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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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94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요한복음 8: 31-36 삶에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예수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구속받지 않는 자유입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고 누군가가 외쳤던 것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란 생명보다 귀하고 세상에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가 없는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볼 때에 자유에 대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갈망을 하고 있느냐를 보게 됩니다. 1215년 영국에서는 마그나카르타라고 불리는 자유의 대헌장이 발표됨으로서 그 동안 압박 받고 있는 백성들이 영국의 존 왕으로부터 자유를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1884년에는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여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고, 아브라함 링컨은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노예해방을 선언함으로 흑인 노예들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다가 생명 보다 귀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사에도 37년 동안 일본의 압제에서 이 자유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였습니까?
3.1운동은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산이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맨주먹으로 일본군의 무차별한 총칼에 저항을 했는데 당시 통계에 의하면 우리 동포는 7.500명이 살해를 당하고 15,961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46.948명의 무고한 양민이 체포되어 온갖 고문과 강제노역과 감옥에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교회가 3.1운동에 앞장을 섰다고 해서 47개의 교회당이 유린되고, 기미년 4월 15일 수원 제암리 교회는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죄목으로 수원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 제 78연대소속 아리타 중위등 헌병 30명이 제암리에 와서 발안장날 심한 매질에 대한 사과를 하겠다며 15세 이상 남자들을 교회당에 모이게 하여 이렇게 21명의 신도가 모이자 일본 헌병들은 교회당 밖에서 문에 못을 치고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고 총을 난사하고 불길 솟는 교회 앞에서 죽어 가는 남편을 부르는 두 아낙네의 목을 베고 볏짚으로 불을 놓았고 그들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만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민가에 불을 지르니 외딴집 한 채만 남고 그 마을의 32채나 되는 초가가 모두 불을 질러 소각 시켰다고 하였습니다.
3.1운동 당시에 중국 상해에서 간행되었던 영자신문 대륙보의 외국인 기자였던 파이버 씨는 당시의 상황을 일본 헌병이나 군대들이 아무리 총칼로 무찌르고 쏘아도 조선사람들은 돌 하나 던지지를 않았고 남녀학생들은 맨주먹으로 총칼 앞에 가슴을 내밀고 턱을 쳐들고 돌진하였다. 왜경과 왜병들은 피에 굶주린 호랑이 떼와 같이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뛰어 다니며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발길로 차서 수 없는 조선사람들을 죽였다. 그런데 군중들은 한층 더 맹렬하게 만세를 불렀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유가 무엇이기에 이렇게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까?
지금도 자유 민주 연합당이 있지요 소히 자민련이라고 하지요 나라를 찾고 해방을 맞은 우리 민족은 얼마나 자유가 그리웠기에 자유당을 만들었지만 이 자유당은 국민을 자유 하게 해 주기는커녕 고통으로 몰아 넣는 고통의 당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 자유당 시절에 얼마나 부정 부패와 독재를 하였는지 또 자유를 위한 피 흘림이 있지 않았습니까?
3.15부정 선거 4.19 학생사건을 거쳐 5.16군사 쿠데타까지 이 정도 자유를 성취하였으면 또 다시 자유를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 사실은 요즈음도 계속하여 자유 자유 하면서 자유를 목말라 하며 끊임없이 자유를 부르짖는 것 아닙니까?
철학자 부르너는 정의와 자유라는 책에서 자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원하는 모든 자유의 성취는 체제가 바뀐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속에 죄가 있는 한 구속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고 하나님 앞에서의 죄가 있는 한 진정한 자유가 없다. 진정한 자유란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죄로부터 자유를 먼저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자유입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미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루즈벨트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 결사의 자유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연으로부터의 자유, 정치적인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기근과 질병에서의 자유, 경제의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미신으로부터의 자유, 독재의 정치로부터의 자유,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 타락한 자본주의로부터의 자유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자유 남편에게서 자유, 아내에게서 자유, 부모에게서 자유, 자녀들에게서 자유, 별별 자유가 다 있습니다만 은 그러나 사람들은 이같이 자유를 바라지만 자기들 스스로가 자유할 수 없는 죄를 범함으로 소박 가운데 빠지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가 곧 불안과 고통, 그리고 질병과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때문에 진정한 자유란 죄에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 자유의 우선 문제입니다.
