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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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40회 작성일 2013-01-3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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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8-25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런던 타임스가 독자를 대상으로 어떤 사람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에 친구를 가장 잘 정의한 대답으로 선정된 말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릴 때에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바로 참된 친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면 야드 바셈이라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독일의 나치에 의해 6백만 명이 학살당한 아픈 역사를 절대로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라고 만든 유대인 학살기념관입니다.
어린아이의 희생을 기념하는 기념탑 뒤편 언덕에는 어린아이 10여명을 끌어안고 있는 어른의 동상이 있습니다. 동상의 이름은 코르작과 게토의 어린이들입니다.
코르작은 폴란드의 아동작가이며 교육자입니다. 독일 나치가 폴란드의 유대인 학교를 급습하였습니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코르작은 아이들을 양팔로 감싸 안으며 내놓지 않았습니다.
독일군 장교가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니 물러나고 아이들만 내 놓으라!고 했을 때, 그러나 코르작은 스승으로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필사적으로 독일군에게 저항을 하다가 끝내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로 향하는 트럭에 올라탑니다. 그리고 가스실까지 함께 들어가 죽음 앞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면서 함께 죽었습니다.
이번 성탄절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과 끝까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다 주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다 주고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오신 예수님은 예수라는 명칭 외에 또 다른 별명이 있습니다.
임마누엘 이라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왜 붙여졌습니까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임마누엘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마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내 곁을 다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친구도, 또한 돈도, 명예도, 권력도, 언젠가는 다 내 곁을 떠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이만큼 인간은 환경과 사정에 자유롭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실 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이 오늘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번 성탄절은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내 마음에 모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만 사람으로 인하여 세상으로 인하여 힘들어 했던 것을 극복하고 오히려 내 삶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진작 예수님은 오셨지만 그렇게도 오시기를 기다렸지만 받아 드리지 못하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이후 아니 천지 창조 때부터 구세주 메시야를 수천 년간 오심을 기다렸다. 그들은 이 사건에 그들의 가장 빛나는 소망을 두었다. 그들은 그분의 이름을 노래와 예언서 가운데, 또는 성전 의식과 가정에서 기도 가운데 포함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 그를 알지 못하였다. 하늘의 총애를 받으시는 자가 저들에게는 메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이 보였으며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제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를 통해서 성막을 만들게 하시고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직접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아담이 에덴동산을 쫓겨나던 그 때에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죄인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7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서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다시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생활 가운데 구원자로 함께 하십니다.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마음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다. 이것만이 나의 살길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요6:51-57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육신을 지니고 오신 예수님은 치료자로 오셨습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육신을 지니고 오신 예수님은 위로자로 내 삶의 짐을 들어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는 나에게 오신 예수님을 받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괜히 혼자 힘들어 하고 낑낑하지 마십시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임마누엘은 주님과 함께 동고동락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머뭇머뭇 거리지 말고 결단을 미루지 마십시오.
세월만 갑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우 논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매사에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칸트는 한 여인과 사귀고 있었는데 도무지 구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견디다 못해 칸트에게 청혼했습니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칸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칸트는 그때부터 결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결혼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글을 읽으며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그리고 여인과 결혼하기로 최종결론을 내리고 칸트는 여인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 여인의 아버지가나와 말했습니다.
너무 늦었소. 내 딸은 이미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오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제 주님과 영원한 동거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 되는 것,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이제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
2008년 12월 8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비행기가, 전투기가 돌아오던 중에 사고로 주택가에 떨어졌습니다. BBC방송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보도를 했는데요, 이 주택가에 떨어진 그 F-18전투기는 그 자리에서 폭발해서 그 주택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하필이면 우리 한국 분들입니다. 남편은 일 나가서 다행히 죽음을 모면했고, 부인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아이와 또 한국에서 산후 조리를 해주기 위해 봐주기 위해서 온 장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입니까.
그런데 이 집의 가장이 되는 동윤 씨는 아주 믿음이 좋은 분이였어요. 윤동윤씨가 사고현장의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아내와 딸, 그리고 장모님을 데려가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제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앞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조종사 자신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용서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회견하는 모습이 나갔을 때, TV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습니다. 수많은 편지가 왔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기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윤씨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교회가, 이웃들이, 아니 온 국민들이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절망에 처한 우리에게, 슬픔에 처함 우리에게 문제를 만난 우리에게 주님이 오셔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1980년 중반쯤에 한 대학교수 가정에 문제가 생겼어요. 부부가 크게 다투고 이혼하게 됐어요. 그런데 부인이 충격을 받고 두 살 난 어린애를 데리고 달려오는 철도에 뛰어들었습니다.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기차 운전 기관사가 그것을 보고 급히 브레이크를 걸고 기차를 세웠습니다마는 이미 사고를 세우고 난 후에 나가보니까 피투성이가 돼서 그 어머니가 죽어있고 그 옆에 아이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데 보니까 두 다리가 잘렸는데 아직 숨이 붙어있어요. 왜 그러한 어머니가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몰라요. 그 귀한 아이를 주셨는데 왜 아이를 안고 달리는 기차에 뛰어듭니까. 그 귀한 생명을 왜 포기합니까. 자기혼자 뛰어들 일이지 또 왜 애는 데리고 뛰어가지고. 아니, 그것도 자기 혼자 뛰어들면 안돼요. 절대로 뛰어들면 안 되고, 그런 마음이 생겼어도 마음 고쳐먹고 다시 살아야지.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그런데 이 다리가 잘라진 아이를 그 아버지가 맡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홀트아동병원에 보낸 거예요.
그래서 수술을 해서 겨우 아이를 살려놨는데, 누가 두 다리를 잘린 어린아이를 입양합니까. 그래서 걱정을 했습니다. 차라리 그때 세상을 떠났더라면 고생을 덜 할 텐데. 이런 생각도 들었데요.
그런데 이 아이를 입양할 사람을 찾습니다 하고 알리니까 금방 미국에서 연락이 왔데요. 그 아이를 입양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확인했답니다. 아이가 두 다리가 없는데도 입양하겠습니까? 네, 입양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집에서 이 아이를 극진한 사랑으로 키우고 다리 의족을 만들어줘 갖고 말이죠. 2년 후에 그 사진이 왔어요. 이 아이가 의족을 한 채 아주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 아주 이 얼굴에 천사의 미소를 띠고 웃고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절망을 이긴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임마누엘 대신 주님은 함께 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내 짐을 내가 진 것 같으나 실상은 주님이 지고 계십니다.
나 혼자인 것 같으나 믿음의 눈을 뜨고 보면 주님이 내 짐을 대신 지셨고, 주님이 지금도 십자가의 못 자국 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계십니다.
내가 외롭고 힘들다는 생각은 내 생각일 뿐,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 한 염려할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회의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굽이굽이 인생길에 문제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 큰 충격적인 사건을 당했을 때,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이렇게 인생을 끝내야겠다고 하는 그런 절대절망에 처했을 때 그 현장에도 주님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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