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신하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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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94회 작성일 2013-01-31 20:55

본문

사무엘상7:3-11 근신하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왕정시대가 형성되기 전에 사사들이 통치 말년에 역사적으로 나라의 존립의 위기가 찾아 온 때입니다.
내우외환입니다. 밖으로는 블레셋과의 전쟁 그리고 안으로는 지파들의 분열상입니다.
이스라엘이라 함은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지배하심 하나님의 통치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상징이라고 여기는 법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서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통치 하십니다. 곧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법궤는 이미 블레셋이라는 이방 민족에게 빼앗겼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법궤를 다시 찾도록 역사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블레셋에게 패하고 그 당시의 전쟁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전쟁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 다곤이 승리하고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의 신이 패한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를 빼앗아 왔으니 그들의 신 다곤 신전 제단에 그 법궤를 제물로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신전에 가보니 야단이 났습니다. 신상의 목이 부러져 달아나고 팔다리가 떨어 잘려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온 블레셋 대표도시 5개시 에그론 가드 에스돗등 지경에 전염병이 돌아 독종이 돌아 이러다가는 온 블레셋의 모든 백성들이 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의 상징인 법궤 때문인 줄 알고 많은 금 예물과 함께 법궤를 이스라엘의 진으로 보내는데 이스라엘은 법궤가 돌아 온지 20년이 되도록 제대로 모셔 드리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2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소히 하나님이 스스로 찾아 오셨으나 그들이 거의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1:9-1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음의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지가 오래 되었고 사실 주님이 찾아 왔으나 못 본체 한 지난간 세월이 20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할 백성들이 믿음 생활을 하지 못하니 죽을 지경입니다.
암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오늘날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말씀이 내 삶에서 없어서 기근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에 믿음을 회복시키고 이스라엘을 새롭게 자가 소개 되었는데 사무엘이었습니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민족적 위기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의해 오랫동안 고통을 당해 왔습니다.
이 블레셋은 어찌나 전쟁을 잘하는지 그 당시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쇠를 녹여서 칼을 만들고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니까 이스라엘은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당해낼 재주가 없습니다.
그들은 늘 블레셋에게 고난을 당했습니다. 가을 수확 철이 되면 블레셋이 와서 수확한 것을 다 뺏어 갔습니다. 수탈과 학대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누구하나 불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통일국가가 아니었습니다.
12개의 지파가 나누어져 있었고 자기 사견의 좋은 대로 행했습니다. 지파끼리도 아웅다웅 싸우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믿음의 생활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게 다 무엇 때문입니까?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믿음이 없는 일 때문입니다.
2절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 나가면 이길 것 같은 미신적인 마음을 가지고 나갔다가 전쟁에 패하고 법궤는 빼앗기고 두 아들은 죽었습니다.
엘리의 가문은 완전히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왜요 법궤가 있었는데 믿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법궤는 출애급 할 때에 놀라운 일을 행하였습니다.
요단을 가르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있었음은 제대로 된 믿음입니다.
어제 미국에서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다가 전화를 하는데 질문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데 이 사실만을 가지면 자신이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으니 회개도 안 해도 구원 받는 것 아닙니까?
그건 아니다.
참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라 하면은 하나님은 반드시 환경을 들어 사람을 들어 회개케 하고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믿음의 사람으로 구원 받게 한다
성령님은 이 사실을 일어 주신다
요16:7-8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래서 세상에서 실패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법궤만 가졌다고 되는 것 아니라 사실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이 게시고 육신적으로 할레를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으로 다가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스라엘이 법궤가 돌아온 지 20년 만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에 사무엘을 통하여 제대로 된 믿음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세상을 이길 수도 없는 믿음에서 이제 실제적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되셔야 합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우리 교회도 제대로 된 믿음을 얻기를 바라고 교회와 성도들이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근신하며 기도하기를 원하는 이유입니다.
사무엘이 외친 제대로 된 믿음은 어떠한 것입니까?
역사를 가져 오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 제일 사랑하느냐? 입니다.
그러면 우상을 버려라 믿음 생활 하는데 그 어떤 것도 걸림돌이 되면 우상입니다.
3절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모세가 법 없는 이스라엘에게 일러준 십계명 역시 우상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1-2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말지니라.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는 나 곧 주 네 하나님이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니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아버지들의 불법을 자손들에게 벌하여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스라엘백성은 미스바에 모이기전 바알과 아세다롯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두마음을 품었습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같이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별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중인격자 싫어하십니다.
시119:112-113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들은 겸손히 순종해서 우상을 다 던져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기도했을까? 먼저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기도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당신의 마음이 붙들려 있는 것이 바로 당신의 신(神)이다.
내가 무엇에 붙들려 있습니까?
사람에 붙들려 있으면 사람이 우상이 되는 것이에요. 밤낮 자기 자식을 끌어안고 내 새끼 내 새끼 하다가
요즘은 또 애완용 강아지를 너무나 사랑해가지고 강아지를 또 내 새끼라고.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고민이 생겼는데 주일날 강아지 볼 사람이 없어서 예배를 빠지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에요. 그래가지고 그 교회 1층에는 애완용 개를 데리고 와서 예배드리는 방을 만들어야 되겠고 그러더라구요. 어떤 목사님은 처음온 성도가 뒤편에서서 포대기에 아기를 엎고 서서 예배를 드리기에 안타까워 안으라고 샤인을 보냈지만 앉지 않고 계속 서서 예배를 드리기에 예배후 그 성도에게 찾아가서 왜 앉지 않고 그냥 서 있으냐고 했는데 그 포대기를 열고 보니 개를 업고 온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스스로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버리게 하실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기도할 때 그들은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6절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게 있습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겼던 것을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내어놓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을 길어서 여호와 앞에 붓는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쏟아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쏟아놓고 금식하며 회개하며 기도했다는 겁니다.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59:1-8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으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날 가장 무서운 것은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 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많은 사람들이 나아 올 때에 요한은 소리쳤습니다.
요3:8-14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문제는 하나님께 쏘리 아임쏘리 이러고는 끝납니다. 이건 회개가 아닙니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너희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여기 두고 가서 그 형제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하고 와서 제물을 드려라 그래서 받으시는 겁니다.
마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리고 그기에 합당한 값을 당당하게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그 값을 치르게 합니다.
다윗은 제일 회개 잘 하는 사람인데 그 증거는 눈물로 매일 요를 적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값을 잘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들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제단을 쌓고 기도했습니다.
9절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이것은 예배를 드렸다 제단을 쌓았다 그런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예배가 없어진 겁니다. 제단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다시 제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왜 응답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제단이 혹시 허물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일주일에 한번 주일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시죠. 한 시간 하나님 생각하다가 세상에 나가면 하나님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마 대부분일 겁니다.
내 삶 속에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드리는 실제로 드리는 예배가 있어야 감당이 됩니다.
밥도 안 먹는데 어찌 일상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까? 예배 시간 마다 참여해야 합니다.
부득이 할 수 없으면 내가 처한 그 곳에서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았으니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허물어진 제단을 다시 수축할 때 거기에 능력 있는 기도응답이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황제로부터 위협을 받았습니다. 1513년 보름스회의에 가서 자기를 변호해야 하는데 두려워서 밤새도록 기도합니다. 그때 황제의 첩자가 마틴루터가 뭐하는가 와서 보고는 기절합니다. 새벽까지 기도하고 있거든요. 가서 보고합니다. 저렇게 기도하는 사람을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마틴루터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민족을 위한다면 기도하십시오
이 교회의 다시 도약하는 방법은 온 교회가 기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내 가정의 문제가 내 인생이 복 되려면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은 절호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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