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두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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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77회 작성일 2013-03-0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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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6-20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 살다 혼자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孤獨死) 인구가 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고독사를 일컫는 고도쿠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도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자신의 죽음조차 알리지 못하는 이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6일 부산 남부민동의 한 건물 보일러실에서 50대 남성의 유골이 발견됐다. 바닥에 누운 상태로 발견된 김모(55)씨는 피부조직이 모두 부패해 뼈만 남은 상태였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건 6년 만이었다.
김씨의 방은 2006년 이후 시간이 멈췄다. 벽에 걸린 달력은 2006년 11월을 펼치고 있었다. 2007년 1월 김씨에게 배달된 우편물도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 개봉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이웃들은 2006년 이후 그를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2002년 함께 살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막노동을 하며 혼자 살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웃과도 교류가 없었고, 다른 지역에 살던 누나들과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하며 자신의 죽음조차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지난 10일 부산 좌동에서도 30대 여성의 시신이 8개월 만에 발견됐다. 법원 집행관이 세입자 강제퇴거를 위해 김모(35·여)씨 집에 들어갔다가 백골 상태인 그를 발견했다. 김씨의 마지막을 함께한 것은 착화탄뿐이었다.
김씨가 남긴 마지막 메모에는 건강 상태도 좋지 않고 빚 때문에 괴로운데 혼자 남겨져서 외롭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스무 살까지 새어머니와 살다 고교 졸업 후 독립했다. 이후 김씨는 가족도 친구도 없이 유흥업소를 전전하다 지난해 5월 남겨진 마지막 통화 내역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1인 가구 현황과 특성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12년 기준 453만9000가구에 달해 전체의 25.3%를 차지했다. 네 가구 중 한 곳이 한 명이 사는 집이라는 것이다.
2020년에는 세 가구 중 한 곳 3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게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고도쿠시라고 불리는 독거 가구 사망자가 1980년대 이후 급속히 늘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를 시행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전기·가스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등 혼자 사는 사람들의 안부를 점검하고 있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졌고, 사회 관계망이 약해져 고독사 인구가 늘고 있다며 정서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이면 혼자라는 생각에 이중고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진수 교수는 그동안 고독사 원인을 빈곤에서만 접근했지만 정서적 고립이 더 심각하다며 고립됐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문에서도 그런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아와 같이라고 했습니다.
고아는 부모를 여의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아 몸 붙일 곳이 없는 아이라고 했습니다.
풍부 속에 빈곤이라고 현대인은 많은 메스 메디아 대중문화를 접하지만 현대인은 점점 고독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고독을 쓴 칼 로저스는 고독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상태라고 한다.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독이란 자기를 내어줄만한 상대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놓지 못하는 것은 불신과 불안 때문이라 한다.
이러한 고독이 자기 자신에게 공격이 갈 경우에는 자살이라는 상태로 나타납니다.
또한 타인에게 공격이 갈 경우에는 과격한 사회적 파괴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로저스 박사의 의견대로라면 이러한 자기만의 고독한 방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헤어 나오는 방법은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남에게 자신을 꾸밈없이 내어놓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제 올해는 자기만의 고독한 방에 갇혀 있지 말고 과감하게 나와야 합니다.
18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버려두지 아니하고 고독의 방에 갇히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탄도 가만히 들어와 혼자 있는 여자를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딤후3: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혼자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애들도 혼자 두면 안 됩니다 꼭 일을 저지릅니다.
남편도 혼자두면 안되고 여자도 혼자두면 일을 저지릅니다.
왜?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홀로 두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보혜사로 함께 하십니다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다른 보혜사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보혜사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대언자(intercessor) 변호자(advocate) 상담자(counseller) 권면자/위로자(comforter) 도움자(helper)
성령께서는 보혜사이신 예수님처럼 또 다른 보혜사로 임재 하셔서 함께하시면서 대언해주시고 변호해 주시며, 상담과 함께 권면해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새벽에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감사한지 주께 다 마낍니다
주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누가 나 같은 사람의 상담자가 되고 위로자가 되고 도와 줄 수 있느냐 말입니다.
이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요청에 따라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진리의 영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대신해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19-20절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러므로 성령이 임재하심으로 예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임재로 내 안에 임재 하셔서 함께하시는 신비입니다.
이 임재 속에 성령님과 예수님의 임재하심과 함께 살아가는 신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의 신비입니다.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외적인 사역을 내 속에서 내적으로 행하십니다.
내적 증거와 체험이 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곧 인간의 이성과 의지적으로 믿는 믿음의 생활이 영적으로 믿는 믿음의 생활이 되도록 하십니다.
