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30회 작성일 2009-05-27 09:41

본문

요한복음10: 7-15 생명과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서울기독대학교는 16일 필리핀을 통해 곧 한국에 오게 될 탈북자중 최철용(25)씨가 한국에 가면 선교사가 돼 탈북자들의 선교에 앞장서겠다고 말하는 것을 TV 뉴스에서 봤다면서 이 탈북자가 우리 대학에 입학하면 4년간 등록금을 전액 지원,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겠다 고 했습니다.
지난 일월 달에는 제가 아는 조선족 청년인 김영철이라는 전도사가 국내 3개교회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총신 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북한주민과 중국의 조선족이 아무리 어렵게 살아가지만 먹을 것만으로 이제 살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면 가난한 이 주민들이 풍성케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믿는 너무나도 좋은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열심히 북한과 중국 연변에 많은 물자를 투자하여 선교를 한 열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에 살고 있는 이들도 먹을 것 입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요구를 하는데 진작 예수 그리스도를 쉽게 접 할 수 있는 교인들이 오히려 꺼려하고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부모 형제 가족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믿어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나를 먹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는냐?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을 향하여 내가 살리리라 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참으로 그렇습니다.
여러분 무엇으로 우리가 참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음식물 쓰레기 제로 센타 소장인 이주민 장로님 강연 중에 시대 별로 음식 개념을 분류했습니다. 1950년대는 생존개념은 동물적 생존수단, 밥만 먹고 요즈음 동물적 생존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죽지 못해 삽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들, 어그러져 있는 가정, 어그러져 있는 생활, 어그러져 있는 습관들 때문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그저 죽지 못해 삽니다. 이혼하지 못해 그냥 살고, 자살하지 못해 그저 삽니다. 연명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봅니다. 그렇게 고통스런 삶은 아니지만, 그저 목숨을 근근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 있어요. 60년대는 영양개념으로 인간적 생존 수단, 밥과 김치를 먹고 70년대는 맛개념입니다. 식도락이라는 말이 은근히 생겨났고 80년대는 멋개념으로 식탁보, 빛깔, 분위기가 등장을 했습니다. 문화적 생명입니다. 문화적 생명은 자아실현의 생명입니다. 삶의 질하고 관련이 있습니다. 밥을 먹어도 폼나게 먹기를 원합니다. 분위기를 찾습니다. 90년대는 과소비현상으로 쾌락적 생명이 됐습니다. 문화적 생명이 풍요로워지면 필경 쾌락적 생명으로 갑니다. 쾌락적 삶은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에서 발견됩니다. 마셔도 마셔도 목마른 삶입니다. 쾌락을 열심히 추구하지만 그래서 풍성한 삶을 추구하지만 항상 가슴이 뻥 뚫려 있는 허무한 삶입니다.(눅4:14)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잘 압니다. 로마가 그랬고, 신라가 그랬고 성경적으로는 바벨론이 그렇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결국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은 바로 쾌락적인 삶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적인 충족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풍요로움과 함께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떡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인 생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의 생명은 영적 생명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적으로 창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 생명은 우리 예수님에게만 있습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 생명적인 상관이 있습니까?
대체로 상관이 별로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상관이 없는 자타가 인정이 되는 존재는 마귀 사탄입니다.
거라사 지역에 귀신 들린 사람이 지나 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그 귀신이 예수님께 처음으로 외친 내용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히지 마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이 귀신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을 알고 그가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시라는 것을 알지만 전혀 예수님과 생명적인 상관을 맺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으므로 예수님의 생명과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니 그들의 무리가 장차 음부에 들어가 영원히 멸망 당 할 귀신들의 무리이지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알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와 상관을 맺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명과 그의 은혜 아래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믿는 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서도 그러니 그의 생명이 함께 하지 않으니 살아 갈수록 죽은 일 만 쌓이고 또한 그의 은혜와 함께 하지 않으니 삶이 풍성하지 못하게 됩니다.
흙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영으로 함께 하실 때 비로소 생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생령은 생명의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을 떠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축복된 신분이요, 하나님이 함께 해주셔야 하는 신분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인간을 범죄케 함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왜 그렇게 큰 죄가 됩니까? 하나님은 먹지 말라 명령한 반면에 마귀는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 마귀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는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뱀은 너 스스로 하나님이 되라 했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단순한 행위의 범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를 선택을 함으로서 생명이 되신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에 시달리게 됩니까?
