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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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58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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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2-20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성령
많은 사람들은 귀신이야기를 하면 관심을 가지고 귀신이 자신들을 해롭게 할까봐 겁을 내고 불안하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 어릴 적부터 귀신 이야기를 많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학교 화장실에 달걀 귀신이 있다고 하여 저는 진짜로 있는 줄 알고 얼마나 겁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 시절에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논 재래식 화장실이 얼마나 크고 깊이 보이던지...
지금 아이들도 귀신에 대하여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귀신에 대해서는 내가 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잘 보여야하는 인식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는데 성령에 대하여 말을 하면 벌컥 화를 내며 현대 과학 시대에 그런 것이 어디 있는냐?는 식으로 달려드는 것을 봅니다.
심지어는 우리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성령에 대하여는 전혀 무지하고 아니 무시하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저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는가 할 정도로 신기합니다.
행 19:1-7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 바울은 결코 성령의 역사 하심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가 없고 예수님을 구주라고 시인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 하심이 아니고서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인 즉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자를 가르칩니다.
롬 8: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생활은 할 수 있지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도 있을 수도 있고 그리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기 보다는 교인 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성령의 역사 하심을 잘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자는 성령의 역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염려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 선에서 그치지 말고 이제는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반드시 영의 세계를 말하고 있고 성령을 말하고 있는 동시에 또한 귀신이 있다고 할뿐만 아니라 귀신의 영이 활동하는 내용까지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귀신이라는 단어가 115번 그리고 마귀라는 단어가 48번, 사단 55번, 악신 7번, 악의 영, 미혹하는 영, 등등이 2- 300번 정도 기록되어 있으니 귀신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귀신의 영은 어두움을 좋아하는 영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을 어두움으로 사망으로 몰아 넣은 일을 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대충 이렇습니다.
마8:28 예수께서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마 9:32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마 12:22 그 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질병을 가져오게도 합니다.
그리고 이유 없이 가난하게도 만듭니다.
그리고 성령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성령 206번, 그리스도의 영 8번, 주의 영 24번, 아버지의 영, 아들의 영, 보혜사 등등으로 표현되어 있으니 귀신이라는 단어와 거의 비슷하게 2-300번 정도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성령의 역사 하심이 있는 가운데 귀신들도 그 만큼 많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에게도 사람의 영이 있는데 이 영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영이 되지를 못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든지 아니면 악의 영 귀신의 인도함을 받든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서도 충분히 그러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인류의 조상은 이 마음을 사단의 영에게 내어 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주관에 따라 행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롬 1:21-23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 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상 종교 믿는 사람들이 제 정신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의 영이 그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행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제 정신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 하시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주관하는 자의 특징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소리만 나와도 입에 거품을 품고 대적하느라고 야단입니다.
예수님을 받아 드리지 못하는 그 원인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 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그 결국은 사형 곧 멸망입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불교 부적 연구소에서 전자 우편물이 왔습니다.
이 부적 가지고 다니면 만사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보면 어처구니없고 웃기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자들은 답답하니 찾아 갈 만 할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얼마나 호감이 가는 말입니까?
브라질의 세계적인 축구선수 호나우도는 부적을 몸에 지니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골 운이 따르기 위해 지닌 부적을 외부에 공개하면 힘이 반감된다고 꽁꽁 감추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의 부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적의 효험을 이렇게 믿고 있어요 저는 아직도 불교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몰라요
벼락에 맞은 대추나무가 그렇게 효과가 있다고 하기도 하고요 진짜 사람 혼란하게 만들어요
그리고는 메뉴가 많아요 무엇이든지 원하는 데로 다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답답한 양반들이 귀가 솔깃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자들의 마음을 빼앗아 갈만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님의 바르게 인도하심을 받을 터인데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으니 악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 아닙니까?
아는 것이 우상 밖에 없고 받은 유산이 귀신의 영이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실력이 없는데 무슨 재주가 있겠습니까?
