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는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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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47회 작성일 2013-03-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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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14-16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는 새해
빌리그레이엄 전도협회장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아버지 빌리그레이엄 목사의 뒤를 잇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도자 중 한 명이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재정 절벽(fiscal cliff)보다 영적 절벽이 훨씬 심각한 문제라며 미국의 영적 각성과 회개를 촉구했다.
재정 절벽은 정부의 재정지출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거나 줄어들어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을 뜻한다.
지난 3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에 따르면 그레이엄 목사는 최근 공개서한을 통해 언론들은 온통 재정 절벽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영적·도덕적 절벽이 나라에 끼치는 해악에 비하면 별 것 아닌 문제라며 죄에 찌든(sin-sickened) 미국은 재정 절벽보다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동성결혼 증가와 마리화나 합법화 등이 더 심각한 문제라며 미국은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회개와 부흥이 일어난다면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유다왕국이 므낫세 치하에서 죄악으로 가득했으나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가 율법을 발견한 뒤 나라를 회개의 길로 이끈 것에 주목했다.
마4:1-4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재정 절벽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 도덕적 절벽이 더 문제인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2013년이라는 한 해를 주셨습니다.
지난 2012년을 어떻게 살았든지 잘 살았든지 못 살았든지 다 지나가게 했습니다.
지난해를 아직 건너오지 못한 사람 있습니까?
이제는 지나간 시간에 불과 할 뿐입니다.
새해를 주신 것은 한 해를 잘 살아보라고 주셨습니다.
백지로된 수표를 주신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릴 것인가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공평하게 누구든지 시간만큼은 똑같이 주셨습니다.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살아온 결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엄연히 받아 드려야 할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한 시간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시간인지 모릅니다.
하루하루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저도 살아온 과정을 보니 그 시간 시간을 어떻게 보내었는지 그것이 오늘날 나를 있게 했고 이것은 돌이킬 수도 없는 사실이요 그리고 부인하지 못하고 받아 드려야 할 현실입니다.
주어진 인생을 받아 드리지 못하면 나를 부인해야 하고 그리고 정상적인 삶이 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인류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일러 주시고 그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행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마쳤습니다.
히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세상만사를 믿음으로 받아 드립시다
믿음의 결단에는 새로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가치 기준이 되고 생활 태도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치 판단의 기준은 세상적인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인정보다 어떤 사정보다 더욱이 도덕적이거나 믿음적인 것은 그가 생각한 가치에 미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어린 자신을 키워 성숙한 어른이 되기까지 돌봐준 삼촌을 배려하는 것은 안중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윤리 도덕이 무엇입니까?
세상적인 가치 앞에는 유명무실 합니다.
소돔의 성 동성연애자들이 득실한 곳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더라도 세상적인 가치를 앞세우는 데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합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세상 권력이 자신의 최고의 가치로 여겼을 때에 아버지도 죽여야 할 대상이요 아버지의 여자들도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어디에다가 인생의 가치를 두느냐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같은 행동을 취 할 수 있음은 그의 삶에는 인격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53: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이같이 하나님을 안중에 없는 자의 삶은 살아보나 마나 그 결과는 뻔 한 것입니다.
세상에 가치를 둔 롯의 결과는 끝까지 살아보나마나 뻔 한 것입니다.
10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출발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멸망이 예고편이 된 것입니다.
이것 알면서 이 길을 고집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잘 살고 보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 죽는 줄 모르고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 단편집에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소작인 바훔은 더 많은 땅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다. 땅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던 차에 어떤 상인이 먼 고장에 가면 아주 좋은 땅을 헐값에 살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모든 땅을 팔아 가보니 과연 상인의 정보는 정확했는데 다만 땅을 사는 방식이 좀 특이했다.
1000루블만 주면 하루 동안 걸어서 밟고 온 만큼 땅을 주되 해지기 전에 꼭 출발점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틀 무렵 촌장과 마을사람들은 그를 언덕으로 데리고 가 출발시켰다.
그는 부지런히 걸어 한낮이 되었을 땐 상당히 멀리 왔는데 이제 방향을 틀어볼까 할 때 점점 더 좋은 땅이 나타나므로 한참을 더 걸어 간후 방향을 꺾었다.
그는 이제 너무 지쳤다.
하지만 잠깐의 고생이 평생의 득이 될 걸 생각하고 쉬지 않고 걸었다.
또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마침 축축한 분지가 나왔으므로 그것을 버리고 가기엔 너무 아까웠다.
해가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들어 언덕을 향해 무조건 내달렸다.
하지만 언덕은 너무 멀고 체력은 바닥났는데 해는 이미 지평선에 기울고 있었고 자포자기 하려할 때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언덕 위는 아직 해가 안 떨어졌던 것이다.
그는 모든 힘을 쥐어 짜 언덕에 도착했다.
장하구려! 땅을 완전히 잡으셨소! 하는 촌장의 말을 들었으나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하인이 한길 넓이의 땅을 파고 그를 묻었다.
그것이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의 전부였다.
아브람은 결코 그렇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눈을 들어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바라보면 천지사방에 나에게 허락된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십니다.
14-15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어디를 보나 어디로 가나 무엇을 하나 믿음으로 한다면 능치 못할 것이 없으며 복이 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믿음으로 결실 할 것이 많습니다
마포삼열 미국 선교사는 미국의 부통령으로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는 중에 눈을 들어 한반도를 바라보았습니다.
5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적으로 어두운 땅 한반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는 한반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땅에 건너와서 한반도에 복음의 불빛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보십시오
역전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화라도 믿음으로 받아 드린다면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든지 인간적으로 받아 드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하게 해 주세요 해야 합니다.
삶이 힘들수록 인간적으로 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힘들수록 어려울수록 안 될수록 더욱 믿음이 필요합니다.
롬4:18-21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올 한해는 이제 믿음으로 행 할 일만 있습니다. 아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심리 용어가 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의 근원은 소포클레스가 쓴 그리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 기인합니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사랑을 합니다. 오이디푸스는 결국 죄를 깨닫고 자신의 눈을 찔러 멀게 합니다. 자신을 벌한 것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어머니와 결혼한 다음에 이런 말을 합니다. 즐겁게 볼 수 없는데 눈으로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말이 결국 자신의 눈을 뽑아내게 합니다.
현대인들은 즐겁게 볼 수 없는데도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의 눈은 악한 것을 보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현실적인 것, 욕망의 것에 익숙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눈을 가지고는 아무리 봐도 즐겁게 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눈은 믿음의 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탐심의 눈은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헬렌켈러 여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 못한 3중고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녀는 믿음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볼 수 없는 것 때문에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믿음의 출발은 항상 내가 처한 그곳입니다.
자꾸만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에서 출발 하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다 갈아 치우자 남편도 갈고 아내도 갈고 자식도 갈아 보자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신발 밑창입니까? 갈아 치우게
아브라함이 지금 서있는 곳은 매우 씁씁할 것입니다.
아직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은 아들같이 여기는 조카 롯이 인정사정보지 않고 떠나 버릴 때의 심정은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소돔 고모라 실제로 그 땅이 목축하기에 왔다 입니다.
온 땅에 물이 넉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이것저것 논하지 말고 믿음이 요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복입니다. 내 믿음이 복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입니다. 어디 있든지 복입니다.
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복을 확인합시다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올 해는 예배 시간에 빠지지 마십시오
18절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프랑스의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콜럼버스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목적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닻을 올렸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믿음의 출발을 한다면 그것이 가장 위대한 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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