성령님은 내가 이성으로 의지적으로 깨닫는 회개가 영적 참회가 되게 하시고, 이성적으로 의지적으로 믿는 믿음이 영적확신과 중생의 믿음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거룩해져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해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멈추어 지지 않고 완전해져 가는 성화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는데서 내 믿음은 참되고 진실해지며 나의 헌신은 즐겁고 열매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죤 웨슬리 목사님은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 분이셨습니다. 영국국교회 성공회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옥스포드 대학에서는 신성클럽(the Holy Club)을 조직하여 경건한 신앙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영국국교회 목사이자 옥스퍼드 교수이며 미국 죠지아 주 선교사로 활동한 분입니다.
그럼에도 웨슬리 목사님은 포터에게 보내는 편지가운데서, 나는 기독인이 아니다. 나는 추구할 뿐이지 아직 기독인이 되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북미에서 선교에 실패하고 돌아온 웨슬레는 1738년 5월24일 얼더스게이트(Alderrsgate) 거리에서 있는 한 신도회의 모임에 참석하여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내적인 곧 영적인 회심의 뜨거움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일기의 기록에 보면
저녁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어느 모임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전쯤 되어서,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역사 하시는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함을 느꼈고, 그 분은 내 죄들, 내 죄조차 없이 하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내게 주어졌다.....그런 다음 내가 가르친 것은, 죄를 이기는 승리와 평화는 우리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근거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의식적이고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머물러 있는 신앙을 가지고는 나라는 고독의 방에서 갇혀 살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보혜사로 나의 삶에 함께 하십니다
이제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당신은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갈4:4-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써, 실제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당신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교제는 전 인격적으로 당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많은 성경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나와 진정한 친밀함을 원하시는지 말하고 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출25:21-22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과의 교제는 일시적이 아니고 형식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제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나에게 관심이 있으셔서 계속되고 활기에 넘치는 교제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제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교제입니다.
본질적으로 양쪽 사이의 주고받는 활동적인 나눔이 있다. 그것은 건강한 결혼 생활과 비슷하다.
창2:24-25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요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교제를 통하여 어떤 은혜를 받게 되는가?
모든 필요를 공급하심(빌4:19), 당신의 몸을 치료하심(사53:4), 사단으로부터 자유케하심(눅4:18-19)
당신을 보호하심(잠2:8), 당신을 위로하심(고후1:3-4), 당신을 위해 싸우심(수23:10-11)
당신이 약할 때 도우심(롬8:26), 인도해 주시고 지혜를 주심(약1:5), 평안으로 채우심(사26:3)
즉 보혜사로서의 은혜를 받으니 어찌 고독의 방에 갇혀 살겠습니까?
그 사람의 얼굴 때깔은 다를 것입니다.
보혜사 예수님은 가장 인격적으로 함께 하십니다.
인간답게가 곧 예수님답게입니다.
세상에 오신 성령이 예약해 놓은 숙소는 어디 입니까? 그리고 머무는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성령은 이 세상에 오셔서 나를 숙소 삼으시고 나와 영원토록 함께 있겠다고 계약을 했습니다
성령은 나와 주의 교회에 오신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내 안에 거하심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영으로 내 안에 거하시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 그러면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살아계신 예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까?
성령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거의 날마다 내적 공허의 고독을 느낍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채워야 될 것을 다른 것으로 못 채우니까 그 공허함과 고독은 말로 할 수가 없어요.
사람은 누구든지 환경과 상황에 따른 외로움은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실존의 근본적인 고독은 느끼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내 영혼의 빈곳을 가득히 채우고 계십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이 없는 인생은 마치 고아와 같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그것을 전제합니다.
고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제아무리 피곤하고 지쳐있어도 돌아갈 가정이 있고 그 곳에 자신을 기다리고 돌보아주시는, 자신을 염려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고아들에게는 그러한 따스한 가정이라는 보금자리가 없습니다. 그는 혼자입니다. 철저히 혼자입니다. 그는 고독합니다. 불안합니다. 하지만 그의 고독과 불안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부모님과 따스한 가정만이 채워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고독, 불안, 내적인 목마름들의 원인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입니다.
영적 부모 없는 상태가 그것입니다.
그들은 아빠하고 아버지라고 부를 분이 없습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그 아버지 하나님 이름 한번 부름으로 임하는 사랑과 위로, 평강, 용기와 소망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가격을 매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기 전에는 그들의 영혼은 외로움과 슬픔, 불안, 가난함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을 향하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는, 그 분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일어나 그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천애 고아의 거지같은 자기실상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계실 때는 외로움을 몰랐습니다.
부모가 함께 하지 않음을 알았을 때에 외로움을 알았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의 에브라함 링컨은 믿음의 인물이었습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아주 당당했던 그는 자기의 삶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승리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오직 진실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성공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성령의 빛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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