죄를 정하는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통하여 승리하는데 참된 자유가 얻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자유가 있지만 사실 이러한 것은 외형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죄와 마귀에게서 자유를 얻지 못하면 이 모든 자유도 인간에게는 진정한 행복을 주지를 못합니다.
죄의 종에서의 해방, 그것이 곧 진정한 자유입니다.
죄인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사람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의 종이 되고 맙니다.
영혼의 고통과 양심의 고통에서와 마귀의 속박과 눌림에서부터 해방이 되어야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자유만을 논하고 또한 그런 것을 얻으려고 투쟁을 하기도 하고, 폭력이나 혁명의 수단으로, 칼과 총등, 무력으로 자유 하려는 데서 많은 피를 흘리기도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더 흘려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한 자유는 내면적인 영적인 자유, 양심의 자유, 정신적인 자유를 가져와야 하는데 사람들은 죄가 해결되지 않아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불안하며 죄에 시달려서 죄에 포로가 되어 참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영의 상태, 즉 양심은 항상 성결을 요구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됨으로 죄를 용서받아 깨끗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십자가의 피 흘림을 통하여 마귀를 이기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권세아래 신음하며 놓여 있던 우리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유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권세가 있으시기 때문에 그 이름을 믿는 자만이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된 것 중의 하나는 좀 더 많고 풍요로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고 자기 맘대로 세상을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들은 더 많은 것들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온갖 제도와 인간관계에 매여 있습니다. 물질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사상과 이념의 노예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는 자유가 우리에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진정한 자유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내가 구속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정한 자유는 바로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정욕을 이겨내고 주의 말씀에 복종하여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참여하고 그 일로 인해 내게 불이익이나 피해가 닥칠지라도 꿋꿋이 감수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겠습니까? 할렐루야?
그래서 성도는 주를 향하여 날마다 올라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참으로 자유케 하리라
신앙 생활에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서 내게 조금이라도 손해나는 일이라 해서 금방 난 이 일을 안 할 자유가 있는 사람이야 .라며 박차고 나가는 자유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유가 사라져 버립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 자유가 아닙니다.
사람은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하지 못하고 있고 스스로 자유 하는 자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구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참으로 자유케하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참으로 열심히 주께로 나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우리 주께만 진정한 자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이룩된 것입니다.
믿는 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요 안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어느 여인이 공중전화에 들어가서 전화를 걸고 나오려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을 들여 문을 열었지만 열려지지 않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전화국에 전화를 하여 “지금 내가 공중전화를 걸고 나가려 하는데 문이 고장나서 열리지 않으니 와서 문을 고치고 나를 구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전화국에서 직원이 급하게 달려와서 문을 열었는데 금방 열리는 것이 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문은 안으로 잡아 당겨야 하는데 이 여인이 당황하여 밖으로 밀기만 하니 열릴 리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 태평양전쟁은 1945년8월15일에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만 은 이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자기 혼자만 살아 있는 줄로 알고 그 굴속에 들어가서 27년 동안을 홀로 살아온 요코라는 일본 군인이 있었습니다. 나무 열매를 따먹고 뿌리를 캐어 먹으면서 낡아빠진 총 한 자루를 의지하고 27년을 살아 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전쟁이 끝난 줄을 알았으면 그곳에서 바보처럼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세상에 속박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제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진리를 두 가지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어에서 진리는 ꡔ에메트ꡕ라는 말입니다. 이는 “결코 변치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천지는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따라 사는 자라는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진리라고 증거 하시고 있습니다.
요14:6에서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된 인간의 삶의 길이 있고 구원의 길이 있고 영생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통하여 우리들의 삶의 근본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이며 우리들의 죽음 이 후의 문제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자유 함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에서 벗어나고 마음과 양심에 참 자유 함을 얻는 자들에게는 실제적으로 생활과 신상에 놀라운 자유함의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사실을 일일이 기록하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눅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시는데 거기에는 18년 동안 귀신에 들려 몸이 꼬부라져서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불쌍히 보시고 안수하여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이 매임에서 풀어 자유케 하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는 우리의 모든 질병에서 자유케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어 사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그 무덤에서 나오게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 사람을 풀어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
예수는 사망과 음부에서 자유케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갈 5: 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진리에서 떠나 죄의 종으로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우리인생들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자유, 즉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를 누린다고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 하리라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구속받지 않는 자유입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고 누군가가 외쳤던 것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란 생명보다 귀하고 세상에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가 없는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볼 때에 자유에 대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갈망을 하고 있느냐를 보게 됩니다. 1215년 영국에서는 마그나카르타라고 불리는 자유의 대헌장이 발표됨으로서 그 동안 압박 받고 있는 백성들이 영국의 존 왕으로부터 자유를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1884년에는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여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고, 아브라함 링컨은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노예해방을 선언함으로 흑인 노예들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다가 생명 보다 귀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사에도 37년 동안 일본의 압제에서 이 자유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였습니까?
