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해야 할 마음의 걱정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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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68회 작성일 2013-01-31 20:56본문
로마서 91-5 당신이 해야 할 마음의 걱정과 고통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주한 미국대사에 임명된 성 김 씨가 미 국무부에서 김 대사는 성경위에 손을 얹고 행하는 공식적인 선서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본인은 물론 어머니, 부인, 딸들 모두가 눈물범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 김 씨는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셨다면…
데이비션 록펠러는 인류가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한 이래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세계 최고의 부자입니다. 그에게 어느 날 트리뷴 기자가 록펠러 씨, 당신이 세계 제일의 부를 누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니 록펠러는 내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내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의 유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대종상 시상식에서 광해가 남우 주연상등 15개 부분을 휩쓸었는데 그들은 수상 소감에 그 외에도 엄청난 큰 상을 받은 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 자리에 함께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은 대동소위하게 그 소감을 말 할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녀 등에게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혈육에게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그 유명한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심정을 말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골육 친척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쁨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드디어 로마에까지 이르러 복음에 대한 진술을 끝냈습니다.
감격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환희에 찬 소리를 발합니다. 질문을 쏟아내기도 하며, 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속사포처럼 열거하면서 그야말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 로마교회 성도들을 가슴에 품고, 저들을 떠올리며 혼신의 힘을 쏟아 복음을 설파(說破)했습니다.
롬8: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런데 막상 복음의 클라이맥스 곧 절정에 이르자 지금까지 가슴에 품었던 사람은 로마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뇌리에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내 형제, 내 골육, 내 친척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금 전까지 사명을 완수한 기쁨으로 가득했던 그의 마음이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까!
분명 그는 어떤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만 구원받는다고 과연 기쁘고, 행복할까? 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은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 취미 생활은 나만 즐거우면 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필수적입니다.
복음을 전하시기에 바쁘신 주님께서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부자가 음부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고통이 계속되는 그 불꽃 속에서 부자는 누군가를 떠올립니다.
자신의 혈육, 친척들이었습니다.
눅16:27-28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고통 속에서 부자는 그의 아버지 집안의 골육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부자처럼 음부에, 나사로처럼 낙원에 갈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나는 천국에 가 있는데 내 가족, 형제, 친지들이 불꽃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을 생각한다면 내 마음이 편할까요? 행복할까요?
내 생전에 전도 대상자에게, 그 사람 생전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뒤늦게 전도하려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늦어 버립니다.
사도 바울이 울부짖으면서 놀라운 말을 했는데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이말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와 단절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전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라는 말입니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겔3:18-19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내 형제, 친척, 골육, 즉 내 동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나와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관계입니다.
사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곳곳을 다니며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저 멀리 로마에 있는 사람들까지 가슴에 품고 열심히 복음을 설파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허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형제, 골육, 친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방 전도 등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혈육을 인도하는 것은 복음의 종결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저주를 받을 지라도 라는 이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압니까?
더 나아가 그는 끊어질지라도라고 합니다.
바울은 무려 17개의 단어를 열거하면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롬 8:35,39에서 두 번이나 아 강조한바 있습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의 동족, 혈육, 친척이 구원받는다면 그 길을 택하겠다는 열망입니다.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는 각오요, 결심입니다.
복음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걱정 하나 애간장이 끌어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 그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여 하는 고민이란 곧 너무나도 마음이 아픔을 말합니다. 사랑하여 아파 보았습니까?
아5:5-8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어제 임직식에 갔더니 가수 아가가 찬양을 불려서요 그 이름을 보고 아가가 뭐야 아기야 참 희한하다 했는데
어제 찬양을 하는 것보고 언뜻 생각이 난 것이 성경에 아가서 아가가 아닌가 아담 할 아 노래 가,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부부가 복음으로 하나 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천한 술라미 여인 솔로몬 왕과의 사랑의 노래 즉 죄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 특히 골육 친척은 나를 통해 복음을 먼저 들을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곁에 믿지 않는 남편, 아애, 자녀, 부모, 형제, 그리고 이웃을 먼저 구원해야 합니다.