사울 왕의 경우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에게 더 이상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니 그의 범사의 생활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그에게는 악신이 그를 주장하였고 무당을 찾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들을 결코 악의 영에 인도함을 받아 멸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어두움에서 끌어내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은 구원의 역할은 오늘날 성령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심은 이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지상 공생애 사역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에 제자들에게 이 세상을 떠나가실 것을 미리 예고하시자 예수님만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따랐던 제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 거만한 로마를 정복하고 전 세계를 평정한 다음 세계의 왕으로서 마땅히 오르실 왕 중 왕의 자리에 앉는 것이 순리라고 보았는데 이게 무슨 날 벼락같은 말씀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만에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보았음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에 대한 섭리를 확실하게 깨닫지를 못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구원과 천국이 실패작으로 끝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하고는 그 낭패감에 빠져 기력을 잃고 망연자실한 가운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실패 감과 오해들이 한 순간에 바뀌는 대 변혁의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 바로 오늘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의 성도들이 전혀 기도하기를 힘써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사모한지 10일째 되는 날 갑자기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각 사람 머리 위에 불의 혀 같은 것이 나타나면서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성령 강림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도들과 성도들의 마음은 온전한 깨달음으로 바꼈고, 분명한 구원의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게된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복음의 위대한 일꾼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는 어떠한 시련과 난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죽음이라도 무서워하지 않는 불 퇴진의 전도 사역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제국도 300년이 못되어 기독교 복음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보니 세상이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는 그렇게 무지하고 무기력하던 제자들과 성도들이 그렇게 능력 있는 사명자들로 바뀌어진 것은 바로 성령님의 오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성령강림은 결코 분리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신앙의 힘과 열쇠는 성령님께 있습니다.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고 능력 있는 일군들이 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구원의 역사를 맛보게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성령님은 기도하게 하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기도하는데도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 기도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깨어 기도를 드려 보십시오 응답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맘에 교훈되도다 할렐루야!
그리고 비전과 꿈이 보이고 길이 보입니다.
약 5:14-18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이런 기도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가난이 물러가고 질병이 떠나고 어두움이 물러가는 축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를 외롭고 고독하게 홀로 두시지 않으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할 것이라(18절)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에서의 고아와 과부(약 1:27등)들이 언급될 때마다 이것은 압박과 위협의 현장에서 전혀 기댈 곳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 같은 연약한 믿음의 사람들을 곁에서 도우시며 변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신 할 수 있습니다.
롬 8:27-28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환난과 핍박에 처하게 될 오는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또 다른 변호인 보혜사 성령님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 분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일상의 생활 가운데 계십니다. 내 마음에 계십니다.
성령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거의 날마다 내적 공허와 고독을 느낍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오셔서 채워야 될 것을 다른 것으로 못 채우니까 전부 텅텅 비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고독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숨기고 티를 안 내려고 하니까 그렇지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현대인들은 젊은이들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가만히 혼자 있지를 못합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 바로 현대인들입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혼자의 고독을 견딜힘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고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존적인 고독에서 자유 함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있는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 역시 인간인지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외로워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느끼는 실존의 고독은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의 빈곳을 가득히 채우고 계십니다. 그의 생명의 풍요로움이 우리 마음을 물댄 동산처럼 만들고 계십니다. 주님은 절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습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어려운 말을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교인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분들 대부분은 성령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답을 너무나 잘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그런 성경적인 지식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고아처럼 두려워하며 울고 있는 것을 봅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예수는 있어도 마음으로 알고 있는 예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지식으로만 아는 것으로는 나에게 생명을 부여하지를 못합니다. 머리에는 주님이 계신데 가슴에는 안 계시다보니 그 주님이 내가 실제로 세상을 사는데 도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고아처럼 버림을 받았다고 하는 고독 속에서 몸부림을 쳐도 내가 알고 있는 성경의 예수가 나에게 전혀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어떤 문제와 싸울 때, 외로움이 찾아 올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절망 속에서 몸부림 칠 때 내가 알고 있는 성경의 예수는 저 멀리 서 계시는 것 같고 나에게는 무슨 도움을 주지 못하는 막연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내 속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전적으로 그분에게 의존하는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성령 앞에 무릎 꿇고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옵소서.” 성경에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마음에 모시고 있는 성령을 우리도 모시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성령을 통해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의 마음속에 계셨던 것처럼 지금 우리 마음속에도 거하십니다.
우리를 기도하게 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고 우리 가운데 계시며 범사에 선을 이루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성령님이 오늘 우리 가운데 임재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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