 위해서 서다, 위치를 잡다 는 뜻으로 믿고 제자리를 지켜라 는 뜻입니다.
요동하지 말고 웅성웅성하지 말고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당했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위치를 지키시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앞에는 홍해 바다, 뒤에는 애굽 군대의 추격으로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으나 움직이지 말고, 술렁이지 말고, 요동하지 말고, 각기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가만히 서서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믿음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볼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리고, 밖에서 어떤 소동이 벌어지더라도 대문 밖으로 절대로 나가지 말라고 하심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아니 믿음으로 산다면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만큼 신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 현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습니다.
여호와께서 싸우시고, 홍해 바다를 열어 길을 내시고, 건너게 하사 구원하십니다. 나아가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십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행하신 구원입니다.
홍해 바닷가로 오게 하신 이도 여호와이십니다(출14:2).
바로 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사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게 하신 이도 여호와이십니다(출14:4). 애굽 군대와 싸우시고(출14:25),
애굽 군대를 바다에 수장시켜(출14:28),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이도 여호와이십니다(출14:30).
똑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 있는 자의 모습과 믿음 없는 자의 모습이 판이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믿음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관건입니다.
믿음은 과거의 죄의 노예근성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롬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바로도 착각하고 이스라엘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는 열을 내고 이스라엘은 공포에 빠집니다.
이게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바로는 호된 맛을 보고도 기회만 있으면 이스라엘이 자신의 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열 번이나 재앙을 당하고 장자들의 죽임까지 당하고서도 아직 정신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맛 좀 더 봐야 알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열 번이나 보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그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믿어야지 조금만 어려움만 오면 죽겠다고 하고 믿음이 없었던 옛날로 돌아가는 이런 약함을 보여야 되겠습니까?
다시 죄악의 구렁텅이로 죄의 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기껏 주여 주여 하며 구원의 주님을 부르다가 자신의 원대로 안 되면 주여 주여 아침이슬 참이슬 주를 부른다 말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우유부단함이 습성화되어 있는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한 모습의 한 단면 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된 자들이 단지 생각과 결심의 차원에만 머물기를 원치 않습니다.
옛 생활과의 단절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옛 것을 끊고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시고 그래야 잘 살 수 있지 이제 저와 성도들은 믿음으로 살지 않고 옛날로 돌아가면 될 일도 안 되고 아니 돌아 갈수도 없는데 자꾸 그런 생활을 하면 엄청 인생 손해보고 낙오자가 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사실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려운 일 닥칠 때마다 불만을 토로하던 자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애굽으로 돌아가자 애굽생활이 더 낳았다는 불평의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돌아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이무도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홍해를 건넜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홍해가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에 옛 생활에 대한 미련이 있어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군사들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홍해 바다를 건너가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옛 생활로부터 완전히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홍해를 건너는 것을 세례에 비유를 했고 애굽 사람들은 그 죄악으로 결코 건널 수 없는 것이요 택한 백성은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 받고 은혜로 건너게 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함으로서 과거를 완전히 단절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사나 죽으나 가나안만을 향해 가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감별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진짜와 가짜를 함께 물속에 넣는 것입니다. 진짜는 물속에 집어넣으면 아름답고 영롱하고 광채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짜는 더욱 빛을 잃어버린답니다. 이것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방법입니다.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고난의 용광로 속에 넣어보면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모습은 평상시는 모르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 돈 잘 벌 때는 모르지만 그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떤 인격을 드러내느냐, 그가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떤 믿음의 모습을 보이느냐를 보면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위기 속에서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현재의 생활에서 선을 따르는 것입니다.
15-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앞으로 나아가라 바다도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사람들은 내 인생에 길이 없다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나아가면 됩니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믿음으로 나아 갈 때에는 그곳은 길이 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바다도 길을 냅니다.
그러나 바로의 군대는 풍랑이 출렁이는 바다로 그들을 삼키는 바다로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생명과 구원과 축복의 길이였지만
애굽는 사망과 멸망과 저주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신30:19-20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이 시간에 내 자신의 믿음의 행위에 따라 죽고 살고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내일은 하나님이 열어 신다 오늘 주신 은혜 오늘 족합니다.
오늘 아무 일이 없는데 모두가 죽게 생긴 이유는 내일이 어떻게 될까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결정을 내리니 하나님의 사자가 밤새도록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긴박하게 무슨 작전을 하듯이 하는 것을 볼 때에 너무나도 놀라울 뿐입니다.
아침에 보니 그 광경은 놀라울 뿐입니다.
위기도 하나님의 섭리다
인간의 지식과 이성으로 바라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절망하고 원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바로의 군대나 이스라엘이나 무슨 일이 일어 날 줄 모르는 가운데 인간적인 것이 들어 납니다.
이렇게 하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아야 할 자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무엇인가 내가 하여야 함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신실하게 이루심을 믿는 자는 잠잠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