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살 길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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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86회 작성일 2012-09-1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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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0:19-25 새로운 살 길로 나아가자
일산 사랑이 있는 마을의 김순이 할머니는 국내에서 두 번째 고령자였습니다. 그 할머니가 건강하게 지내다가 금년 6월 15일 114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히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114세를 사시고 새로운 살 길을 얻었다는 것이 참으로 복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순이 할머니는 여섯 살에 조모를 따라 절에 가서 입적을 하고 100년 동안 불교에 몸담고 살았습니다. 할머니의 외아들은 불교계에서 꽤 알려진 서울 근교 어느 사찰의 주지승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의 기독교 개종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개종까지는 수 없는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손자가 암으로 죽자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왜 착한 손자를 데려가느냐? 고 교회에 다니는 손녀 박인희 집사를 핍박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사는 손녀가 은혜를 받고 나서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할 때 할머니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신앙심이 일치해야 손녀딸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자신을 거두어 주는 손녀딸을 생각하면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하지만 주지승인 아들을 생각하면 개종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100년을 절에 입적하여 살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스님이므로 길을 바꿀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던 김순이 할머니는 106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았고 그러고 나서 나는 한 살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한 해를 보내고 나서는 나는 두 살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결신 이후 이름답게 믿음을 키우신 할머니는 명예권사가 되시고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을 전하다가 114세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106년 동안의 살아온 삶은 앞으로의 죽음을 기다리는 길이었다면 106년에 비해 극히 짧은 8년간의 믿음의 생활이 새로운 살 길로 나아가게 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연주 집사님 어머니를 보니 죽음과 사투하는 병중에서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살길을 선물로 받는 것을 볼 때에 저 자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은혜가 아닙니까?
세상의 모든 삶은 죽음을 향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또 원죄를 가진 인간이 자기 스스로 살아가면서 생각으로, 언행으로 죄를 짓습니다.
이것을 자범죄(自犯罪)라 부릅니다.
모든 인간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원죄의 영향으로 자범죄를 가진 죄인인 것입니다.
그 죄의 결과 어떤 비극이 생깁니까?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여기서 사망이란 3가지의 사망이 있습니다.
1차적으로 영적 사망을 말하는데, 하나님과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살 동안 그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사망의 영향을 받아 늘 불만족과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육체적으로 죽게 됩니다.
내 주위에 죽은 사람들 참 많습니다. 또 저를 위시하여 죽을 사람들뿐입니다.
어떻게 종말을 맞이할까 걱정입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죽었다고 끝장이 아니라 내세에 영원한 사망, 즉 지옥의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끝난다면 무슨 짓을 못해 한번 죽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는 그저 단순히 자기 원하는 대로, 욕심나는 대로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데, 그게 결국은 죄의 길이고, 마지막은 영원한 사망이라는 겁니다.
약4:13-14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모든 인생의 길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는 인생을 잘 사는 것 같고, 때로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과 관계치 않는 삶은 영원한 사망이요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잠14:12-13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막다른 길이란 말이 있죠. 이 말을 영어로 dead end 혹은 blind alley입니다.
죽은 길 눈 먼 길 이란 뜻입니다. 자기는 열심히 가는데 나중에 가보니까 막혀 있습니다. 낭떠러지입니다.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그 당황스러움을 표현한 것이 전도서의 고백 아닙니까?
이게 좋은 줄 알았는데, 잘 사는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막다른 길이요 죽을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또 유토피아(Utopia)라는 이상향(理想鄕)이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아주 좋은 곳을 말합니다.
그 본래 의미는 그게 아니고 그런 데는 없다(No Place)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상향을 찾아 자기 길로 가지만 그런 데는 없고 세상의 길은 모두 죽을 길입니다.
이제는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찾아가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 길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뚫어놓으셨음을 상징합니다.
19-2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성소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담을 쌓게 합니다. 단절시킵니다. 휘장은 담과 같은 것입니다.
사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그런데 예수님이 스스로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죄의 담을 허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으로 아무나 특히 죄인이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힌 휘장을 찢어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살 길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살 길은 영생의 길이요 은혜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구절을 헬라어 원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을 보면 길, 진리, 생명의 각 단어 앞에 유일성을 나타내는 정관사(the)가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 오직 한 길입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영생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그리고 영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괜찮습니까? 얼마나 잘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옥이라는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 세상에서도 변변찮게 살았는데 또 지옥을 가야 한다니...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제 우리가 예수님만 따라가기만 하면 반드시 새로운 살 길로 들어 선 것입니다.
그 길은 은혜의 길입니다.
죄인은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새 길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성전 지성소에 법궤가 있고, 그 뚜껑 부분이 속죄소라고 했죠. 그런데 그 속죄소를 가리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시은좌입니다. 시은좌(施恩座 Seat of Grace, Mercy Seat)는 은혜를 베푸는 좌석이란 뜻으로, 하나님 보좌의 모형입니다.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새 길로 당당히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앞에 간구할 수 있습니다.
히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저는 아무런 조건도 하나님 앞에 구할 만한 당연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당당히 하나님 앞에 제 사정을 내어 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더니 하나님이 다 받아 주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희생으로 값없이 공짜로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좋은 것이 어디서 옵니까?
예수님이 휘장을 찢으심으로 이제 거침없이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 간구할 수 있게 되었음을 증거합니다.
모든 좋은 것은 어디서 옵니까? 세상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약1:16-17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이 세상에서 내 인생을 위해 좋은 게 과연 무엇입니까?
돈이요? 명예요? 권세요?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것만으로 안 됩니다. 광야를 가던 이스라엘이 못 먹고 못 입고 병들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암 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왕상17:14-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이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컴퓨터로 말하면 하드웨어입니다. 만일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그것은 쇳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요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래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회개하는 마음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의지하는 믿음
22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참 마음은 무엇입니까?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인간은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그것이 참 마음입니다.
참 마음이 있다면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백이 없는 믿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제 몸을 볼사르게로 내어 준다 할지라도 은혜가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주의 일을 한다는 자들이 제일 힘든 일입니다.
다 남이 잘못했지 내가 잘못 한 것이 없는데 은혜가 은혜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러하고 있습니다. 나를 던져라 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속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공로로 돌리지 않고 예수님 공로로 돌리는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 해 놓고도 공치사하기에 바쁘지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모든 일에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이런 회개의 마음과 믿음으로 산다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의 삶은 그 생활의 자세부터 달라집니다.
첫째는, 약속하신 하나님은 미쁘시므로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실망하는 믿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둘째는, 믿음의 형제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참된 사랑은 선행으로 나타나게 마련이고, 참된 선행은 사랑에서 비롯되게 마련입니다. 선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랑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는 선행이란 위선에 불과한 것입니다.
셋째는, 오직 권하여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여 예배하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개인의식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그리고 운동을 즐겨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은혜 가운데 살기를 즐겨합니다.
은혜의 새로운 살 길은 벌써 열려져있습니다. 아직도 그 길을 외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더 이상 죽을 길을 가다가 아차하지 마시고 새로운 살 길을 은혜로 사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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