3.1운동은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산이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맨주먹으로 일본군의 무차별한 총칼에 저항을 했는데 당시 통계에 의하면 우리 동포는 7.500명이 살해를 당하고 15,961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46.948명의 무고한 양민이 체포되어 온갖 고문과 강제노역과 감옥에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교회가 3.1운동에 앞장을 섰다고 해서 47개의 교회당이 유린되고, 기미년 4월 15일 수원 제암리 교회는 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죄목으로 수원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 제 78연대소속 아리타 중위등 헌병 30명이 제암리에 와서 발안장날 심한 매질에 대한 사과를 하겠다며 15세 이상 남자들을 교회당에 모이게 하여 이렇게 21명의 신도가 모이자 일본 헌병들은 교회당 밖에서 문에 못을 치고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고 총을 난사하고 불길 솟는 교회 앞에서 죽어 가는 남편을 부르는 두 아낙네의 목을 베고 볏짚으로 불을 놓았고 그들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만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민가에 불을 지르니 외딴집 한 채만 남고 그 마을의 32채나 되는 초가가 모두 불을 질러 소각 시켰다고 하였습니다.
3.1운동 당시에 중국 상해에서 간행되었던 영자신문 대륙보의 외국인 기자였던 파이버 씨는 당시의 상황을 일본 헌병이나 군대들이 아무리 총칼로 무찌르고 쏘아도 조선사람들은 돌 하나 던지지를 않았고 남녀학생들은 맨주먹으로 총칼 앞에 가슴을 내밀고 턱을 쳐들고 돌진하였다. 왜경과 왜병들은 피에 굶주린 호랑이 떼와 같이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뛰어 다니며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발길로 차서 수 없는 조선사람들을 죽였다. 그런데 군중들은 한층 더 맹렬하게 만세를 불렀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유가 무엇이기에 이렇게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까?
지금도 자유 민주 연합당이 있지요 소히 자민련이라고 하지요 나라를 찾고 해방을 맞은 우리 민족은 얼마나 자유가 그리웠기에 자유당을 만들었지만 이 자유당은 국민을 자유 하게 해 주기는커녕 고통으로 몰아 넣는 고통의 당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 자유당 시절에 얼마나 부정 부패와 독재를 하였는지 또 자유를 위한 피 흘림이 있지 않았습니까?
3.15부정 선거 4.19 학생사건을 거쳐 5.16군사 쿠데타까지 이 정도 자유를 성취하였으면 또 다시 자유를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 사실은 요즈음도 계속하여 자유 자유 하면서 자유를 목말라 하며 끊임없이 자유를 부르짖는 것 아닙니까?
철학자 부르너는 정의와 자유라는 책에서 자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원하는 모든 자유의 성취는 체제가 바뀐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속에 죄가 있는 한 구속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고 하나님 앞에서의 죄가 있는 한 진정한 자유가 없다. 진정한 자유란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죄로부터 자유를 먼저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자유입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미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루즈벨트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 결사의 자유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연으로부터의 자유, 정치적인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기근과 질병에서의 자유, 경제의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미신으로부터의 자유, 독재의 정치로부터의 자유,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 타락한 자본주의로부터의 자유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자유 남편에게서 자유, 아내에게서 자유, 부모에게서 자유, 자녀들에게서 자유, 별별 자유가 다 있습니다만 은 그러나 사람들은 이같이 자유를 바라지만 자기들 스스로가 자유할 수 없는 죄를 범함으로 소박 가운데 빠지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가 곧 불안과 고통, 그리고 질병과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때문에 진정한 자유란 죄에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 자유의 우선 문제입니다.