육신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내세 문제, 그리고 인간적인 문제 등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다시 시작하기 전에는 절대로 해결이 안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인간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① 사람들은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면 구원을 받는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생활은 귀신을 섬기는 것이며 하면 할수록 더 큰 문제에 빠져 버립니다.(요3:1-10, 마12:43-45)
② 철학에 무슨 진리가 있는 듯하여 따라가지만 성경은 철학을 가리켜 헛된 속임수라고 했습니다.(골2:8)
③ 선행, 구제, 봉사 등의 일을 열심히 하면 구원 얻는 줄 알고 있지만 인간의 선행은 하나님이 보실 때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구원 얻을 가치가 되지 못합니다.(사64:6, 행10:1-8)
④ 배움을 통해 지식을 쌓으면 구원받는 줄 알지만 아무리 많은 지식도 구원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고전1:19-21)
이러한 노력도 아무런 결실을 가져오지 못하는데 우리 인간들이 넘지 못할 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① 마귀의 권세를 이겨야 합니다.
그 어떤 영웅도 마귀를 꺾지 못했습니다. 오직 천사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마귀를 꺾으실 수 있습니다.
②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가 전혀 없는 분입니다. 죄가 없는 하나님은 죄인과 함께 거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인간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증거는 모든 사람이 죽음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③ 육신을 가진 사람의 힘으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걸핏하면 예수 믿는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봤느냐는 말합니다. 그 말은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능력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어디 가서 하나님을 만나겠습니까? 어떤 방법으로 노력으로 하나님을 만나겠습니까? 전혀 길이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찾아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참 생명의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생할 적인 면에도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생명과 예수님의 풍성함에 이를 수가 있나요?
예수님 만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나는 문이다 영어로 I am a gater아니라, I am the gater입니다. 뜻 그대로 다시 옮기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그 문이라는 말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문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 문을 열지 않고는 아무도 방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문이야말로 노아 시대에 살고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구원과 멸망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문이었습니다. 이 방주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문 밖에서 선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문을 통해서 방주 안에 들어온 노아의 8가족만이 구원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우리 모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는 축복을 받아 살아 갈 수 있는 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생명을 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신 그를 믿는다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현상이 일어 날 것입니다.
① 우리의 신분이 바뀌어 집니다.
하나님이 온갖 좋은 것을 다 예비하셨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자녀들만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로 열심히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부터 바꿔야 합니다. 불신앙의 자리에서 신앙의 자리로 옮겨와야 합니다. 신분이 바뀌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지만 또 모든 축복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문은 열렸으되 그러나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님과는 여전히 무관한 자입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신분이 바뀐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구원에 대한 참된 확신이 있습니까? 믿지 않는다면 영접해야 할 것이고, 영접했다면 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양의 문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생명 얻고 날마다 구원의 감격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② 구원 얻은 자는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인도하십니다.(11) 성도의 삶은 결코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이 앞에서 인도하시면 성도는 아무 것도 몰라도 그분의 인도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는 자기 고집과 경험이 앞설수록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이 지혜로운 것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연약함이 나의 강함보다 낫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인정하고 내 생각과 달라도 그분의 인도라 믿어지면 따라가는 것입니다. 따라갈 때 순종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될 때 우리에게는 축복이 됩니다.
목자는 불의하고 악한 세력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심으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노래했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생의 주인을 삼고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세밀한 성령의 인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길이 좋은 길이고 어떤 길이 악한 길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모든 길을 아시고 앞서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안에 계신 그분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 고집과 계획을 버리고 그분을 위하여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사십시오. 순종은 나의 것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크게 하나님을 누리는 길이 됩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길을 맡길 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길로 언제나 인도하실 것입니다.
③ 기도하는 특권을 누리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할 때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미리 모든 것을 아시지만 하나님은 구할 때만 응답을 주십니다. 그 이유는 자녀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기 위함이요,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도 할 때에 내가 받은 축복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맡기면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일을 저질러 놓고 맡기면 하나님이 종이 됩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모든 삶의 주인이 되어 인도하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맡기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예수 이름 안에 숨겨 두셨습니다.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④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요, 인간의 본분입니다. 주님의 선한 뜻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목적과 방향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붙잡아야 할 언약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영원한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대적인 언약은 세계 복음 화입니다. 개인적인 언약은 일꾼입니다. 이 언약을 위하여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채우시며 참으로 크신 축복의 삶으로 우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Total 914 건 | 1 / 92 page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