지금 그 근심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저 천국에서 그 근심과 고통을 이어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 생전에, 그리고 부모형제 생전에 그를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 내 안에 이 큰 근심이 있습니까?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까?
성령이 내 양심을 두드리고 있는데, 그것을 느낍니까?
내 골육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거짓이 되지 말고 참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령이 증명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받은 자는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복음을 전하고야 말 것입니다.
저는 참 감사 할 일이 있는데 제 아버지의 형제들이 큰 아버지가 장로님으로 계시면서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열심히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친 4촌들이 신앙생활을 거의 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부모님들 다 믿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형제들도 1남 5녀 인 것으로 아는데 어머니가 전한 복음으로 모두가 다 믿는 다는 것 아닙니까? 물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제 형제들도 5남 1녀입니다
그리고 아내 쪽으로도 신앙이 전파되었다는 사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복음은 가까운 혈육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하여튼 저는 천국에서 제 가까운 혈육 부모님을 만날 것이며 그리고 전도사 시절 죽은 동생을 만나 볼 기쁨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 형제 혈육에게 가장 잘 해 주는 것은 먹을 것 입을 것 주는 것도 좋지 만은 복음 전하는 것 최고로 잘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복음 전해서 천국가게 하는 것 최고의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희생을 치른다 할지라도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주님은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십자가에 내놓으셨습니다.
하물며 저들은 내 형제, 친척, 골육이 아닙니까?
이 시간 이 거룩한 근심, 고통이 나를 지배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추수 감사절에 곡식 추수 된 것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만 할 것이 아니라 내 골육 친척을 주님께로 영혼의 열매 결실을 드리는 감사절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내 주변에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 거룩한 영적 부담감, 그야말로 큰 근심, 끊이지 않는 영적 고통이 나로 하여금 근신하여 기도해야 영혼을 인도 할 수 있도록 축복 하실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전해도 전도가 안 돼 이것이 핑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되신 죽어주시면 그 사람 사는 것입니다.
적당히 적당히 언젠가 언젠가 하다가 때가 되면 때가 되면 하다가 복음 제시가 결실이 없는 것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도 이런 고통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무리와 여인네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는 고통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 받을 형벌을 복음을 받아 드리지 않는 자들을 생각하며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예루살렘을 보며 그들이 받을 형벌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나의 구원은 성령님과 함께 다른이의 구원을 계획하고 염려하는 것으로 확정 짓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가진 자는 반드시 그것을 모르는 형제를 위해 고통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8장에서 확신에 찬 바울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큰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바울의 탄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9장에는 구원받지 못한 동족을 바라보는 바울의 비통한 탄식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모순된 감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절에서 감격에 이은 비통한 탄식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옳습니다.
내가 구원의 감격은 체험하면 하는 만큼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이며 고통인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에 구원받은 기쁨과 구원받지 못한 자에 대한 고통의 마음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렘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만약에 내가 구원 받은 것에 대해 감격해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이웃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마음도 가질 수 없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들은 복음, 내가 얻은 구원, 내가 체험한 기쁨은 너무 좋은 것이어서 이를 소유한 자는 자기 혼자 숨겨놓고 있을 수 없는 본질이 있습니다.
더욱이 나에게 구원의 기쁨과 확신을 성령께서 주시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이웃 형제들을 보면서 근심하고 애통하는 마음 역시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라면 구원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있는 동시에 이웃에 대한 근심이 있어야만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구원의 확신은 있는데 이웃의 영혼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그 구원의 확신은 성령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우선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에 대해 여러 가지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특권인데 받아 드리지 못했습니다.
4-5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양자됨, 영광을 경험하는, 언약들을 선물로 받은, 율법을 수여받은, 예배의, 약속들을 붙들고 사는 특권입니다.
명예로운 조상들을 갖게 된 특권입니다. 거기다가 육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도 유대인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특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을 이스라엘은 몰랐습니다.
내 주변에는 인생의 여러 특권을 즐기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의 구원을 알지 못하고 저주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그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알려 주어야 합니다.