죄를 정하는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통하여 승리하는데 참된 자유가 얻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자유가 있지만 사실 이러한 것은 외형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죄와 마귀에게서 자유를 얻지 못하면 이 모든 자유도 인간에게는 진정한 행복을 주지를 못합니다.
죄의 종에서의 해방, 그것이 곧 진정한 자유입니다.
죄인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사람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의 종이 되고 맙니다.
영혼의 고통과 양심의 고통에서와 마귀의 속박과 눌림에서부터 해방이 되어야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자유만을 논하고 또한 그런 것을 얻으려고 투쟁을 하기도 하고, 폭력이나 혁명의 수단으로, 칼과 총등, 무력으로 자유 하려는 데서 많은 피를 흘리기도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더 흘려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한 자유는 내면적인 영적인 자유, 양심의 자유, 정신적인 자유를 가져와야 하는데 사람들은 죄가 해결되지 않아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불안하며 죄에 시달려서 죄에 포로가 되어 참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영의 상태, 즉 양심은 항상 성결을 요구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됨으로 죄를 용서받아 깨끗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십자가의 피 흘림을 통하여 마귀를 이기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권세아래 신음하며 놓여 있던 우리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유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권세가 있으시기 때문에 그 이름을 믿는 자만이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된 것 중의 하나는 좀 더 많고 풍요로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고 자기 맘대로 세상을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들은 더 많은 것들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온갖 제도와 인간관계에 매여 있습니다. 물질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사상과 이념의 노예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는 자유가 우리에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진정한 자유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내가 구속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정한 자유는 바로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정욕을 이겨내고 주의 말씀에 복종하여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참여하고 그 일로 인해 내게 불이익이나 피해가 닥칠지라도 꿋꿋이 감수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겠습니까? 할렐루야?
그래서 성도는 주를 향하여 날마다 올라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참으로 자유케 하리라
신앙 생활에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서 내게 조금이라도 손해나는 일이라 해서 금방 난 이 일을 안 할 자유가 있는 사람이야 .라며 박차고 나가는 자유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유가 사라져 버립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 자유가 아닙니다.
사람은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하지 못하고 있고 스스로 자유 하는 자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구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참으로 자유케하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참으로 열심히 주께로 나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우리 주께만 진정한 자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이룩된 것입니다.
믿는 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요 안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어느 여인이 공중전화에 들어가서 전화를 걸고 나오려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을 들여 문을 열었지만 열려지지 않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전화국에 전화를 하여 “지금 내가 공중전화를 걸고 나가려 하는데 문이 고장나서 열리지 않으니 와서 문을 고치고 나를 구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전화국에서 직원이 급하게 달려와서 문을 열었는데 금방 열리는 것이 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문은 안으로 잡아 당겨야 하는데 이 여인이 당황하여 밖으로 밀기만 하니 열릴 리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 태평양전쟁은 1945년8월15일에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만 은 이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자기 혼자만 살아 있는 줄로 알고 그 굴속에 들어가서 27년 동안을 홀로 살아온 요코라는 일본 군인이 있었습니다. 나무 열매를 따먹고 뿌리를 캐어 먹으면서 낡아빠진 총 한 자루를 의지하고 27년을 살아 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전쟁이 끝난 줄을 알았으면 그곳에서 바보처럼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세상에 속박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제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진리를 두 가지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어에서 진리는 ꡔ에메트ꡕ라는 말입니다. 이는 “결코 변치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천지는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따라 사는 자라는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진리라고 증거 하시고 있습니다.
요14:6에서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참된 인간의 삶의 길이 있고 구원의 길이 있고 영생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통하여 우리들의 삶의 근본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이며 우리들의 죽음 이 후의 문제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자유 함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에서 벗어나고 마음과 양심에 참 자유 함을 얻는 자들에게는 실제적으로 생활과 신상에 놀라운 자유함의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사실을 일일이 기록하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눅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시는데 거기에는 18년 동안 귀신에 들려 몸이 꼬부라져서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불쌍히 보시고 안수하여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이 매임에서 풀어 자유케 하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는 우리의 모든 질병에서 자유케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어 사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그 무덤에서 나오게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 사람을 풀어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
예수는 사망과 음부에서 자유케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갈 5: 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진리에서 떠나 죄의 종으로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우리인생들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자유, 즉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를 누린다고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 하리라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