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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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50회 작성일 2013-01-3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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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9-14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이 세상에 자녀가 되는 길은 근본적으로 한 가지입니다. 출생에 의해서 됩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그 어떤 부모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이요, 하나님으로 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139:13-14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낳았다 고해서 다 자식은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부모 자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실질적 관계가 있으면 자녀이고 실질적 관계가 없으면 자녀가 아닙니다.
요즘도 매일 수십 명씩 부모에게서 태어나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저주지에서 우는 아이를 때려 죽게 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가방에 넣어 저수지에 버린 모정도 있지 않습니까?
낳아서 버리는 부모와 버림받는 자식을 진정한 부모자식 관계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모를 거역하고 집나간 자식도 자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혈통적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류는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가 다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스스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10-11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하나님도 진노하셔서 하나님의 품에서 내어 쫓으셨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관계를 원수가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모두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 버림받았고, 자녀가 아닙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원리입니다.
세상의 많은 문제는 왜 인간에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 질서를 벗어낫기 때문에 힘들게 살게 됩니다.
살맛이 나는 인생이 아니라 죽을 맛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 자녀의 영역에서 벗어났으니 생활이 아버지의 은혜 아래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며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 결과로 어떤 삶이 되느냐?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세상을 숭배하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울리면 울고 웃기면 웃고 전혀 자유함이 없는 구속된 삶입니다.
정신적인 고통, 불안, 불평, 허무, 정신병, 노이로제, 불면증, 우울증 등 이상한 저주에 사로잡혀 배경 좋고 지식도 많고 돈도 많은데 자꾸만 망해가게 됩니다.
육신의 고통, 불치병, 우환, 질고, 악몽에 시달리고 가위에 눌리며 병명도 없는데 온 몸이 눌리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죽음과 지옥 심판, 하나님을 부인하고 현실에만 집착하다 결국은 죽어 지옥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영적인 유산, 결국은 모든 문제가 또 다시 자녀에게 대물림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이 하나님 자녀가 되는 길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 자녀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육정으로 혈통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였으나 그렇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잘못된 선민사상으로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를 배척했습니다.
11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혈통이나 조상이나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해서 누구든지 영접하면 됩니다. 차별이 없고 제한도 없고 조건도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는 누구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마다(as many as)라고 했습니다. 얼마든지 영접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에게 천사는 일러 줍니다
눅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 사실을 믿고 구주를 영접이 중요합니다. 중심에서 주님을 영접해야합니다.
영접이 뭡니까? 귀한 사람을 환영하고 대접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영접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과 천사들도 있었습니다.
지극한 영접입니다.
이 일로 조카 롯의 소식을 알고 그 어려움에서 아브라함 때문에 그의 조카 롯이 유황불의 멸망에서 구원함을 받기도 했습니다.
요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다윗이 암몬 왕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사절을 보냈을 때에 암몬왕의 아들 하눈이 그 사절을 귀하게 영접하지 않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사절들의 수염을 다 깎아버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옷을 하체가 드러나도록 잘라버렸습니다. 수염을 생명처럼 아끼는 유대인들이요, 더운 여름에도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는 유대인들에게 치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대노하여 결국은 암몬을 정벌합니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십니까? 나의 구원자십니다. 나의 주인이십니다. 중심에서 환영하고 영접하세요.
찬535장 ♬ 1. 주 예수 대문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 두니 못들어 오시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밖에 세워 두니 나의 수치라.
2. 문 두드리는 손은 못 박힌 손이요 또 가시 면류관은 그 이마에 둘렀네. 이처럼 기다리심 참 사랑이로다. 문 굳게 닫아 두니 한 없는 내죄라.
3. 주 예수 간곡하게 권하는 말씀이 네 죄로 죽은 나를 너 박대 할 쏘냐.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아멘.
베들레헴의 여관 주인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마구간에 재웠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영접치 않았습니다. 영접은커녕 성 밖에 내어 쫓아 못 박아 죽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은 배척당하고 계십니다. 나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네 죄로 죽은 나를 너 박대 할 쏘냐.
그런 중에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내 인생의 구주로 모셔 들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영접하다는 동사는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행동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반면 믿는다는 동사는 현재 계속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구분하자면 영접하는 것은 최초의 단회적인 행동을 말하고, 믿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한 자가 그 후 지속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현재적으로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과거 어떤 시점에서든지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그는 현재적으로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동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현재의 삶에 허물과 약점이 있고 믿음이 약하여질지라도 완전히 믿음에서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믿다가 어떤 형편을 핑계로 중단하거나 배도한 경우를 봅니다.
이것은 그가 처음부터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 곧 진정한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했느냐 아니냐의 판단은 믿음의 시작에서가 아니라 믿음이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는 지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할 때, 그것은 한 번 영접함으로써 영원히 믿음으로 동행하는 삶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예수님을 영접한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권세는 힘(Power)이 아니라 권위(Authority)나 권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어떤 것을 얻는 것 이전에 근본적인 신분에 변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자녀가 되는(genevsqai) 권세(ejxousiva)를 주셨습니다.
권세란 누구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입니다.
조인된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큰 특권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자녀가 되는 권세라고 했습니다.
권세(ejxousiva)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행동의 자유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권세란 무엇에나 자유롭습니다. 특히 자녀는 노예가 아님으로 자유롭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인이 얻은 자유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합니다.
갈4:22-23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4:31-5: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인은 사단의 권세로 부터 자유롭습니다.
죄로 부터 자유롭고 모든 악의 환경에서 자유롭습니다.
모든 사망에서 자유롭고 모든 환란과 질고에서 자유롭습니다.
권세란 말은 나아가서 합법적인 권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날부터 합법적인 모든 특권을 누립니다. 상속권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자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순히 어떤 능력을 받았고, 한두 가지 유익이나 권리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자녀로서의 권능을 가지게 되었고, 영적인 기능을 부여받았습니다.
죄를 다스리며, 악에서 자유하며, 영생을 가지며, 의와 거룩과 진리를 소유합니다. 건강을 누리며 평안을 누리며 기쁨을 누립니다.
영접하고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부여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그 삶은 현격하게 바뀝니다.
어둠 속을 방황하던 사람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됩니다.
인생허무와 사망의 생각에서 벗어나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고아와 같은 소외감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참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원인모를 불안과 답답함과 초조함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더 이상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존재를 위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내 인생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살 수밖에 없던 사람이 베풀고 나누어주는 넉넉한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동행하시며 인도하십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14:17-20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의 축복으로 세계복음화할 수 있는 권능을 받았습니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크 트웨인이 쓴 세계명작 중에 왕자와 거지가 있습니다. 톰 캔티는 거지 술중독자 존캔티의 아들로 오팔가의 빈민가에 태어났고 에드워드는 영국의 국왕 헨리 8세의 아들로 궁전에서 태어났는데 톰과 에드워드는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났다 쌍둥이처럼 닮은 에드워드 왕자와 거지 톰이 옷을 바꿔 입고 왕자는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자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거지처럼 비참하게 살았으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왕자처럼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거지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한쪽 귀퉁이에서 손으로 밤을 먹어서야 되겠습니까? 왕자처럼 품위 있게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신분이 바뀌었으니 내 수준도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날마다 함께 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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