출세보다 더 중요한 것,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그것을 그들에게 이제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전도요, 그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이 혈육과 형제들 이웃에게 전해주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주한 미국대사에 임명된 성 김 씨가 미 국무부에서 김 대사는 성경위에 손을 얹고 행하는 공식적인 선서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본인은 물론 어머니, 부인, 딸들 모두가 눈물범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 김 씨는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셨다면…
데이비션 록펠러는 인류가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한 이래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세계 최고의 부자입니다. 그에게 어느 날 트리뷴 기자가 록펠러 씨, 당신이 세계 제일의 부를 누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니 록펠러는 내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내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의 유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대종상 시상식에서 광해가 남우 주연상등 15개 부분을 휩쓸었는데 그들은 수상 소감에 그 외에도 엄청난 큰 상을 받은 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 자리에 함께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은 대동소위하게 그 소감을 말 할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녀 등에게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혈육에게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그 유명한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심정을 말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골육 친척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쁨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드디어 로마에까지 이르러 복음에 대한 진술을 끝냈습니다.
감격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환희에 찬 소리를 발합니다. 질문을 쏟아내기도 하며, 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속사포처럼 열거하면서 그야말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 로마교회 성도들을 가슴에 품고, 저들을 떠올리며 혼신의 힘을 쏟아 복음을 설파(說破)했습니다.
롬8: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런데 막상 복음의 클라이맥스 곧 절정에 이르자 지금까지 가슴에 품었던 사람은 로마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뇌리에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내 형제, 내 골육, 내 친척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금 전까지 사명을 완수한 기쁨으로 가득했던 그의 마음이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까!
분명 그는 어떤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만 구원받는다고 과연 기쁘고, 행복할까? 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은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 취미 생활은 나만 즐거우면 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필수적입니다.
복음을 전하시기에 바쁘신 주님께서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부자가 음부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고통이 계속되는 그 불꽃 속에서 부자는 누군가를 떠올립니다.
자신의 혈육, 친척들이었습니다.
눅16:27-28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 고통 속에서 부자는 그의 아버지 집안의 골육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부자처럼 음부에, 나사로처럼 낙원에 갈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나는 천국에 가 있는데 내 가족, 형제, 친지들이 불꽃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을 생각한다면 내 마음이 편할까요? 행복할까요?
내 생전에 전도 대상자에게, 그 사람 생전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뒤늦게 전도하려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늦어 버립니다.
사도 바울이 울부짖으면서 놀라운 말을 했는데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이말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와 단절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전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라는 말입니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겔3:18-19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내 형제, 친척, 골육, 즉 내 동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나와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관계입니다.
사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곳곳을 다니며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저 멀리 로마에 있는 사람들까지 가슴에 품고 열심히 복음을 설파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허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형제, 골육, 친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방 전도 등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혈육을 인도하는 것은 복음의 종결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저주를 받을 지라도 라는 이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압니까?
더 나아가 그는 끊어질지라도라고 합니다.
바울은 무려 17개의 단어를 열거하면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롬 8:35,39에서 두 번이나 아 강조한바 있습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의 동족, 혈육, 친척이 구원받는다면 그 길을 택하겠다는 열망입니다.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는 각오요, 결심입니다.
복음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걱정 하나 애간장이 끌어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 그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여 하는 고민이란 곧 너무나도 마음이 아픔을 말합니다. 사랑하여 아파 보았습니까?
아5:5-8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어제 임직식에 갔더니 가수 아가가 찬양을 불려서요 그 이름을 보고 아가가 뭐야 아기야 참 희한하다 했는데
어제 찬양을 하는 것보고 언뜻 생각이 난 것이 성경에 아가서 아가가 아닌가 아담 할 아 노래 가,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부부가 복음으로 하나 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천한 술라미 여인 솔로몬 왕과의 사랑의 노래 즉 죄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 특히 골육 친척은 나를 통해 복음을 먼저 들을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곁에 믿지 않는 남편, 아애, 자녀, 부모, 형제, 그리고 이웃을 먼저 구원해야 합니다.
지금 그 근심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저 천국에서 그 근심과 고통을 이어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 생전에, 그리고 부모형제 생전에 그를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 내 안에 이 큰 근심이 있습니까?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까?
성령이 내 양심을 두드리고 있는데, 그것을 느낍니까?
내 골육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거짓이 되지 말고 참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령이 증명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받은 자는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복음을 전하고야 말 것입니다.
저는 참 감사 할 일이 있는데 제 아버지의 형제들이 큰 아버지가 장로님으로 계시면서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열심히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친 4촌들이 신앙생활을 거의 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부모님들 다 믿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형제들도 1남 5녀 인 것으로 아는데 어머니가 전한 복음으로 모두가 다 믿는 다는 것 아닙니까? 물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제 형제들도 5남 1녀입니다
그리고 아내 쪽으로도 신앙이 전파되었다는 사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복음은 가까운 혈육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하여튼 저는 천국에서 제 가까운 혈육 부모님을 만날 것이며 그리고 전도사 시절 죽은 동생을 만나 볼 기쁨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 형제 혈육에게 가장 잘 해 주는 것은 먹을 것 입을 것 주는 것도 좋지 만은 복음 전하는 것 최고로 잘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복음 전해서 천국가게 하는 것 최고의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희생을 치른다 할지라도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주님은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십자가에 내놓으셨습니다.
하물며 저들은 내 형제, 친척, 골육이 아닙니까?
이 시간 이 거룩한 근심, 고통이 나를 지배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추수 감사절에 곡식 추수 된 것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고 감사만 할 것이 아니라 내 골육 친척을 주님께로 영혼의 열매 결실을 드리는 감사절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내 주변에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 거룩한 영적 부담감, 그야말로 큰 근심, 끊이지 않는 영적 고통이 나로 하여금 근신하여 기도해야 영혼을 인도 할 수 있도록 축복 하실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전해도 전도가 안 돼 이것이 핑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되신 죽어주시면 그 사람 사는 것입니다.
적당히 적당히 언젠가 언젠가 하다가 때가 되면 때가 되면 하다가 복음 제시가 결실이 없는 것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도 이런 고통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무리와 여인네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는 고통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 받을 형벌을 복음을 받아 드리지 않는 자들을 생각하며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예루살렘을 보며 그들이 받을 형벌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나의 구원은 성령님과 함께 다른이의 구원을 계획하고 염려하는 것으로 확정 짓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가진 자는 반드시 그것을 모르는 형제를 위해 고통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8장에서 확신에 찬 바울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큰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바울의 탄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9장에는 구원받지 못한 동족을 바라보는 바울의 비통한 탄식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모순된 감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절에서 감격에 이은 비통한 탄식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옳습니다.
내가 구원의 감격은 체험하면 하는 만큼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이며 고통인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에 구원받은 기쁨과 구원받지 못한 자에 대한 고통의 마음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렘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만약에 내가 구원 받은 것에 대해 감격해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이웃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마음도 가질 수 없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들은 복음, 내가 얻은 구원, 내가 체험한 기쁨은 너무 좋은 것이어서 이를 소유한 자는 자기 혼자 숨겨놓고 있을 수 없는 본질이 있습니다.
더욱이 나에게 구원의 기쁨과 확신을 성령께서 주시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이웃 형제들을 보면서 근심하고 애통하는 마음 역시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라면 구원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있는 동시에 이웃에 대한 근심이 있어야만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구원의 확신은 있는데 이웃의 영혼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그 구원의 확신은 성령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우선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에 대해 여러 가지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특권인데 받아 드리지 못했습니다.
4-5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양자됨, 영광을 경험하는, 언약들을 선물로 받은, 율법을 수여받은, 예배의, 약속들을 붙들고 사는 특권입니다.
명예로운 조상들을 갖게 된 특권입니다. 거기다가 육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도 유대인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특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을 이스라엘은 몰랐습니다.
내 주변에는 인생의 여러 특권을 즐기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의 구원을 알지 못하고 저주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그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알려 주어야 합니다.
출세보다 더 중요한 것,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그것을 그들에게 이제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전도요, 그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이 혈육과 형제들 이웃에게 전해주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